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7화. >
서울 외곽의 반지하 방.
쿵쿵쿵.
거칠게 철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잠에서 막 깬 듯한 김소희가 문을 열었다.
“뭐예··· 실장님?”
남종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건의 저택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김소희를 내려다보았다.
“혼자 사나?”
“네, 네···”
“부모님은 지방에 계시고?”
“네···”
“차나 한 잔 주지.”
“네? 아··· 네.”
김소희는 잠옷 차림이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하늘같이 높아 보이는 남종현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싸구려 믹스커피를 색 바랜 자기 컵에 내오니 남종현이 입을 열었다.
“그날, 뭘 봤지?”
“······”
“그냥 말해, 돌아오는 설에는 집에 가야지?”
“아··· 큰 아가씨께서 집무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큰아가씨가 입을 다물라고만 하셨어요.”
“큰아가씨가 어디 간 줄은 알고?”
고개를 젓는 그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남종현이 돌연 입도 대지 않은 컵을 싱크대 쪽으로 가져갔다.
“아, 제가 치울게요 실장님.”
조용히 컵을 내려놓은 남종현이 벽을 쿵쿵 두들겨보기 시작했다.
“여기 방음은 잘 되나?”
“네? 아, 오래된 건물이라 그렇게 잘 되지는 않아요, 다행히 옆집이 엊그제 이사를 나가서 윗집 아이가 뛰는 것 빼고는 지낼 만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남종현이 품에서 검은색 가죽장갑을 끼기 시작했다. 어쩐지 섬찟한 김소희는 서둘러 휴대폰을 찾았다.
“아! 잠시만요 실장님 보여드릴 게 있었네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신의 침실로 향한 김소희가 문을 닫고 문을 잠갔다. 막 휴대폰을 들어 올리는 찰나 바깥에서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짧은 고민이 스쳐 가고, 김소희는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현관문 앞에는 이건이 서 있었다.
김소희는 저도 모르게 교육받은 대로 황급히 문을 열고 양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은 뒤 시선을 발로 옮겼다.
“장부는?”
이건의 질문에 남종현이 고개를 저었다. 곧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찌푸린 이건.
“아는 대로 말하거라··· 본 것 들은 것, 하나의 거짓 없이 세세하게.”
“저,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회장님··· 장부라니요?”
“네게 긴 밤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어서 말해! 희윤이 그것이 혼자 저질렀다고? 네년이 도왔을 게 아니냐! 장부, 장부 어디 있어!”
광기에 젖은 이건의 음성에 두려움에 떨며 고개만 젓는 김소희.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희윤의 서릿발 날리는 경고에 의해 그 길로 바로 휴가를 받고 이렇게 집에서 ‘집순이’처럼 가만히 있지 않았는가.
행여나 자신이 바깥을 들락이는 것조차 이희윤의 심기를 어지럽힐까 조심, 또 조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정말··· 정말 모른다고요!”
버럭 소리를 질러버린 김소희.
남종현이 치타처럼 김소희에게 달려들었다.
“꺄···”
비명을 끝까지 지르지도 못한 김소희는 자신의 침실로 끌려갔고, 이건은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침실 문이 닫히자, 반지하 방 거실 창 위로 검게 드리웠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달빛이 거실을 비춘다.
쿵, 쿵.
침실 쪽 벽이 흔들리고 그에 맞춰 TV가 작게 진동하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아는 이가 없었다.
***
[SKY 욕하지 마라! 매년 수천억 규모 기부!]
[바른 기업 SKY, 소년소녀가장 돕기에 앞장선다.]
[누가 SKY를 욕하는가! 반전된 여론, 국회에 불어닥친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
[국회 이대로 좋은가! 돈 받고 선량한 기업 불량기업으로 매도!]
[서민 살리기에 진심인 기업 SKY]
[서민의, 서민을 위한, 서민에 의한 금융그룹 대한종합금융그룹! SKY와 함께 새로운 세상 만들어가요]
“쯧쯧쯧, 우리 그룹 기사는 하나밖에 없구나.”
할아버지의 투정에 피식 웃어버렸다.
활활 불타오른 것만큼,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여론몰이 판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어 오히려 역효과로 SKY와 대한종합금융 그룹의 이미지가 미친 듯이 치솟고 있었다.
“네 놈이 노리던 결과 그대로 되었구나.”
“예, 며칠 고생한 거로 괜찮은 보상도 얻었고요.”
고개를 끄덕이는 할아버지.
그도 그럴 것이 전경련에서 내게 사과의 의미로 전달한 자산이 결코 적지 않다. 현금만 3000억원에 달하고 부동산을 비롯한 각종 협력 계약까지 더한다면 약 2조원의 가치를 지녔다고 확신한다.
“특검에 의찬이 놈이 갔다고?”
“예, 타타다우 일을 잘 처리해서 차장검사가 되었더라고요?”
희대의 사기꾼이라 명명된 타타다우의 총수 김유중. 그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정의찬 검사는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거기에 어쩌다 보니 날 어렵게 생각하는 대통령까지 그를 주시하니, 그의 승진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아직 검찰에 제대로 된 빨대가 없었다. 오직 정의찬 검사 하나밖에 나는 알지 못했다. 곧, 천가 키즈가 두각을 드러내며 사법시험을 통과하기 시작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2년은 지난 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젊은 놈이 출세했구나.”
“정의찬 검사라면 믿을 만하니까 알아서 하겠죠.”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쯧 하고 혀를 차더니 말했다.
“이놈··· 그게 끝이 아니구나.”
“하하하, 티 났어요?”
티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같은 핏줄이라 그럴까? 할아버지는 내 생각을 꿰뚫어 본다.
맞다. 고작 그렇게 끝낼 생각은 없었다.
법의 심판대 앞에 입법부의 황제처럼 군림하던 놈들이 순순히 설 리 없으며, 온전한 죗값을 받을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아니 국개의원 놈들은 절대로 그런 놈들이 아니었다. 마치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썩어 문드러진 속이 나오는 법이었다.
“적어도 10년은 깨끗하겠구나, 이 대한민국이.”
“너무 적게 잡으신 것 아니에요?”
“부정부패, 정경유착, 검경유착 같은 것은 이 땅의 오래전 과거부터 항상 있어왔지, 그 뿌리를 뽑는 것이 쉬운 일이더냐? 10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두어 번 변할 시간이다··· 그 정도만 되어도 대단한 일이지.”
내 생각은 좀 달랐지만, 굳이 할아버지 말에 토 달지 않았다. 느껴온 세월과 살아온 경험으로 말하는데 굳이 대꾸하여 반발할 이유가 없었다. 미래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법 아니겠는가?
물론, 난 예외로 두자.
내가 굳이 배지만 빼앗아도 될 일을 키우는 이유, 검찰과 마찬가지로 나는 정계에도 내 사람들을 심고 싶었다. 언제나 인간이란 동물은 불완전하다.
이건도 그런 국개의원 놈들을 컨트롤하기 위해 굳이 양날의 검과 같은 비디오테이프와 녹음기, 뇌물 장부 같은 것들을 꽉 틀어쥐고 있지 않았는가.
국회에도 굳건한 나의 편 여럿이 생긴다면 앞으로 일 처리는 두말할 필요 없이 쉬울 터. 먼저 그러기 위해서는 ‘빈자리’가 생겨야 하지 않겠는가?
“김장원이가 바쁘겠구나.”
“일해야 먹고 살죠.”
피식 웃은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오냐, 나도 내일부터는 바지런히 일해야 하니, 자야겠구나.”
“예, 쉬세요~”
“조심히 다녀오너라.”
“옙!”
***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세상에 늘 한 발 걸치고 사는 이들이 있다. 많은 이들이 그런 사람들은 ‘서민’이거나 ‘범죄자’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주먹으로 먼저 해결하고, 추후에 문제를 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즐기는 집단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법을 만드는 입법부를 떡 주무르듯 주무를 수 있는 기득권이다.
그리고 난 감히.
대한민국 주먹의 꼭대기에는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오늘 일을 계기로 그것을 기득권들에게 확신하게 각인시킬 생각이다.
감히 SKY를 건드리려 한다면, 누가 되었든 박살 난다는 것, 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가진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를, 심지어 목숨까지 걸라는 경고다.
“흐으··· 흐으···”
“스스, 스스스···”
인천의 물류창고가 오늘따라 북새통이다.
여태껏 없었던 일이라고 자부한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이곳에 발을 들인 것은 처음이니까.
“몇 명이에요?”
내 질문에 김장원이 ‘흐흐’하고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지도 10명부터는 안 세부렀습니다.”
정호석이 김장원을 째려보다 말했다.
“총 17명입니다.”
“다 공항이나 항구에서 잡혔나요?”
“예, 그렇습니다. 지금도 지방 항구에서 잡혀 올라오고 있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많기도 해라···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너무 많아야 그렇죠?”
정호석과 김장원이 쓰게 웃는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부정부패를 일삼던 국개의원들. 모두가 하나같이 비리장부가 들통나니 해외로 튀려고 했던 놈들이다. 전혀 반성의 기미 따위는 보이지 않는 그런 놈들이다.
“이놈들 마음먹고 튀었으면 잡을 수 있었을까요?”
정호석이 고개를 젓는다.
아직 일제 친일파 놈들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놈들을 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역시나인 모양이다.
“놓친 놈들 있습니까?”
김장원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흐흐, 그럴 리가요.”
“즐거우세요?”
어이가 없어 물은 질문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아따, 지가 저 썩어질 국회의원 넘들한티 하두 당한 것이 많아가지고요, 아주 이가 갈려붑니다. 저치들 중에 제법 아는 놈도 몇 놈 보이네요.”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중에 국회의원에게 당하지 않은 인물 누가 있으랴. 사소한 거짓말부터 시작해서 자존감을 피폐하게 만드는 갑질까지.
제 놈들 만의 계급을 만들어 비뚤어진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었다.
“그나저나··· 순식간에 저 빼찌들 수십명 사라져불믄, 감당될런가 그거시 걱정이네요잉.”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도망가는 놈들이 동네방네 ‘나 도망간다! 야반도주해!’하고 소문내고 돌아다녔을 리 없다. 몇몇 눈치 빠른 사람들은 대충 알고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행적을 세세히 알 수는 없는 법.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면 ‘죽었다’ 혹은 ‘살해당했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잠수 탔구나’하고 생각할 테니까.
“책임 소재는 내가 감당하는 거고, 우리 사장님은 걱정 말고 편하게 일하세요.”
제법 신뢰받고 있기 때문인지, 김장원이 흐뭇한 표정으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놈들 싹 다 고기 밥으로 주세요, 오늘 물고기들 포식하겠네. 아! 적당히 사진 좀 찍어서 아직 도망 안 간 놈들한테 순순히 ‘자백’하라고 메시지도 보내시고요.”
““예! 회장님.””
직원들이 일하는데 방해되지 않게 뒤쪽으로 살짝 물러나 곁에 붙은 정호석에게 물었다.
“아, 이놈들 현금 많이 챙겼죠?”
“예, 총액 329억입니다. 올라오는 놈들까지 합치면 더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직원들 몇 명이나 동원되었습니까?”
“총원 400명입니다.”
“내 사재까지 끌어당겨 415억 맞추시고, 두당 1억씩 챙겨주세요, 김장원 사장은 15억 챙겨주고.”
내 말이 들렸을까? 어쩐지 설렁설렁 일하던 김장원이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역시 돈은 사람을 움직이는 어떠한 마력이 있다.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챙겨주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내게 400억 정도가 큰돈도 아니니까.
피식 웃으며 뒤쪽에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정호석이 내가 기다리기 심심할까 시가를 건넨다.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말들이 많던데, 국회의원 놈들이 사라지면 정말 나라가 발칵 뒤집히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씁쓸하게 웃었다.
미래에 분명, 정말 나라를 발칵 뒤집어엎은 사건이 있었다.
국정농단.
그때는 인터넷도 발달하고, 젊은 층도 정치 문제에 관심이 많았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이번 일은 그것만큼은 이슈가 되진 않을 것 같았다.
IMF가 지나고 IT버블이 오기 전인 지금의 대한민국은, 경제난으로 인해 정치에는 관심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분노의 화살은 분명 국회로 향하고 있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가 생계에 찌든 국민들은 잊어버릴 터.
아마 이번 생에는 그런 일은 없을 테다.
겨우 스물 정도의 국회의원이 없어지고, 그 자리의 반절만 내 사람으로 채우더라도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라 난 확신 할 수 있었다.
선거가 거듭될수록, 국회에는 ‘삼현인’이 아닌, ‘천가인’들이 의석을 채울 테니 말이다.
김소희의 집 앞.
차량에 오르자마자 고급 세단의 헤드 레스트를 터트려버릴 기세로 미친 듯이 내려치는 이건.
“자식새끼들을 잘못 키웠어, 자식새끼들을!”
남종현은 묵묵히 운전에 집중했다.
“빠져나갈 길이 없구나··· 길이 없어. 틀림없이 천우진 그놈이 가지고 있는 게 원본인 것 같구나···”
동귀어진을 각오한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많이 가진 놈일수록 포기하기 어려운 법 아니겠는가. 어떻게든 버텨보려 발버둥 쳤지만 이제 정말 끝이 다가왔음을 느끼는 이건.
“희윤이 그것은 아직도 연락이 안 되지?”
“예··· 아가씨···”
“아가씨는 무슨 아가씨! 그런 호로새끼에게 존칭을 쓰지 마!”
차마 말을 잇지 못한 남종현이 룸미러로 이건을 힐끗거렸다.
풍전등화, 위기일발, 사면초가.
그런 말이 꼭 들어맞는 현재, 이건은 모든 가면을 벗어던졌다.
조심조심 행동하고, 바깥에서는 이미지 메이킹하던 그의 얼굴은 일부의 사람들이 동경하던 ‘재벌’이란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검찰은 아직이지?”
“예, 회장님··· 수일 내로 영장 들고 올 것 같습니다.”
“쯧쯧···”
말없이 줄담배를 태우던 이건.
“김종서 불러.”
“재무이사 말씀이십니까?”
“그래.”
“예.”
“지금 바로.”
“무엇 때문에···”
팍! 팍!
이건이 사정없이 운전석 시트에 발길질을 쏟아냈다.
“재무이사 역할이 뭐야!”
양손으로 핸들을 꼭 쥐고 있는 남종현이 답했다.
“재무 담당입니다.”
“그래! 그러면 재무이사를 왜 불러오겠어?”
“돈 때문입니다.”
“한시가 급하니까 되 묻지 말고! 토 달지도 마! 알았어?”
“예, 회장님.”
본래 이건의 두 눈에는 욕심, 탐욕만이 가득했었다. 남종현은 어쩐지, 지금 이건의 두 눈 가득 공포와 절망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마치,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는 쥐새끼처럼.
< 제 7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