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16화 (116/458)

< 제 116화. >

루시가 없어도, 그녀의 가족들은 나를 환대했다.

장인 장모는 대가 끊길 것을 염두하지 않은 듯 아들을 낳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식사가 한참 이어지는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장모님, 장인어른. 두분 아직 젊으신데 늦둥이라도 낳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처남은 제가 책임지고 장성할 때 까지 서포트 해 드릴테니 록펠러의 다음 대를 위해서 힘을 쓰시죠?”

내 말을 기꺼워 한 인물은 장인, 장모님이 아닌 대비 할아버지였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얘기구나, 그렇게 아들을 하나 더 낳으래도 말을 듣질 않아.”

대비 할아버지의 말에 장인은 잠시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록펠러에 ‘아들’이 없는 것이 내게 유리한 조건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모양. 나는 전혀, 록펠러를 삼킬 생각이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굳이 록펠러를 삼키지 않아도 충분히 세계 최정상에 올라설 자신이 있으니까.

대비 할아버지는 이미 내가 록펠러 가문의 자산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고 계셨기 때문인지 별 다른 뉘앙스를 풍기지 않았다. 진심으로 자신의 아들이 손자를 낳아주길 바라는 눈치.

때마침 적당한 타이밍이 되었으니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호석에게 눈짓했다.

이번에 준비해온 선물은 무려 미래에 대 히트를 칠 ‘야관문’주와 야관문이었다. 까다로운 통관 과정을 거쳐 가져온 놈 답게 생소한 모습에 장인, 장모, 대비 할아버지까지 관심을 갖는다.

“자, 이 술은 ‘밤의 문을 연다.’는 뜻을 가진 귀한 술입니다. 남자에게 그렇게 좋고, 이 술을 먹고 아이를 가지게 되면 반드시 남자 아이를 낳는다는 동양적 민간요법이 있습니다. 실제로 과학적으로도 남성 스태미너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꽤 장황하게 설명했고, 대비할아버지와 장인어른이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술에 손을 뻗은 인물은 의외로 장모님이셨다.

장인어른이 마시던 와인잔의 와인을 쿨하게 바닥에 흩뿌려 버리고는 그 잔에 야관문주를 찰랑찰랑 넘치도록 따르는 장모님.

“허, 허니.”

당황한 장인어른의 음성에 장모님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오늘 우리는 별관에서 자도록 해요, 본관에는 우리 귀한 손님 사위가 주무시고.”

***

미국은 내가 직접.

한국은 SKY가 알아서.

일본은 찰리 박과 김장원 사장이 동시에 일을 진행하고 있으니 SKY의 고도성장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각자 맡은 바 포지션과 임무가 있으니 나도 일을 게을리 할 순 없었다. 전 날 먼저 자리를 떠난 장인, 장모를 제외하고 나와 대비 할아버지는 체스를 두면서 제법 많은 양의 위스키를 마셨다.

숙취가 찾아 왔지만 밝고 좋은 얼굴이 된 장모님이 내어주는 아침상을 먹으니 한결 속이 편안해졌다. 아침상이 치워질 때 까지 장인어른은 등장하지 않았다. 장모님의 얼굴만 보아도 과연, 장인어른이 어제 어떤 전쟁을 치루셨을지 기대가 되었다.

“가자.”

“예, 할아버지.”

이제 할아버지의 차량에 올라, 대통령이 된 부쉬를 만나러 갈 차례였다. 과연 이번엔 어떤 것들을 얻어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

부쉬가 밝은 얼굴로 나와 대비 할아버지를 맞이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 대통령에 당선되고 슬금슬금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니 목표를 이룬 것 같은 마음에 그럴테다.

하지만 그는 아직 모른다.

곧 그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으로 변할 대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굳이 나도 얘기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부쉬가 그 테러를 이용해 많은 이권을 가져오던 것 처럼, 나도 그 테러에서 부쉬를 도움으로써 많은 이권을 가져올 계획이니까.

대표적으로 SKY항공우주기술에 도움이 될 무기기술 같은 것들을 말이다.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천, 미스터 록펠러.”

“예, 오랜만에 뵙네요 이제는 대통령님이라 불러야겠습니다.”

“하하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게 다 록펠러 가와 SKY의 도움이 아니겠습니까?”

“대통령께서 워낙 능력이 좋으니 시민들의 신뢰를 얻은 것이지요.”

대비 할아버지의 겸양에 나도 마주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내 얼굴에 금칠을 해준다.

“마지막 로이드 로스차일드의 ‘성매매’연루 사건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스터 천의 언론플레이 팁도 큰 도움이 되었고요, 그게 아니었다면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에서 지나친 겸손은 독이 된다.

“하하, 앞으로도 언론플레이 팁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질문 던져 주세요, 하는 일이 사업이다 보니 그 쪽으로는 제법 재주가 좋습니다.”

“예,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금칠로 시작된 얘기는 나의 신혼 생활과 앞으로의 계획등, 소소한 얘기가 주가 되어 계속 진행되었다. 메인디쉬 스테이크를 썰면서도 이어지던 얘기가 디저트가 나오고 나서야 잠시의 공백이 생겼다.

“요즘 로스차일드 쪽에서 모기지론의 대출 완화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대통령이 먼저 ‘일’얘기를 꺼냈다.

“듣기는 했습니다.”

부쉬가 록펠러를 바라본다.

“록펠러가에서도 그쪽으로 많은 대출을 내주고 있는 상황으로 알고 있는데, 대출자격 완화를 감행하면 도움이 되시겠습니까?”

“굳이 돈 벌 구멍이 많아진다는데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대비 할아버지.

먼저 어떤 요구를 던지지 않고 있지만, 대통령은 알아서 록펠러가의 이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건 배울점이라고 생각했으니 알아 둘 필요가 있겠다. 조용히 둘의 대화를 경청했다.

“혹, 다른 필요한 것은 없으신지요? 최대, 최고의 파트너의 대우를 섭섭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훗날 다음 선거에서 제게 마이너스가 될 요인은 피하고 싶군요.”

대비 할아버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생각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하하,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직통 핫 라인을 드릴테니 언제든 연락하셔도 좋습니다.”

“그러지요.”

대통령의 시선이 이번엔 내게 닿았다.

“흐음, SKY의 경우는 조금 애매했습니다. 이미 승승장구 하고 있는 SKY라인과 구골 포털, SKY SOFT의 사업들은 우리가 도울 것이 거의 없더군요, 록펠러씨와 같이 최대 최고의 파트너인 SKY그룹에게 내가 무엇을 도와주어야겠습니까?”

나는 숨김 없이 말했다.

“무기와 반도체를 원합니다.”

“무기요?”

“SKY항공우주기술은 현재, ‘총알’수준의 생산만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대통령.

“기존의 약속은 전 세대의 무기 생산이었습니다.”

“고잉사의 전투기를 생산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 무기가 하늘에만 있겠습니까, 바다도 육지도 있지요, 게다가 저번 미국 국방성과의 회담에서 대한민국의 미사일 규제도 어느정도 완화되었으니, 이제 우리 SKY항공우주기술도 총알보다는 조금 더 덩치가 큰 미사일쪽을 만져봤으면 싶습니다.”

“흐음··· 예민한 문제군요.”

“시작은 대공 방어 미사일로 시작하는게 어떻겠습니까? 명분도 좋지 않습니까? 북한의 핵 공격으로부터 대한민국이 1차 저지에 나선다.”

그럴듯한 얘기에 부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미국쪽에서도 이미 북한의 핵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부쉬가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극비 사항 중 하나였을테니 당연한 반응이다.

“SKY의 정보력이 놀랍군요.”

“대한민국 국방부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국정원과 국방부 내부의 정보기관이 놀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쟁중인 국가입니다.”

“좋습니다. 지대공 미사일 기술 정도라면, 추진해보겠습니다. 어차피 한국 시장도 주요 고객중 하나일테니 그치들도 크게 거부감은 없을지 모릅니다. 뭐, 뭔가를 내놓으라 아우성치겠지만 그건 그렇고, 반도체는 무엇입니까?”

“미국엔 정말 많은 반도체 회사들이 있습니다.”

부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앞으로 시작될 첨단기술 산업에서 반도체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니까요.”

“전세계 기술을 선도하는 미국의 기술은 언제나 기업가에게는 희망이자 로망같은 것이죠.”

“하하, 굳이 달콤한 얘기를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대통령께 부담이 될 부탁을 하진 않습니다. 그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맞게 SKY가 가진 자본력으로 몇 가지 회사를 사 볼까 합니다.”

“흐음, 정부의 개입을 막아달라?”

“예, 그것이 주 정부가 될지, 어떤 정치인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부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를 내 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정도라면 얼마든지요, 너무 지나친 것은 나도 어쩔 수 없음을 미리 얘기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납득할 만 한 수준일테니까요.”

“좋습니다. 그 정도면 요구의 끝입니다.”

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부쉬가 달달한 디져트를 한 입 먹고는 말했다.

“역시 사업가 답게 욕심이 많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SKY는 PMC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아, 알고 있습니다. 실력 좋은 용병들이라지요?”

“혹, 미국에게 용병이 필요할때, SKY에도 신뢰할 수 있는 용병들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한국군의 전투력이야 익히 알고 있으니 확실하게 각인 해 두겠습니다.”

나는 이야기가 끝났다는 신호를 대비 할아버지에게 보냈다. 대비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말했다.

“아주 만족할만한 식사였습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마주 일어서며 대비 할아버지가 내민 손을 맞잡은 대통령.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스터 록펠러, 미스터 천.”

“가끔 기회가 된다면,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식사도 하고, 그러지요.”

***

테드가 플로리다주 연방교도소 내부, 교도소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를 알아본 교도소장이 반갑게 맞이한다.

“오셨습니까?”

“예,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늘 죄수들을 갱생시키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요.”

“하하하, 이건이라는 한국 죄수를 좀, 부탁드립니다.”

“예예, 아마 병실에서 편히 쉬고 있을겁니다. 요 몇 주 제법 살이 올랐습니다.”

“석방 심사가 며칠 안 남았지요?”

“하하, 애초에 죄질이 나빴던 것도 아니고, 겨우 1년 2개월 형이었으니, 전혀 큰 문제 없이 진행될 겁니다.”

테드가 웃으며 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의 로고는 고가의 명품 브랜드의 로고였다.

교도소장은 얼른 케이스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현금이 꽉 차 있는 가죽 지갑이 방긋 인사하며 닫히지 않는 주둥이를 내민다.

“그럼, 5분내로 4885 불러오겠습니다.”

“예, 별로 긴 시간은 필요 없을 겁니다. 그저 석방 심사 날을 얘기해주는 과정입니다.”

“예.”

소장이 나가고 정말 5분도 되지 않아 싱글벙글 제법 좋은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오는 인물.

마치 제집 안방이라도 되는양 소파의 상석에 편하게 앉은 이건이 손가락 두개를 살짝 벌린다.

테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의 손에 담배를 한 개피 끼워주었다. 크게 몇 모금 담배를 태우던 이건에게 말하는 테드.

“네 놈이 주는 정보가 확실해야 할 거야, 이번에도 쓰잘 데 없는 정보라면, 내가 직접 네 놈을 죽일 계획이니까.”

이건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담배를 왼손으로 고쳐 잡고, 오른손으로 메모지에 글을 적는다.

[ 확실해, 이제 나도 그냥 사람처럼 살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고. ]

“믿어보지.”

[ 부탁이 있는데. ]

테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또, 뭐?”

[ 여자··· 여자가 그리워 ]

“미친놈.”

잔뜩 인상을 찌푸린 이건이 바쁘게 손을 놀린다.

[ 날 이해하기 어렵나? 너도 이 뭣같은 곳에서 ‘여자’로 살아봐 분명히 정체성은 남자인데 말이지. ]

“후우, 됐어, 그만 얘기해 충분히 알아들었으니까 아주 황홀한 밤을 선사해줄테니까, 교도소에서 나오는 날, 제대로 된 정보나 물어와, OK?”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건.

“며칠만 참아, 곧 심사니까.”

이건이 이빨 하나 없는 텅빈 입 속을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으으! 흐으으!”

***

미국 전역을 돌며 ‘반도체 설계’기술이 뛰어난 회사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정은 제법 고 됐다.

노천 카페에 앉아 마시는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하루의 피로를 잊게 만들어주는 마약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은 이 아메리카노로도 피로를 날리지 못할 것 같았다.

“회장님, 플로리다에서 온 보고입니다.”

“이건 때문이군요.”

“예, 로스차일드가 제법 손을 쓴 모양입니다. 이건의 석방 심사가 열립니다.”

“가석방인가요?”

“보석인것 같습니다. 애초에 형량이 1년 2개월로 낮았으니까요.”

“바로 전용기 호출하고, 움직입시다.”

“예, 회장님.”

이번에 이건을 사로잡으면 꼭 물어봐야겠다.

도대체 네 놈이 로스차일드에게 약속한 ‘정보’인 내 치명적인 ‘약점’이 무엇인지를.

사지가 잘려나가는 고통에도 얘기하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인정해 줄 생각이다. 놈도 제법 독한 놈이라고.

문득 카페의 유리벽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름돋는 웃음이 걸린 얼굴이 과연 내 얼굴이 맞나 싶었다. 스산한 분위기.

어느새 나는 나의 할아버지 천년묵은 호랑이보다 더 살벌한 기세를 흘리는 용이 되어 있었다.

< 제 11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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