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73화 (73/458)

< 제 73화. >

화려한 드레스에 반짝이는 하이힐.

누가보면 어디 파티라도 온 것 같은 모양새.

“아따, 아주 지랄이 나부렀다.”

김장원의 찰진 욕설에 절로 고개가 주억거려진다.

분위기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희윤이 덜컥 굳었다.

“앉아.”

손을 내밀며 친절하게 의자를 가리켰다.

입술을 살짝 깨물었던 이희윤이 또각또각 걸음을 옮겨 의자에 앉는다. 희안하게 생긴 드레스가 그녀의 흰색 피부를 그대로 바깥에 공개한다.

“원하던 분위기가 아니라서 실망인 모양이야?”

“이게 뭐하는 짓인데?”

공격적인 대답이 날아왔다.

말투가 톡톡 쏜다.

그녀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어깨를 양 손으로 쥐었다. 흠칫 몸을 한 번 떨었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날 표독스럽게 올려다본다.

“자자, 긴장 풀고.”

어깨를 주물러 주고는 고개를 숙여 작게 얘기했다.

“저기 앞에 있는 저 사람, 굉장히 거친 사람이야, 막 사람 눈도 뽑고, 간도 뽑고 그래.”

아무렇지 않은 척 콧방귀를 뀌는 이희윤이지만, 그녀의 목에 닿아있는 내 손바닥에서 그녀의 맥박이 세차게 뛰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악녀라고 해도.

지금은 그냥 어린 악녀 꿈나무 수준이다.

저 앞에 김장원 사장이 내뿜는 그 사나운 기운은 여물지 않은 이희윤이 받아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너무 겁 먹지 말고, 대화나 하자고 부른거니까, 샴페인 한 잔 할까?”

김장원이 특유의 양아치스러운 동작으로 샴페인을 따고 크리스탈 잔에 따라서 나와 이희윤에게 한잔씩 주었다.

챙~

건배를 하고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이희윤은 약해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단숨에 샴페인을 비워냈다.

드르르륵.

의자를 끌고와 이희윤의 앞에 마주 앉았다.

“삼현은 우리를 이길 수 없어, 알지?”

“무슨 소리야?”

“알면서 왜 이러실까, 네 아비가 삼현을 지켜낼 수 없다는 얘기야 우리 SKY의 손에서.”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서류를 이희윤에게 보여주었다.

“대충 읽을 줄 알지?”

샤락샤락, 서류를 넘기며 확인해보는 이희윤.

“너도 네 애비 밑에서 그가 어떻게 커다란 공룡을 만들어 왔는지 잘 봐왔을 거 아냐? 탐나면 뺏고 죽이고, 우리도 앞으로 삼현에 그럴거란 얘기야.”

꺄아아아아아악!

이희윤이 화들짝 놀랐다.

찢어질 것 같은 여성의 비명소리가 방안까지 들려왔으니까.

“뭐, 뭐야? 뭔데?”

김장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이희윤을 데리고 왔던 운전기사한테 소리쳤다.

“아따 썩을넘들이 살살 허라니까, 아야! 지금 손님 와 계신거 안 보이냐잉? 조용히 진행 시켜라잉.”

“예!”

탁.

흠칫.

사내가 바깥으로 나가던 것을 쳐다보던 이희윤의 양 무릎을 짚었더니 그녀가 흠칫 놀라 날 바라본다.

“자자, 긴장하지 말고, 한대 필래?”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가 내민 담배를 손에 잡는다.

듀퐁~

그녀가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나는 우리 희윤이가 방금 그 여자처럼 비명 지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네, 네가 감히 나,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엄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야~ 역시 삼현의 장녀! 자신감 좋다! 네 오빠 이재영인가? 걔도 야~ 자신감이 그냥! 그러고 보니까 재영이는 괜찮데?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자르는 건 좀 너무 심했어, 우리 김사장님도 좀 살살 하시지 쯧쯧.”

이재영의 얘기에 이희윤이 화들짝 놀란다.

“그, 그게 무슨소리야? 우리 오빠를··· 네가?”

“몰랐어?”

난 굳이 군용대검으로 시가를 커팅했다.

그러고는 입에 물어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이희윤의 얼굴에 뱉어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잘랐던가? 김사장이 아니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군용대검을 쳐다보며 한 말에 김장원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예, 회장님이 직접 하셨지라.”

“아아, 그랬나··· 요즘 너무 바빠서 잊어 버렸네.”

“흐읍!”

돌연 이희윤이 딸꾹질을 시작했다.

“뭐야, 뭐 혼자 맛있는 걸 먹고 왔어?”

“아, 흐읍! 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

이제야 좀, 말을 들을 준비가 된 것 같았다.

***

다음 날.

이건의 저택 별관.

오전 11시가 지나가지만 누구 하나 방 밖으로 나오는 인물이 없었다. 그들이 파티를 즐겼던 거실은 어느새 깨끗하게 청소되었고, 뷔페식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남종현은 일일이 정치인들이 들어간 방 문에 노크를 하며 말했다.

“어르신,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그제야 방 마다 노인들이 하나씩 피곤한 얼굴로 바깥으로 나와 커다란 식탁위에 앉는다. 곧, 그들의 파트너였던 여인들이 그들의 앞에 여러가지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고는 사라진다.

“마무리까지 아~주 훌륭하구만!”

한 정치인의 말에 나머지 정치인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표했다.

“좋은 밤들 보내셨습니까?”

이건이 나타나고, 그들은 앞다투어 이건을 칭찬했다.

“이 회장 덕분에 올 한해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소이다.”

“암암, 오늘은 관절도 쑤시지 않는 것 같아! 이래서 영계, 영계 하는구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이건이 히죽 웃으며 직접 움직여 잡채가 가득 담겨있는 바트를 테이블에 들고왔다.

쿵!

그러고는 맨 손으로 잡채를 한 주먹 가득 퍼 올리더니 그걸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야당 대표의 입에 쑤셔 넣는다.

“이, 이회장님!”

“지금 이게 무슨!”

“커헙 커헙.”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이건.

“처먹어, 어? 네들 처먹는 거 좋아하잖아? 받아 처 먹을 줄만 알았지 개새끼들이 밥값은 안 해?”

야당대표가 헐떡이며 몸을 덜덜 떨었다. 누가봐도 호흡이 곤란한 모습이다.

다시 잡채를 한움큼 오른손으로 뜬 이건이 막 야당대표의 머리채를 잡고 목을 뒤로 젖혔다.

우당탕.

여당대표가 빠르게 달려들어 이건의 팔을 잡아 만류한다.

“고, 고정 하세요 이 회장!”

“놔! 놔 이 개새끼야! 이 새끼 뜯어 내!”

이건의 명령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와 정치인들을 각자 자신의 자리에 앉힌다.

남종현이 물수건을 가져와 이건의 손을 닦아준다.

“후우.”

큰 한숨과 함께 목을 꺾으며 스트레칭 한 이건이 고개를 좌 우로 번갈아 돌리며 정치인 한명 한명과 눈을 마주쳤다.

“왜 내가 여의도에 다녀온지 한참이 지났는데 아무런 모션이 없어요? 우리 대한민국의 대! 국회의원 님들이?”

화가 날 법도 한 국회의원들이지만, 누구하나 불만을 토하지 못했다. 광기 넘치는 이건의 모습에 이미 압도당한 상태였다. 게다가 자신들의 양 어깨를 굳건히 잡고 있는 건장한 사내들의 손아귀 힘은 노쇄한 정치인들이 뿌리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왜 대답들을 안 해? 이 개새끼들아! 받아 처 먹을 때는 그렇게 입들을 털어대더니 어째 일을 좀 하라니까 누구 하나 먼저 나서는 새끼가 없어!”

야당대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잡채가 입과 코안 가득 들이 차면서 순간 죽음을 경험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여당대표가 혀를 차며 바라보다 말했다.

“이 회장, 잠시만 시간을 주시오, 우리도 SKY와 대한종합금융그룹에 대해 조사할 시간이 필요 할 것 아닙니까?”

이건의 손짓에 남종현이 재빠르게 서류를 가지고 와 여당대표의 앞에 쿵! 하고 놓는다.

“조사 다 끝났네?”

“······”

“우리 삼현이 미리 다 해 놨습니다. 이 개새끼들아, 그냥 기자들 앞에서 아가리만 털어, 네 놈들 잘 하는 그 짓거리 있잖아? 국정감사! 그 자리에서 유죄를 입증하라는 것도 아니고, 의혹만 주라고 의혹만! 그게 어려워? 그게 어렵냐고!”

이건이 잡채를 마구 던졌다.

사내들의 아귀힘에 얼굴과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정치인들은 이건이 던지는 잡채를 온 몸으로 그대로 받아냈다.

“후우, 후우.”

거친숨을 토해내는 이건, 얼른 남종현이 달려와 그를 자리에 앉히고 적당한 온도의 생수를 건넨다.

“그거 가져와.”

이건의 명령에 사내 둘이 빠르게 움직였다. 곧 제법 커다란 스크린에 화면이 떠 올랐다.

-허억, 허억, 허억.

노괴의 헐떡이는 숨소리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비주얼을 궁금할 사람은 없다.

“그, 그만! 그만!”

여당대표가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고, 그제야 이건이 손짓했다.

“이, 이회장! 당신 정말!”

터질듯 붉게 달아오른 여당 대표의 얼굴, 스크린의 그것과 다르지만 같은 모습이다.

아랑곳 하지 않고, 이건은 제 할말을 뱉었다.

“잘들어 노인네들, 네 놈들 정치 인생은 물론, 전국적으로 개 망신 한 번 당해보고 싶지 않으면··· 무슨 개 지랄을 해서라도 천혁수, 천우진 그 천한 사채업자 놈들 국회에 불러다 앉혀, 내 말 이해했어?”

아무도 대답이 없자 이건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네 놈들의 어젯밤이 모두 내 손에 있다는 걸 잊지마, 삼현이 죽으면, 네놈들도 죽는거야 나 이건! 혼자서는 안 죽어, 내가 여태까지 기름칠한 새끼들이 몇 명인데 내가 죽어? 이 나라에 내 돈 안 받아 쳐먹은 새끼들이 없는데 누가 죽어!”

이건이 다시 손짓하고, 여러 신문사의 조간 신문이 각각 정치인들의 앞마다 올려진다.

언론사들이 하나같이 SKY를 욕하고 있었다.

‘SKY그룹 끊임 없는 자금력! 그들은 외환위기를 예상하고 있었다!’

‘SKY그룹 외환위기 알지만 알리지 않았다.’

‘사채업자 가문 SKY와 대한종합금융그룹! 그들의 자본력은 서민들의 피고름!’

그리고 입구에 준비되어 있던 금괴가 들어있는 가방도 테이블에 하나씩 올려준다. 모든 가방이 열려있는 상태로.

“분위기 파악좀 합시다. 국회의원님들··· 이제 여론이 SKY이 편이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

할아버지와 루시, 그리고 내가 칩을 쌓아놓고 텍사스 홀덤 테이블에 앉았다. 딜러는 무려 아산댁이었다.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제법 그럴싸한 카드게임 테이블이 세팅되고 각자 음료를 올려놓고 한바탕 즐거운 포커 게임이 진행중이었다.

물론, 진짜 돈을 가지고 하는 것이었다.

바이인은 100만 달러, 무제한 리바이인이 가능했다. 가짜로 하면 재미가 없다는 루시의 주장에 따라 진행되었다.

“루시, 한국엔 그런 말이 있어.”

“뭔데!”

돈을 많이 잃은 루시의 말투가 제법 공격적이다.

“도박판에 호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호구가 아닐까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지.”

“나 호구 아니거든! 우진 네가 비정상적으로 잘 하는 거라고! 그럼 여기 젠틀 혁수도 호구야!”

가만히 앉아 시가를 입에 물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날 째려보신다. 감히 자신에게도 호구라고 한 것이냐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난 순순히 말 실수 했음을 인정하면 두 손을 들어올렸다.

“항복.”

의기양양한 루시가 이름바 뚜껑벳을 날렸다.

“올인!”

웃음이 터질것 같았다.

과장된 몸짓과 함께 올인을 말한 루시, 분명 좋은 카드가 분명했다. 그것을 증명하는 이유는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록빛.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이.”

“어, 어떻게? 이번엔 정말 연기가 완벽한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나요 할아버지?”

“흐음, 저 놈이 누굴 닮아 저렇게 눈치가 도사인지 나도 모르겠구나 루시.”

“아악! 나 AA라고! 오늘 처음 잡은 카드인데! 우진 너는 어떻게 내가 블러핑 할때마다 따라 들어오는건데엑!”

루시에게 목이 잡혀 흔들거리고 있던 내게 백철웅이 다가왔다. 루시도 어느새 내 몸에서 손을 떼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잠시 TV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고, 백철웅이 TV를 켰다.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SKY그룹과 대한종합금융그룹의 국정감사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정치인들이 한 목소리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상황. 말 같지도 않은 의혹이라며 서류를 흔든다.

-이 제보를 해주신 익명의 국민 여러분께 정말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천우진 회장과 천혁수 회장은 떳떳하다면 국정감사에 참석 하세요!

루시는 한국어를 알아 들을 순 없지만, 대충 눈치로 현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는지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와 내가 눈을 마주쳤다.

“준비는 다 되었더냐?”

“준비랄게 있습니까? 깨끗한데.”

“흐음, 나는 확실히 과거가 문제 되긴 할 것 같구나.”

의외로 약한 모습을 보이신다.

난 웃으며 아산댁에게 손가락을 빙빙 돌려 플레이를 말했다. 아산댁의 카드 셔플을 쳐다보며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의 과거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겁니다.”

“음? 어떻게 그것이 사라져?”

“위기 같지도 않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도약하는?”

“쉽게 설명해라 이 놈아.”

피식 웃으며 손 안에 도착한 카드를 확인했다.

스페이드 킹과 하트 킹.

매우 좋은 카드.

“올인, 할아버지가 이번 팟을 가져가면 알려드리죠.”

“하, 요놈보게 아주 할애비 돈을 다 털어가려고 작정을 했구나!”

작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 백철웅에게 말했다.

“어떤 조사든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보도자료 뿌리세요, 국정감사도 상관 없다고 꼭 얘기 하고요.”

“예, 회장님.”

고민하던 할아버지가 쯧 하고 혀를 차며 외쳤다.

“올인이다 이놈아! 이제 얘기 해 봐!”

“에헤이~ 팟을 가져가야 알려 드린다니까요?”

“대충이라도 얘기 해 봐!”

“아까 루시한테도 얘기했죠? 판때기에 호구가 안 보이면, 내가 호구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흐음··· 이건 그 놈이 호구다?”

쇼 다운이 시작되고.

K트립스로 나의 승리.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루시가 할아버지를 위로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 제 7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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