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8화 >
이건의 코 앞에 선 할아버지가 목을 꺾어 날 쳐다보고는 말했다.
“오래 걸리듯 싶구나, 나가서 시가라도 한 대 태우고 오너라.”
한껏 즐기시겠다 말씀하니, 딱히 말릴 수 없었다. 나 역시 이건이 고통속에 빠지는 것을 원하니 어쩌면 당연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돌아서 바깥으로 나갔다. 나가는 길에 눈을 마주친 매튜의 두 눈은 애처로워 보였다. 놈에게 동정심 따위가 생길리 없으니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퍽, 퍽.
“끄으읍.”
등 뒤로 묵직한 타격음과 이건의 신음이 들려온다.
“오늘 밤은 제법 길겠습니다.”
내 물음에 정호석이 잘 모르겠다는 듯 말한다.
“글쎄요, 이건이 얼마나 버텨줄지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며 완전히 물류창고 바깥으로 나왔다.
쏴아아아.
마침 장맛비가 쏟아지고 있는 한국.
제법 분위기가 낭만적이었다. 커다란 파라솔을 펼치고 테이블이 세팅되었다. 밤이 길것을 대비하기 위함. 소주와 함께 어디서 가져왔는지 육개장과 머릿고기가 테이블 위에 세팅되었다.
“메뉴 한번 참··· 장례식장입니까?”
정호석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근처에 문을 연 가게의 메뉴가 이것이었나 봅니다.”
내 말에 당황했던 직원의 어깨를 몇번 두드려준 정호석이 내게 시가를 건넨다. 시가를 받아들고 불을 붙이는 사이, 정호석이 두꺼비가 그려진 소주의 뚜껑 라이터로 딴다.
뻥.
글라스 잔에 소주를 반 정도 따르더니, 자신의 잔에도 소주를 따랐다.
쩔그락.
잔과 잔이 부딪히고, 독한 두꺼비 소주를 비워내고 안주 삼아 시가를 태웠다.
“회장님 말씀은, 이건을 살려둘 것 같았습니다.”
정호석의 말에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또 지금과 같은 번거로움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죽이는 것이 깔끔하지 않냐는 질문.
틀린말이 아니었다.
“맞습니다. 죽이면 깔끔하겠죠. 그런데 그건 너무 쉬우니까.”
“흐음···”
“정 대표님.”
“예, 회장님.”
“할아버지께 말씀드려주실래요? 사지중 하나만 병신을 만드시고, 나머지는 멀쩡하게 부탁한다고.”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미국에서 오라는데, 보내야죠 굳이 일을 크게 만들 필요 있습니까?”
“흐음···”
도저히 내 생각을 모르겠는 모양이다.
쪼르르륵.
그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미국에도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많을 것 아닙니까?”
“아!”
“매튜인지 매트인지 하는 놈 덕분에 요 근래 편하게 지낸 모양인데, 다시 절망이 찾아왔을때 이건 그 놈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정호석이 밝은 얼굴로 잔에 채워진 소주를 비우고는 말했다.
“그럼, 큰회장님께, 회장님의 말씀 전하고 오겠습니다.”
“예, 천천히 하시라고 하세요, 너무 힘들지 않게.”
“예, 회장님.”
“아, 김장원 사장한테, 매튜 그 놈 눈 못감게 하라고도 전하시고.”
“예!”
***
홀로 소주를 두어 병 비웠을 때 쯤.
뒤쪽에서 들려오는 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앉아 있거라.”
할아버지는 장갑을 벗고 팔뚝에 튄 피를 빗물에 씻으며 말했다.
“요즘 것들은 영, 근성이 없구나 이건 저 놈도 제법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놈인데, 영··· 글러 먹었어.”
할아버지의 말에 피식 웃으며 손목을 들어올렸다.
어느새 3시간이 지나 있었다. 할아버지는 별로 힘이 들지도 않는지 코와 이마 부근에 약간의 땀이 맺혔을 뿐, 숨도 가쁘게 쉬지 않으셨다.
“한 잔 드릴까요?”
“두꺼비? 하하, 오랜만이구나 좋지.”
글라스 가득 소주를 따라드리니 벌컥벌컥 단숨에 비워낸 할아버지가 젓가락을 놀려 머릿고기를 새우젓에 찍어 드신다.
“안주가 영, 곡 소리라도 들릴 것 같구나.”
“제법 낭만적이지 않아요? 빗소리도 좋고.”
픽 웃은 할아버지가 손짓 하니 다가온 직원 하나가 시가를 건넨다.
“일 보거라, 잠시 쉬다가 들어 갈테니.”
“예.”
자리에서 일어나 물류창고로 들어가기 전,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사지 중, 어디를 고르셨어요?”
피식 웃은 할아버지가 말했다.
“가서 보거라.”
“하하, 예.”
어차피 곧 볼 수 있을텐데 굳이 계속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다시 이건과 매튜등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이건의 몸 주변이 피로 흥건하다. 이건 놈이 입고 있던 흰색 와이셔츠는 와인을 쏟아부은 양 시뻘겋다.
팔, 다리.
각각 2개씩 모두 멀쩡하게 달려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건에게 다가갔다.
완전히 기절해 버린 놈.
고개를 갸웃거리다 연장들이 있던 테이블을 확인하는데, 그제야 난 알 수 있었다. 사지 중 하나를 자르는 것 보다 어떻게 보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는 일.
생뼈를 뽑는 고통.
이건의 모든 치아를 뽑아낸 듯, 언뜻 보기에도 십수개의 이빨이 테이블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야, 우리 건이 미국놈들이 좋아하겠다 야, 이빨이 없어서.”
김장원과 정호석, 백철웅은 내 말을 이해한 듯 싶었다. 김장원이 괜스레 자신의 엉덩이에 힘을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매튜를 쳐다보았다.
“사, 살려줘, 살려줘!”
할아버지가 쓰셨던 너클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가 내려 놓았다. 찐득한 피가 묻어 있어서 기분이 별로다. 마침 처음 호석이 내게 건넸었던 칼이 눈에 띈다.
강영우의 혀를 잘랐던 그 칼과 똑같은 디자인.
그 칼을 들고 매튜에게 다가갔다.
“으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이성을 잃은 매튜놈의 비명이 제법 시끄럽다.
의자에 고정되어 있던 놈의 손등을 그대로 찔렀다.
“끄아아아아아.”
“그 아가리 안 닥치면, 바로 죽인다.”
“끄읍.”
제법 마음에 드는 눈을 하고 있는 매튜, 질문을 던지면 바로바로 얘기 할 것 같았다.
“누가 보냈어?”
“로,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 누구.”
“테드, 로이드 로스차일드의 심복이자 로스차일드의 재무담당.”
“목적은.”
“SKY와 천우진의 정보 획득.”
“성과는?”
“이건이라는 저 놈이 알고 있는 정보를 미국에 도착하면 알려주기로 했었다.”
손등에 박혀있던 칼을 뽑아, 반대편 손등을 찍었다.
“끄으으읍.”
“확실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매튜.
“네가 알고 있는 로스차일드의 약점은?”
놈의 동공이 크게 요동쳤다.
상상하지 못했던 질문인 모양.
“얘기 할 준비가 안 됐나?”
“아냐아냐, 준비 됐다고! 준비 됐어!”
래퍼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놈은 빠르게 로스차일드의 악행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해당 내용은 백철웅이 꼼꼼하게 적거나 녹음하는 중이었다.
계속 듣고 있는데 양질의 정보가 없다.
“이 정도가 다야?”
한참 떠들어대던 매튜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다.
“더 있어, 더 있다고! 약점은 아니지만 로스차일드의 앞으로 계획이야! 대계중 하나라고!”
“말해 봐.”
이어지는 매튜의 말은 확실히 눈이 뜨일만한 정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 쓸모있던 정보는 아니었다. 왜냐면, 미래를 살다 왔던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모기지론···”
눈을 동그랗게 뜨는 매튜.
어떻게 아느냐는 듯한 얼굴.
나는 고개를 들어 김장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매튜 이친구는 공구리 치시고, 이건은 동네 파출소에 던져 주세요.”
“예, 회장님.”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영양가 없는 피라미를 잡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로이드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로스차일드 일가에도 언젠가 빅 엿을 한 번 먹여야 할테지만, 아직은 그 타이밍이 아닌 듯 싶었다.
우선은 당장 ‘성매매’스캔들 정도가 최선이었다. 놈들을 엿 맥일려면 놈들이 꾸미는 ‘모기지’의 규모가 더욱 커져야 했다.
본래의 역사처럼 머리와 몸통이라 불릴 부분은 쏙 빼먹고, 대충 신발 정도나 던져줄 순 없을것이다. 그것의 시작부터 내가 직접 개입할 생각이니까.
미국을 먹을 첫번째 계획에, ‘모기지’는 아주아주 중요하니까 벌써부터 시끄러워서 도움 될 것이 없다.
짝짝,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 그럼 정리된 것 같으니까 퇴근들 합시다.”
***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할아버지와 나. 놀랍게도 록펠러씨는 잠에들지 않고 우리를 반겼다.
“음? 이제오나 쑤? 쯧쯧, 나이를 생각해야지 자네도.”
“하하, 편히 쉬지 굳이 기다렸나?”
“아직 시차 적응이 덜 되서 그래.”
“그렇구만···”
록펠러가 코를 벌름 거리더니 묻는다.
“둘이 술을 마셨나?”
“하하, 술이 고픈모양이야 대비?”
“마실까 말까 고민하고있었네만··· 내 집이 아니라 참는 중이었네.”
“이거 실례했구만, 가지 한 잔 하자고.”
“바깥에서 먹자고?”
“이런 날씨에 딱 어울리는 술 집이 있지.”
“오호, 그래?”
“그래, 한국의 낭만이랄까?”
“좋아, 가지!”
자연스럽게 록펠러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른다.
“저도 갑니까?”
“남자들끼리, 싫은가?”
따라가면 술 시중만 들어야 할 것 같아 별로이긴 했으나, 제법 뜨거운 록펠러의 눈을 보자니 거절하기가 마땅치 않았다.
“가죠 뭐.”
록펠러가 가운데에 서고, 나와 할아버지가 록펠러의 좌 우에 선 모양새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히죽 웃는 백철웅에게 말했다.
“김 노야네 포차, 아직 하고 있지?”
“예, 회장님.”
“그리가자.”
“하하, 예.”
한국의 낭만이네 뭐네 하시더니, 포장마차를 말씀하셨나보다.
잠시 후 도착한 포장마차.
마감 준비를 하던 모양인 것 같은데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더니 밝게 웃으며 말한다.
“아이고! 천 회장님, 이야! 얼마만이에요?”
머리가 희끗한 주인양반이 반갑게 할아버지를 맞이했다.
“남은 안주 싹 쓸어 와.”
“아이고 마침 마감하려던 참이라 다 버리나 했는데 감사합니다.”
“이런, 세팅해주고 퇴근해도 돼, 알아서 치우고 가지.”
“아이고 주인이 그러면 됩니까? 걱정하지 말고 앉으십시오.”
엉성한 비닐 포장마차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제법 좋게 들려왔다.
“오, 이런 술집이라니 특이하군.”
“제법 낭만있지 대비?”
“확실히.”
“안주가 매울 수 있어, 안 매운 것 위주로 알려줄테니 걱정하지 마시게.”
곧 꼼장어, 닭발, 계란말이, 곱창볶음 등.
포장마차의 메인 메뉴들이 쏟아지듯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나의 원픽은 김치 우동이었다.
막 우동을 한 젓가락 뜨려는 찰나.
“우진아.”
“예, 할아버지.”
“대비에게 한국의 폭탄주를 알려주려무나.”
“예?”
“재주좀 부려 보라고 이놈아.”
이럴 줄 알았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냉장고로가 맥주를 가져왔다.
먼저 글라스 잔에 소주를 한잔씩 넣고, 맥주의 병 뚜껍 위에 젓가락으로 구멍을 냈다. 그러고는 맥주병을 흔들고 엄지손가락을 잘 조절해 소주가 따라져 있는 잔에 맥주의 거품을 쏜다.
“오오오!”
“하하하하, 이게 한국식 낭만일세.”
아무래도 오늘, 할아버지와 록펠러가 한 이틀은 뻗게끔 만들어야겠다. 그래야 루시와 잠깐이라도 자유롭게 놀지 싶었다.
내가 일부러 더 밝게 보이는 이유.
웃고 계시지만 할아버지 얼굴에서 그늘이 보였다. 이건을 만지고 와서 생긴 그늘은 아닐테다. 아마도 이건을 보면,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이 떠오르시는게 아닐까? 할아버지에게는 아들과 며느리의 얼굴이, 이건 그 놈을 볼때면 떠올라 괴로우신 것 같았다.
그 부분에서 오히려 록펠러에게 고마웠다.
적어도 할아버지와 함께 유치하게 웃어줄 수 있는 인물이 곁에 있다는 것이 말이다. 낭만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이 모자란 손자놈은, 할아버지를 위로해드릴 방법을 모르기에.
***
같은시각 미국.
로이드 로스차일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왜 연락이 없어!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며? 벌써 하루가 지났나고! 망할 매튜인지 뭔지 하는 그 놈은 왜 연락이 없는건데!”
“죄송합니다 보스.”
“테드 아저씨, 이제 나이를 먹은거야? 직접 핸들링 하라니까 알았다며? 근데 일이 왜 이렇게 되는거야 도대체?”
테드가 까드득 어금니를 씹는다.
“열받아? 당신이 잘못 해 놓고 지금 열받냐고! 머저리 같은 일처리를 하다니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서 그런거야?”
“아닙니다 보스··· 곧 자초지종을 알아오겠습니다.”
“완벽하게 알아오기 전 까지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예, 보스.”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는 로이드.
테드는 분노를 감추지 않고 등을 돌려 바깥으로 나갔다. 신경질적으로 리모콘으로 TV 채널을 돌리던 로이드가 히죽 웃는다.
[부쉬의 성매매 스캔들에 시민들의 진실을 말하라는 시위가···]
거슬리던 SKY의 그 동양인과 관련된 소식은 엿같지만, 이렇게 부쉬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소식은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알 구어가 대통령이 된다면, SKY의 그 어린 동양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로이드였다.
“키키키킥.”
꼭 알 구어가 대통령이 되야 할 이유도 있었다. 로스차일드가에서 준비하는 모종의 계획. 그리고 그 계획의 컨트롤 타워를 담당할 로이드 로스차일드.
완벽하게 자신이 로스차일드가의 상속자가 되는 길이 멀지 않은 것만 같았다.
“계속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지라고!”
TV속 부쉬의 얼굴에 ‘퉤!’하고 침을 뱉은 로이드가 기분 좋은 얼굴로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
인천광역시 동구의 한 파출소 앞.
담배를 태우기 위해 파출소 바깥으로 나온 순경의 눈에 바닥에 누워 있는 취객이 보였다.
“뭐야 저거.”
취객에게 다가간 순경이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한다.
“어이, 아저씨. 아쩌시!”
미동도 없는 취객.
인상을 팍 찌푸린 순경이 담배를 다시 집어 넣고 양 팔로 엎드려 있는 취객의 몸을 돌리는 순간.
“으허헉!”
소스라치게 놀란 순경이 엉덩방아를 찧고 그대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난다.
“여, 여기! 여기!”
순경의 비명과 같은 외침에 파출소 내부에서 몇몇의 순경이 더 바깥으로 나오고, 그들은 서둘러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구급차 불러 구급차!”
피를 철철 흘리고 있던 사내가 눈을 번쩍 뜨고는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이 시어 아이 시어!”
“어, 어떤 미친새끼들이 이빨을 다 뽑았어?”
“예에?”
“이빨이 하나도 없어서 발음이 이렇지!”
제법 머리가 희끗한 경찰이 사내들을 밀치며 말했다.
“나와 봐, 우리 어머니가 이빨이 없어서 내가 제법 알아 들어. 아저씨 뭐라고요?”
“아이 시어! 아이 시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찰.
“뭐랍니까 소장님?”
“가기 싫다는데?”
“예?”
“가기 싫다고 하는 것 같은데···”
“집에서 마누라가 이빨을 뽑았나? 어딜 가기 싫다는 거지?”
“고요효 가기 시허!”
“교도소 가기 싫다고? 뭐야 이새끼, 야 이 새끼 신원조회도 해봐!”
< 제 98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