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87화 (87/458)

< 제 87화. >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미 대사관을 찾았다. 공식적인 행사가 아닌 비공식적인 행사.

우리나라는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이 움직인데 반해, 미국에서는 국무부 부장관과 차관급 인사 2명 총 3명이 움직였다. 미 대사까지 포함해 4명으로 숫자는 채워주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프레지던트. 국무부 장관님과 우리 대통령님께서 실례에 사과를 드린다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국무부 부장관의 말에 대통령이 씁쓸하게 웃으며 악수를 받았다. 공식적인 자리였다면 있을 수 없는 외교적 결례이지만, 비공식적인 자리이니 어느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비공식적인 자리니 어쩔 수 없지요.”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대통령은 사전에 받았던 서류와 함께 국무부의 인물들을 쭉 살폈다. 공화당의 인물은 국무부 부장관과 함께 온 차관 1명, 다른 차관 1명과 주한미국대사는 민주당의 인물이었다.

아무래도 책임자급 부장관이 공화당 인물인것으로 보아, 공화당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 수 있었다.

첫 대화는 다양한 행정교류에 관한 얘기였다.

“미국 시민의 한국에서의 범죄에 대해서 그 동안 불리한···”

“그 점은 깊이 통감하며, 조사 단계에서 부터 대한민국이 주도권···”

한바탕 설전과 함께 세부적인 합의사항들이 오가고, 이어서 나온 주제는 국방비 분담 규모에 대한 얘기였다.

“주한 미군의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는···”

“하지만 이미 우리 미국도 공무원들 월급을 몇년째 동결···”

“주한미군 분담금은 매년 상승하는데 한국 노동자의 임금이 동결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임금 상승에는 동의하나, 같은 조건의 근무자들에게 차등한 임금 상승은 인정할 수 없어···”

세세하고 작은 얘기부터, 제법 굵직한 이야기들.

세상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을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부터 바깥에 이 이야기가 퍼진다면 시끌시끌해질 얘기까지 숱하게 오가고 어느정도 서로의 협의점이 정리되었다.

“잠시 짧게 휴식하고, 다시 이어가시겠습니까?”

가장 고령자였던 대통령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조금 편하게 풀렸다. 가장 윗사람이기도 했으니, 그의 말이 반갑게 느껴질지도 몰랐다.

“좋습니다. 잠시 시가 한대 피우시죠, 한 20분 30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미 국무부 부장관까지 동의하자 사람들은 각자 흩어졌고, 통역사들은 한 숨을 푹 내쉬며 차관들을 따라 발코니로 움직였다.

휴식이 끝나고, 대통령이 자리에 앉자 국무부 부장관도 자리에 앉았다. 통역사들은 만반의 준비를 했다. 특히나 한국의 통역사는 어떤 굳은 각오까지 보였다.

그도 그럴게, 회의에 들어가기 전 대통령이 특히 당부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가 진짭니다.’

그 말로 충분했다.

대통령이 새로 나온 따듯한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고생해주는 동맹국 미국에게 무한한 감사를 전합니다.”

“하하, 당연한 일입니다.”

“그간, 우리는 평화를 위해 많은 것을 미국에게 의탁해야 했습니다.”

“크흠.”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도 조금씩 조금씩 자력으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지고 있습니다.”

“예··· 성장률이 놀랍습니다.”

“그러니, 그에 맞게 우리가 협의했던 내용들도 점차 발전적인 형태로 가야함이 옳습니다.”

서두가 길었고, 장내의 모두가 이제부터 이 비공식적인 만남의 본론이 나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를들자면 현재 북한의 핵실험은 매우 급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크흠.”

예민한 문제에 다들 인상을 찌푸린다.

“그에반해, 대한민국은 핵 공격의 방어수단과 원거리 타격에 대한 첨단 무기가 매우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해합니다.”

“우리의 든든한 우방국 미국이 ‘핵’을 가지고 동해에 주둔하고 있으며, 언제든 북한에게 보복공격을 가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많은 국민들이 ‘자주국방’을 원하는 바. 우리 대한민국은 동맹국 미국에게 미사일 규제안을 풀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민주당쪽에 가까운 차관이 불쑥 말했다.

“완전히 규제를 풀 수는 없습니다.”

국무부 부장관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빌슨, 대통령께서 하는 말에 자네가 직접적 거부의사를 표하기는 너무 결례란 생각을 하지 않는가?”

“크흠, 그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이 자리는 결정을 내리는 자리가 아니야, 협의를 하는 자리고 최종결정은 국무부와 대한민국의 외교부의 최종검토 후에 처리됨을 기억하시게.”

“예.”

부장관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대통령님의 의견에 적극 동의하는 바이나, 아쉽게도 여기 빌슨 차관이 얘기했던대로, 전면적 규제 해제는 불가능 합니다.”

대통령이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대통령님 현실적으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사거리 제한을 얼마까지 생각하고 계십니까?”

대통령이 외교부 장관과 눈빛을 나누다 눈을 슬쩍 감고 툭 뱉었다.

“2000km를 원합니다.”

국무부 부장관을 포함한 장내의 모두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장내의 모두가 대통령이 일부로 크게 질렀음을 알 수 있었다.

미 국무부 부장관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분명 공화당 내부에서 한국의 대통령의 의견을 적극수용하란 언질이 있었지만, 너무 파격적인 규제 완화는 분명 훗날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흐흠··· 우리가 예상하던것은 대략 1000km내외였습니다. 북한의 어느 위치던 타격이 가능한 정도였지요.”

“우리의 영원한 우방국 미국에게 숨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2000km는 되어야 대한민국이 중국과 일본의 압박에서도 어느정도 자유롭지 않겠습니까?”

“일본 또한 우리들의 우방국임을 모르십니까?”

“어찌 일본과 대한민국을 동일선상에 놓습니까? 옛 진주만과 2차대전은 벌써 잊으셨습니까?”

“큼큼, 일본의 군사 행동은 철저하게 미국의 감시아래 있습니다.”

“헌데 어째서 우리 동해상이 기웃거립니까?”

부장관은 일본을 끌어온 것이 패착임을 느낄 수 있었다.

“후우, 2000km는 어렵습니다. 1500km는 타진해보겠습니다.”

대통령은 가까스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내리려 애썼다. 예상은 1000km정도였는데 500km나 늘렸으니 이제 대한민국 어디에서든 도쿄와 베이징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만 개발하면 될 일이었다.

“믿겠습니다.”

먼저 벌떡 일어나 국무부 부장관에게 손을 내미는 대통령, 차관들은 바쁘게 서류를 정리한다.

“힘써보겠습니다.”

“예, 그럼 10월 협상 자리에서 뵐 수 있다면 뵙겠습니다.”

탁.

차량에 탑승한 대통령이 깊은 한숨과 함께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이야기가 순조롭게 흘렀습니다 대통령님.”

“이게 다, 장관께서 고생해주신 덕분입니다.”

“하하, 아닙니다. 대통령님이 카리스마 있게 2000km를 제안해서가 아니겠습니까?”

평소라면 아부 따위는 듣기 싫었을텐데, 오늘은 그마저도 기쁘게 들려왔다.

“참, 그 치도 대단한 사람이야··· 미국을 움직이다니.”

도대체 미국을 구워 삶은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은 천우진을 대단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그 능력의 끝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원의 보고에 의하면 손속이 잔인할지 모른다지만, 나쁜놈 두들겨 팬 것 말고는 그가 잘못한게 전혀 없었다. 대통령도 마음 같아서는 악질 정치인, 악질 경영인들에게 철퇴를 내리고 ‘사형’을 남발해 범죄없는 깨끗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의 마음속에 정의는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의외로 헌법 개정안에 대해서 국회의 반발이 적어 놀랐습니다.”

외교부 장관의 말에 기분이 좋던 대통령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쩐지 자꾸만 천우진의 뜻대로 움직이면 과거의 ‘독재’가 떠올랐다. 또는 북한의 ‘김가’놈들도 떠올랐다.

“쯧, 설마 민주주의에 그런일까지야···”

“예?”

“아닙니다. 헌법 개정은, 국민들의 뜻에 맞겨야지요.”

“대통령님이 적극적으로 진행하신게 아니었습니까?”

“일 얘기는 그만 합시다 크흠.”

***

바쁘게 움직이는 실무진들 사이로, 나는 SKY전자의 사장에게 물었다.

“스카이 팟 2세대, 현재 재고수량 어떻게 됩니까?”

“예, 오늘 정오를 기준으로 한국에 20만, 베트남에 10만, 미국에 50만, 유럽에 30만입니다.”

“일 생산 케파는 어떻게 됩니까?”

“품질검사 99퍼센트로 진행하면 일일 최대 50만개 생산이 가능합니다.”

“좋습니다. 순조롭네요.”

마음에 들었다.

재고가 부족해 못파는 일이 만약 벌어진다 해도,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그만큼 마케팅 효과를 얻어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후우, 갑시다.”

““예! 회장님.””

대강당에 입장하니 역시나, 플래시 세례가 날 반긴다. 오늘은 또 어떤 혁신을 말할까 이제는 외신들이 당연하다는 듯 SKY의 프레젠테이션 장을 방문한다.

스크린 가득 검은색 화면에, 흰색 알파벳이 수를 놓는다.

[ 비가와도 눈이와도, 근처에 SKY매장이 없어도. ]

[ 바깥에 나갈 사정이 되지 않고, 차가 없어도. ]

[ 집에서 쉽게,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다면. ]

[ 우리는 이제, 빠르면 하루, 늦어도 2일 안에. ]

[ 언제, 어디서나 SKY. ]

팟!

암전되었던 조명이 켜지고, 내가 단상위를 걸어 중앙에 섰다. 내 손에는 작은 종이상자가 들려 있었다.

준비된 테이블에 상자를 올리고, 커터칼로 종이상자를 여니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SKY전자의 포장재가 나온다.

조심스럽게 포장재를 벗기고, 드디어 사람들이 기다리던 SKY팟 2세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작게, 빠르게, 풍부하게, 오래, 더 많이, 소개합니다 스카이팟 2세대!”

삼현전자, 이제는 스카이 전자가 된 그곳의 D램기술은 스카이 팟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기존 1세대의 하드디스크따위는 던져버리고, 가벼운 무게와 슬림한 디자인으로 재탄생한 스카이 팟은 1세대의 단점을 완전히 보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기술력과, 세계 최고수준의 배터리 기술! SKY만의 독창적인 디자인!”

다시 한 번 암전되고, 스크린에 다양한 환경에서 SKY팟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조깅, 스케이트 보드, 축구, 야구.

밤하늘을 쳐다보는 연인에게는 로맨틱한 음악을.

이제 막 사랑을 느끼며 산책하는 연인에게는 설레이는 음악을.

팟.

다시 조명이 켜지고.

“질문 받겠습니다.”

모든 기자들이 손을 들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충 아무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그가 질문했다.

“늦어도 2일 안에, 무슨 뜻입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 스카이 팟 2세대는, SKY전자 매장이 아닌 곳에서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아니라 온라인 매장에서 말이죠.”

“온라인 매장이요?”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딱!

손가락을 튕기니 다시 조명이 조절되며 스크린에 SKY SHOP의 포털사이트가 떠올랐다.

“주변의 대도시에 나가 SKY매장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여기 집안의 쇼핑몰에서 스카이 팟 2세대는 물론, 식품, 잡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웅성웅성.

“판매자 또한, SKY의 승인을 받는다면 SKY SHOP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판매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터넷과 컴퓨터만 있다면 말이죠.”

“그럼 늦어도 2일 안에라는 말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어떤 물품을 구입한다면 2일 안에 도착한다는 말씀입니까?”

“아쉽게도, 아직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시장에서는 늦어도 3영업일에 배송이 가능하고, 해외 시장은 각 나라의 유통망 사정에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최대 14영업일을 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2주나 기다려야 한다면 제법 인내심이 필요하겠군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국의 경우, 대도시 인근의 거주하시는 분들이라면 최대 4영업일을 넘지 않으리라 약속합니다. 유럽의 경우 최대 7영업일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상대적 도서산간지역이나 일부 섬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포함됨을 말씀드립니다.”

“SKY가 그 정도 유통망을 갖추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유럽과 북미시장의 유통망은 점점 완성형으로 진행되는 중입니다만, 아직 다른 해외시장은 다소 미흡합니다. 그나마 SKY의 생산시설이 갖춰진 국가에서는 조금 더 빠른 배송을 받으실 수 있을것입니다.”

“배송비는 어떻게 됩니까?”

“소비자와 판매자가 직접연결되며 중간 마진이 사라지는 만큼, 합리적인 부분에서 소비자가 만족할 배송비를 약속드립니다.”

한국사람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그러나 외신들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보수적인 서구권, 근로자의 복지가 좋은편인 것도 이유중 하나겠으나, 한국처럼 ‘빨리빨리’문화를 잘 모르고 고지식한 일처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니 자연스럽게 모든 절차 진행이 느린 편이기에, 그들에게 SKY가 말한 3영업일도 꽤 빠르게 느껴지는 편이었다.

“그러면 오늘부터, 한국 시간 기준 오후 5시부터 사전예약을 실시합니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두 가능하나 가급적 SKY SHOP을 이용하시기를 권유드립니다.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려 예약 하기보다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클릭 몇번의 과정이 훨씬 더 이로울테니까요.”

< 제 87화.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