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6화. >
국회가 다시 한번 뒤집혔다.
전국의 인터넷 망을 SKY가 보급했고, SKY텔레콤의 점유율이 대한민국 명실공히 1위인 지금.
이제는 제법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것에 익숙해진 상황, 특히나 인터넷 커뮤니티 중 한 곳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누가 천가 건드릴 수 있냐? ㅋㅋㅋ 건드릴려고만 하면 바로 복수를 해버리네, 그것도 팩트로.
-하여간 정치인 쉑, 안 받아 처먹은 놈들이 없네.
-제 2의 삼현 게이트 가나요?
-천혁수도 그렇고 천우진도 그렇고 대단한 듯, 남들은 깨겡 하기 바쁜 정치인들한테 대놓고 뭐라고 함, ‘님들 자격 있음?’ 응 없지~
신문기사들도 미친듯이 쏟아져 나왔다.
[ 천혁수 복지부장관 후보자에게 들어온 익명의 제보, 과연 제보인가 아니면 그가 준비한 무기인가. ]
[ 총선이후 깨끗한 줄만 알았던 정치계, 알고보니 숨어있었다. 여전히 정경유착은 진행중. ]
[ 정경유착, 그 깊고 깊은 뿌리에 대하여. ]
여론은 완전히 넘어왔고, 천혁수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복지부 장관이 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인사청문회역시 모두가 ‘적합’하다고 얘기하며 마무리 되었으니 더이상의 태클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12월, 12일.
숫자가 예쁘고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나와 루시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그날로 결정했다.
미국과 비슷한 예식은 재미가 없을 것을 대비해, 루시에게 선물도 할 겸, 한국적인 예식을 준비했다.
그렇다고 과거 조선시대의 예식과정따위를 따라하지는 않았다. 조금 한국적인 음악으로 축하무대를 만들고, 나와 루시의 복장 역시 디자이너가 직접 만든 한복 스타일의 복식으로 치뤘다.
그중 압권은 태권도복을 입고 이제 막 무인도 훈련을 끝마친 360명의 PMC직원들의 축하무대였다.
흰색 태권도복을 입고 나타난 대원들의 하나된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실전태권도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음악이 고조되고.
““하아!””
하나의 기압소리로 정권을 내지른 360명의 대원들이 뒤 돌아 나를 쳐다본다. 나는 히죽 웃으며 팔짱을 끼고 있는 루시의 팔을 풀고, 과격하게 옷을 찢어버렸다. 사전에 디자이너에게 언질을 주었으니 찢기 좋게 제작된 옷이었다.
상의를 탈의하자 그 동안의 운동으로 단련된 내 육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빠르게 달려 360명의 대원들에게 쇄도했다.
시나리오를 얘기하자면, 360명의 전사들이 공주 ‘루시’를 원하고, 루시의 반려자인 대전사 천우진이 악당을 물리친다 하는 아주 유치하지만 화려한 액션시나리오였다.
마무리는 대원들이 준비한 송판 격파.
540도 발차기로 화려하게 마무리.
찬사처럼 쏟아지는 박수와 함께, 다시 루시에게 돌아간 내가 한쪽 무릎을 꿇고 반지를 건넸다.
“후우, 후우··· 루시 우리 행복하자.”
“고마워, 우진··· 아니 허니.”
“그래, 허니.”
거친 호흡을 갈무리하며 루시가 내민 왼쪽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그렇게 우리의 결혼식은 끝이 났다.
기자들에게도 비공개로 한 결혼식에는 대한민국 기득권들의 모임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피로연장에 모인 인물들에게 축하를 계속 받았다. 마지막으로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통령을 마주 할 수 있었다.
“하하, 천 회장 아직 젊어서 그런가 엄청 날쌔더군요.”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록펠러가의 자제분이시라고요?”
제법 유창한 영어로 루시에게 묻는 대통령.
“네, 미스터 프레지던트.”
“과연, 좋은 베필을 얻으셨습니다 천 회장.”
“운이 좋았습니다. 이런 아름답고 능력있는 여인을 얻어서요.”
“하하, 다 천 회장의 능력이 대단하니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내 얼굴에 금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는지 대통령이 본론을 꺼냈다.
“복지부장관께서··· 제법 아픈 폭탄을 터트리셨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독재가 아니라고 했었는데···”
“내가 사는 대한민국에 정경유착은 없어야 합니다. 깨끗하고 원칙적인 공무수행,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군요··· 하긴, 역대 최고로 깨끗한 국회라니··· 뭐, 기대해보겠습니다.”
“예, 지켜봐주세요. 뭣하면 대통령님도 은퇴하지 마시고 정계에서 계시지요?”
“하하하, 늙었으면 새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해야지요.”
“안타깝게도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최소 10년은 더 하실 예정입니다.”
“하하하, 천혁수 장관께서야 나이만 많았지 실제로는 훨씬 어리게 사시니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웃으며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는 나는 우리 가족과 루시의 가족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오우, 우진! 남자답고 좋더군, 평소에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이 느껴졌어.”
대비 할아버지의 칭찬에 피식 웃으며 과장되게 헬시 포즈를 지어보였다.
“크하하하하.”
마음에 든다는 듯 내 등을 팡팡 두들긴다.
미국은 의외로 ‘남자, 남자’한 것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상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래에 가장 성공한 격투기 단체들도 미국시장을 주류로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 신혼여행을 6개월동안 한다고?”
우리 할아버지의 질문에 나와 루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길게도 가는구나.”
“심심하실때마다 우리 있는 곳으로 놀러 오시죠?”
“됐다.”
인생에 있어 단 한 번 있을 신혼여행이었다.
벌 만큼 벌었고 있을 만큼 있었다. 물론 앞으로 더욱 많이 벌고 더욱 많이 가질 생각이지만, 잠깐의 여유를 즐겨볼 생각이었다.
내가 없다고 무너질 SKY도 아니고, 또 충분히 휴가중에도 전화를 통한 업무지시등으로 SKY를 이끌어 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온 인재들을 곳곳에 배치해두었고, 언제 어디서든 믿을 수 있는 인물들을 만들기위해 천가키즈를 육성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걱정이 있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조심히 다녀오너라, 그 동안 네 놈이 얘기했던 그 복지사업은 내가 제대로 핸들링 할테니.”
“예, 할아버지 명성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2001년 3월 8일.
탈레반 정권이 바미얀 석불을 로켓으로 파괴하던 날, 대한민국의 마음씨 착한 자원봉사자 김마음씨는 오늘도 밝은 얼굴로 독거노인 가정에 우유배달을 하고 있었다.
순풍이 불어오는 3월 날씨도 좋고, 우유를 받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그를 만나면 끼니를 떼우기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꼭 ‘밥은 먹었냐?’하고 정겨운 질문을 해오신다.
“하하, 먹었어요 할머니, 걱정하지 마시고 우유 거르지 마시고요 아시죠?”
“끌끌, 그려~ 마음이도 쉬엄쉬엄 해, 그러나 병나.”
“하하 아직 젊어서 괜찮아요,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 기다리겠다. 먼저 갈게요~”
“그려그려 조심히 가~”
“네~”
바쁘게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기도 한참.
“음?”
그의 눈에 빨간 벽돌집 반지하 달방문 앞에 놓여져 있는 우유봉투가 어쩐지 석연치 않게 보였다.
“벌써 세개째인데···”
이틀에 한 번씩 배달되는 우유, 그것이 오늘로서 세개째 쌓인 다는 것은 최소한 5일이상 외출이 없었다는 신호가 될 수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김마음씨가 해당 주택의 낡은 현관문을 두들겼다.
쿵쿵쿵.
“점례 할머니~ 계세요? 박점례 할머니~”
쿵쿵쿵.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할머니.
“안 계신가···”
끼이익, 옆집 문이 열리고 웬 40대 남성이 사타구니를 긁으며 말한다.
“아오,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 죄송합니다. 혹시 이 집에 사시는 박점례 할머니 보신적 있으실까요?”
“그 노인네? 그러고보니까 요즘은 공병 주우러 안 다니시네? 원래 우리집에서 이틀에 한번씩 소주병 가져가시는데 요 며칠은 안 오셨어.”
“그래요?”
마음씨가 입을 꾹 닫았다가 안되겠는지 얼른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네, 119죠? 여기가 인천시 동구 송현동 182-62인데요, 아무래도 혼자사시는 할머니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요, 빨리좀 와주세요.”
전화를 끊은 마음씨가 40대 남성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아저씨! 여기 유리창 깰 뭐 없어요?”
“뭐, 뭐하려고?”
“아무래도 할머니한테 이상이 생긴 것 같아요!”
“그, 그래도 되겠어?”
“우유를 벌써 3세째 안 받아가신다고요! 빨리요!”
“으, 응!”
잠시후 남자가 가져온 야구배트로 현관문 위 유리창을 사정없이 내려쳐 깨트린 마음씨는 자신의 팔뚝을 베는 유리를 아랑곳 하지 않고 현관문을 안쪽에서 열고는 얼른 집안 내부로 진입했다.
“할머니! 할머니!”
다급하게 할머니를 부르며 작은 방 문을 여는 순간, 자리에 누워 가냘픈 숨을 내뱉고 있는 박점례 할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럴줄 알았어 젠장! 더 일찍 들어왔어야 했는데!”
첫번째 우유를 찾아가지 않았을 때.
그때 바로 자신이 이상을 눈치 챘다면 할머니는 더 무사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죄책감에 마음씨는 자신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아이고, 이봐 총각, 그만해! 자네 아니었으면 누가 알았겠어! 금방 119구조대 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자고.”
옆집 사는 40대 사내가 마음씨를 말리는데, 그의 손에 피가 묻어나왔다.
“아이고 총각 다쳤네 제기랄··· 나도 소주병 찾으러 안 오실때 한번 다녀가는건데··· 쯧, 아이고 할머니 정신좀 차려보세요, 여기 총각이 제 몸도 안 챙기고 할머니 걱정하잖아요?”
곧 도착한 119 구조대와 함께 다급하게 이송된 박점례 할머니와 마음씨.
옆집에 살던 40대 남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박점례 할머니네 집 현관문을 닫다가, 손잡이에 걸려있는 우유봉투를 쳐다본다.
[ 이 우유를 훔쳐가지 말아주세요, 홀로 사시는 할머님, 할아버님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국민여러분, 복지부장관 천혁수 올림. ]
우유봉투에 쓰여져 있는 말을 보고는 뭔가를 굳게 다짐한 듯 보이는 40대 남성.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신문사죠? 제보드릴게 있는데요.”
***
2001년 3월 8일 9시 뉴스를 시청하며 잠이 잘 온다는 멜라토닌이 제법 들어있는 차를 마시고 있던 대통령이 저도 모르게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뉴스에 집중했다.
[ 금일 오전 11시경, 복지부에서 시행하는 독거노인 복지의 일환인 우유배달 자원봉사 김마음씨는···]
“하, 우유가 저것이었군.”
대통령은 천우진이 말했던 ‘우유’라는 국민복지가 무엇인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좋은 아이디어야.”
그렇게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일도 아니었다. 우유 배달은 ‘자원 봉사’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법정 명령에 의해 의무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순수한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의 시간도 허투로 쓰지 않으면서, 독거 노인들의 안위까지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
정말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정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 김마음씨의 대처로인해 황급히 병원으로 이송된 박점례 할머니는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으며, 박점례 할머니의 집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김마음씨는 평생 흉터로 남을 상처를 보며 ‘영광의 상처’라며 이 상처 덕분에 할머니를 구할 수 있다며 환하게 웃어 본 기자에게 깊은 울림을···]
9시 뉴스에서 보도할 만큼, 파급력이 클 사건.
게다가 마음이 훈훈해지는 보기 드문 뉴스에 벌써부터 천혁수 복지부 장관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대통령은 내심 뿌듯했다.
이렇다할 성과가 없던 복지부에서 오랜만에 제법 가시적인 성과를 내었기 때문이었다. 현 복지부 장관을 임명한 것이 본인이었으니, 본인의 임기 말 인사배치에도 제법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기에.
***
2001년 4월 3일.
쾅!
복지부장관 사무실에서 큰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망할 놈들이!”
신문을 찢을 기세로 바닥에 내리친 천혁수 장관이 활활 불타오르는 두 눈으로 말했다.
“역사왜곡을 교과서에 집어 넣어?”
뉴스 기사의 자극적인 헤드라인.
[ 일본 역사왜곡 점점 심해진다. 이제는 초등교육 부터 역사왜곡. ]
역사왜곡 논란이 있던 교과서를 통과시키고 채택했다는 소식.
“교육부장관 연락해요!”
“예, 장관님!”
비서관이 나가고, 천혁수는 언제 분노했냐는 듯 차분한 얼굴이 되어 다시 신문을 들어올렸다.
“흐음,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이미지 메이킹을 할 수 있겠군··· 하여간 왜 놈들은 쯧쯧.”
애국심에 불타올라 분노하던 인물의 얼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차갑고 냉철한 얼굴.
어느새 천혁수 장관도 노련한 한명의 정치인이 되어 있었다.
< 제 10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