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14화 (114/458)

< 제 114화. >

자유를 얻은 로이드 로스차일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러니 하게도 교도소 방문이었다. 그의 오른팔이라 부를 수 있는 테드와 함께 도착한 교도소는 교도소라 부르기 애매한 색감을 지니고 있었다.

“핑크색이네요.”

“예, 특이하군요.”

“갑시다 면회 신청은 해 놨죠?”

“예. 보스.”

몇 가지 간단한 절차를 밟고 도착한 면회장, 한국과 다르게 범죄자의 수준에 따라 면회절차는 매우 다양하게 있었다. 강화유리 막이 아니고 면대 면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일종의 매점 같은 곳에서 잠시 기다리니 이상한 걸음걸이로 이건이 나타났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때 제법 나이보다 어려보이던 이건은 어느새 제 나이 또래보다 더욱 늙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약점을 얘기할 생각이 없나?”

테드의 질문에 슥슥슥 메모지에 글자를 적는 이건.

[ 제발 여기서 날 꺼내줘··· 뭐든지 말 할게. ]

“네가 약점부터 말 해야지, 저번에 내게 전달한 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쓰레기였어, 이곳에서 8개월이 제법 버틸만 한 모양이야?”

[ 버틸만 하냐고? 미친새끼··· 입에서는 밤꽃냄새가 사라질 날이 없고, 볼일을 볼때면 매일 피똥을 싸 개새끼야 ]

“으으으으으으!”

입으로도 분노를 표하고 펜을 움직여서도 분노를 표한다. 로이드 로스차일드, 이하 로이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러니까, 사람답게 살고 싶으면 그냥 말해, 놈의 약점. 절대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며? 왜? 직접 복수하고 싶어서 얘기하지 않는 건가?”

이빨도 없는 이건이지만 입술을 앙 다물고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 먼저 꺼내 줘, 그럼 반드시 얘기한다. ]

테드와 로이가 눈을 마주치며 무언의 대화를 시작했다. 정말 마음이 맞는 사람들도 눈빛으로만 대화하기는 어려운 법. 자연히 로이를 존경하는 마음이 없는 테드와, 테드의 존경을 받을 역량이 되지 않는 로이는 대화가 되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

결국 테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로이와 함께 멀찍이 떨어져 입을 땠다.

“뭔가를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눈빛에 거짓은 없습니다.”

“흐음, 빼내는 건 쉽고?”

“쉽습니다 보스, 오히려 놈의 입을 봉하는 것은 놈을 빼내는게 더 쉬울 수 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로이가 말했다.

“큰 소리 안나게 조용하게 처리할 자신 있지?”

“예, 보스. 저 테드입니다. 믿어주시죠.”

“저번 일을 보고 어떻게 믿어?”

“크음···”

“쯧, 진행 해, 놈의 입을 봉인한다는 얘기는 죽인다는 뜻이지?”

“그게 가장 깔끔합니다.”

“좋아, 그렇게 하자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로이가 이건을 향해 말했다.

“빼주지.”

얼굴에 화색이 돋은 이건이 얼른 펜을 움직인다.

[ 언제? 최대한 빠르게! 제발! ]

글에서도 간절함이 느껴지기에 테드가 픽 웃으며 말했다.

“최소한 3주.”

[ 똥! ]

“어쩔 수 없어, 절차라는게 있다고 보석으로 빼 줄테니까 네 놈이 가지고 있는 그 약점이나 잘 정리해 두라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테드와 로이의 팔을 붙잡은 이건이 바쁘게 종이에 무엇인가를 적는다.

[ 그럼 제발 잠깐이라도 병원이나, 뭐 그런곳에 입원 시켜줘! 그 3주도 내겐 지옥이라고! 제발 멀쩡한 항문으로 교도소 밖을 나가고 싶다고! ]

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소름이 끼치는 모양인지 어깨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렇게 해 줘, 쯧.”

“예, 보스.”

테드가 차가운 눈으로 이건을 쳐다보았다.

“다시는 나와 보스의 몸에 손을 대지마, 네 놈의 요구조건은 해결해주지.”

“때으 때으!”

땡큐를 구린 바름으로 연발하는 이건을 뒤로 하고 로이와 테드는 교도소 바깥으로 나왔다.

“입에서 밤꽃 냄새라니··· 상상만해도 짜증나는 군.”

“이빨이 없잖습니까, 죄수들에게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죠, 제 양물을 뜯어낼 무기가 없으니까.”

***

SKY전자가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신규 아이템은 SKY팟 3세대와 SKY 폴더 폰이었다.

슬라이드 폰의 유행을 SKY가 선도했었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폴더 폰’의 유행을 선도해볼 생각이다.

전 세계 유일한 컬러를 가지고 있는 SKY폰의 장점을 극대화 하는 디자인, 심플이즈 베스트라는 명언을 그대로 적용한 유려한 곡선. 일명 고아라 폰으로 볼렸던 그것을 닮아 있지만, 내가 아는 지식을 동원해 조금 더 업그레이드 시켰다.

성능이야 당연히 시기상으로 전 삶의 고아라폰이 더 좋겠지만, 디자인 만큼은 지금의 SKY 폴더 폰이 훨씬 잘 빠졌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신규 아이템 발표는 당장 오늘이었고, 나는 발표회 시간을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회장님.”

정호석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니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루라도 바람 잘 날이 없네요.”

훅 들어온 내 엄살에 정호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플로리다주 연방 교도소에 복역중인 이건에게 로스차일드가의 인물이 면회를 갔습니다.”

“아아, 그때 그놈들.”

“예.”

“확실히 이건이 뭔가 가지고 있긴 한 모양이에요? 계속해서 그쪽을 찔러보는 걸 보면.”

고개를 주억거리는 정호석을 쳐다보다 로이드 로스차일드가 떠올랐다. 로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놈의 턱주가리를 한 방 날려줬어야 하는데, 계속 귀찮게구니 조금 짜증났다.

아직은 로스차일드와 전면전을 펼치기에 피해가 크니 참고 있었지만, 슬슬 견제가 오려는 기미가 보이니 우리 쪽에서도 움직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와 가족이 된 록펠러라는 든든한 버팀목도 있으나, 벌써부터 대비 할아버지에게 손을 빌리기에는 면이 살지 않는다. 손녀 사위가 선물을 주면 주었지 부담을 드리면 되겠는가.

“마킹 제대로 해 두셨죠?”

“예, 회장님.”

슬쩍 시계를보니 지금 미국은 늦은 밤일 시각이었다.

“놈들의 움직임은 아마도 이건 놈의 석방이겠죠?”

“예, 일단 이건 그 놈이 어떤 조건을 걸었을 겁니다.”

“로이드 그 애송이가 원하는 것은 내 약점일테고요.”

정호석이 피식 비웃음을 흘린다.

“왜요?”

“하하, 회장님의 약점이라니, 굳이 꼽자면 루시 사모님정도가 아니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과연 로스차일드가 록펠러에게 전면전을 신청할 수 있을까? 지금 내게도 전면전을 신청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기에 정호석이 비웃듯 웃은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도대체 내 약점이 무엇이기에 이건은 꽁꽁 싸매고 말하지 않고 있을까. 무엇이, 어떤 것이 그에게 희망을 주고 있기에 그렇게까지 버티는 것일까? 정말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생각이 많아지는 한편 비웃음도 흘러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이건이, 그리고 로스차일드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뛰어난 저격수를 배치해서 내 머리통을 터뜨리지 않는 이상.

“뭐 암살은 하지 않겠죠.”

흘리 듯 말한 내 말에 정호석이 인상을 찌푸린다. 생각해보지 못한 모양.

“경호를 좀 늘리겠습니다.”

“설마요, 적어도 한국 땅에서는 안전 할 겁니다. CIA나 록펠러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날 건드린다? 말이 되지 않아요.”

“흐음, 곧 다가올 미국 스케쥴에서는 좀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우리 대원들도 있으니까 그 정도는 괜챃을 것 같습니다.”

똑똑똑.

-회장님 시간 되었습니다.

“예, 나갑니다.”

드디어 발표회가 찾아왔다. 공교롭게 시간이 딱 맞다. 미국에서 움직이고 있을 이건 놈을 만나기 좋은 타이밍에 한국에서의 스케쥴이 마무리된다.

오늘의 발표도 자신 있었다. 그만큼 SKY전자의 제품은 완벽하다. 흥행을 장담 할 정도로.

이번에 판매될 SKY팟과 스카이 폴더폰으로 다시 한 번 R&D에 투자할 돈을 벌 것이다. 언젠가 SKY전자뿐 아니라 SKY자동차에서 사용하는 모든 반도체를 자체 수급할 수 있는 시작이 되어 줄 것이다.

“갑시다.”

“예, 회장님.”

***

일본의 한 호텔.

제법 비싼 호텔임에도 방의 크기가 한국의 비싼 호텔에 비교하자면 좀 그랬다.

일본의 특성상 그런 것도 있지만, 이상하게 ‘고가’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 너무 고가의 사치를 부리기는 좀 그랬던 김장원과 찰리 박.

그래도 팀원들이 제법 되니 방이 3개나 되는 펜트하우스를 잡았지만, 한국과 비교하자면 역시 작고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작은 방들의 연속에서 가장 작은 방에 찰리 박과 김장원이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회장님께 보고를 하고, 김 사장님이 움직이셔야겠습니다.”

“아따 질리게 스시만 처먹다 가나 혔는디, 다행이 헐 일이 있네요?”

“쯧, 모리타화학이 쉽지가 않네요, 아무래도 지하쪽 힘을 좀 빌려야겠습니다.”

“워츠케 해드리면 될까요? 제일 쉬운 것은 담가부는 것인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살벌한 말을 내뱉는 김장원, 그러나 찰리 박은 예상하고 있었는지 전혀 개의치 않고 말했다.

“회장님께서 뒷말이 나오는 것도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으니··· 승인만 받는다면야 그것도 어렵지는 않겠습니다.”

“뭐시다냐, 전범기업? 뭐 그런 축에 속한다고 들었는디 맞습니까?”

“일본 기업중에 전범기업 아닌곳이 어디있겠습니까? 다 그 시절에 쌓은 부로 커 왔겠죠.”

“잉, 찢어 죽여도 션찮을 놈들이란 소리네요잉.”

“뭐 꼭 그런 건 아니고요.”

“흐흐, 알겄습니다. 회장님 승인은 제가 받을까요?”

“일단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겄습니다. 그럼 저는 오늘도 바깥에 나가야쓰겄네요, 일단 그 지역 야쿠자 놈들한티 괜히 떡밥을 던져 줬다가는 피곤할 수 있으니께.”

찰리 박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예, 믿고 있겠습니다.”

“으따 걱정을 말아부쇼, 나가 책임지고 처리 해불라니까, 여차하믄 쩌그, 잘 벼린 칼도 있고.”

김장원의 고갯짓에 고개를 돌린 찰리 박.

그의 시선에 닿은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던 이재형이었다. 들개를 닮았던 찰리 박은 어쩐지 그에게서 짙은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퇴근하니 할아버지가 뉴스와 함께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이번 신제품도 반응이 좋구나, 성공하겠어.”

“그래야죠 전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50퍼센트를 달성 할 겁니다.”

“그래, 그래보인다.”

“아, 이건 그 놈이 또 움직이는 모양이에요, 로스차일드 가랑 붙어 먹네요.”

이건 이란 이름 두자에 할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노골적인 불쾌함을 내비치신다.

“흐음, 쯧. 아무래도 그놈의 숨을 거둬야겠구나.”

나는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아뇨, 이번엔 좀 더 독하게 해야겠습니다.”

잠시 날 빤히 쳐다보는 할아버지.

“어떻게 말이더냐?”

“깊고 깊은 심연의 절망?”

“또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이번엔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공사가 다망하시잖아요?”

아쉬운 감정을 느끼시는 것 같지만, 그래도 몇 번 놈을 괴롭혀주어서 그럴까? 할아버지는 별 미련없이 혀를차며 말했다.

“쯧쯧, 일본 놈들 때문에라도 어디 가기가 좀 그렇구나, 나도 루시의 얼굴은 보고 싶은데.”

“올해만 좀 참으세요, 금방 그렇게 될 겁니다.”

“오냐, 사돈께서도 심심하면 놀러오라 얘기해주거라.”

“예, 전달하겠습니다.”

“그럼 결국, 이건놈의 그 숨은 내 것이더냐?”

미련이 없으신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기회가 있으니 놓치시지 않는다.

“그럼요, 손자는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놈입니다.”

“하하, 오냐 일 보거라.”

“예.”

< 제 114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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