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07화 (107/458)

< 제 107화. >

교육부장관이 난처한 표정으로 천혁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도 역사 교과서를 통해서 아이들을 가르쳐야합니다.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해야되요! 뿌리를 잊은 사람들이 어디가서 애국심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하하··· 예, 그렇지요.”

“기사 못 보셨습니까? 일본 놈들, 쪽바리 놈들이 하는 만행을 못보셨습니까?”

“우리도 뭔가 대처를 해야 한단 얘기입니다.”

“그, 장관님 교육 쪽은 우리가 알아서하겠습니다. 장관님께서는 복지에 조금 더 신경을 써주시는게···”

“복지가 뭡니까.”

“예?”

“장관님께서 생각하는 국민 복지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입니다.”

철학적이고 원론적인 질문.

“국민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그게 복지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한테 치이고, 저 나라한테 치이고, 이게 좋은 복지를 가진 나라가 맞습니까?”

“크흠···”

“방금 장관님 말씀은 나는 복지나 신경쓰고, 교육쪽은 알아서하겠다 뭐 그런 뜻 아니었습니까?”

천혁수의 말이 옳기에 뭐라 할 말이 없는 교육부장관.

“헌데, 지금 장관님께서도 국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게 좋은 복지라고 말씀하시는데, 어째서 이게 복지부장관과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그렇죠.”

천혁수가 비서관에게 손짓하더니 준비해온 서류를 건넨다.

“통계청에서 받아온 자료입니다.”

샤락, 샤라락.

서류를 넘기면 넘길수록 인상을 찌푸리는 교육부장관.

“이게 현 대한민국의 역사의식에 대한 사실입니다! 아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들도 역사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는데 뭘 가르친다는겁니까? 당장 교사 임용시험에도 역사지식을 쌓을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하고, 각 대학교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도입해야 합니다. ‘한국사’가 필수 과목이 되어야 한단 얘기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지날수록 우리는 역사를 망가뜨리는 중국놈들과 일본놈들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습니다!”

열변을 토해내고 있는 천혁수의 얼굴을 연신 카메라로 찍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교육부 장관은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겠지만, 천혁수는 애초부터 이 자리에 나오기전에 기자를 대동한 상태였다.

민망함에 헛기침을 내뱉던 교육부 장관이 말했다.

“흐음, 확실히 심각하군요, 장관님의 말씀 잘 알겠습니다. 확실히 우리 교육부가 너무 미적지근한 대응을 해온 것 같습니다. 당장 관계부처와 협력하여 가시적인 결과를 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지금부터 우리가 터를 닦아 놓아야 다음대의 인재들이 더욱 올바른 대한민국을 만들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줘야, 더욱 더 가속도가 붙지 않겠습니까?”

“좋은 말씀입니다.”

천혁수에게 감화된 교육부 장관이 달뜬 얼굴로 천혁수의 손을 마주잡는다.

“믿겠습니다. 장관님, 좋은 아이디어가 생긴다면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천혁수 장관님.”

교육부 장관이 사라지고, 다시 비서관이 천혁수 곁으로 다가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연락되었습니까?”

“예, 지금 대표와 약속을 잡았습니다.”

“좋습니다. 바로 움직입시다. 아! 저기 황 기자님도 좀 챙겨주시고요.”

“예, 장관님.”

***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만 있다면 전 세계의 정보교류를 활발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2001년에 들어서며 구골이 결국 야후를 꺾고 검색포털 1위의 자리를 탈환하였다. 압도적인 점유율. 혹자는 그 성공요인을 SKY의 마이 홈피와 마이 튜브라는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얘기하는데, 굳이 그것들이 없었어도 정확한 검색, 빠른 정보 찾기라는 애초의 구골의 모토가 있어서 시간은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점유율 1위를 차지했을테다.

어쨌든 누군가가 마이 홈피와 마이튜브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만큼 SKY가 가지고 있는 플랫폼들이 그만큼 파급력이 있다는 방증이리라.

“허니~ 뭐해?”

인터넷으로 대한민국의 기사를 보고 있었는데 잠에서 깬 루시가 날 불렀다.

“나 발코니에 있어 허니.”

하얀 이불을 온 몸에 돌돌 말고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는 루시. 쪽 하니 아침인사를 하며 말한다.

“신문 보고 있었어?”

“응, 인터넷이 되더라.”

“근데 시가는 누가 피랬어?”

피식 웃으며 시가를 내려놓았다.

“농담이야~ 너무 많이 태우지는 마 건강 생각해야지.”

“하하, 알겠어.”

“씻고 나올게~”

“응, 먼저 씻어. 아! 욕조에 물좀 받아줄래?”

“알겠어 허니~”

루시가 욕실로 향하고, 나는 다시 뉴스기사에 집중했다.

“호오.”

할아버지와 교육부 장관이 찍힌 사진, 할아버지는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열변을 토하는 모습.

[ 천혁수 복지부장관은 대한민국의 역사의식에 대한···]

좋은 기사였다.

아마 아는 기사 라인을 동원 했으리라 느껴졌다.

그나저나 일본의 역사왜곡이라.

매번 말이 많던 사안이었으니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국민들의 이목을 끌어오기 좋은 소재였다.

단순히 이목만 끌어오는데 끝낼 할아버지도 아니었다. 분명 어떤 수를 쓰던 일본에게 한 방 먹일 준비를 할 터.

“허니~ 물 다 받았어!”

어서 욕실로 들어오라는 루시의 외침에 피식 웃으며 몸을 풀고는 욕실로 향했다. 요즘 피골이 상접하는 것 같은데 기분탓일까?

***

4월 17일.

교육부장관과 복지부장관 천혁수가 함께 성명문을 발표했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강한 비판과 함께, 대한민국의 역사의식에 대한 문제점을 얘기하고 다양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성명문.

일본 역사왜곡 교과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국민들까지 해당 성명문을 통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여론은 더욱 들끓게 될 것이었다. 예로부터 대한민국은 일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

“또한 아직도 일본은 일제강점기의 악행에 대한 사과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선진국이라 얘기하며 전혀 선진국의 면모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생각합니다. 과거 전범국가였던 독일을 보고 배워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또, 정치인이 된 천혁수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국민들의 관심을 확 끌어당길 좋은 소재가 있으니 사용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교육부 장관은 천혁수 장관의 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이토록 공격적이고 공개적으로 얘기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공식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차후, 외교 문제의 발단이 될 소지가 충분했다.

아마도 100퍼센트 확률로 일본은 천혁수의 잘못을 꼬집으며 완강한 태도로 나올 것이 분명했고, 이 시간이 끝나면 당장 대통령의 전화를 받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고! 일제는 비열한 술수와 모략으로 대한민국 땅을 강제로 점령했으며! 그에 관한 적절한 보상과 사과가 없었음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인정하며 선진국에 걸맞는 행보를 보여주기를 열과 성을 다해 바라는 바입니다!”

기자들이 갑자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여태껏 이토록 강력하게 공식석상에서 일본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든 약하게 움츠러들어 자세를 낮추고 움직이던 정부관계자 혹은 정치인들.

그러나 천혁수의 행보는 전혀 달랐다.

‘우유민심’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파격적인 행보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었다. 12월 복지부장관 취임식 이전 인사청문회에서부터 국회의원 수십을 사퇴시키고 감방에 집어 넣더니 이제 천혁수의 타겟은 마치 일본이라도 된 것 같았다.

***

4월 26일 고이즈미 고키부리 총리 내각이 출범하는 날, 전 세계 언론이 그의 성명및 취임사에 집중했다.

[ 한국은 사실과 무관하게 일방적인··· 다케시마의 경우 일방적으로 무단 점유하고 있는 것은 한국군이며··· 종군 위안부 문제는 그들이 자발적으로 생계를 위해··· ]

결국 고이즈미 고키부리 총리의 입에서 건드려서는 안될 부분들을 건드렸고, 대한민국의 여론은 천혁수가 집어 넣은 불쏘시개와 고이즈미 고키부리 총리가 쏟아부은 휘발유 덕분에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재미있게도 고이즈미 고키부리 총리 덕분에 대한민국 복지부장관 천혁수의 국민 지지율과 신뢰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

며칠 뒤 4월 29일.

이태리 피렌체에서 한국인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한창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을 SKY그룹의 천우진, 바로 나였다.

많은 기자들이 피렌체의 한 호텔 앞에 자리를 만들고 내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 장면을 신기한듯 구경하는 이탈리아의 사람들과 관광객들, 보통 기자회견은 실내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나, 일부러 호텔측에 요청해 공개적인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통의 인물이라면 거절했을지도 모를 일이나, 내 기자회견은 외신들도 관심이 지대하다. 이번에는 과연 SKY가 어떤 발표를 할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호텔측에도 이득이다. 많은 취재진이 이곳에 도착하면 할 수록, 영업이익은 극대화 될테니까.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자들이 마련한 자리에 섰다.

“요 며칠, 대한민국이 참 시끄럽습니다. 안타깝게도 일본은 전범국가로서 참회를 다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을 얕잡아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들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독도’라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다케시마’라 부르며 마치 자신들의 영토인양 하는 점, 또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종군 위안부’라는 프레임을 씌워 자발적 참여로 둔갑하려 하는 점 등.”

각자 자신들이 대동해 온 통역사들에게 통역을 듣던 외신 기자들이 멈칫 거렸다. 그들로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용들이 내 입에서 터져나왔기 때문이었다.

“해서, 우리 SKY그룹은 ‘역사 바로 알기’운동을 전개하는 바이며, ‘역사 바로 알기 재단’을 설립해 앞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왜곡하고, 세계사를 왜곡하려는 파렴치한 단체 혹은, 국가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할 것이며 해당 재단에서는 많은 역사 학자들을 고용해 올바른 역사 교육자료를 배포할 것을 말씀드립니다. 또한, 이번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전 세계적인 인식이 낮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앞으로 ‘일본군 위안부’피해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상’설립을 추진할 계획임을 밝힙니다.”

파라라라락, 파라라라락.

빠르게 셔터를 누르는 기자들.

한국인 기자 한명이 질문했다.

“혹, 천혁수 복지부장관을 돕기 위한 정치적 행동이라고 봐도 무방합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정치적 행동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노할 내용이었고, 나는 그저 전 세계인이 사실을 직시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번엔 한 외국인 기자가 영어로 질문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그것이 무엇이기에 SKY그룹이 나서는 것입니까?”

“해당 문제에 대하여 자세한 얘기가 알고 싶다면, SKY그룹측에 언론사 명과 기자님의 e-mail주소를 알려주십시오, 모든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국인 기자가 질문했다.

“동상이라 함은 어떤 것입니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을 넓히기 위함입니다. 벌써 많은 분들이 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지금 일본은 피해자분들이 모두 돌아가시기를 바란다고 밖에 보여지지 않습니다. 인정하고, 사과하고, 보상하고, 아주 당연한 과제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력이 낮기 때문일까요? 국격이 낮기 때문일까요? 정말 파렴치한 일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리던 기자가 말했다.

“혹, 이 일로인해 SKY그룹에대한 일본 쪽의 피해가 야기될 가능성은 없겠습니까?”

“두렵지 않습니다. SKY는 일본시장에서 철수한다고 해도, 살아 남습니다.”

파격적인 내 말에 모든 기자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과연 내 입에서 나온 말이 ‘기업가’의 말이 맞는가 싶은 표정들이었다.

일본이 스스로 도태되는 길을 걸을지, 아니면 SKY그룹 그리고 내 할아버지 천혁수와 함께 갈지는 알아서 선택할 문제였다.

SKY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세계 기술을 선도할테고, 그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본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 밖에 없을 터였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미래에, 난 분명히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내가 당장의 이득을 위해 고개를 숙이는 일 따위는 없다.

내가 걷는 길은 철옹성보다 단단해야 하니까.

< 제 107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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