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22화 (122/458)

< 제 122화. >

뭔가 더 있다는 내 말에 대비 할아버지는 ‘역시’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삭스와 체이스는 잔뜩 기대어린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보았다.

“뭡니까? 뭐가 더 있나요?”

“묘수가 있는 겁니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첫 만남. 기억 하십니까?”

체이스가 어깨를 으쓱인다.

“어떻게 있겠습니까? 그 허름한 사무실이 진짜 SKY인베스트먼트라니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죠.”

삭스가 맞장구 친다.

“하, 나는 솔직히 그날 불쾌했었다고, 내가 그런 허름한 사무실의 대표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게 말이야, 아마 이미지 실추만 아니었다면 굳이 그런 일은 하지 않았겠지.”

다시 날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물론 동양의 젊은 천재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라 생각하죠.”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들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었다.

“그렇죠, 미국에서 어깨에 힘 주고 다니시는 두 분이 그런 허름한 사무실에서 나를 만났으니 참 당황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그랬죠, 처음엔 우리 골드만글러브에 재신이 나타난 줄 았았습니다. 공짜 돈인 줄 알았거든, 안 그런가 체이스?”

“그랬지, 나도 이상한 옵션을 만들···”

체이스와 삭스가 서로를 마주보며 입을 멈추었다.

곧 동시에 휙 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혹시.”

이제야 다음이 무엇인지 알아 챈 모양.

부동산을 폭락 시키면서 함께 진행해야 할 일.

“맞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파생상품을 만들어야죠, 물론 그 상품을 만들 주체는 로스차일드가 되야겠죠.”

체이스와 삭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보였다.

“확실히, 우리가 그랬던 것 처럼.”

“웬 호구가 돈을 퍼다준다고 생각하겠지.”

“후우··· 벌써부터 설레는구만.”

“재미있지 않겠나? 이런 방식이라니, 확실히 경쟁자 하나를 떼 놓을 수 있겠어.”

“그렇지, 로스차일드만 없어도 우리가 얻을 이득은···”

대비 할아버지가 날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로스차일드쪽에서 파생상품을 만드는 것은, 우진이 네가 담당하고, 부동산 가격 하락은 우리가 조장하면 되는 것이냐?”

“예, 세 분이서 합심을 하신다면 충분히 가능 할 것으로 봅니다.”

“하하, 가능은 한데 힘들다는 얘기를 쉽게도 하는구나.”

대비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체이스와 삭스와 일일히 눈을 맞춘다.

“함께 하겠습니까? 삭스, 체이스.”

“여기까지 와서 거절하겠습니까 미스터 록펠러, 그건 예가 아니지요.”

“우리 골드만 글러브도 마찬가지, 같이합시다. 늙으막에 제법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대비 할아버지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날 바라보았다.

“제일 먼저, 무엇을 해줄까?”

“대통령을 좀 움직여주세요.”

“부쉬를?”

“예.”

“어떻게? 부동산 정책을 밀어주고 있는 형국에서 다시 말을 바꾸라 해야하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반대죠, 앞으로도 계속해서 로스차일드가 모기지론을 뿌릴 수 있게 부동산 활황이 불타오르게.”

“하하하, 스스로 욕심에 눈이 멀게 만들라? 좋은 설계다.”

“맞습니다.”

“공감합니다.”

“자, 그럼 이제 조금 더 자세하게 계획을 읊어 봐.”

“지금 대비 할아버지도 그렇고, 삭스와 체이스도 그렇고 아마 제법 많은 대출을 내 준 상황일겁니다.”

셋 모두 동의를 표했다.

“조금씩조금씩 대출을 회수하는 것도 동시에 진행 해 주세요, 물론 티나지 않게. 이왕이면 보수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도 좋겠죠, 신용이 확실하지 않으면 우리는 대출을 내주지 않는다, 뭐 그런 뉘앙스로요.”

“호오, 확실히 그렇게 된다면 의심하지 않겠구나.”

“그렇죠, 그리고 그 사이 저는 대비 할아버지의 은행은 물론, 삭스와 체이스에게도 파생상품 신규개설을 추진 할 겁니다. 당연히 로스차일드에도 마찬가지고요.”

“리스크를 줄여 대출을 내준 나와 여기 JB모간, 골드만글러브는 별 타격이 없고, 욕심에 눈 먼 로스차일드는 타격을 입는다? 너는 차명이나 페이퍼 컴퍼니로 운용할거고?”

“예, 물론이죠. 계획은 확실히 아실 것 같으니,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부탁드립니다.”

***

전날, 대한민국 선화고등학교.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상업고등학교였다.

보통 이곳을 졸업한 여 학생들은 생산직이나 경리쪽으로 진출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학교에 천혁수가 타고 있는 차량이 미끄러지듯 세워지고, 방문을 사전에 알렸기 때문인지 교장이 마중 나오듯 천혁수의 차량 앞에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아, 안녕하십니까, 교장선생님이신가요?”

“예, 제가 이 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습니다.”

천혁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와 악수를 하고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내비치며 말했다.

“죄송하게도 오늘은 날이 아닌 듯 하니, 담소는 어렵겠습니다. 찾고 있는 학생이 있어서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따로 상담실에 자료를 가져다 두었습니다.”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하하, 편하게 일 보시고 언제 기회되면 식사라도 같이 하시지요.”

“좋습니다.”

교장은 대단한 윗사람이라도 만난 듯, 상담실로 향해 걸어가는 천혁수의 뒤통수에 90도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천혁수는 그가 한 말처럼 바쁜지 교장은 신경쓰지 않고 바삐 걸음을 옮겨 교장이 마련했다는 상담실에 들어갔다.

그가 보기 편하게 시곡중학교와는 다르게 잘 정리된 생활기록부 하나가 덜렁 있었다.

‘양우희’

천우진의 쌍둥이 누이이자, 천혁수의 손녀에 대한 정보를 읽는다. 고등학교 3학년때 학교와 연계된 기업에 취업이 되었다는 정보를 확인한 천혁수.

중학교에서 확인한 얼굴과는 다르게 젖살이 빠져 제 미모를 뽐내는 소녀가 밝게 웃고 있는 증명사진.

“눈매가 며늘아기를 꼭 빼 닮았구나.”

“그렇습니까?”

“그래··· 제법 사내 놈들 좀 울리고 다니겠어.”

천혁수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그리움, 그리고 애틋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얼굴로 사진을 쓸어 만지다 백철웅에게 말한다.

“여기, 대양실업의 경리로 취직했다는군, 회사 위치 파악해.”

“예.”

백철웅이 전화를 위해 몇 걸음 물러난 사이, 천혁수의 시선은 바깥에서 천혁수가 나오길 기다리는 정체불명의 차량에 닿았다. 과연 뭐 하는 놈들이기에 자신을 따라다닐까 궁금하던 참이었다.

“회장님,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의 경계쯤에 있는 회사로 나왔습니다. 연 매출 600억원 정도의 튼튼한 중소기업입니다.”

“공단이라··· 안산역 주변에 누가 있지?”

“조선족계 왕영찬이 있습니다.”

“아아, 그놈. 그 놈에게 주소 하나 받아, 조용하게 사람처리하기 좋은 곳으로. 저기 우리 마킹하는 놈들부터 처리하고 움직이지, 손녀 딸에게 불청객을 안내 할 순 없으니까.”

“예, 백부님.”

학교를 벗어난 천혁수.

천혁수가 차량에 오르자 차는 빠르게 안산 시내를 질주했다. 이내 안산역 인근의 원곡동에 도착한 차량은 허름한 골목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다 작은 훠궈집 앞에 주차했다.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주고 천혁수는 차에서 내려 자연스럽게 식당 내부로 진입했다.

식당 내부의 조선족 몇이 막 내부로 들어선 천혁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됐어, 아는 척 하지마. 영찬이 놈이나 나오라고 해, 고기도 좋은 놈으로 내오고.”

“예, 어르신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식당 중앙에 자리 잡은 천혁수.

이윽고 사내 셋이 식당 내부로 진입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은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도 자신들의 식사에 집중했다.

한 눈에 봐도 이 식당이 처음인 사내들, 그러나 천혁수는 그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천혁수의 맞은편에 앉은 백철웅도 마찬가지였다.

곧 주방쪽에서 펑퍼짐한 사내가 활짝 웃으며 냄비를 들고 나오며 천혁수를 바라본다.

“어르신 아입네까? 이야~! 어르신이 내를 잊은 줄 알았습메다.”

“하하, 지나가다 들렀어. 장사는 좀 되더냐? 영찬이 네 놈 얼굴도 오랜만이구나.”

“장사가 다 뭐 그렇지 않겠습미까? 좋~은 놈으로 내 오겠심다. 양고기 괜찮습니까?”

“좋지.”

영찬이라 불린 사내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사내 셋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어르신 일행입네까?”

“아니, 손님인 것 같은데?”

영찬이 입꼬리를 쓰윽 올리며 천혁수를 바라본다.

“하하, 어르신이 오시니까 우리 식당에도 손님이 다 옵니다.”

드르륵.

마침 천혁수의 운전기사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다.

미닫이 문을 닫고는 목을 좌, 우로 꺾으며 문 앞에 두 다리를 살짝 벌리고 선다.

“뭐하고 있네? 손님 받으라.”

영찬의 명령에 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혁수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메뉴판을 살피며 말했다.

“혓바닥이 필요하니까, 한 놈은 살려두거라.”

영찬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어르신 말 아이들었니? 셋 중에 하나만 숨만 붙여 놓으라.”

““예!””

그제야 사내 셋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경계태세를 취했다. 그들이 꺼내는 것은 철심이 박혀있는 삼단봉. 그것을 쳐다보는 조선족들이 피식 웃으며 각자의 허리춤에서 자신들의 연장을 꺼내들었다.

도끼, 정글도, 시퍼렇게 날이 선 사시미.

조선족들의 각자 손에 들린 무기를 쳐다보던 사내 셋이 말했다.

“이 새끼들이 우리가 누군줄 알고?”

영찬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덩하디 말라, 어차피 개 밥이 되믄, 아는 놈들이 없어. 뭐하네? 날래 움직이라, 어르신 식사 해야디.”

***

체이스와 삭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대비 할아버지도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오랜만에 외출이라며 껄껄 웃는 대비 할아버지의 얼굴은 그 어느때 보다 젊게 보였다.

역시 사람은 움직여야 하는 동물인 것 같다.

나는 조용한 테이블에 앉아 시가를 입에 물고 오랜만에 강기태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본부장, 한국인가요?”

-예, 회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꽤나 뾰로통한 목소리.

한동안 연락이 없었으니 그런 모양.

“본부장이 할 일이 생겼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한국에 저 혼자 있다보니 심심했는데.

“미국으로 오세요, 거기서 사람하나 소개시켜 드릴테니까 둘이서 합심해서 움직여야 할 겁니다. 이왕이면 몇번 돌린 페이퍼 컴퍼니 하나도 들고 오세요, SKY인베스트먼트는 숨기고 일을 진행해야 할 것 같으니까.”

-미국 어디로 갑니까?

“뉴욕.”

-흐흐, 알겠습니다. 예쁜 페이퍼 컴퍼니 하나 만들어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본부장과 통화가 끝나고, 바로 이어서 찰리 박과 통화를 하려 할 때. 다이얼을 누르기 전, 먼저 걸려오는 전화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화받았습니다.”

-헬로, 미스터 천.

익숙한 목소리.

“윌리?”

-목소리를 기억해주고, 고맙다고 해야 합니까?

“됐고, 어쩐 일입니까?”

-··· 우리 직원들을 좀 살려주시오.

“뭐요?”

-우리 직원들을 살려달라 부탁드립니다.

“갑자기 뭔 소리입니까?”

-미스터 천의 할아버지, 천혁수 장관이 우리 직원 셋을 데리고 있습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할아버지가 아무런 이유없이 움직였을리 없다. 분명 무엇인가 윌리 놈이 잘못을 한 게 틀림없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길래 우리 할아버지가 움직였지?”

-··· 천혁수 장관을 미행했소.

“글쎄, 그럼 살려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로스차일드가에서 요청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오누이를 찾아 달라는.

“그래서?”

-한국에서 사람 찾는데 이골이 난 사람, 당신의 할아버지 천혁수 장관이 최고니까, 당연히 천혁수 장관을 따라붙었을 뿐입니다. 또, 당신은 우리 CIA에서도 주요인물로 분류합니다. 그러니 당신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기에 마킹했을 뿐입니다.

“스스로 범죄를 저질렀다 시인하는건가?”

-어쩔 수 없는 과정이었다는 얘길 하는 겁니다.

“당신 부하직원을 살려주면, 내가 얻는 건?”

-후우··· 로이드 로스차일드의 오른팔, 테드를 넘기겠습니다.

피식.

절로 웃음이 세어나왔다.

얼토당토 않는 조건이다. 로이드 로스차일드의 오른팔 따위는 언제든 원한다며 취할 수 있는 놈이었다. 로이드 로스차일드를 넘겨준다고 해도 콧방귀를 뀔 마당에 고작 저 정도의 조건이라니.

“어렵겠는데.”

-우리와 척을 져 좋을게 있습니까?

“내가 왜 CIA와 척을 지지? 당신 모가지만 날려버리면 될 일 같은데?”

-······

“당신 직원들 목숨은 보류해 놓지, 더 좋은 조건을 가져와 참고로 난 CIA가 두렵지 않아.”

-안전을··· 부탁합니다.

“조건부터 가져와, 다음부터 내게 전화할 때는 확실한 조건을 만들어 오라고, 그게 예의니까. 내 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비싸.”

-알겠소.

전화를 끊고 나니 잠시 잊고 있었던 오누이의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 할아버지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일테다.

그 과정에서 CIA와도 약간의 트러블이 생길 정도이니, 할아버지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굳이 전화를 해볼까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할아버지도 CIA의 요원들이라고 한다면 쉽게 죽이진 않을테니까 걱정 할 것도 없었다. 설령 죽였다 한들, 생각과 마인드를 바꾼 나는, 정말 두려울게 없었다. 내 핏줄, 내 할아버지를 믿을 뿐이다.

짙은 시가 연기와 함께, 잠시 상념을 날려버리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찰리 박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제 12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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