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9화. >
행사가 한참 진행중이던 때.
정호석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고이즈미 고키부리 총리가 신사참배를 강행한다는 뉴스가 떴습니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불쾌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우익의 피를 빨아 먹겠다?”
맞는 말이기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일본의 역사왜곡을 이용해 이미지메이킹을 하던 것 처럼, 고이즈미 고키부리 그 바퀴벌레같은 놈도 우리 한국과 역사 바로 알기 재단을 이용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한국을 까면 일본에서는 인기를 얻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원 역사에서도 분명 여름이 가기전에 신사참배를 강행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뿐 아니라 앞으로도 자주 그 짓거리를 할 터.
“인도네시아 훈련 끝났나요?”
정호석이 잠시 멈칫 거렸다.
내 눈빛을 읽었을까?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말한다.
“당장 김정일 모가지도 따 올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마음에 들었다.
“훈련도 끝났는데 대원들 오늘 밤에 모으세요, 제대로 놀아야죠, 앞으로 바쁠테니까.”
정말 앞으로 바쁠 것이다.
곧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곳에 우리 PMC는 한 발을 걸칠 것이고.
행사 진행 중 곳곳에서 고이즈미 고키부리 이하 바퀴벌레 그 놈들의 행보를 전해들은 정치인들 경제인들이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 행사를 진행하던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여러분! 잠시 행사를 방해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할아버지가 말을 잇는다.
“지금 이 자리에 뉴스를 접하신 분도 있을테고 접하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우선, 제가 이렇게 마이크를 잡은 이유를 설명하자면, 현 일본의 총리 고이즈미 고키부리가 전범들을 기리는 신사 참배를 강행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전파를 타고 송출되었다고 합니다.”
웅성웅성.
“신사참배? 그게 뭐야?”
“그 있어, 세계대전 당시 전범들 기리는 사당같은 거.”
“일본에 그런게 있어?”
“걔네는 전범들을 우상처럼 영웅화 해서 떠받들잖아, 몰랐어?”
“응, 몰랐어.”
“에휴, 이러니까 역사 바로 알기 재단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니까?”
행사를 구경중이던 한 커플의 대화로도 충분히 현 대한민국의 역사 의식과 일본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제의 침략.
많은 원인과 문제들이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큰 문제 혹은 원인을 국민, 당시에는 백성들의 ‘무지’에서 시작된다고 보고, 그 무지를 만든 양반놈들 때문이라 생각한다. 조선 말, 돈으로 신분세탁을 하던 시대니까 무지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이해할 순 있다. 어쨌든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은 결국 태생부터 금수저를 물고나온 것들이었으니까.
“나도 기부 해야겠다.”
“그래, 너는 좀 해라, 아무리 애국심이 없어도 나중에 네 자식이 질문했을 때, 네가 모르면 좀 그렇잖냐? 그러니까 공부도 좀 하고, 역사 자료나 서적들도 제작해서 배포, 판매할거라니까 자주 사서 읽어봐.”
“응, 그래야겠어.”
할아버지의 선동은 계속되었다.
“일본은 반성할 생각이 없습니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일본의 그 행태는 언제든 대한민국이 국력이 낮아지고, 국방력이 낮아지고, 경제력에 위기가 찾아온다면 호시탐탐 우리의 한반도를 넘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뿌리를 알아야하고, 역사를 알아야 하며, 일본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역사 바로 알기 재단을 진심을 다해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마이크를 내려놓고 허리를 반으로 접은 뒤,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다시 자리에 착석하는 할아버지.
짝짝짝.
나는 할아버지에게 박수를 보내며 말했다.
“이야, 장관님 다 되셨네.”
“하하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 않더냐?”
과연, 대통령이 된 할아버지는 어떨지, 몹시 궁금했다.
***
행사가 끝나고 다음 일정이 없던 할아버지와 함께, 파주의 SKY 연수원을 찾았다. 현재 이곳은 오갈데 없는 PMC직원들의 기숙사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실제로 이곳에서 합숙훈련도 진행하고 있으니 거의 모든 대원들이 이곳을 이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동~~ 차렷!”
나와 할아버지가 단상위로 오르니, 대표자의 우렁찬 함성에 맞춰 칼과 같은 각의 제식으로 우릴 맞이하는 대원들.
“경례!”
““우!””
군인도 아니고, 충성 혹은 단결따위의 경례는 아니었다. 단순히 하나가 되었음을 얘기하는 그런 경례일 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제식이지만, 정호석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제식 행동 하나하나가 대원들의 정신력, 팀워크등에 도움이 된다고하니 만류하지 않았다.
마이크가 있지만 굳이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원들도 생목으로 저리 크게 외치는데, 내가 쉴 수 있을까?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대원들의 얼굴에 절로 흐뭇한 웃음이 입에 걸린다.
“모두 고생이 많았다! 동남아 더운나라에서 모두 정말 수고가 많았다! 고생했다! 대원들이 있어 내가 오늘도 두발 뻗고 잘 수 있다!”
많은 대원들에게 들리게끔 악을 써야 했기에 말이 조금 부자연스러웠지만, 그들에게 내 마음이 전달된 듯 하나같이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늘은 놀자아아아아아아악!”
내 악과 함께, 연수원 입구에 버스 두대가 들어오고, 트럭 몇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원! 뒤로~~~ 돌아!”
““아악!””
하나의 몸으로 뒤로 돈 대원들이 버스와 트럭들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버스에서는 아리따운 여자 가수들과 댄스팀이 내리기 시작했고, 트럭은 트랜스포머 뺨치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적재함을 열어재꼈다. 여자 가수들은 자연스럽게 트럭에 올라 자세를 잡고, ‘쿵!쿵!쿵!’ 가슴을 때리는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멍하니 구경하고 있는 대원들의 뒤통수에 외쳤다.
“이 새끼들아 놀라니까아아악! 누가 각잡고 있냐악!”
내 외침에 의도를 눈치 챈 선임대원들, 팀장들이 먼저 트럭 가까이 달려가기 시작한다.
“와아아악 펑클이다!”
“STS도 있다고! 김유리다아!”
커다란 트럭 앞이 대원들로 인산인해.
다른 트럭들은 소리 없이 ‘음식’과 ‘주류, 음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주류와 음료가 준비된 트럭 앞 테이블에 앉아 대원들이 노는 모습을 구경했다.
“이 놈들 살 맛 났구나.”
겉으로 보기만 해도 흐뭇해질 정도로 대원들은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회장님들, 술은 뭘로 준비할까요?”
정호석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노는날이니까 삼촌들은 앉아서 쉬세요,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내 의도를 눈치 챈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냐, 오늘은 손주놈이 수발을 든다고 하니, 철웅이 호석이 네 놈들도 앉아서 즐기거라.”
눈치빠른 철웅이 잽싸게 자리에 앉고, 철웅이 피식 웃으며 따라 앉는다.
“자~ 삼촌들 술은 뭘로 드릴까요? 할아버지는요?”
“나는 진 토닉, 젖지 말고, 흔들어서.”
“나도 백부님이랑 같은 걸로.”
“나도.”
“예히~”
주문을 하려는데 마침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이 등장했다. 웨이트리스. 우리 SKY호텔의 직원들이었다.
“회장님~ 앉아계세요~ 우리가 서비스 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진토닉 젖지 말고 흔든놈으로 주시겠어요?”
“네~ 금방 준비해드릴게요.”
정말 빠르게 준비된 칵테일로 입가심을 하는데 할아버지에게 질문이 날아왔다.
“아이들을 왜 그렇게 굴렸더냐, 그것도 국방력 상승과 관련되었더냐?”
“그렇진 않죠, SKY만 좋은 일이죠.”
“흐음, 전쟁용병으로 키울 셈이더냐?”
호석과 철웅도 흥미로운 주제인지 날 바라본다.
“예, 비슷하죠.”
“쯧, 위험한 일을 할 아이들이란 얘기구나.”
“그것도 그렇고, 할아버지 대통령되시면 경호실 직원들도 꾸려야죠?”
“하하, 헛소리는.”
“또, 앞으로 우리도 제법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가는길이 워낙 쉽지 않은 길이니까요, 단순히 삼현에서 보낸 깡패따위들을 맞이하는게 아니라 타국에서 총기를 들이미는 테러리스트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전 세계는 ‘테러’라는 것에 큰 자각이 없는 상태였다. 앞으로 훈련되고 전문성을 갖춘 경호원들은 알게 모르게 짭짤한 캐시카우의 역할도 해줄테다.
“그리고 곧, 미국은 제법 많은 용병들을 고용하게 될 것입니다.”
“어째서냐?”
“탈레반도 그렇고, 신종 테러조직들이 산발적으로 생기던 것을 넘어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죠 호석 삼촌?”
“그렇지, 확실히 PMC 정보부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나는 대충 풀어서 할아버지에게 설명해줬다.
“무자헤딘, 그러니까 이슬람 무장세력들의 그 원리적인 율법 때문에 초래하게 될 일들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걸프전. 그 때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반미’의 감정을 품게 되면서 지금도 산발적 테러가 일어나고 있죠, 저는 곧 이 테러가 심화되고 제법 규모있는 테러로 나타날 것으로 보고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흐음, 확실히 사이비 놈들은 무섭지, 미친놈들은 약이 없거든.”
“하여간 그 놈들이 활동을 시작할거고 미국은 많은 피혜를 입을 겁니다. 저는 그 상황을 좀 이용해볼까 하고요.”
“그렇구나, 대원들이 피해를 볼 수 있겠어.”
할아버지의 염려에 호석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기 위해 키워진 아이들입니다. 놈들 모두가 자신이 죽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녀석들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내준것이 무엇이더냐?”
제법 무거운 주제의 질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말의 주저 없이 말 할 수 있었다.
“미래.”
“미래?”
“꿈.”
“추상적이구나.”
“추상적인 그것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돈이더냐?”
“돈뿐 아니라, 앞으로 변하게 될 대한민국으로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제가 한 약속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대원들도 제게 신뢰를 잃겠죠.”
호석이 내 말에 살을 붙인다.
“대원들 대부분이 ‘고아’출신입니다. 홀로서기 하기 어려운 아이들이었고, 미래가 어두웠죠. 그런 아이들의 제 1의 꿈은 ‘좋은 아빠’입니다. 배우지 못했고, 가지지 못한 녀석들이 참 어려운 꿈을 꾸더군요.”
“으음···”
철웅도 보탠다.
“저도 가정을 꾸려보니 ‘좋은 아빠’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요새 기석이 하윤이가 절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 SKY에 다닌다는 이유 하나로도, SKY 계열사의 대표직에 앉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이 주변에 자랑하고 다니느라 바쁜 것 같더군요, 적어도 존경받는 ‘아빠’는 된 것 같아 더 일 할 맛이 납니다.”
“허허, 기석이 하윤이 보지 못한지도 오래되었구나, 언제 한 번 식사나 같이하자, 호석이네 식구들도 같이.”
“예, 백부님.”
“예, 백부님.”
다시 내게 시선을 옮기는 할아버지.
“혹, 사상자가 생기더라도 잘 챙겨주거라, 그래야 나머지 대원들도 목에 칼이들어와도 명을 들을테니까.”
“예,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우리 주변으로 많은 대원들이 몰려왔다가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유는 광란의 파티에 ‘주류’가 빠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트럭 앞 미인 바텐더들에게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맥주들을 받아간다.
내심 내가 준비한 이벤트에 대원들이 만족해하는 것 같으니 절로 흐뭇한 표정이 지어졌다. 마침 적당한 타이밍에 할아버지가 건네는 시가를 받아들며 호석에게 물었다.
“실전 훈련 한 번 해야죠?”
질문이 기습적이었을까 호석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실전 훈련이라면 어떤걸···?”
“조만간 우리 대원들이 손 좀 써야 할 것 같아서요, 불 놀이 잘 하세요?”
모두가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표정을 짓고 있던 호석이 입꼬리에 호선을 그린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불’이라, 폭발 위주로 잘 하는 친구들인데 괜찮을까?”
지금은 편안한 자리니 반말로 내게 질문을 해오는 호석삼촌.
“그럼 됐네요, 시가지 위주로 정예 20명만 훈련시켜주세요.”
“확인.”
“오늘은 괜찮고, 한 3일 뒤 부터, 확정은 아닙니다만 실전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계산 하에 진행해주십시오.”
“적응훈련은 금방이지, 애초에 훈련에 시가지가 주를 차지 하고 있어서 실제 작전지역 지도만 입수된다면 순식간이야.”
“좋습니다. 준비만 하세요 준비만, 실 작전은 좀 두고 볼게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고.”
할아버지가 후우 하고 뭉게뭉게 시가연기를 내뿜고는 말했다.
“쯧쯧, 네 놈이 입을 열면 꼭 일이 생겨, 호석아 단단히 준비하거라. 아이들 상하지 않게.”
“하하, 예 백부님 그래야죠.”
< 제 109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