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0화. >
며칠 뒤, 일본의 한 초등학교.
귀여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정갈하게 앉아 선생의 수업을 듣고 있을 시각. 한 남성이 초점이 이상한 눈동자를 가지고 학교 내부로 진입했다.
한창 수업이 진행될 시각이기에 조용한 학교는 그 남자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소리질러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긴 복도에 홀로 서서 칼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교실문을 이리 저리 찍어보는 그. 마치 어린아이가 콜라맛과 환타맛 젤리를 두고 어느 맛을 먹을까 고르는 것 처럼.
드디어 마음에 결정을 했을까? 악마 같은 웃음을 얼굴 가득 걸고는 미닫이 문을 열어 젖혔다.
드르르륵.
아이들의 고개가 절로 그에게 향했다. 당황한 표정의 선생도 그를 바라본다.
“누구시죠?”
선생의 질문에 남자가 ‘흐흐흐’하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사신.”
이내 그의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린 선생이 천천히 그를 훑었다. 보통의 사내.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시퍼런 예기가 도는 식칼은 진짜였다.
“마, 맙소사!”
선생이 입을 벌리는 것이 신호라도 되었을까? 사내는 가장 가까이 있는 아이에게 빠르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앙!”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고, 선생은 사내를 말릴 생각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교실 밖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선생이 도망가고 한참이 지나고도 교실안으로 달려오는 어른은 없었다. 어린아이 몇이 바닥에 쓰러지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도망가는 아이들, 지쳤는지 그런 아이들을 따라갈 생각도 하지 못하는 사내.
바닥에 흥건한 핏물에 발을 찰박이다 천천히 교실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내, 그제야 복도 저 끝에서 경찰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크크크크크크.”
사내는 웃으며 칼을 버리고 양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반항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우우웁.”
경찰관 한명이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는 헛구역질을 쏟아냈고, 사내는 결국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2001년 6월 8일.
오사카의 한 초등학교는 피에 잠겼다.
**
일본이 난리가 났다.
몹시 슬픈 소식임과 동시에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이 뉴스와 신문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는지, 해당 뉴스가 보도 되자마자 전 세계의 언론사에서 그 뉴스를 주목할 정도로 충격적이고 슬픈 얘기였다.
오히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바퀴벌레 총리의 관저였다.
“맙소사! 이게 사실이야? 초등학생 8명을 잔인하게 칼로 찔러 죽였다고? 15명은 중상 이상의 부상? 선생들은 뭘 했어!”
“그, 그게 범인이 칼을 들고 너무 흉폭했다고···”
“그러니까 선생들 여럿이 달려들었어야지!”
“선생들이 제 살자고···”
“미친!”
“막아, 이게 바깥으로 퍼지면 안 돼! 일본이 욕을 먹을 거야, 제 몸만 중하게 생각한다고.”
“그, 그것이 이미 CNN에도 보도가 되어서···”
“어떻게든 막아! 그리고 신사참배 보도로 덮어!”
“하, 하잇.”
비서관이 빠르게 바깥으로 나가고 총리가 테이블을 내리쳤다.
“칙쇼! 총리가 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이.”
***
거의 모든 뉴스를 챙겨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나와 할아버지의 눈에, 일본 오사카의 한 초등학교 테러사건은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호오.”
할아버지가 뭔가 재미있는 생각이라도 한 듯 싶었다.
“이거이거, 이 놈들 이 사건 덮으려고 들겠구나, 신사참배를 더 빨리 강행하겠어.”
본래 예정된 날짜는 7월 23일이었다.
“그래요?”
“기사내용이 그렇잖으냐? 선생들은 제 살자고 어린 초등학생 제자들 내팽개치고 도망, 끝내 교실 내부에 있던 37명의 초등학생들 사망. 쯧쯧, 이런것이 일본인들의 사회의식인게야.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겉으로는 인사도 자주 하고 예의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신만 알고 있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신랄한 할아버지의 비판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느정도 내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으니 딱히 문제를 삼을 부분도 없었다.
“일본인들의 인간성? 사회의식? 뭐 그런걸 숨기기 위해서 덮으려 들거란 말씀이시죠?”
“그렇지, 이 놈들은 원래 그러지 않았더냐? 지난 신 오쿠보에서 열차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구한 제일교포 2세에 대한 기사를 숨긴 것 처럼 말이다.”
“아아, 가능성 있네요.”
할아버지와 내가 마주보고 웃었다.
아마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놈들이 감추고 싶은 그것을 후벼 파고, 바깥에 잘 드러나게 만들고 싶은 느낌. 아프다고 생각하는 곳을 다시 한 번 찌르고 싶은 순수한 악의.
“공개하죠.”
“드러내야지.”
동시에 같은 의미의 대사를 뱉는 우리.
동시에 고개를 돌려 철웅을 불렀다.
“백대표님.”
“철웅아.”
나는 할아버지에게 양보했다.
“기자 불러라, 성대하게.”
“예!”
***
한국에서 터져나온 뉴스, 실시간 번역으로 그것을 듣고 있는 고키부리 총리가 자신의 비서관을 다시 째려보았다.
“제기랄! 어떻게든 입을 막으라니까!”
“죄, 죄송합니다. 이미 너무빨리 퍼진 사안이라··· 그보다 오사카의 민심을 달래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닥쳐! 시킨 일이나 똑바로 해!”
“하잇.”
번역도 듣기 싫다는 듯 작게 일본어로 말하던 여인에게 손을 들어올려 말을 멈추게 하고는 잠시 고민에 빠진 고키부리.
짧은 고민 끝에 갑자기 방긋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살인마새끼 신상 가져왔나?”
미리준비해 왔는지 바로 준비하는 비서관.
서류를 쭉 훑던 고키부리가 말했다.
“조센징으로 둔갑시켜.”
“예?”
“대일본제국에 이런 멍청한 새끼가 있을리 없잖은가? 그러니까 이 새끼는 오늘부터 조센징이다.”
“하, 하잇!”
“바로 언론사에 보도자료 돌려, 오사카 초교 난입 테러의 범인은 조센징이라고.”
“하잇!”
흡족한 듯 입꼬리를 길게 들어올리는 고키부리 총리. 번역을 위해 이곳에 왔던 여인을 올려다 보며 묻는다.
“그래, 나이가 몇이지?”
“스물 여섯입니다.”
“가까이 와, 가까이. 거리감이 느껴지는 군.”
“네.”
***
아주 유명한 역사 선생과의 만남이 예정된 호텔의 커피숍. 전 삶 특이한 말투와 좌중을 사로잡던 언변으로 유명하던 교사의 젊은 모습을 보자니 참 신기했다.
아직은 무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초보 강사인 그.
“안녕하십니까, 천우진입니다.”
“예, 회장님 처음뵙습니다. 성태성입니다.”
“네, 재단에서 직접 처리하는 일이지만 한번 선생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역사바로알기 재단과는 잘 협의가 되셨습니까?”
“예, 좋은일 하는 것인만큼 저도 큰 욕심은 없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래도 재단의 대우가 소홀하지는 않을 겁니다.”
“예, 지금도 충분히 좋은 대우를 해주고 계십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자리에 앉아 있는 호석을 쳐다보았다.
“여기 성 선생님 개인경호 한 분 붙여주세요.”
호석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작게 ‘예’하고 대답한 것에 반해 성태성은 매우 놀란 표정을 짓는다.
“경호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의 손사래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다 재단을 위해서입니다. 불편해도 조금 감수해주시겠습니까?”
“아니 뭐한다고 저까지 경호를···”
“혹시모르지 않습니까? 일본과 중국등,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로서기를 바라지 않는 나라가 어떤 무서운 짓을 할지 말입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세상엔 성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 보다 설마가 사람잡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역사에도 그런일은 비일비재하겠지요, 높은 자리에 앉아 방심하다 큰코를 다치는 그런 일이 말입니다.”
역사까지 들먹이며 말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승낙의 뜻을 내비치는 성태성.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도 마주 일어나 손을 맞잡아온다.
“모쪼록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의 역사의식이 우뚝 솟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선생이라 불리기도 민망한 제게 좋은 기회를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겠습니다.”
“언제든 재단과의 트러블이 있다면 우리 비서실로 연락주십시오, 최대한 챙기겠습니다.”
“예! 회장님.”
먼 미래.
지금보다 훌쩍 먼 미래에 내 취미중 하나는 저 사람의 역사강의를 듣는 것이었다. 과거의 역사를 재미나게 설명하는 너튜브는 제법 많은 구독자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단순하게 팬심이나 흥미때문에 그를 만난 것은 아니었다. 재단의 핵심 인사들을 한명한명 만나면 나라는 존재를 각인시키고 SKY가 뒤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배치하는 경호원은 실제로 그들을 보호하는 업무도 수행하지만 감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일본과 중국이 정말 더러운 술수를 부리려 한다면 가장 쉬운 방법은 ‘돈’으로 사람을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단의 사람들에게 경호원을 1인 3교대로 배치해 놓는다면 우리 SKY 가드의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효과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
감시 및 보호, 거기에 영업이익 증가.
일석삼조의 일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 약속 얼마나 남았죠?”
“예, 40분 뒤 호텔 레스토랑입니다.”
“아, 제법 남았네요.”
오늘만 재단의 핵심인물이 될 사람들 세 명을 만났다. 앞으로도 한 명을 더 만나야 할 일정이었다.
“잠시 올라가서 쉬죠, 전화도 할 겸.”
“예, 회장님.”
습관처럼 객실에 들어오자 마자 소파에 앉으며 TV를 켰다. 채널은 당연히 종합뉴스채널.
막 전화기를 들어올려 사랑하는 루시의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려는 찰나. 눈쌀을 찌푸리는 뉴스가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금일 오전 10시경, 오사카 경시청의 발표가 우리 국민들과 재외교포분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사카 초등학교 난입 사건’의 범인이 재일교포 3세라는 충격적인 발표 때문······]
같은 방송을 보고 있던 호석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흐음, 조작 아니겠습니까?”
나도 호석의 생각과 동일했다.
“PMC정보부좀 돌려주세요, 범인이 정말 재일교포가 맞는지 확인하시고, 아니라면 실제로는 뭐하는 놈인지 탈탈 털어주세요.”
“예, 회장님.”
호석이 잠시 뒤로 물러나 전화로 업무지시를 하는 사이 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네, 여보세요.”
-나다.
“아 할아버지.”
-뉴스 봤더냐?
역시 세상소식에 밝은 사람답게 지금내가 보는 뉴스를 접하신 모양이다.
“예, 막 보고있엇습니다.”
-놈들이 수작질을 부리는구나.
“그렇겠죠?”
-조금 바쁘게 움직여야겠구나.
“예, 저도 그럴려고요.”
-오냐, 이따 보자.
“예.”
전화를 끊고 바로 루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본은 일본이고, 루시는 루시니까.
-허니~!
목소리를 듣자마자 약간의 분노가 눈녹 듯 사그라들었다. 이게 루시의 매력이랄까?
애국심에 터져나온 분노가 아니라 그냥 일본놈들의 저 비열한 태도가 꼴 보기 싫었다. 또 지금은 내 일에 방해가 되는 상황이니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뭐하고 있었어?
“일하다가 잠깐 쉬는시간이야.”
-그래? 나 안 보고 싶어?
“보고싶지, 그래서 이렇게 강행군으로 일 하고 있잖아?”
-언제올거야?
“최대한 빨리, 늦어도 이번달 안에는 갈 수 있게 하려고.”
-응,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어 허니.
“하하, 올해만 참자.”
-그래, 일하는 남자한테 매달리면 또 매력없지, 일 봐 허니.
“알았어.”
전화를 끊자마자 시가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들어올리자 호석이 피식 웃어버린다.
뒤퐁~
칙, 화르르륵.
“왜요?”
“하하, 회장님 표정이 사모님과 통화와는 전혀 달라서 그랬습니다.”
“아, 일본놈들 생각하느라.”
호석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직원들 보냈으니 늦어도 내일 오후 안에는 범죄자 정보가 넘어 올겁니다.”
“좋네요.”
몇 모금의 시가연기를 내 뱉으며 생각에 잠겼다.
선을 넘었으니, 뜨거운 맛은 좀 봐도 되겠지.
“정대표님.”
“예, 회장님.”
“실전투입 준비하라고 하세요, 작전지는 도쿄입니다.”
정호석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예! 회장님.”
< 제 11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