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81화 (81/458)

< 제 81화. >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

내실을 제대로 다진다고 했던 그 말.

그것엔 당연히 국방력도 포함된다. 대한민국의 국방력이 아니라, 정확히는 SKY항공우주기술의 무기 기술이 높아지는 것이 내가 바라는 내실 다지기다.

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국방력도 오를 테지만.

대통령의 요구는 홍보비치고는 매우 비싸지만, 대한민국에 얻어낼 게 있다면 들어주지 못할 부탁도 아니다. 물론, 내가 ‘알겠습니다.’한다고 해서 바로 미국이 SKY항공우주기술에 미사일 생산을 요구하는 드라마틱한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님 홍보 값이 비싸네요?”

내 핀잔에 대통령이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하하··· 이거 나라의 대통령씩이나 돼서 면목 없습니다.”

“부탁을 들어드리면, 내게 오는 보상은요?”

“······”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준비해 온 것이 없는 모양.

“대통령님.”

“예, 천 회장.”

“요즘 SKY의 이미지, 그리고 대한종합금융 그룹의 이미지가 참 좋아요 그렇죠?”

마침 잘 되었다는 듯, 정말 뿌듯한 표정을 하고는 말을 잇는 대통령.

“하하, 그렇습니다. 국위선양 기업! 국민들을 먼저 생각해주는 기업! 해외시장보다 적은 내수시장에도 최선을 다하는 기업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그럼요! 해외에서도 대단한 애국 기업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지 않습니까? 이런 기업이 우리 대한민국의 1등 기업, 1등 은행이라니 하하하 내가 다 뿌듯합니다.”

맞다.

명실공히 확고부동.

SKY그룹은 재계서열 1위이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철옹성이다 그 어떠한 적대적 M&A라도 우습게 이겨낼 힘이 있다.

대부분의 계열사 지분 60% 이상을 SKY인베스트먼트가 가지고 있었고, 비상장 계열사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리고 SKY인베스트먼트의 최대 주주는 다름 아닌 ‘나’다. 총 95%의 지분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

아직은 삼현을 완전하게 흡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놓는 전문가들이 꽤 많지만, 그들도 결국은 SKY라면 무난하고 완벽하게 흡수하고 삼현의 D램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며 SKY의 다른 계열사들과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대한종합금융그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조사에서 84%가 넘는 사람들이 ‘신뢰한다’라고 말했다.

그것이 사실적인 통계라는 걸 증명해주는 증거도 있다. 대한 은행은 무려 62%에 달하는 예금자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1등 은행이 맞았다.

발을 넓혀 증권사와 카드사까지, 어마어마한 현금 유동량을 자랑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요 대통령님. 우리 ‘천가’의 이미지가 너무 좋아요?”

“허허,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자꾸만 사람들이 실수를 해요.”

“어떤 실수를···”

“우리가 호구인 줄 알아요.”

“크음···”

“미사일 기술이 무슨 달고나 뽑기 기술도 아니고 아무한테나 알려주는 거랍니까? SKY항공우주기술의 미사일 생산시설을 미국놈들이 신뢰하는 것도 아닌데, 덜컥 우리한테 생산 물량을 의뢰할 일도 없을 거고요.”

대통령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실수를 했구려.”

“예, 홍보비는 어떻게 돌려드릴까요?”

“하하, 아닙니다. 정말 좋아서 예약한 거지 다른 마음이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요? 대신 첫차는 반드시, 대통령님께 보내겠습니다.”

“하하하, 고맙습니다.”

애써서 웃고 있지만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하리라는 걸 모른다면 사업가, 경영가의 자질을 의심해봐야 한다. 애초에 뭉게뭉게 피워오르는 저 노란색 연기부터, 그의 심기가 어지럽다는 방증이리라.

“장사치에게 공짜로 물건을 내놓으라 했으니··· 하! 내가 마음이 아주 급해 실수를 했소이다.”

굳이 장사치라 얘기하며 자신의 심기가 불편함을 드러낸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꼭대기들은 강한 정부의 힘을 믿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무서운 것, 가장 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존재가 ‘국민’임을 모르는 눈치다.

‘장사치’라는 말에는 ‘내가 이 나라 대통령이다.’하는 자의식이 분명 포함되었을 테다.

“장사치치고는 내.가. 덩치가 좀 크죠?”

난 어느 순간부터 할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제가’, ‘저희’ 따위의 겸손을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굳이 강조하며 표현해 주었다.

표정이 좋지 못한 대통령에게 말했다.

“우리 드라이하게 갑시다 대통령님, 기브 앤 테이크.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결국, 대통령도 백기를 들었다.

“후우, 좋소··· 내 실무진들과 상의를 좀 해보리다. 과연 무엇을 주어야 천 회장이 만족할지. 혹, 원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흐음, 글쎄요··· 우리도 나름대로 회의를 좀 해보겠습니다. 정부가 도와줄 것이 있는가.”

“근 시일 내 연락하겠소.”

“예, 들어가세요.”

대통령이 사라지자 곁으로 정호석이 다가왔다.

“대통령에게 바라는 게 있으십니까?”

어깨를 으쓱였다.

바라는 게 전혀 없었다. 뭐 얻어낼 껀덕지도 없었다. 나라를 달라고 한들 주겠는가. 뭐, 내게 줄 것은 저들이 알아서 보따리를 싸매고 올 테니 그때 구경이나 해보기로 하고.

“그나저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참··· 자신들이 꼭대기란 생각을 버리지 못하네요?”

“쯧···”

정호석이 혀를 차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 삶까지 비추어 봐도.

대통령들이나 정치인들이 마음에 들던 순간이 없었다. 어쩐지 이번 삶에는, 내 마음에 드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국회와 청와대를 장악했으면 하는 바람이 떠올랐다.

내 표정에서 뭔가 흥미를 느꼈을까?

“흠, 표정이 뭔가 재미있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는 대표님이야말로 즐거운 표정이신데요?”

“하하하, 회장님이 그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나라가 들썩이니까요.”

충분히 그의 말이 이해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침 대표님이랑 대화하다 보니, 대통령에게 요구할 것이 생각나네요.”

“호오, 무엇입니까? 에이, 알면 재미없잖아요?”

피식 웃은 정호석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예, 대통령한테 내가 원하는 걸 요구하려면 먼저 그가 원하는 걸 만들어줘야겠죠? 출장 일정 잡혔죠?”

“예, 회장님. 익일 오전 10시 비행기입니다.”

“좋네요, 알겠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굳이 대통령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SKY항공우주기술은 발전해야 하고, 차별화된 기술력을 보유해야 한다. 나는 그 어떤 국가, 그 어떤 단체, 그 어떤 기업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철옹성 SKY를 원하기 때문이다.

***

록펠러가의 금지옥엽, 루시가 친절하게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오, 루시!”

“우진!”

도도도 달려와 내게 풀썩 안긴다.

보통의 뺨 키스는, 뺨을 맞대고 입으로 ‘쪽’소리를 내는 정도였는데, 어쩐지 루시는 진짜 입술을 디밀고 앉았다.

“워워, 루시 저기 너희 할아버지가 날 죽일 듯 쳐다보고 계신다고.”

“호호호, 그래서 이러는 거야.”

“뭐?”

“우진이 너무 내게 무심한 것 같아서, 한번 크게 당해보라고!”

루시의 농담에 등을 토닥이며 록펠러의 수장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루시와 제법 친해진 모양이야.”

“예, 어쩌다 보니.”

“젊음이 좋지, 가지 차를 준비했네.”

“좋죠.”

작년.

루시가 한국에 머물렀던 약 한 달간의 추억 얘기에 골이 울릴 만큼 널따란 리무진 내부는 시끄러웠다.

호석은 연신 루시의 말에 다양한 리액션을 보여주며 웃고 있었고, 루시의 할아버지는 창밖을 보며 관심 없는 척하지만 중간중간 ‘흠’, ‘큼’과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퍽 유쾌해 당연히 내 표정도 부드럽게 변했다.

역시 미국이란 말이 어울리도록.

넓은 땅덩어리는 한참을 달리고 나서야 록펠러 가의 저택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정문을 통과해 차로 5분을 달리고 나서야 집이 나온다니 미친 크기를 자랑한다.

집사라고 해야 할까? 어쩐지 이름이 알프래도일 것 같은 차림새를 하고 나타난 50대의 중년이 호석에게 말했다.

“경호 책임자입니까?”

“예.”

“경호원들의 숙소와 근무 일정에 대해서 논의가 필요해 보이는군요.”

정호석이 뒤로 손짓하자 검은 안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인물이 다가왔다.

“이놈은 빅 팟이라고, 나 다음 책임자입니다. 이놈과 상의하시죠.”

“알겠습니다.”

고개를 돌려 록펠러 영감에게 감사를 표했다.

“직원들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하하, 보다시피 방이 많으니, 별일 아닐세.”

확실히 방이 많아 보이긴 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별관의 입구였다. 눈앞에 보이는 이 호텔 같은 별관이 여러 채 보였다. 도무지 얼마나 큰 집에서 생활을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자네와 자네의 경호팀장 숙소는 본관에 준비되었네, 여기는 직원들 숙소야.”

“아, 그렇군요.”

“자네 직원들만 이 건물을 통째로 쓸 테니 직원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아.”

대단한 서비스다.

“하, 한국에서 루시를 대접했던 내가 너무 초라해지는데요?”

내 말에 루시가 팔을 툭 치며 말했다.

“난 그게 더 좋았어, 이 집은 쓸데없이 너무 넓다고 우진. 아아! 아산댁 언니가 만들어주던 김치찌개가 그리워.”

어느새 아산댁 아주머니가 ‘언니’가 되어 있었다.

무슨 개 족보인가 싶지만, 굳이 루시의 추억을 방해하진 않았다.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식사 시간이 되었다.

루시가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것이라 하니, 기대되었다. 호석과 함께 미리 준비해 온 선물을 챙겨 다이닝 룸으로 향했다.

나는 편안한 개량한복을 입었다.

할아버지가 즐겨 입으시는 복장인데, 솔직히 난 세련된 디자인이라 느꼈다. 안으로 들어가니 록펠러 영감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루시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편안한 개량한복을 입고 온 나와 호석은 조금 민망했다.

“오, 특이한 복장이군 전통복장인가?”

“아, 전통복장을 조금 더 현대적으로, 또 실용적으로 개량한 의상입니다. 통기성이 우수해 집안에서 입기 좋습니다.”

“그렇구만.”

가사도우미에게 가져온 선물 캐리어를 하나씩 전달했다. 핑크색 캐리어는 루시 것이고, 검은색 캐리어는 록펠러의 것이었다.

“와아!”

루시가 벚꽃색의 개량한복을 꺼내어 이리저리 살펴본다.

“색깔이 정말 예뻐요!”

나와 할아버지가 자주 입는 한복도 그렇지만, 지금 루시가 들고 있는 저 한복도 매우 비싼 개량한복이다. 기성복이라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무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이너와 명인이 손수 제작하는 물건이다.

“안감까지 와 정말 부드럽다··· 명품이군요?”

내심 록펠러도 기분이 좋은 모양.

“설마 이건!”

루시가 꺼내 든 것은 진공 팩에 잘 포장된 김치들이었다.

“알럽 킴치!”

“오, 이것이 루시가 노래를 부르던 그것인가?”

“네, 드셔보시면 맛이 훌륭합니다. 참고로 그것도 명인이 손수 만든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돈이야 나도 썩어지게 많지만, 록펠러는 더 할 터.

그러니 금전적으로 대단한 선물보다는 ‘정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네 마음이 느껴지는 선물들이군··· 지난번 내가 보냈던 샴페인 따위와는 전혀 달라.”

“하하 아닙니다. 그 샴페인도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잖아요?”

“무슨, 자네 정도 재력이면 얼마든 마음만 먹는다면 구할 테지. 고맙네, 자네의 마음에 언젠가 꼭 보답하겠네.”

“예.”

***

식사가 끝나고 가볍게 홀덤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쉬고 싶지만 꼭 다시 한번 승부를 보고 싶어 하는 록펠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촤락, 촤라락.

칩을 만지며 딜러의 손에 집중하는 찰나, 록펠러의 질문이 날아왔다.

“그래, 이번 미국 방문은 어떤 이유인가? 단순한 관광은 당연히 아닐 테고.”

뭔가 원하는 대답이 있는 눈치였다.

“사업가답게 사업하러 왔습니다.”

“하하하, 자네의 그때 대답이 떠오르는 말이군, 레이스 1만.”

첫판부터 베팅이 세게 나온다. 100만달러 바이인으로 시작했는데 1만 달러를 던진다.

“콜, 지난번 홀덤 승부에서 얻어낸 ‘소원권’ 아직 쓰고 있지 않다는 걸 기억하고 계시겠죠?”

딜러가 플랍을 오픈하고, 록펠러가 자신의 카드를 다시 확인하며 말했다.

“물론이지, 언제든 기다리고 있었어··· 영 소원을 늦게 빌어서 아쉽지만 말이야.”

딜러가 손을 뻗어 내가 베팅 여부를 결정하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오늘 승부에도 소원권이 걸렸나요?”

록펠러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텍사스 홀덤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내 도전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모양.

“바이인을 늘리기로 하지?”

슬쩍 루시를 쳐다보았다.

루시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뭐야 우진! 나도 그 정도 돈은 있다고! 그리고 나도 그 소원권 꼭 갖고 싶어, 우진에게 얻어낼 게 있거든.”

오늘 게임에서도 내가 이긴다면, 오뉴월에 서리라도 내리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난 고개를 끄덕이며 록펠러에게 물었다.

“얼마로요?”

“천만. 이런 큰 것이 걸린 경기에는 딥스택이 필요한 법이지.”

“좋습니다. 현찰은 없으니 외상으로 해주시죠?”

“하하하, 그래야지 고작 천만달러가 없을리가 없으니.”

“좋습니다. 그럼 올인.”

첫 게임에 100만달러를 올인하니 루시는 바로 죽었다. 록펠러가 눈썹을 꿈틀거린다. 고작 첫 게임이니 내 카드가 무엇인지 예측은 불가능하고, 플랍과 자신의 카드를 비교한다.

“오늘 밤은 길 테니 내가 포기하지.”

첫판은 나의 승리, 겨우 1만 달러가 조금 넘는 돈을 가져왔지만, 그것보다는 이 홀덤 게임의 기세를 가져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내 카드를 딜러에게 던져주며 실수인 척 카드를 오픈했다.

“으음!”

“우진! 8,2 오프수딧? 오 마이갓! 나이스 블러핑.”

심호흡 한 번과 위스키 한 모금으로 멘탈을 수습한 록펠러가 카드를 확인하며 물었다.

“그래, 어떤 사업 때문에 왔는가?”

“총 두가지 사업때문에 왔습니다.”

“두 가지라··· 바쁘겠군.”

“때에 따라서는 그렇겠죠.”

“레이스, 5만.”

“콜.”

다시 새로운 카드들이 플랍에 깔리고.

“이번 대선에 누가 될 것 같은가?”

미국의 본격적인 대선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알려드려요?”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한 날 록펠러가 빤히 쳐다본다. 마치 난 누가 될 줄 알고 있다는 뉘앙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일순간 딜러도, 루시도, 그리고 정호석도 약간의 동요를 보인다.

“확실한가?”

록펠러의 진중한 질문에 자신 있게 말했다.

“확실하지 않으면 베팅을 하지 말라는 도박판에 격언이 있죠.”

< 제 8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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