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99화 (99/458)

< 제 99화. >

가급적이면 일정을 앞으로 당겼다.

록펠러씨도 록펠러씨지만, 내게는 루시가 더욱 중요했다. 그녀의 소중한 방학시간을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SKY항공우주기술의 획기적인 흑자전환을 위해서라도 꼭 빠른 FX산업 진행이 필요했다.

고잉사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국방부 장관과 더불어 한국군 관계자들과 고잉사, 그리고 SKY항공우주기술의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당연히 비공개적인 자리였다.

공개적인 자리라고 하면, 고잉사의 경쟁업체인 프랑스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모르긴 몰라도 프랑스쪽에서도 물밑작업을 하고 있을테지만, 한국은 자연스럽게 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입김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이럽게 뵙게 되어 영광···”

“역시 나라의 국방을 담당하는···”

각종 미사여구들과 서로에 대한 칭찬으로 대화의 포문을 여는 그들, 이런 대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에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가격협상, 바로 하시죠, 사실상 가격 협상만 끝난다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니까.”

내 말에 국방부 장관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고잉사의 CEO를 쳐다본다.

“생각해 놓은 가격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먼저 SKY항공우주기술과 어떻게 대화가 되었는지 잘 모르니, 그 부분부터 집고 넘어가겠습니다.”

고잉사 CEO의 말에 국방부 장관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는 중고 기종 ‘개조’판매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인상을 찌푸린다.

“중고 기종을 새 것과 같은 가격으로 살 순 없습니다.”

“물론입니다. 외관은 개조 할 것이고 엔진기관도 새롭게 변할 거니 거의 새것과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우리 한국군이 새로운 전투기를 무장하려는 이유가 노후된 장비 때문임을 명심해주시길 바랍니다.”

“SKY항공우주기술에서 생산하게 될 F-15K는 한국 공군의 바로 옆 생산공장에서 만들게 될 겁니다. 고장이나 이상 문제에 대한 발빠른 대처가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다른 국가의 기종을 가져오는 것 보다 훨씬 더 유익한 환경임을 말씀드립니다.”

설득력 있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국방부 장관.

“예산 절감의 효과도 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F-15K의 결함문제에 대처할 엔지니어를 한국의 공군에 파견보낼 필요 없으니 당연히 ‘인건비’부분에서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서, 얼마를 생각한다는 얘깁니까?”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봐, 결국 먼저 금액을 묻는다.

“SKY항공우주기술에서 신규 생산한 전투기의 경우 3,999만 달러, 중고 개조 전투기의 경우 3,199만 달러를 원합니다.”

무리한 조건이 아니었다.

어느정도 생각하고 있던 규모의 액수였다.

40대 정도를 계획하고 있는 한국군의 총 지출은 최대 16억 달러정도 수준.

“일시납은 불가능 합니다.”

내가 손을 들자 모두의 이목이 내게 쏠린다.

“일시납은 내가 합니다. 생산비를 제외한 나머지 영업이익은 선 지급하겠습니다. 그리고 국방부에 저렴한 이자로 할부형식으로 지급 받겠습니다.”

국방부 장관도 고잉사의 CEO도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합리적인 방법이다. 고잉사 측에서도 당장의 자금 순환에 숨통이 트이고, 국방부 입장에서도 부담이 없다.

“SKY항공우주기술이 그렇게 해주시겠다면야, 좋습니다.”

국방부 장관의 승낙.

게임은 끝났다. 사실상 마무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을 설득하는 것은 국방부 장관이 할 일이지만, 이미 SKY항공우주기술이 개입한 이상 정치권에서도 큰 반대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SKY는 한국을 받치는 가장 커다란 기둥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서로 악수를 끝내고, 막 호텔을 벗어나는 고잉사 CEO를 불렀다.

“우린 아직 할 대화가 남은것 같습니다.”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자리에 앉는 고잉사의 CEO.

“SKY가 선납하는 조건이니, 생산 단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크흠, 일정을 빠르게 처리하십니다.”

왜 급하냐는 질문.

“여러번 올 필요 없이 지금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잖습니까?”

과연 고잉사의 CEO가 이 문제를 준비해오지 않았을리 없었다. 누가 비즈니스맨 아니랄까봐 제법 머리를 굴려 불리한 협상 자리에는 앉으려 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난 전혀 그렇게 해줄 마음이 없다.

현 상황에서는 내가 유리하다.

구두 계약은 성사되었지만, 실제 서면 계약이 완성된 단계는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우리 SKY항공우주기술이 책정한 생산 단가입니다.”

영어로 완성되어 있는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

빤히 서류를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리는 그.

“흠, 과합니다.”

“인건비 부분은 제외했습니다. 그 부분은 우리 SKY항공우주기술이 담당해야 할테니까요.”

“그래도 과합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고잉사측에서 빠르게 기술이전을 해준다고 해도, 우리 직원들이 그것을 흡수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결국 생산 완료하는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릴거란 얘기죠, 당연히 인건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점을 감안해주셔야죠?”

그래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품에서 만년필을 꺼내어 슥슥 우리가 제시한 금액을 지우고, 그 위에 자신이 제시하고픈 금액을 적는다.

“이 금액이 상한선입니다.”

붉은색 연기가 넘실거린다.

구라라는 소리다.

나는 피식 웃으며 호석이 건넨 만년필을 받아 슥슥 지우고 새로운 가격을 적었다.

처음 제시했던 생산단가에서 10프로 올린 금액이다.

“우리 SKY도 이정도가 맥스입니다.”

“이러면 고잉사의 손해입니다.”

역시 붉은색 연기가 피워오른다.

“중고기종에서 많이 남겨먹을 생각 아니었습니까? 우리 회사가 전투기 기술이 없다고 해 호구가 아님을 명심해주시죠.”

“크흠···”

“다시 말씀드리지만, 맥스입니다. 더 이상의 가격협상은 없습니다.”

못을 박았다.

서명을 할지 말지, 양자 택일이 그에게 주어졌다.

내 눈을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한국인의 고집이 쇠심줄보다 질기다더니, 내가 졌습니다. 서명하죠.”

내 눈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음을 보았던 모양이다.

난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그와 악수했다.

“최대한 빠른 진행을 부탁드리죠, 이왕이면 기술자들을 먼저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론적인 기술 이전부터 시행한다면, 훗날 더욱 빠르게 생산에 임할 수 있을테니까요.”

“좋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입금을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 국방부와 서명하는 순간, 입금 될 겁니다.”

***

며칠 뒤.

철썩, 철썩.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히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제법 운치가 있었다.

따가운 햇볕 아래 바닷바람을 맏고 있자니 덥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약간은 끈적이는 바람에 찝찝할만도 한데, 함께 하는 사람이 좋아서 그런가 마냥 평화롭게 느껴졌다.

“여기거 어디라고?”

“태종대. 제법 멋있지?”

“어메이징 해 우진! 한국은 정말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야.”

“이번 캠핑 마음에 들어?”

“그럼! 저기 봐, 우리 할아버지도 행복해 보이지 않아?”

루시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기니 확실히 행복한 표정을 짓고있는 록펠러씨가 보였다. 어느새 할아버지와 ‘소고기 굽기’에 대하여 진지한 토론을 진행중이다.

루시가 어깨를 기대오며 나를 올려다 본다.

“우진.”

“응?”

“꿈이 있어?”

제법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꿈이라··· 목표와는 조금 다른가?”

“비슷하며 다르지.”

“어떻게 다른데?”

“목표는 이룰 수 있어보이지만, 꿈은 이룰 수 있을까 싶은, 그런 뜬구름을 잡는 느낌이랄까?”

루시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난 꿈이 없어.”

“어째서? 할아버지와 우리 아빠는, 우진에게 야망을 봤다고 하던데?”

“난 뜬구름 잡지 않거든, 확실하고 확고하게 이룰수 있다 생각하거든, 그러니 목표만 있는 셈인가?”

너무 오만하게 들렸을까? 루시가 잠시 멍하니 날 바라본다.

“그 목표가 뭔지 알려 줄 수 있을까?”

“그럼, 쉽지.”

“뭔데?”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시선을 저 멀리 수평선에 던지며 말했다.

“세계 정복.”

“풉.”

루시가 어깨를 툭치더니 이내 빵 터져 크게 웃는다.

“깔깔깔, 우진! 그게 뭐야! 유치해.”

장난처럼 들렸을까? 나름 진심을 다해 얘기했는데 말이다.

“농담 같아?”

“진짜라고?”

“궁금하면 쭉 곁에 있으라고, 내가 어떻게 세계정복을 하는지.”

“와우, 내가 듣기엔 그건 목표가 아니라 꿈이 확실해 우진.”

“그래? 이룰 수 없는 뜬구름 같아?”

잠시 고민하는 루시.

이내 베시시 웃더니 말한다.

“아니, 어쩐지 우진은 그 꿈, 이뤄낼 것 같네.”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루시, 곧 세계를 정복할 남자라고 세상에 나보다 대단한 신랑감이 있겠어?”

기분좋게 웃으며 다시 내게 안겨온 루시가 말했다.

“그럼 우진, 만약에 말이야.”

“응.”

“나랑 세계정복, 둘 중 하나만 택해야 된다면, 뭘 택하겠어?”

제법 어려운 질문이라고 건넨 모양인데, 내겐 너무나도 쉬웠다.

“세상에 그런 만약은 없어, 세계 정복할 남자에게 ‘사랑’은 당연히 따라와야 할 놈이니까.”

“만약이라고 했잖아.”

“그 만약마저 난 깨 부술거야, 그게 내가 걷는 세계정복의 길이거든.”

루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내 눈을 쳐다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감은 정말 대단해! 좋아 믿어 볼게.”

“믿어, 반드시 그렇게 될 테니까.”

***

로스차일드의 재무담당 테드가 플로리다 주의 한 공항에 나왔다. 멀리서 미국 법무부의 관계자들과 함께 걸어오는 동양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사전에 언질이 있었는지, 법무부의 직원들은 테드를 가로막지 않았다.

“이봐, 이건 회장?”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린 이건.

“쯧쯧.”

테드가 혀를 찼다.

이미 이건의 두 눈은 죽어있었다.

산 사람의 눈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 사람, 정신은 멀쩡합니까?”

법무부 직원에게 건넨 말에 그는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극도로 남자를 경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만, 정확한 정신감정은 해보지 않아서.”

“후우··· 잠시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차량에 올라서 하시죠? 그정도야.”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법무부 차량에 함께 동승한 테드가 이건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매튜는 어떻게 됐지?”

“거언, 거언.”

“건? 총?”

“고온, 고온.”

“곤? 죽었다는 뜻인가?”

고개를 끄덕이는 이건, 테드가 잔뜩 인상을 찌푸린다.

“누가! 누가 감히!”

“혀우인 혀우인.”

“천우진?”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이건.

“쓋! 이사람 말이 왜이렇게 어눌합니까?”

“호송과정에서 실종 후에, 이빨이 모두 뽑힌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뭐요? 이빨?”

“예, 자연스럽게 발음이 힘들 겁니다.”

“하, 자꾸 일이 꼬이는 군.”

“뭐, 덕분에 교도소에 수감되면 인기는 제법이겠습니다. 크크큭.”

테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몰랐습니까? 교도소의 약자는 성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만?”

“크큭, 이빨이 없잖아요 이빨이, 얼마나 부드럽겠습니까?”

헛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은 표정의 테드.

대충 법무부 직원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상상만해도 몸서리치게 끔찍했다.

“게다가 또, 동양인들은 희소성이 있으니, 아마 인기가 대단할겁니다. 대충 1~3년정도 받을 것 같은데 버틸까 모르겠네요.”

부들부들 몸을 떠는 이건.

테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펜과 작은 수첩을 꺼내 그에게 건넨다.

“들었나 이건 회장? 당신이 아는 SKY와 천우진에 관한 모든걸 불어, 당신이 뱉는 정보의 질에 따라 처우가 결정될테니까, 보석도 가능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건.

수첩을 받아든 이건이 열심히 메모하기 시작했다.

***

캠핑 7일차.

통영을 지나 거제도에 도착한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잔뜩 만끽하고 있었다. 적당한 날씨, 투명한 바다. 당연히 바닷속에 뛰어들고 싶게 만든다.

게다가 ‘수영’에 일가견 있는 정호석에게 배우는 프리다이빙은 제법 재미가 있었다. 루시는 사전에 경험해본적 있는지 곧잘 따라했고, 나는 루시에게 지기 싫은 마음에 악으로 깡으로 따라했다.

수십 3미터 아래, 이제 몸뚱이에 달린 납덩이에 제법 적응을 할 찰나, 눈에 띄는 생물이 있었다. 바위 틈에 제대로 박혀 있는 놈. 전복이었다.

맨손으로 놈을 떼내려고 용을 쓰는데 어림도 없었다. 그때 물살을 가르며 나타난 정호석이 군용 나이프를 꺼내 전복을 떼, 내게 건넨다.

물 속이라 크기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손에 쥐니 대단히 컸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서 루시의 얼굴만했다. 흥분과 함께 바닷물이 한 움큼 입에 들어왔지만 신경쓰지 않고 빠르게 수면위로 헤엄쳤다.

“푸하! 루시! 이거 봐!”

자랑이라도 하듯 루시에게 헤엄쳐 다가가 전복을 보여주었다.

“우와! 전복이야?”

“응! 이 정도 크기면 엄청 비쌀텐데!”

마침 하하호호 하고 웃고있는 중에 멀리서 백철웅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전화입니다.”

빠르게 뭍으로 올라와 철웅에게 물었다. 그가 내게 얘기했을 정도면 제법 중요한 전화일터.

“어딥니까?”

“부쉬입니다.”

“부쉬요?”

록펠러와 눈을 마주치니 어깨를 으쓱이는 그.

나는 궁금증을 품고 록펠러가 들고 있는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 제 9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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