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2화. >
야스쿠니 신사가 불타는 장면이 전 세계로 송출되기 시작했다. 소방차 수십대가 출동하고 일대가 마비될 정도로 커다란 화재였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화산이라도 폭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느 한 군데에서 시작된 불길이 아닌, 신사 내부 이곳저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오른 화재.
“흐음, 네가 한 일이더냐?”
할아버지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위험하구나.”
“필요하니까요, 앞으로 이런일이 제법 자주 있을겁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되겠어, 양지와 음지에서의 활동이라니, 걸리지 않게 각별히 주의하거라.”
“국정원 내부에서는 알지 못할겁니다. 가짜 신분증을 사용했어요.”
“국정원이 문제겠느냐, 당장 CIA나 해외 정보부서들도 촉각을 곤두세울게다.”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사용할 일은 없을겁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리다 묻는다.
“신사를 불태우는 일이 필요한 일이더냐?”
“훈련에 필요한 일이었죠, 360명의 정예 대원들의 실전 훈련이 필요하니까요, 굳이 저곳을 노린 이유는 일석이조?”
“일석이조라면 적어도 하나 이상은 좋은 점이 있다는 얘기구나, 훈련 용도 외에 다른것이 있더냐?”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기분이 좋잖아요? 바퀴벌레같은 총리놈의 침울한 표정을 보는거.”
진심이냐는 듯 날 쳐다보는 할아버지.
이상할테다. 여태껏 의미 없는 움직임은 없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흔들어 놓는 겁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슬슬 일본에도 손을 뻗어야 하니까요.”
“흐음.”
만족스럽지 않으신 모양.
“앞으로 일본시장에서 SKY도 제법 영향력을 행사 하려면 총리놈의 힘을 좀 줄여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말이더냐?”
“어느나라든 나이 좀 드신 분들은 ‘미신’을 믿기 마련입니다.”
“미신?”
“예.”
할아버지가 답답한 표정을 짓는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해보라는 뜻이다.
“가령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신내림을 받아야 하는 사람의 주변에 자꾸만 안 좋은일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죠, 아니면 남편의 팬티속에 부적을 넣어놔야 바람피지 않는다는 뭐 그런 미신들 말입니다.”
“미신에 대해서는 이해했다.”
“일본에 자꾸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겁니다. 그때마다 일본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둘러대게 될 것이고, 이번 오사카 초교 난입사건처럼 우리에게 화살을 돌릴지도 모르죠.”
“그래서?”
“그 사이에 교묘하게 소문을 하나 퍼뜨리는 거죠, 바퀴벌레 같은 총리놈이 총리가 된 뒤로부터 일본에 망조가 깃들기 시작했다와 같은.”
“호오.”
이제야 내 뜻을 이해하신 것 같았다.
“정치인에게 제법 치명적인 일이구나.”
“예,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의 정치판도 젊은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삶은 크게 변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 정치라는 것이 기득권의 이권에 따라 놀아나게 되어 있는 시스템이지.”
“일본은 극우 세력들이 항상 득세하던 곳입니다. 자연스럽게 그쪽에 기득권이 몰려있죠, 그리고 제가 탐이 나는 사업이 하나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앞에 말했던 것들은 모두가 곁가지에 지나지 않구나, 원대한 목적은 지금 말한 ‘그 사업’이구나.”
씨익.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맞다.
원래 목표도 바로 그 사업이다. 아직은 큰 문제가 없지만 많은 반도체가 필요한 첨단 산업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일본의 소재기술은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소재기술을 한국으로 가져올 생각이었다. 당장의 문제가 아닌 최소 5년 뒤의 일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반도체 기술은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디자인, 생산공정, 소재.
메모리 기술은 이미 세계 탑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SKY에 아쉬운 부분은 바로 디자인과 소재. 생산공정이야 차츰차츰 만들어내면 되고 그걸로 부족하다면 대만쪽을 거쳐오면 될 일이었다. 어쨌든 대만같은 경우에도 SKY가 들어간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테니까.
디자인 즉, 설계의 경우에는 ‘미국’이 항상 탑을 달렸다. 소재는 각 분야마다 다르지만, 그래도 일본은 많은 소재분야에서 탑을 달렸다.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이 세 품목의 소재기술은 반드시 SKY가 세계시장을 선도해야 했다. 나는 최소한 7년안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실제로 전 삶 2020년대부터 붉어진 일본과 한국간의 외교분쟁을 통해 ‘반도체 수급’이 어려워 한국은 한동안 몸살을 앓았던 순간이 있었으니까.
애초부터 ‘몸살’따위는 예방할 튼튼한 몸뚱이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도 한국의 국력이 상승하는 것을 두려워 하던 일본놈들이, 우리 SKY의 존재 때문에 현 삶에서는 더 빠르게 견제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미 조금씩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바퀴벌레 총리를 흔들어 놓는 것은 뭐, 곁가지죠.”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뒤를 친다. 성동격서, 그런 느낌이구나.”
“하하, 좋게 포장해주시네요.”
지금도 SKY전자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분화된 계열사로 SKY반도체도 마찬가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설계 능력을 키우고 파운드리도 키우고, 실제로 스카이 팟과 스카이 슬라이드의 이익금 대부분을 R&D에 투자하고 있을 정도로 SKY전자는 차분히 차분히 미래를 대비해나가고 있었다.
“하여간, 이번 신사참배는 못 하게 될 겁니다. 다 타버려 잿더미가 된 곳에서 참배를 지낼 순 없을테니까요.”
“확실히 그렇구나, 아마 내일부터 외교부도 움직일테다. 신사참배를 예고한 일부터 시작해 재일교포 3세라는 프레임을 씌운 일까지, 외교부도 제법 뿔이 낫을게야.”
“예, 마이튜브에 동영상까지 풀렸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문제죠, 호구소리 듣기 싫으면 움직여야 할 겁니다.”
***
로스차일드와 로이드 로스차일드가 주 정부에서 기획한 기획도시를 둘러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이지?”
“어떤 것이요?”
로이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로스차일드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내뱉는다.
“저 서민들의 삶이 말이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제법 모양새를 갖추고 살고 있어 보입니다.”
“저 집은 누구의 소유 같으냐?”
피식 웃는 로이드.
“우리의 소유겠죠.”
이번에는 대답이 마음에드는지 로스차일드가 히죽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그래, 지금 부동산 가격은 해마다 끝을 모르고 상승하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대출을 받아 마련한 저 주택들의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결국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집을 잃어버리면 우린 자연스럽게 집을 가질 수 있지, 또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면? 그 동안 이자와 수수료등을 내야 하니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돈을 번다.”
“실패 할 수 없는 사업이라는 얘기군요.”
“그렇지, 이게 금융업에 장점이야, 돈이 돈을 불러오거든.”
“예.”
로스차일드가 다시 자신의 아들 로이를 쳐다보며 묻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주택 값은 끝을 모르고 오르고 있고, 대출 절차는 까다로워.”
로이가 입꼬리를 히죽 올리며 말한다.
“그럼 대출 절차를 간소화시켜야죠.”
로스차일드가 마음에든다는 듯 히죽 웃는다.
“정답이다.”
“기존의 대출 기준을 조금 완화 해야겠군요?”
“아쉽게도 그게 쉽지가 않아.”
“어째서입니까?”
“우리가 밀던 민주당이 대통령이 되지 못했거든.”
로이가 불편한 얘기가 튀어나오니 ‘크흠’하며 로스차일드의 눈을 피한다.
“덕분에 예상했던 이익이 무려 7퍼센트나 줄어들었다.”
까드득 어금니를 씹는 로이.
그러거나 말거나 로스차일드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 얘기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것 같지?”
“항상, 생각하고 행동하라.”
“맞아, 문제가 될 것 같은 일은 하지 않는게 좋고, 문제가 될 것 같은 일은 남에게 보여주지 마라. 그 점을 항상 명심해.”
“예.”
“그 동안 수업을 받느라 고생했다. 제법 달게 벌을 받은 것 같으니, 다시 너에게 자유를 주마. 록펠러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지 못한것이 뼈 아프지만··· 자본주의 시장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법이지.”
아버지의 표정을 쓱 살피는 로이.
로스차일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한다.
“아직도 루시에게 미련이 남았어?”
“미련은 아니고, 그녀의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내가 아니라 고작 옐로우 몽키라니···”
피식 웃는 로스차일드.
“가지지 못하면 부숴야지, 그게 로스차일드가 살아남는 비결이다. 명심해.”
“예, 아버지. 마침 그놈의 약점을 캐고있습니다.”
“약점?”
“예, 곧 소득이 있을것 같습니다.”
비릿하게 입꼬리를 들어올리는 로이를 가만히 쳐다보던 로스차일드가 고개를 끄덕인다. 로이드 로스차일드가 자신있을때면 짓던 표정이기 때문이었다.
***
다음날 오랜만에 찰리 박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하하하, 회장님 오랜만에 절 찾으셨습니다. 결혼 생활은 즐겁습니까?”
“만나자 마자 극딜을 퍼부으시네요.”
“예? 극딜이요?”
“아, 하하 농담이었습니다. 의표를 찌른다 뭐 그런 뜻입니다.”
“제가요? 아닌데요? 진심으로 물어본겁니다.”
“롱디 아닙니까 우리 커플이.”
“아아, 사모님은 미국에 계시군요.”
“예, 그래서 신혼이 신혼 같지가 않습니다.”
찰리 박이 피식 웃는다.
“어쩐지 회장님 표정이 밝아보이는 건 기분탓입니까?”
나는 검지를 입 앞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쉿, 비밀입니다.”
“하하하하, 모든 유부남이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일테니 비밀은 지켜드리겠습니다.”
“유럽에서 돌아온지 4일쯤 되셨나요?”
“예.”
활짝 웃는 표정이 미국에서도 처리한 일들이 완벽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보고는 더 들어보지 않아도 분명 내가 만족할 만한 성과 이상을 가져왔을테니 묻지 않았다.
“다음 행선지가 정해졌습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안 그래도 내일쯤 되면 몸이 근질근질 거릴 타이밍이었습니다.”
“이번엔 제법 돈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찰리 박이 제법 놀란 표정을 짓는다.
“회장님이 ‘돈이 든다’라고 얘기할 정도면··· 꽤 덩어리가 큰 모양입니다.”
“가져올게 많고, 골키퍼가 월드클래스거든요.”
“아아, 오랜만에 주특기를 살리라는 말씀이군요.”
“예, 적대적 M&A여도 상관없고 뭘 해도 상관없습니다. 확실하게 굴복시키고 가져오세요, 피도 눈물도 없이 가져오셔도 좋습니다.”
찰리 박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정말 자신있는 분야입니다.”
“좋네요.”
“실패하면 어떻게 할까요?”
역시 눈치가 빠른 사람 답게 내 의중을 읽은 것 같았다.
“실패하면, 회사를 도산시켜버리세요.”
“인수하거나, 멸 하거나.”
“예, 양자택일을 던져주세요, ‘망할래? 흡수될래?’”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한 서류를 내밀었다.
자필로 준비된 서류였다. 보고서의 형태도 아니고 어떠한 형태도 아니다. 단순한 메모처럼 보이는 그런 서류다.
“불화수소는 스텔라, 쇼와, 모리타. 포토레지스트는 티오케이, 스미토모, 도쿄오카, 제이에스알. 플루오린폴리이미드는 가네카, 다이 킨. 앞 부분은 기술이나 주요 상품인것 같고, 뒷부분이 각 상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회사인 모양이군요.”
정말 별거 아닌 서류지만 확실하게 알아듣는 이런 인재가 내 곁에 있다니 벌써 해당 회사들을 사온것 같았다.
“필요한 자금은 당연히, SKY인베스트먼트에서 끌어다 쓰세요, 유보금을 70퍼센트까지 늘려드릴테니까요.”
“예, 회장님. 그런 액수라면 자신 있습니다.”
“언제든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하시고요, 적대적 M&A답게, 조금 거친 부분이 필요하다면 말이죠.”
찰리 박이 들개와 같은 얼굴로 혀를 할짝인다.
먹잇감을 발견한 맹견 같았다.
“화끈하군요, 오랜만에 회장님다운 면모를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동안 내가 너무 신사같았죠?”
굳이 부정을 표하지는 않는 찰리 박.
“회장님은 언제 미국으로 건너가십니까?”
내 미국행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당장 나의 반려가 미국에 있으니 당연한 얘기다.
“이번 SKY전자의 신제품 발표 직후입니다.”
“아아, 이번 휴대폰도 디자인이 잘 빠졌다고 난리더군요.”
“그렇죠, 아직은 ‘기능’면에서 차별화 단계는 어렵습니다. 곧 그것도 완성될 예정이지만요.”
“슬슬, SKY SOFT에서도 수익이 발생하고 있으니 참 기대됩니다. 당장 1년 1년이 다른 SKY니까요.”
“입 바른 소리는 됐습니다. 내일부터 바쁘실텐데, 오늘은 목좀 축일까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듯, 환하게 웃는 찰리 박이 말했다.
“차트만 주구장창 파고 있을 강기태 본부장도 부르시죠?”
“예, 강기태 본부장 뿐 아니라, 정호석 대표와 김장원 사장도 부릅시다.”
“좋습니다. 오랜만에 진탕 마셔보지요.”
< 제 11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