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1화. >
쿠와아아아아악.
멋들어지게 생긴 F-15K전투기가 오산공군 기지에서 창공을 향해 이륙하고, SKY항공우주기술의 관계자들, 고잉사의 관계자들, 공군, 국방부 관계자들이 두손을 들어 ‘짝짝짝’하고 박수를 쳤다.
진즉부터 F-15K전투기가 공군에게 공급되고 있었지만, 지금 이륙하고 있는 저 기체는 고잉사의 엔지니어의 도움없이 순수하게 우리 엔지니어들이 직접 제작한 놈이었다. 즉, 적어도 F-15K제조에 관해서는 더 이상 고잉사의 엔지니어들의 손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
우리 SKY항공우주기술에 ‘전투기’기술이 흡수되는 순간이란 얘기였다.
“정말 한국인들의 ‘빨리빨리’성향은 참···”
고잉사의 CEO의 엄살에 장내에 있던 모든 한국인들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천우진 회장님.”
“천 회장님 고생하셨습니다.”
국방부 및, 공군 관계자들의 치사에 살짝 겸양을 떨어주며 그렇게 첫 SKY항공우주기술의 직접제작 전투기 시험 비행을 끝냈다. 작은 미니버스에 오른 SKY항공우주기술의 관계자들, 나는 그들 중 책임자라 부를 수 있는 R&D센터의 센터장을 호출했다.
“센터장님, 옆자리에서 가실까요?”
“하하, 예 회장님.”
별 거리낌 없이 내 옆자리 앉은 센터장에게 물었다.
“전투기 말고, 항공기 개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점보 비행기는 불가하더라도 그 아랫단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평범한 여객기가 아닌, 고급화 전략을 써볼까 합니다.”
고급화 전략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들었기 때문일까, 센터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커다란 여객기말고 조금 사이즈가 작더라도 외장과 내부가 여타의 항공기들과 달랐으면 싶어요, 가령 저기 산유국가의 왕자의 전용기처럼 말입니다.”
“아아, 이해했습니다.”
“단순히 내부에 돈을 쳐발랐다는 인식 말고, 돈을 쏟아부은 만큼 ‘안전’에 있어서도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흐음,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좋습니다.”
“가장 최고의 스펙으로 한 번 제작해보세요, SKY오너의 첫 전용기를.”
“예! 회장님.”
워낙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공군기지에서 SKY항공우주기술의 사옥까지는 금방이었다. 직원들과 일별 하고 다시 내 차량에 올랐다.
“전자쪽 회의가 몇시였죠?”
차량에 오르자마자 던진 질문에 호석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바로 대답했다.
“오후 2시입니다.”
“올라가는 중에 점심을 먹어야겠군요.”
“예, 회장님.”
“그, 일본놈 조사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 오늘 퇴근길에는 보고서를 받아보시게 만들겠습니다.”
“좋네요.”
***
차량에서 받았던 보고서를 아직 개봉하지 않았다. 이동중에 서류를 살필 만큼 여유없는 삶이 싫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급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할아버지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시가를 태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왔더냐?”
“예.”
“일본놈들에게 제대로 한 방 맞았구나, 재일교포 3세라는 발표 때문에 역풍을 맞고 있다.”
피식 웃으며 할아버지의 맞은편에 앉았다.
정호석이 퇴근길에 건네준 서류를 드디어 개봉했다. 나는 서류를 쳐다보지도 않고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사실 볼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안 봐도, 내가 아는 일본이라면 대충 예상할 수 있으니까, 그것은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일테다. 분명 전화로도 할아버지도 오사카 경시청의 발표를 믿지 않았으니까.
아는 사람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놈들의 발표와 언론의 발표따위를 믿는 것은 바보 짓이라는 걸.
샤락, 샤라락.
서류를 천천히 넘기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풀린다.
“역시는 역시구나.”
“그래요?”
“보지도 않았더냐?”
“굳이 볼 필요 있습니까? 뻔한데.”
“하하하, 그것도 그렇구나, 미야자키 37세, 그냥 미친놈이다. 재일교포와는 전혀 연관관계가 없군.”
“보고서는 선물로 드릴게요, 이제 대한민국 외교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겁니다. 국제적인 비난의 화살이 대한민국 ‘국민성’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일테니까요.”
“그렇지.”
힐끗 고개를 돌려 정호석을 쳐다보았다.
“정예 20명, 도쿄에 도착했나요?”
“예, 도쿄 관광중에 있습니다.”
말이 관광이지 분명, 현장 답사 느낌으로 진행하고 있을테다.
“목표는 뭣 같은 것들이 잠든곳.”
할아버지가 날 쳐다본다.
“야스쿠니 신사를 말하더냐?”
할아버지가 내려 놓은 시가를 내 쪽으로 가져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곳에 뭘 하려고?”
시가를 쭈욱 빨아들이자 시가의 끝이 붉게붉게 변한다. 그리고 난 그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렇게요.”
정호석이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정예 360명의 대원들을 훈련시키면서도 항상 어째서 이런 고강도의 훈련이 필요한지 의문을 품던 그다. 어떤 전장에 출전시키기 위함인지 이해하지 못하던 그.
그러나 이런 일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모양이다. 아쉽게도, 지금 시도하려는 일은 아주 쉬운일일 터였다.
이슬람 무장단체들과 일본의 ‘경비’따위는 차원이 다르니까, 총 한 번 쏴보지 않은 경비따위들과 비교자체를 거부한다.
어쨌든 ‘실전’이라는데에 의미가 있다. 나의 대원들이 더욱 강병이 되어줄테니까.
“불싸지르겠다?”
“뜨거운 맛 좀 봐야죠.”
할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하, 벌써 성명문이 떠오르는 것 같구나, ‘천벌을 받았다.’ 국민들이 아주 좋아하겠어.”
“오우, 완전 정치인 다 되셨다니까?”
피식 웃은 할아버지가 서류를 흔들며 말했다.
“이 서류는 내가 요긴하게 쓰마.”
“예.”
시가연기를 고개를 돌려 후 하고 뱉어낸 뒤 정호석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 미친놈.”
“예, 미야자키요.”
“그 놈 인터뷰좀 따 보세요.”
“카메라에 담아오라는 말씀이십니까?”
“예, 담아 올 필요는 없고, 인터뷰 따면 바로 마이튜브 재팬에 업로드하세요.”
“아아, 이해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해 주시고, 이제 퇴근하시죠.”
“예, 회장님.”
***
아침부터 외교부가 시끄러웠다.
이유는 다름아닌 천혁수 복지부장관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자신의 출근지가 아닌 굳이 외교부를 쳐들어와 ‘외교부장관’을 찾고 있었다.
결국 그 소식을 들은 외교부장관은 울며 겨자먹기로 조금 이른 출근을 해야했다.
“아니 장관님, 공무원 업무시간이 있는데 이리 늦은 출근이라니요.”
“크흠··· 죄송합니다.”
천혁수의 핀잔에 그저 죄송하다 대답한 그.
“그런데 복지부장관께서 여기는 어쩐일로?”
“지금 일본과 우리 한국의 문제에 ‘외교부’가 빠져있을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크흠···”
말 하는 것 마다 외교부 장관을 불편하게 만드는 신기한 재주를 가진 천혁수였다.
“놈들이 재일교포3세라는 말도 안되는 발표로 대한민국을 미친놈 집단으로 프레임 씌우는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오사카 경시청에 계속 그 미친놈의 정보를 요구하고 있으나 전혀 응답이 없습니다.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고요.”
“쯧쯧, 그것부터가 놈들이 구린내를 풍기는 것 아니겠어요?”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천혁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최선은 무슨.”
툭.
천혁수가 자신이 챙겨온 서류를 테이블에 툭하니 던지니 외교부 장관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서류를 확인한다.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외교부 장관.
“이 망할 놈들이···”
“이래도 최선을 다했습니까?”
천혁수의 꾸중에 할 말을 잃은 외교부장관.
“미안합니다.”
“이제 우리 정부도 나서야지 않겠습니까?”
“신중하게 검토하겠습니다.”
“국제적인 망신살을 뻗칠수도 있습니다. 그 서류, 잘만 이용하면 오히려 화살을 다시 일본에게 돌려줄수도 있겠지요, 그 바퀴벌레같은 총리놈에게.”
***
마이튜브 재팬에 의문의 동영상이 하나 업로드 되었다.
[ 악마와의 인터뷰 몰래카메라]
자극적인 제목의 동영상은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는지 빠르게 조회수를 상승시키고 있었다.
몰래카메라라는 제목에 충실하게도, 동영상은 정말 조심스럽게 촬영되었고, 아주 작은 구멍을 통해 얼마전 언론을 시끄럽게 달구었던 인물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당신이 초등학생들을 살해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께서 시키셨다.
-경시청에서 당신을 재일교포 3세로 발표했습니다.
-미친놈들, 나는 조센징 따위가 아니다. 나는 신의 대리인 신의 화신이자 대일본제국의 새로운 천왕이 될 몸이다!
-당신은 정말 재일교포 3세가 아닙니까?
-아니다! 내이름은 미야자키 무사시로. 사무라이의 피를 이어받았다.
조회수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만큼, 댓글들도 빠르게 숫자를 늘려가고 있었다.
ㄴ뭐야! 그럼 오사카 경시청이 거짓말로 발표했다는 거야?
ㄴ얼굴은 확실히 그 놈이 맞아 그 미친놈!
ㄴ미친, 도대체 왜 재일교포 3세라고 발표한거지?
ㄴ에휴, 딱 보면 몰라? 우리 일본의 종특이잖아 감추기지 쪽팔린거야, 초교생 살인사건이라니 너무 쪽팔리잖아?
ㄴ제기랄 그걸 감추기 위해 재일교포를 들먹이는 것이 더욱 쪽팔린 일이라고!
마이동풍.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지나쳐 흘려버림을 일컫는 말.
무슨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질 않는 부류에게 하는 말이었고, 그 말에 몹시도 잘 어울리는 인물들이 있었으니 대표적으로 일본의 극우세력을 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극우파는 인터넷 상에도 존재한다.
ㄴ이건 조센징이 조작한 영상이 틀림 없다! 저 미친 범죄자의 말을 믿는 우매한 일본인은 없겠지.
ㄴ영상 그 어디에도 조작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데?
ㄴ조센징이냐?
ㄴ아니 이야기가 왜 그렇게 튀어?
ㄴ하여간 조센징들은 다 뒤져야 돼.
ㄴ이러니 정부에서 재일교포 3세가 저지른 일이라고 유야무야 덮어버리지 쯧쯧.
쿵!
컴퓨터 책상을 내려친 고이즈미 고키부리가 눈을 부라리며 비서관을 쳐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보안을 철저히 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변호사 접견까지 금지시킬수는 없는 일인지라···”
“어떤 미친 변호사가 의뢰인과 대화를 영상으로 올려!”
“그게 변호사도 몰랐다고···”
“영상 내려! 당장!”
비서관이 매우 곤란하단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은 총리는 더욱 크게 화를 냈다.
“뭐야 지금! 왜 대답이 없어!”
“그, 그것이.”
“빨리 얘기해!”
“마이튜브 재팬측에서는 영상에 문제가 없으니 제대를 가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리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미친놈들이! 행정명령으로 내려!”
“그, 그것이 마이튜브 재팬은 SKY SOFT의 지사형태인지라··· 우리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참다 못한 고키부리 총리가 마우스를 비서관에게 던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유선마우스는 비서관에게 날아가다 힘을 잃고 바닥에 뚝 떨어지며 부서져 버렸다.
“마이튜브인지 뭔지를 아예 IP를 차단해버려!”
“그러면 정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놈 유스케! 정신 안차려? 언론과 여론은 우리 정부의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는 기본을 잊었나!”
입술을 질끈 깨문 비서관.
뭐라 대답할지 못하고 망설이는 찰나, 총리실 문이 부서지듯 열며 나타난 사내가 외쳤다.
“초, 총리님 큰일입니다!”
“또 뭐야!”
“그, 그, 야스쿠니 신사가···”
“신사가 뭐!”
“부, 불타고 있습니다.”
“뭐?”
총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늘 극우파의 표심을 가져오는데 큰 도움이 되던 야스쿠니 신사가 불타다니 이게 무슨소리인가 싶었다.
“지금 바로 뉴스를.”
비서관이 빠르게 움직여 총리실 내부의 TV를 켰다.
뉴스는 참담한 음성을 내뱉는 앵커의 목소리와 함께 커다란 화면 가득 불타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의 전경을 비추고 있었다.
“칙쇼!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불이 나!”
길길이 날뛰는 총리를 바라보던 비서관은 어쩐지 일본에 ‘망조’가 들었단 생각이 떠올랐다.
< 제 11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