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2화. >
잠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록펠러가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허풍이 제법이구만.”
“오, 허풍 같았나요?”
“허풍이 아니다?”
“그럼요.”
“이건 뭐, 점술사도 아니고 말이 돼야지 원··· 그럼 내 카드도 맞출 수 있나?”
“힌트 몇 가지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루시와 정호석이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딜러도 마찬가지, 이내 그것은 록펠러에게까지 전염되며 위스키를 홀짝인 그가 묻는다.
“힌트라면 무엇을 말하나?”
“제가 질문을 3개 하겠습니다.”
“그 질문에 내가 정직하게 대답하면 되는가?”
“네.”
“좋아 맞춰보시게.”
“수리수리 마수리~”
“풉.”
루시와 정호석이 피식 웃고, 딜러가 고개를 돌려 웃음을 참는다. 꼴값 떨고 있다는 느낌으로 날 바라보는 록펠러.
타이트한 핸드로 플레이를 즐기는 록펠러.
분명 5만 달러 레이스를 하며 오픈했었다.
따라서 꽤나 좋은 패라는 힌트를 가지고 있는 상태.
“첫 번째 질문입니다. 두 패의 모양이 같습니까?”
“같네, 스페이드.”
“두 번째 질문입니다. 두 패 중, 숫자 카드가 있습니까?”
“음··· 없네.”
“세 번째 질문입니다. 두 패 모두, A보다 낮은 카드입니까?”
“그렇네···”
난 웃으며 고개를 돌려 루시에게 물었다.
“어때 루시? 록펠러씨의 카드가 무엇일까?”
“음··· 스페이드 잭, 킹? 잭, 퀸? 퀸, 킹?”
“33%의 확률이야 잘 골라 봐!”
“으으··· 퀸, 킹!”
“호석은요?”
“흐음, 잭, 퀸.”
난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아쉽게 두 분 다 틀렸습니다. 정답은 킹, 잭이에요.”
모두가 록펠러가 카드를 오픈하며 말했다.
“맞췄군··· 정말 맞췄어.”
“누구나 힌트가 있다면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 정답을 확신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죠.”
“무슨 말인지 이해했네,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지금 대통령이 누가 될지, 이미 확실하게 분석했다는 얘기가 되겠군··· 지금처럼 거의 점쟁이 수준에 가깝게 말이야.”
“바로 맞추셨습니다.”
“헌데, 세 가지 선택지 중, 자네는 어떻게 정확하게 하나를 골랐는가?”
“다 알려 드리면 재미가 없죠? 그건 비밀입니다.”
사실, 힌트고 뭐고 그딴건 필요가 없다. 미국 역사에 내가 개입을 깊게 한 것도 아니고, 국민들의 정서에 손을 댄 것도 아니니 자연스럽게 전 삶의 미국 대통령이 당선될 것은 뻔하니까.
그냥 그럴듯하게 설득을 시켜본 것뿐이다.
굳이 회귀하지 않더라도, 누가 대통령이 될지 알아맞히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같다. 그들이 하는 공통적인 얘기. 분석을 통해, 민심을 통해 확인했다는 그런 얘기들 말이다.
물론, 아직 정확한 여론 따위를 알 길은 없다. 선거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제 막 한국에는 완연한 봄이 찾아오는 시기니까.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는군··· 직관과 분석으로 미래의 대통령을 맞춘다라···”
“벌써 돈 벌리는 소리가 들리는데요?”
내 농담에 록펠러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알 수 있다면 돈 벌 방법은 무궁무진하겠어.”
“오늘 게임에서 이기신다면, 보너스로 다음 대통령이 누구일지 알려 드리죠.”
“호오, 좋아! 소원권과는 별개일세.”
“네.”
***
테이블의 모든 칩이, 내 앞에 쌓였다.
“도신이야 도신···”
루시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록펠러는 제법 분한 모양인지 표정이 좋지 못하다. 정호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납득한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으니 그럴 테다.
“쯧, 소원은··· 이번에도 킵 해 놓을텐가?”
“네.”
“젠장, 도대체가··· 딜러랑 짜고 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정확하게 죽어야 할 타이밍을 아는겐가?”
“잇츠, 매직~”
“으음··· 한 판 더 하시겠나?”
록펠러 영감. 정말 지기를 싫어하는 사람인가보다.
시차 적응도 하기 전에 카드 게임을 무려 네시간이나 달렸다.
“하하, 대신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알려드리겠습니다. 조건이 하나 있지만요.”
“크음··· 조건?”
“예, 분명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말씀드리면, 그와 접촉 하시겠죠?”
“당연하지, 눈앞에 황금을 발로 차는 멍청한 위인은 없을 테니까.”
“그때 함께 그 자리에 동행하시죠?”
“하하하, 이거 완전히 졌군··· 알겠네.”
“부쉬, 부쉬가 될 겁니다.”
뒤돌아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호석이 물었다.
“회장님.”
“네.”
“록펠러씨의 카드 어떻게 맞추신겁니까?”
한마디도 없이 방까지 5분여를 걸어오더니,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스페이드 퀸을 하나 들고 있었거든요.”
“아아! 그런!”
“운이 좋죠?”
***
부쉬가 대통령이 될 거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침실로 돌아간 우진. 그리고 허탈한 표정을 짓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루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할아버지, 왜 완전히 졌다는 거예요?”
록펠러가 쓰게 웃으며 시가를 입에 물었다.
“승자의 관용을 베풀었거든.”
“우진이요?”
“그래,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부쉬와 만날 능력이 우진에게는 있단다. 승패에 승복하지 못하고 다시 한 판 하자고 질척거리는 이 노인네를 우진은 넓은 마음으로 관용을 베풀어주는구나.”
루시가 ‘아아!’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신사적인 거절이네요.”
“그렇지··· 그리고 그 안에는 나를 신사답지 못하다 꾸짖는 것도 포함된단다. 그러니 이 할애비가 저 SKY의 오너에게 완전히 당한 것이지.”
마냥 뿌듯해 보이는 루시의 표정에 록펠러의 웃음은 더 씁쓸하게 변했다.
판때기에서 잃은 천만 달러보다.
승부를 거절하는 것 보다.
루시의 마음을 가져간 것이 더욱 부럽고 괘씸하게 느껴지는 록펠러였다.
“정말 완전히 졌구나.”
“네?”
“되었다··· 그런 게 있어.”
아마도, 이 세상의 모든 할아버지는 다 똑같지 않을까? 금지옥엽 손녀딸에게 할아버지가 최우선이길 말이다.
***
다음날.
워싱턴의 유명한 거리에 나왔다.
루시나 록펠러와 함께가 아닌, 나와 정호석 그리고 나의 경호를 책임지는 경호원들과 함께.
이유는 별것 아니다.
이곳에 만날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저기, 열심히 맥 앤 치즈를 음미하고 있는 인물.
찰리 박이었다.
“그 사이 살이 좀 오르셨어요?”
“아하하, 회장님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정통 미국식을 먹으니까 기름이 좀 꼈습니다.”
피식 웃으며 맞은 편에 앉았다.
파리가 날리던 노천 브런치 카페인데, 나의 입장으로 인해 한순간에 인산인해가 되었다.
“나도 같은 거로 시켜주세요, 출출하네요 직원들도 여기서 점심 하는 거로 하죠?”
“예, 회장님.”
정호석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누군가에게 지시하는 사이, 찰리 박에게 물었다.
“어떻게 좀, 내 입맛에 맞는 회사들이 있습니까?”
“널렸습니다.”
픽 웃어버렸다.
“법적인 문제는 어떻습니까?”
“강기태 본부장이 SKY인베스트먼트를 워낙 잘 돌려놔서 아무런 하자가 없었습니다. 세금 문제에서도 깔끔하고요.”
“그렇습니까?”
“예, 미국 어느 주를 가던 아주 열렬히 환영할 겁니다. 성실 고액 세납자니까요.”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구구절절 옳은 말.
“좋습니다. 택배라는 개념은 아시죠?”
“예, 한국은 아마 92년도가 최초의 정식 택배업체가 생겼을 때죠?”
역시 기업사냥꾼답게, 기업들에 대한 상식이 풍부한 찰리 박.
“뭐 그런 자세한 건 잘 모르겠고요 제가 원하는 것은 유통망 구축입니다.”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최종목표는 전 세계 어디서나 2영업일 안에 주문한 물건을 받는 것입니다.”
찰리 박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러니까요, 획기적이지 않습니까?”
“분명 그렇긴 합니다만··· 와, 저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고개를 젓는 그.
덕분에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은 대화가 이어질 것 같았다.
“자,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예.”
“마트의 개념은 알고 계시죠?”
“예, 대형마트 같은 곳은 많은 재고와 다양한 종류를 도매로 가져와 소매로 판매하죠.”
“그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좀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도매로 물건을 떼와 소매로 파는 것이 아닌, 판매자가 물품을 인계하고, 해당 물품을 ‘위탁 판매’해주는 것입니다. 배송까지요.”
찰리 박이 여전히 잘 와닿지 않아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판매자, 구매자 모두에게서 돈을 받을 겁니다. 전 세계 어디서나 2영업일 안에 말이죠.”
곰곰이 생각에 잠긴 찰리 박.
“그럼 지역마다 굉장히 넓은 지부의 창고가 필요하겠고··· 배송 차량들과 배송 시스템도 필요하겠군요, 이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파급력만큼은 대단할 것 같습니다.”
“당장 2영업일 안에 고객에게 배달한다는 것은 무리겠죠, 하지만 천천히 그 간극을 좁혀가면 됩니다.”
“회장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창고를 가지고 있는 유통회사 등을 사들이면 되는 것이겠네요, 이왕이면 유통망을 가지고 있는.”
“맞습니다. 미국은 땅덩이가 넓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도시만큼 물건을 사기 어렵죠. 그리고 우린, 무엇이든 판매 할 겁니다.”
대화하는 사이 맥 앤 치즈와 엄청난 사이즈의 스테이크 등, 딱 봐도 미국스러운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세팅 되기 시작했다.
찰리 박은 내가 말한 사업에 의문이 많은 모양이지만 굳이 묻지는 않는다. 만류하지도 않는다.
곁에서 내가 성공하는 과정을 보고 있기 때문에 본인은 모르는 무엇인가를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할 터.
“판매는 인터넷으로 할 겁니다.”
친절하게 힌트를 주었다.
“아아!”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 찰리 박.
“의류, 식품, 가구, 전자제품 팔 수 있는 물건은 무궁무진하죠.”
“그렇습니다···”
“SKY에서 출시하는 모든 제품을 매장이 아닌 인터넷으로 살 수 있다면, 메리트 있을까요?”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회장님. 정말 미친 아이디어군요. SKY제품으로 초기 고객을 끌어오고, 그 고객들에게 인터넷 구매를 각인시킨다··· 정말 이건 상상도 못 했습니다.”
“모든 것은 천천히 스며들 듯 진행되어야 하는 겁니다. 어느 순간 익숙해 있고, 없으면 허전하고 불편해지는, 그런 것이 오래 살아남고 오래도록 가치를 유지하는 법이죠.”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는 찰리 박.
“회장님의 뜻, 잘 알겠습니다. 만족하실만한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
지금 시기가 딱 적당하다.
그 유명한 아마존이 크기 전, 구골이 성장하고 있는 현재.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지금 시기에 먼저 선점해 놓아야 했다.
점진적 증가, 친숙한 이미지, 업계 선두, 점유율 증가.
모든 기업이 반드시 손에 넣고 싶어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적당한 시기가 있고, 난 그 시기를 지금으로 봤다. 유통망을 만들어 놓고 이용하는 고객들이 증가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우리 SKY가 운영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경쟁업체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우리 SKY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 할 수 있는 루트가 생기는 것이다. 중간 단계의 마진따위를 떼일 일 없이. 또, 여러 경쟁업체들은 가지지 못한 판매루트를 가지고 있다면 필수적으로 그들은 우리에게 ‘위탁’할 수 밖에 없을테다.
한 마디로.
이세상 모든 기술은 SKY를 거쳐가길 바란다는 뜻이었다.
미국을 시장으로 동남아, 유럽까지 뻗어 나가야 한다. 미국에서 성공한다면 넉넉한 자금을 통해 다른 나라는 더욱 쉽게 진입할 수 있을 테다.
“총알은 넉넉하죠?”
“그럼요, 요즘 강기태 본부장이 제법 쏠쏠하게 벌어오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아무리 미국에 익숙하다고 해도, 꼭 경호원들과 함께 다니세요 찰리는 내게 중요한 인재니까.”
“감사합니다.”
맥 앤 치즈.
찰리 박이 칭찬한 것 처럼 훌륭한 맛이었다. 혀는 오롯이 느끼하고 고소한 치즈를 느끼며 머리로는 생각한다.
전 세계는 어느순간, ‘비대면’시장 의존도가 높아진다. 여러 위험요소를 배제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령, 염병할 코로나 19와 같은 바이러스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돈이 있고 여유가 있는 지금, 그 비대면 시장을 미리 선점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
3월 14일.
록펠러와 루시, 나와 정호석이 엔틱한 소파위에 앉아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가벼운 대화를 하는 와중에 록펠러가 TV를 쳐다보다 내게 물었다.
“민주당에서는 누가 되겠는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누가 되든 대통령은 못 될 텐데요?”
“그래도 궁금하니 묻는 걸세.”
“알 구어.”
“그렇군···”
록펠러가는 대대로 석유왕의 후손이라 불린다.
물론 너무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기 때문에 금력의 무서움을 경계한 정계와 재계의 견제로 인해 결국 스탠다드 오일이란 회사는 30개가 넘는 회사로 분해 되었지만, 아직도 그 힘은 무시할 수 없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루시의 할아버지는 록펠러 3세다. 1915년에 태어나 스탠다드 오일이 해체되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정권의 무서움을 기억하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남다른 교육을 받았을지 터.
그러니 자연스럽게 정권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다음 대통령이 누구인가 하는 것 등에는 특히 더욱 더.
지금은 그저 자선사업가처럼 좋은 일에 돈을 쓰고, 금융업, 투자 등을 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록펠러 가문도 다시 비상을 꿈꾸고 있을지도 몰랐다. 사실 뭐, 비상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는 충분하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하!”
조용히 TV를 보던 그가 탄성을 질렀다.
힐끗 TV를 보니 민주당 대선 후보 알 구어가 사실상 당내 경선 승리라는 짤막한 뉴스가 지나간다.
날 한번 바라본 록펠러가 손을 뻗어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전화기를 들어 올린다.
“부쉬 후보 일정 좀 알아봐. 최대한 빠른 날로 약속 잡아,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얘기하고.”
미국의 대통령이 될, 부쉬와의 만남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 제 8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