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4화. >
L.A로 이동해 래리와 세르게이, 철수와 잠시 만남을 가졌다.
한국에서 마이튜브라는 신규 사업 때문에 바쁘게 활동하던 철수는 SKY SOFT미국지부의 마이튜브와 마이홈피의 메인 관리자로 발령받았다. 정치권의 스캔들이 최초로 업로드 되며 화제를 모았던 마이튜브는 한국시장 만큼은 확실히 선점하고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 시장에서 마이튜브는 이제 자리를 잡고 있어서 헤드 개발자가 필요했기에 굳이 철수를 불러온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마이홈피라는 사업까지 흥하고 있어, 더욱 관리자급의 인재가 필요하기도 했다. 정확하게는 마이홈피 내부에 마이톡이라는 작은 메신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MS메신져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철수는 몹시 바쁘다는 얘기였다.
“보스!”
“보스 왔어혀?”
“오셨습니까 회장님.”
차례대로 세르게이, 래리, 철수의 인사였다.
“다들 잘 지내고 있었어?”
그들의 편안한 인사를 대변하듯, 나도 편안한 말투로 말했다. 모두가 피곤에 쩔어있는 모습이지만, 얼굴 만큼은 밝았다.
“이제 인력 충원해서 좀 쉬엄쉬엄 하라고, 다 롱런해야지?”
“하하, 안 그래도 대거 충원중에 있어요.”
“그래.”
구내식당의 수제 햄버거를 맛있게 씹으며 호석에게 눈짓하니, 그가 알아서 서류가방에서 내가 만들어온 서류를 꺼내었다.
“자, 너희들 다음 프로젝트, 이건 래나와 세르게이가 담당했으면 좋겠는데? 철수는 바쁘니까 지금 하던거에 집중하고.”
“옙!”
래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개념의 사이트인가요?”
“맞아, 정확히는 위탁판매 하는 개념으로 가겠지만.”
“유통 인프라를 구축해야겠는데요?”
아마존이라는 희대의 인터넷 쇼핑커머스가 시작을 전자책과 도서로 했다면, 나는 SKY의 제품으로 시작 할 생각이다. 식품부터 전자제품 같은 것들로.
“그 부분은 진행중에 있어, 어차피 SKY의 제품들을 유통하던 유통망을 사용할 예정이야.”
“아하, 2,3차 유통을 없애서 단가를 낮추려고 하시는군요.”
제법 핵심을 뚫어보았다.
“그것도 맞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있을테니까.”
“SOFT직원들이랑 운영체재 만드느라 바쁘지?”
“흠, 이건 세르게이가 담당하면 될 것 같은데요? 어차피 보스도 우리에게 전담을 맡기는게 아니라, 헤드 관리자를 원하시는 것 같으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확실히 센스가 있는 래리다. 과거 래리는 경영쪽에도 제법 재능을 보였지만, 개발업무로 너무 바빠, 전문 경영인을 고용했었다.
확실히 저런 센스를 가지고 있다면, 개발하는 도중에도 번뜩이는 아이디어들로 바쁠수밖에 없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좋아, 세르게이 어때?”
“보스가 까라면 까야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제법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다.
“구골과 마이튜브, 마이 홈피 등에서 광고를 삽입하고 싶으니까, 알아서 광고 넣을 수 있는 부분 보고서로 올리고, 이제부터 슬슬 구골, 마이튜브, 마이홈피도 수익을 내야지?”
““오!””
셋에게는 희소식이었나보다.
돈만 잡아먹는 ‘하마’라는 인식이 조금씩 생겨나던 찰나였다. 직원들도 많고 매일 바쁘게 움직이지만 딱히 수익을 내고 있지 못해서였다.
“철수야.”
“예, 회장님.”
나는 미리 준비해 왔던 서류를 철수에게 전했다.
“와아···”
“홀리!”
“역시, 보스.”
래리와 세르게이의 반응도 놀라웠다.
“와, 확실히 이런 거라면··· 수익성이 확보는 되겠네요.”
그것은 과거 대한민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마이 홈피의 ‘도토리’시스템과 흡사한 방식의 캐쉬 아이템이었다.
“너무 돈에 미친 기업으로 비치게 하지 말고, 적당히,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상관없게, 그렇게 만들어. 원하면 구입해라, 마이 홈피도 ‘개성’이라는 걸 넣을 수 있게 말이야.”
“예!”
현재 구골은 압도적 1위 야후를 바짝 뒤쫒고 있었다. 명실공히 전 세계 2위의 검색 포털이었다. 그런 검색포털과 함께 연계된 ‘마이 튜브’와 ‘마이 홈피’는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사실 업계라고 부를것도 없는 게, 우리 SKY소프트만 유일하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앞으로 조금씩 많은 SNS들이 등장하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전자결제 시스템부터 만들어야 할게 한 두가지가 아닐꺼야, 난 이왕이면 좀 독자적인 시스템이었으면 좋겠어.”
“오케이 보스, 나만 믿으라고!”
래리에게 세르게이를 부탁한다는 눈빛을 한 번 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정이 있어서, 일어나지.”
“오케이! 보스, 즐거운 데이트 하라고!”
지금쯤 안내인 레이첼을 따라 열심히 구골과 SKY소프트 미국지사를 구경하고 있을 루시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
며칠 뒤 공항 내부.
“아, 우진··· 우린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내게 뾰로통한 표정을 보이며 말하는 루시.
“칫, 어차피 항상 바쁠거면서.”
“우린 젊잖아? 열심히 살아야지, 어차피 루시도 이제 졸업 준비 해야지?”
“나, 졸업하면 한국에 가려고.”
“왜?”
“조금 더 한국적인 패션에 대해서 연구해 볼 생각이야.”
패션에 대한 연구는 핑계고, 어쩐지 목적은 다른 곳에 있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한국적인 패션이라니, 아직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적인 파워를 가진 것이 아니니 루시의 말은 그저 한국에 대한 금칠에 지나지 않았다.
핑계가 귀여우니, 나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에 어쩐지 루시의 얼굴이 밝아진다.
“꼭이야?”
“하하, 알았어 얼른가, 보딩 타임 다 됐어.”
뭐가 그리 아쉬운지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다 이내, 캐리어를 내팽개치고는 내게 달려온다.
쪽!
“넌 내가 찜했어 우진!”
제 마음대로 내 입술을 훔쳐가더니 다시 도도도 달려가 게이트 안으로 사라져버린다. 얼떨결에 이번 삶의 첫키스를 빼앗겼는데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피식 웃으며 뒤돌아서는데 어쩐지 정호석이 매우 흐뭇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우세요?”
“큽, 아닙니다.”
“가시죠, 우리도 그리운 한국으로.”
“하하, 예.”
***
한국에 돌아와 며칠은 쉬고 싶었다.
그러나 언제나 사람일이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나보다.
잠에서 덜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는데, 대통령이었다.
-천회장, 귀국은 잘 하셨소?
감시라도 붙여놨나 싶지만, 전 국민의 출입국 조사는 당연한 일이니 별말 하지 않았다.
“예, 어제 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시간좀 내주시겠소?
“흐음.”
-많이 바쁘시오?
“아닙니다. 어디서 뵐까요?”
-두루치기 좋아하시오?”
“좋죠, 두루치기.”
-잘하는 곳이 있소, 7시로 잡겠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침대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천천히 거실로 내려가니 분주한 주방 빼고는 집안은 조용하기 그지 없다.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아, 아주머니.”
“호호, 마침 아침겸 점심 준비가 끝났는데, 바로 드시겠어요?”
“좋죠?”
주방으로 향하니 봄동과 두릅등. 봄 나물이 정겨운 식탁이 나를 반겼다.
“도련님 좋아하시는 오이냉국도 있어요.”
“오!”
***
찌뿌둥한 몸, 가만히 쉬면 더욱 피로한 법.
체육관에서 신나게 몸을 풀고 사우나까지 즐기니 여독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위 아래로 제대로 빼입은 수트가 아닌 편안한 개량 한복을 입고 대통령이 말했던 두루치기 집으로 향했다.
대포집스러운 분위기의 두루치기 집은 하루의 피로를 잊기에 안성맞춤인 집이었다. 막걸리가 생각나는 집이랄까?
“어서오세요!”
중년 남성의 반가운 인사에 편안한 웃음이 나올 그런 곳이엇다. 가려져 있던 주방 천을 겉어 올리다 날 확인하고는 웃으며 말하는 주인장.
“안쪽에 따로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목소리는 영락없는 정육점 주인 같은데, 눈과 손에서 짙은 피냄새 같은 것이 느껴졌다. 겉보기와 다르게 아마도 이제는 ‘국정원’이 된,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모처인 것 같았다.
하긴, 대통령이 굳이 이곳을 만남의 장소로 선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정호석도 본능적으로 무엇인가를 느꼈는지 뒤를 돌아보며 경호원들에게 뭔가 사인을 보낸다.
주인장이 말한 안쪽으로 걸어가니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낡은 복도가 나오고, 그 길의 끝에 야채를 다듬는 마른 사내가 보였다.
칼을 든 손 그대로 날 올려다본다.
눈빛이 제법 매서운데, 이런것까지 대통령이 계산했나 싶었다. 유치한 기세 싸움이다.
“회장님.”
정호석의 뜻을 읽었기에 슬쩍 벽면에 등을 붙였다. 그러자 내 앞으로 나간 정호석이 사내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칼 치워.”
정호석의 팔 사이, 사내의 반항기 어린 눈빛이 보였다.
빡!
짧은 충격음과 함께, 사내가 풀썩 벽에 머리를 데고는 주르륵 침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다. 발로 슥슥 밀어 사내를 벽 한 쪽으로 바짝 붙여 놓고 앞서 걷는 정호석, 이내 정면에 보이는 다 낡아빠진 문을 열어젖힌다.
방 안에는 김치 두루치기가 맛있게 차려진 상 앞에 앉아 있는 대통령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양 옆에 경호원 둘이 서 있었다.
경호원 중 하나가 정호석의 어깨너머를 살짝 쳐다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실례했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순순히 잘못을 인정한다.
나는 정호석을 지나처 먼저 방 안에 들어가, 앉으란 말 한마디 없었지만 대통령 앞에 방석을 까고 앉았다.
경호원이 나서려는데 대통령이 만류했다.
“되었습니다. 실장님도 나가 계시지요?”
경호실장과 경호원, 정호석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바깥으로 나갔고 삐그덕 거리며 주황색 나무문이 닫혔다.
“불리한 조건을 가져오셨나봅니다. 기세 싸움을 다 거시고요.”
“하하, 천회장의 기세가 하늘을 뚫을 듯 하니, 무리를 좀 해봤습니다.”
“신선했습니다.”
항상 사람좋은 웃음만 짓던 사람이 이런 일도 할 줄 아는구나 하고 신선했다. 노벨 평화상도 받아내는 인물의 새로운 부분을 본 것 같았다.
“뭐, 대충 천 회장도 알고 계신 것 같으니 숨기지 않겠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천 회장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크게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렇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모셨소, 먼저 원하는 것을 얘기해주시겠소?”
“한 잔 하시죠?”
제법 밤이 길어질 것 같았다.
대통령이 따라주는 막걸리를 한잔 쭉 들이켜고, 잘 볶아진 앞다리 살을 한 점 집어먹었다.
“오, 좋은데요?”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미국은 어떠셨습니까?”
“언제나 음식이 입에 안 맞죠, 역시 한국인은 김치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나도 늘 외국에 나갈때 김치가 그립더이다. 듣기론 공화당의 후보자를 만나셨다고?”
“오, 내게 국정원 감시를 붙여놓으셨나요?”
“감시가 아니라 보호였습니다. 천 회장은 우리나라의 중요 인사가 아닙니까?”
반은 감시고, 반은 보호겠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뭐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치고, 당장 미사일 기술을 가져오는 것은 어렵다는 걸 대통령님도 모를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정합니다.”
“우선, 미사일 사거리를 늘려볼 생각입니다.”
대통령의 얼굴에 화색이 돋아난다.
“그것만 가능하다고 해도, 얼마든 대한민국 안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겠죠, 물론 미국 본토까지 닿을 사거리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중국의 끄트머리까지 닿을 정도만 되어도 감지덕지죠.”
“예, 뭐 어쨌든 현재 진행상황은 그렇습니다. 그 사거리를 얻기 위해, 우리는 미국 공화당 후보자에게 제법 많은 자금을 투입해야 할 겁니다.”
이번엔 대답없이 막걸리를 홀짝이는 대통령.
곧 죽어도 대한민국의 곳간을 열지는 않겠다는 태도. 어차피 정부가 비밀리에 움직일 자금이라바야 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대한민국은 내게 금전적인 약속을 할 수 없겠죠?”
“크흠, 미안하게 됐습니다.”
지금 시기가 적절하다고 보았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물론, 나와 할아버지 우리 천가의 입김이 제법 작용하는 의원들이 대거 등용되겠지만, 나는 이왕이면 권력의 꼭대기도 내 사람이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내 사람이 오래도록 그 꼭대기를 유지하길 바랐다.
그렇잖은가, 기껏 내 사람으로 만들어 두었는데 권력의 꼭대기 대통령이 바뀌면 말짱 도루묵.
매 정권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통령이 누구일지, 어디에 줄을 대고 어디에 선을 대어야 할지 고민하는 그런 판때기.
그것보다 애초부터 내가 만들어놓은 판때기 위에서 춤춰주는 사람이, 춤춰주는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동등한 위치에서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계속 그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러니 내 요구사항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첫번째 계단이 될 것이다.
“헌법 한 번 바꿔주시죠?”
대통령이 날 빤히 바라본다.
내 의중이 궁금한 모양.
“무슨 헌법을 말합니까?”
“대통령 단임제말고, 중임제로.”
대통령의 모든 움직임이 덜컥 굳었다.
< 제 8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