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17화 (117/458)

< 제 117화. >

플로리다주 외곽을 달리다보면 높다란 콘크리트 담벼락을 마주할 수 있다. 그 콘크리트 담벼락을 넘어가면 이 중 철조망이 나오고, 그 뒤로 운동자과 함께 삭막한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핑크색 건물이 나온다.

이곳이 플로리다주 연방 교도소다.

오늘은 테드가 굳이 교도소 내부로 진입하지 않고 교도소 바깥에서 차량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테드의 곁엔 아리따운 금발의 백인 여성 둘이 저마다의 각선미를 뽐내여 뭇 남성을 유혹하듯 서 있었다.

끼이이익.

철문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다 늙은 노인이 된 모습으로 이건이 뚜벅뚜벅 걸어나온다.

털썩.

교소의 입구를 벗어나자마자 무릎을 꿇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양팔을 활짝 벌리는 이건.

“흐으으으으읍.”

바깥 공기를 모두 삼킬 것 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히죽 웃는다. 언뜻 벌어진 입 사이로 분홍색 잇몸이 선명하게 보인다.

“오늘 우리가 녹여줄 노친네가 저 사람이야?”

곁에 있던 바스트가 우람한 처자의 말에 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와, 언제까지 청승떨게 만들거야? 오늘 너희들은 저 치가 샀으니까, 책임져야지.”

“오케이~ 돈 만 많이주면 하느님이지.”

여인 둘은 새초롬하게 웃으며 또각또각 날카로운 하이힐을 신고 이건에게 다가가 양쪽에서 그를 잡고 일으켜 세운다. 흡족한 표정으로 양쪽의 여인들을 쳐다본 이건의 손은 여자들을 마구 더듬는다.

“차에타서 하든가 하지.”

커다란 캐딜락 SUV에 이건과 여자들 그리고 테드가 올랐다. 차량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테드는 대뜸 여자들을 주무르느라 바쁜 이건에게 물었다.

“그래서 정보는?”

질문과 함께 내민 메모지와 펜을 보고 잠시 인상을 찌푸렸던 이건이 여인들의 손길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받아들어 무언가를 적는다.

[ 하루는 좀 쉬자. ]

“후우··· 아쉽게도 나의 보스는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아, 젊고 돈 많은 여느집 도련님들 처럼 말이야.”

테드의 말이 대충 무엇인지 이해한 이건.

[ 그럼 우선은 힌트만. ]

“힌트?”

[ SKY그룹의 오너 천우진의 혈육에 대한 정보.]

이건이 쓴 메모지를 쳐다보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테드.

“혈육? 가족이라··· 할아버지 천혁수 장관이 전부가 아닌건가?”

이건은 얄밉게도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시 여자들에게 집중할 뿐이었다. 테드는 이건이 건네준 정보를 한참이나 생각했다. 만약 천우진에게 다른 혈육이 있다면 충분히 ‘약점’이라 부를 수 있었다.

과연 이건이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는데는 이유가 있구나 싶은 마음이 반, 과연 이건이 내민 정보를 믿을 수 있나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테드가 복잡한 머릿속을 홀로 정리하느라 바쁘고, 이건은 여인들과 어울리느라 바쁘고, 자연스럽게 운전기사는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보통의 테드라면 몇 명의 경호원들과 함께 움직이겠지만, 오늘은 조수석에 앉은 경호원 1명과 경호겸 운전을 담당하는 직원 1명, 총 2명이 전부였다. 운전에 집중하는 인물과 달리 조수석에 앉은 인물은 힐끔힐끔 룸 미러로 여인들과 이건이 어울리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러던 찰나, 마침 뒤에서 따라오는 차량 한대가 눈에 띄었다.

“톰, 뒤차 언제부터 우릴 따라왔지?”

운전기사가 힐끗 사이드미러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라왔다고?”

“오늘 교도소에서 나온 인물이 없잖아?”

고개를 주억거리는 운전기사.

“그럼 테스트 해 봐야겠군.”

“그래, 우회경로로 가.”

“확인.”

굳이 들리지 않아도 될 주유소에 캐딜락이 들어가자 뒤차는 캐딜락을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도로를 달려 질주했다.

“아닌 것 같은데?”

“흐음, 그런가.”

“차량 통행이 그렇게 없는 구간은 아니니까, 너무 과민반응 하지 말라고.”

차량이 멈추는 것을 느낀 테드가 상념에서 깨어나 운전기사 톰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 아닙니다. 뒤쪽에 차량이 따라붙나 싶었는데 오해였던 것 같습니다.”

테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엄지로 이건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빨리 가자고, 곧 차에서 밤꽃냄새라도 진동할까 싶으니까.”

“예, 서두르겠습니다.”

“그래, 밟아. 나도 빨리 보스를 만나봐야 될 것 같으니까.”

***

공항에서 목적지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다.

“이건이 방금 교도소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목적지는요?”

“놈들의 경호원들 실력이 제법이라 1팀은 놈들을 지나쳤고, 후발대인 3팀이 미행중에 있습니다.”

이번 이건놈 때문에 미리 준비시킨 대원만 총 36명이었다. 일본의 그 망할 망령들이 잠든곳을 불태우는데 사용한 인원이 20명인데 반해, 제법 정성을 들였다 할 수 있었다.

“작전팀 무장수준은요?”

“한국군 보병기준, 1개 대대를 말살 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1팀의 보고에 의하면 매춘부로 보이는 여성 둘이 함께 동승했다고 합니다.”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하, 이런 와중에도 그짓거리가 생각 난 답니까?”

정호석으로서도 알 길이 없을테니 대답은 없었다.

“어쨌든 여자가 동행했다는 건, 가까운 호텔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겠네요.”

“예, 로스차일드의 손길이 닿기 편한 호텔쪽을 후보지로 두고, 작전팀들을 배치해두었습니다. 말이 호텔이지 러브호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로스차일드도 이 일을 조심히 처리하고 싶을 것이다. 이전 한국에서의 일도 있으니 당연히 더욱 조심할 터.

조심하기 위해 소수로 움직인 모양이지만, 그것이 그들의 패착이다. 나는 언제나 이건에게 마킹을 거두지 않는 상태였으니까, 아마도 이건이 살아갈 평생, 내 손아귀에서 놀아나야 할터.

전 삶, 내가 죽기 직전까지, 아니 죽음의 순간까지 이건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것 처럼 말이다.

“그럼 호텔쪽에 미리 배치해둔 경호원들이 있을 수 있겠군요, 혹은 해결사들이나.”

“그렇습니다. 해서 지원팀이 현재 갑작스럽게 투숙객이 증가한 호텔 위주로 탐색중에 있습니다.”

“지원팀은 어떻게 꾸려졌습니까?”

“남, 녀 각 1명씩 1개조로 총 6개조가 외곽의 러브호텔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커플로 위장한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정말 대단한 군사작전이라도 펼치는 것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흥미진진한 마음이 들었다.

“재밌네요.”

“우선 회장님을 모실 호텔을 예약해두었습니다.”

“가죠.”

“예, 회장님.”

***

이건을 태우고 왔던 운전기사 톰이 핫도그 하나를 그와 함께 파트너로 일하는 경호원에게 건넸다.

“아직도야?”

“미친놈이 쌓인게 많은 모양이야.”

“쯧쯧, 보고 하고 말 것도 없구만, 보스가 물어보면 하루종일 ‘그짓’중이다 라고 얘기해야겠어. 늙은이가 대단한데?”

“크크큭, 그 얘기 못들었어?”

“무슨 얘기?”

톰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파트너가 말한다.

“저 늙은이가 연방교도소의 여신이었다는 얘기.”

“여신?”

“그래, 입이고 뒷구녕이고 밤꽃냄새가 마를날이 없었다는 군.”

“웩, 제기랄 핫도그가 넘어올 뻔 했어.”

“크크큭, 당한게 많으니 여자들한테 풀고 싶었었나보지, 우리가 이해하자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잖아?”

“으··· 교도소는 생각보다 뭣 같은 곳이군.”

“그러니 조심해야지, 총기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어쨌든 우리도 돈 받고 하는 일이잖아? 괜히 범죄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얘기야.”

“그래 그래야지.”

둘이 대화에 빠져있을 때, 낡은 복도에 남, 녀 커플 한쌍이 서로의 몸을 더듬으며 등장했다.

휘익~

톰이 휘파람을 부르며 그들의 이목을 끌어왔다.

“팔자 좋네, 아침부터.”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지만 여자가 만류한다.

“잽스? 차이니스? 플로리다에 관광할 게 뭐 있다고 여기까지 오셨나?”

“쯧, 톰. 자제하라고 어쨌든 임무중이니까.”

“아아, 소리, 심심해서 나도 모르게”

파트너의 잔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려 동양인 커플을 쳐다보며 자신의 허리춤의 권총을 보여주는 톰.

“빨리 들어가서 물고 빨고, 마저 하라고.”

남자와 여자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방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호텔을 벗어났다.

“이런 외곽 호텔에 외국인들이라니, 신기하구만.”

“외국인은 성욕이 없나? 그럴수도 있지.”

“보통 불륜관계 아닌가?”

“우리가 상관 할 바 아니지.”

“쳇, 자네는 너무 드라이해 재미가 없다고.”

“지시나 기다리자고, 나도 벌써 몇시간째 ‘앙앙’거리는 소리를 듣다보니 짜증나니까.”

“오케이, 담배한대 피고 와서 교대해줄게, 잠깐 쉬다 오라고.”

“확인.”

***

확실히 피곤하긴 했던 모양이다. 호석이 내 몸에 손을 올리지 않았다면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만큼.

목을 휙휙 돌리며 단잠에 빠졌던 육신을 깨우며 물었다.

“위치 나왔습니까?”

“예, 지원팀이 확인했습니다.”

“거리는?”

“차로 약 1시간 거리입니다.”

“바로가죠.”

“예, 회장님.”

“식사는 가다가 대충 햄버거나 먹읍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은 먹어야죠.”

내 말에 호석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원들도 끼니 챙기라고 하세요, 작전은 저기, 저 뜨거운 놈이 떨어져야 실행할테니.”

아직 높은 자리에 위치한 해를 한 번 쳐다본 호석이 ‘예!’하고는 단호하게 대답했고, 나는 무전기를 꺼내드는 호석을 뒤로 하고 차량에 올랐다.

곧 무전이 끝났는지 호석도 차량에 오르고, 어지간한 총알을 전부 튕겨낼 것 같은 비주얼의 험머가 도로를 주행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햄버거는 맛있다.

언제 먹어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맛이 없기가 힘든 조합이니 당연하지 싶기도 했다. 넓다란 험머의 내부에서 먹는 햄버거는 제법이었다.

“별 다른 움직임 없습니까?”

“우리가 도착하기 전, 로이드 로스차일드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사내가 이건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경계는 어때요?”

“경호원 둘이 교대로 문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복도가 좁아 한 명으로도 충분한 대처가 가능해보였습니다.”

“우리 대원들도 대처할 수 있을까요?”

호석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1초도 걸리지 않아 뚫을 수 있습니다.”

“주변에 다른 경호는요?”

“이건이 묶고 있는 양 옆 방과 맞은편 3개의 방에 2인씩 경호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총 10명이라는 얘기입니까?”

“문 앞을 교대로 지키는 이들까지 총 12명입니다. 아, 이건의 방 안으로 들어간 인물까지 총 13명이군요.”

호로록, 호로록.

남은 콜라를 마저 비우고 이건이 있다는 러브호텔의 간판을 쳐다보며 물었다.

“대원들 피해는 없겠죠?”

“저들의 무장은 권총이 끝입니다. 문제 없습니다.”

“우리 대원들은요?”

“나이프입니다.”

상대는 총이고, 우리는 칼인데 고작 권총을 가지고 있기에 문제가 없다는 아이러니 함. 그만큼 대인전에 자신있는 모양이니 그러려니 했다.

“대신, 섬광탄 몇 발을 준비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보안을 철저하게 하세요, SKY PMC의 정예가 세상에 드러나면 안 됩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이미 도주 경로의 CCTV들도 마비시켰고, 놈들이 선택한 이 러브호텔에 경찰이 출동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쪽이야 정호석이 워낙 전문가이니 그러려니 했다. 정말 허투루 작전을 짜는 사람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정호석의 작전이 부족했다면, SKY는 진즉에 무슨 일이 생겨도 생겼었을 터. 그렇잖은가? 정치인 수십을 죽이고 삼현의 인물을 소리소문 없이 치워버린 작전능력이다.

그러니 당연히 인정해주어야 했다.

게다가 지금은 정호석의 주특기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거의 ‘군사작전’에 가까웠다. 정확히는 인질 확보랄까? 그러니 난 걱정하지 않았다.

“음?”

정호석이 의아해 하며 쌍안경을 내게 건넨다.

“지금 로이드 로스차일드의 오른팔이 차량에 올랐습니다. 아무래도 호텔을 벗어나려는 모양입니다.”

“흠, 필요한 정보를 얻었거나, 얻을게 없거나.”

“미행을 붙일까요?”

짧은 고민이 스치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벌써부터 로스차일드의 핵심 인물을 공격하면 괜한 경계를 살 뿐입니다. 목표물에 집중하죠.”

“예, 알겠습니다.”

과연 로이놈의 오른팔이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을 정보가 무엇인지, 그것은 이건을 사로잡아서 알아내도 충분했다. 내 약점이라는 그 정보는 내가 인지하는 순간 더 이상 약점이라 부를 수 없을 테니까.

러브호텔의 간판이 깜빡 깜빡 점등되고.

이제는 우리의 시간이 찾아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도 그것을 아는 것일까? 호텔의 주변의 차량들이 하나 둘 호텔을 빠져나가 각자의 갈길로 향한다. 오히려 해가 지고 나서야 불륜의 메카 러브호텔은 조용해졌다.

“작전 개시.”

내 명령에 정호석이 무전기를 들어올린다.

“개시!”

< 제 117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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