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0화. >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화를 건네 받아 말했다.
“전화 받았습니다.”
-미스터 천, 전화는 또 처음인가요?
“그런가요? 워낙 친숙한 느낌이라 잘 모르겠군요.”
-하하하, 어색하지 않게 받아주니 고맙습니다.
“우린 파트너 아닙니까? 어색할 이유가 없죠.”
-록펠러씨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요즘 감각에 가장 적합한 당신의 생각이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란 말씀을 하시더군요.
슬쩍 록펠러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미 할아버지와 내가 잡아온 전복에 대해 토론을 하느라 바빴다.
“록펠러씨가 제법 나를 인정하는 모양입니다.”
-맨 바닥에서 지금의 SKY를 만들었으니 그럴 수 있지요.
“하하, 과찬이군요. 그래서, 무엇이 궁금하셨습니까?”
-현재 나의 이미지는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미성년자 성매매에대한 루머가 파다한 상황이고, 그에 관련해 어떠한 얘기도 우리 캠프에서는 하지 않고 있거든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현재의 이미지는 오히려 부쉬 캠프에서 냄새를 흘린 것이고, 그 냄새를 따라 미끼를 문 알 구어 캠프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과정일 뿐이었다.
“부쉬의 캠프에서 흘린 정보 아닙니까?”
-맞습니다. 당신이 준 명품 선물 덕분이죠.
“그런데요?”
-공개해야 할 타이밍에 관련해서 의견이 두가지로 얻갈립니다.
“아아.”
무슨 뜻인지 알아 먹었다.
과연 언제까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가느냐에 대한 싸움. 이제 미국의 선거는 성큼 몇달 안으로 다가왔다.
“기다리느냐, 공개하느냐 그것이 문제란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현재 계속해서 지지율 하락을 보이고 있어, 너무 가지고 있는 것은 자칫 실패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8월, 정말 본격적이라 할 수 있는 TV토론 까지는 아직 1달 하고도 보름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볼 수 있었다.
“조금더 웅크리시죠, 쓰기에 따라 아주 유용한 무기입니다. TV앞에서, 미국의 모든 시민이 집중하는 그 때, 알 구어에게 한 방 먹이는 그림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마 알 구어는 분명 TV토론에서 해당 논란에 대한 규명을 촉구할겁니다.”
-흐음, 우리 캠프에서도 그런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수습하기 어렵게, 그리고 그 사진속 로이드라는 놈과 알 구어 2세는 어쩌면 오늘도 그런 파티를 열고 있을지 모르죠.”
-아아.
대충 내 얘기를 알아 들은 것 같았다.
-하하, 록펠러씨 얘기를 듣고, 혹시나 해서 생각을 물었는데 생각보다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정확히는 확신이라고 할까요? 아무래도 급락하는 지지율과 좋지 못한 시선을 받다보니 내가 간이 작아진 모양입니다.
“당신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겁니다. 난 확신해요.”
-응원 감사합니다. 다음은 정말 화이트 하우스에서 뵙기를 기원하죠.
“예, 반드시 그렇게 될 겁니다.”
전화를 끊고 도마위에 올라간 내가 잡아온 전복을 쳐다보았다.
“대비, 회 알아?”
“사시미? 일본 음식?”
“우리나라에도 있다고.”
“이 전복도 회로 먹나?”
“그럼, 특히 자연산 전복의 내장은 맛이 일품이지.”
“호오.”
할아버지가 내게 루시를 불러오라 눈짓한다.
눈치껏 고개를 끄덕이고 루시를 불렀다. 내 부름에 머리만 빼꼼히 바다위로 내밀고 있던 루시가 아름답게 헤엄쳐 뭍으로 나온다.
검은색 비키니 수영복이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을 여실히 보여준다.
누가봐도 아름다운 미인이지만, 어째서인지 루시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인물은 나 뿐이었다. 나머지는 이미 썰리고 있는 전복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루시 아까 잡은 그 전복, 할아버지가 회로 만드실거라셔.”
“회?”
“응 살아있는 상태로 먹는 음식이지.”
“으, 비리지 않을까?”
“먹어봐, 고소하고 식감이 일품일거야.”
“그래?”
어느새 도마 위에는 전복이 예쁘게 썰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할아버지가 내장을 이용한 소스를 만들어 뿌렸다.
“드셔보시게, 화이트 와인이 잘 어울리지만, 개인적으로 매실주도 일품이라 할 수 있지.”
할아버지의 말에 얼른 백철웅이 캠핑카에서 매실주를 꺼내온다. 적당히 시원한 온도의 매실주를 한 모금 머금다 삼키고, 전복을 맨 손으로 집어 먹었다.
꼬득꼬득한 식감이, 그리고 내가 직접 잡았다는 그 사실에 맛이 두배, 세배.
좋은 사람들과 함께 먹으니, 양은 적어도 그 맛이 네배 다섯배 좋았다.
“오! 우진! 정말 식감이 재미있어!”
“호오, 쑤 자네 요리 실력이 대단하군!”
이번년도의 휴가는 제법 마음에 들었다.
***
시간이 흘러 9월 중순.
여름이 한창일때 시작한 캠핑은 무려 1달을 꽉채우고도 며칠을 더 진행했다. 가을의 한국은 그만큼 멋이 있었다.
며칠을 더 머물다 간다면 아름다운 단풍을 구경할 수 있겠지만, 루시의 개학과 더불어 록펠러도 이제 성큼 다가온 미국의 대선과 관련해 바쁜 일처리가 필요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의 자본시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주식시장이 크게 요동친다. 그러니 그 배에 선장 역할을 할 록펠러가 빠지면 섭섭하다는 얘기였다.
아마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가끔 올라오는 보고를 통해 SKY인베스트먼트도 거대한 투자 세력답게 재미를 보고 있을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강기태는 결코 무능한 사람이 아니니까.
또, 찰리 박 또한 튼실한 회사를 저렴하게 사고, 올바른 값에 팔아넘기며 이익을 극대화 하고 있을 터였다.
“쑤! 진! 정말 푹~ 쉬다 가네.”
록펠러의 인사에 할아버지가 록펠러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죽기전에 이런 여유가 다시 있었으면 좋겠네.
할아버지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록펠러가 등을 토닥였다.
“당연하지, 우리는 이제 뒷세대에게 물려주고 여유를 좀 가져보자고.”
“하하, 아쉽게도 손주놈 때문에 증손주를 볼 때까지는 일을 해야 할 모양이야.”
“흐음, 그럼 최대한 빨리 증손주를 봐야겠군.”
할아버지와 록펠러의 뜨거운 눈빛을 받은 루시가 잔뜩 어깨를 붉히며 팔꿈치로 내 배를 툭 찌른다.
“어휴, 100살도 더 사실분들이··· 앞으로도 종종 시간 만들테니까 너무 서운케 생각마세요.”
“흠, 진이 그렇다면야 믿어보지.”
“오냐, 이 할애비 일좀 그만 시키거라.”
할아버지의 엄살에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일해주셔야 하니, 굳이 알겠다는 빈말은 하지 않았다. 꼬투리를 잡힐지도 모르니까.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루시의 양 어깨를 잡아 부드럽게 품에 안았다.
캠핑 여행 중, 자연스럽게 할아버지들 앞에서도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흠이 될 것도 없었다.
“루시, 가 있어, 다음 방학쯤에는 꼭 갈테니까 연말은 미국에서 보내자.”
“그래 우진, 기다릴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전용기를 타기 위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록펠러와 루시에게 밝게 웃으며 배웅했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할아버지가 묻는다.
“이제 우리도 바쁘더냐?”
“예, 할아버지는 우선 보궐선거부터 준비하시죠?”
“결국 그 망할 국회의원을 해야 하는구나.”
***
9월 말.
결국 FX사업의 최종 결정된 전투기는 F-15K가 되었고, 국방부 장관은 SKY항공우주기술의 얼굴에 연신 금칠을 해댔다. 앞으로 대한민국에 고성능 항공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국민들에게 제시하며 천문학적인 규모의 FX사업을 발표했다.
여, 야 할 것 없이 모든 당이 별다른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국방부에서 발표한 내용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에 얼마나 유리한 조건인지는 모두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SKY항공우주기술의 위상이 올라갔고 이미지도 덩달아 상승했다.
애국적 기업이라는 프레임과 함께, SKY그룹 자체의 사원 복지와 기부 사업, 공익 사업들이 널리 홍보되고 있는 상황.
“FX사업도 마무리 되었겠다. 이제 무엇을 할 셈이더냐?”
“일단은 할아버지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야죠?”
“그 정도는 알아서 한다.”
아산댁이 내온 차를 한 모금 마시고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래서, 당은 결정 하셨어요?”
“고민이구나.”
“보궐선거니까 일단 결정은 하셔야죠, 여든 야든.”
“야당이 의석수가 많으니 여로 가는것이 편하지 싶구나.”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어느 당을 가던 할아버지는 무조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될 수 밖에 없다.
전국 그 어디든 대한은행이 입점하지 않은 곳은 없으니까.
철웅을 쳐다보며 말했다.
“지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 작은 회장님께 귀속되었습니다.”
“금산분리는요?”
“문제없이 처리되었습니다. 직접 경영을 하시는 것이 아닌 전문경영인을 두는 방식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속세 역시 제대로 처리 하셨죠?”
“예, 절세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절세 절차를 밟지않은 정석적인 절차대로 진행을 했다면 세금 규모부터 어마어마했을테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1등 금융사의 지분을 상속 받는 것이니까.
“좋습니다. 회장자리는 잠시 공석이죠?”
“예, 조만간 적당한 인재를 올릴 생각입니다.”
“철웅이 이놈이 앉으라니까.”
“하하, 전 괜찮습니다 회장님.”
“이제 회장 아니야.”
“그럼 백부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오냐, 의원되도 백부라 불러.”
“하하하 예.”
“대충 아무대나 골라서 가세요 할아버지.”
“그래 이놈아 알았다.”
보궐선거.
자리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자리를 만들기는 너무 쉬웠다.
아무 당에서나 한 명 ‘사퇴하세요.’하면 사퇴할 사람들은 천지삐깔이니까. 이미 심어둔 사람들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두둑한 퇴직금을 쥐어주면 아마 누구든 오케이 할 테다.
***
10월 중순.
차가운 얼음을 동동 띄운 컵에 가득 콜라를 따라서 TV를 통해 미국 대선 토론방송을 시청했다.
히죽 웃으며 부쉬가 알 구어 2세와 로이드 로스차일드의 문란한 사진을 들이밀며 말한다.
[ 알 구어의 선거 캠프에서 계속해서 저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있으나, 사실 소문과 루머속 ‘성매매’사건의 수괴는 알 구어 2세와 알 구어의 선거캠프 소속 로스차일드가의 자제로 밝혀졌습니다. ]
카메라가 부쉬의 말에 당황하고 있는 알 구어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미국의 대선토론 장면은 알 구어의 똥씹은 표정을 끝으로 사라지고 이어서 나타난 장면에 마시고 있던 콜라를 뿜을뻔 했다.
“훕, 크읍, 칵.”
결국 사례가 제대로 걸렸다.
“후우, 후우···”
TV화면 가득 선거유세를 펼치고 있는 할아버지가 잡혔다. 아침부터 어딜 그리 바쁘게 가시나 했더니 TV로 뵙게 될지는 몰랐다.
[ 더 이상! 서민들의 피고름을 짜는 국회를 두고 볼 수 없어서 제가 직접 나섰습니다 여러분! 이 몸이 죽고 죽어, 골백번···]
아주 명 연설가가 따로 없다.
“확실히 카메라가 체질이시라니까?”
혼자 큭큭 거리며 보기 아쉬웠지만 아쉽게도 이 집에서 나만 한가했다.
[ 앞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국회! 월급 도둑만 가득하던 그 썩어빠진 국회를 제가! 이 천혁수가 바꾸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저를 찾아오시고! ]
TV속에 할아버지에게 열광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 목소리로 ‘천혁수’를 외치는 사람들, 당연히 당선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지만, 저 화면을 보자니 일말의 걱정조차 씻은 듯 사라진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때마침 적적하던 차,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받았습니다.”
-우진, 잘 지내고 있나?
“아, 록펠러씨.”
-쯧, 할아버지라고 부르래도.
“하하, 네 할아버지.”
-대선 토론은 보았나?
부쉬와 알 구어의 토론을 말하는 모양.
“예, 방금 막 봤습니다.”
-당선은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그럼요, 당연하죠.”
-네 예측이 정확했구나.
“로스차일드쪽 반발은 없습니까?”
-있어도 어쩌겠는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은 건넌 듯 한데, 아마 다른쪽에서 꿍꿍이를 꾸겠지.
“그렇군요.”
평소와 다르게 록펠러의 말이 제법 길었다.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는 듯 보였다.
“전화하신 용건은 그게 다인가요?”
-아니, 쑤와 함께 미국을 방문할때, 식을 올렸으면 싶은데.
순간 귀를 의심했다.
“식이요?”
-결혼 말이야.
아주 ‘남자, 남자’노래를 부르더니 빠꾸없이 훅 들어오는 록펠러의 말에 무엇이라 말을 잇기 어려웠다.
-서로 가진게 많은데 시끌벅적하게 할 필요 있나? 사치야 부리기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가능한 형편들이니, 차라리 소소하게 하는게 좋지 싶군 요즘 루시도 부쩍 스몰 웨딩에 관심이 많은 것 같고.
하여간 나도, 편하게 쉴 복이 있는 놈은 아닌 것 같다. 며칠이나 푹 쉬었다고 이렇게 어려운 주제가 툭 튀어나오니 말이다.
< 제 100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