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7화 >
이건의 저택.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이재형.
그러나 그의 얼굴은 전혀 멀끔하지 않았다. 며칠을 꼬박 새웠을 것 같은 초췌한 모습을 둘째치고, 여기저기 붙이고 있는 반창고와 터진 입술은 한눈에 보아도 모진 고초를 견뎠음이 보인다.
경비원들은 그런 그의 접근을 경계했다.
“나 이 집 차남이야, 길 터.”
경비원은 서둘러 저택 내부로 전화했다. 연락을 받은 남종현이 헐레벌떡 입구로 달려왔다.
이재형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본능적으로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는지 절망 어린 눈으로 말한다.
“부회장님은···”
“닥치고 잘난 이건 그 노인네 얼굴이나 봅시다.”
입술을 깨물던 남종현이 먼저 바삐 걸음을 옮겼고, 이재형은 살짝 절뚝이면서도 그런 그를 잘 따라갔다.
“집무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저택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남종현이 서릿발 날리는 명령을 날렸고, 가사도우미들은 썰물처럼 사라졌다. 이어서 이재형이 들어오고, 남종현은 집무실의 문을 노크했다.
“회장님, 이재형군이 왔습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이재형을 바라본 이건도, 본능적으로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어째서 네 놈 혼자더냐? 내 아들은?”
자신을 여전히 아들 취급하지 않는 이건에게 분노가 용솟음쳤지만, 이재형은 무표정한 얼굴로 품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사진을 확인한 이건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이재형을 쳐다보았다.
“어, 어째서?”
“노인네, 잘 들어. 천우진 회장이 말하길··· 삼현자동차를 포기한다면, 노인네의 그 자랑스러운 장남 이재영의 목숨은 살려준다 합디다.”
“네놈이 그 망할 천가놈들과 붙어먹어!”
호랑이 같은 호통소리지만.
이재형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언제나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인물이라 생각했던 자신의 아비가 너무나도 초라해 보였다.
서릿발 날리던 눈으로 자신의 어미의 죽음에 십원 한 푼 던져주지 않던 그 냉철한 호랑이는 더이상 자신 앞에 없었다.
뇌리에 자신을 내려다보던 천우진의 얼굴과 그 눈빛이 떠오른다. 서릿발 날리는 차가운 호통 따위 없이도 충분히 자신을 두렵게 만들던 그 눈.
그러니 시끄럽게 소리치는 이건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꽥꽥 소리 지르지 마, 쫄았어?”
“······”
이재형의 고저 없는 음성에 이건은 움찔, 자신의 심장에 통증이 일어나는 착각을 느꼈다.
“선택해, 노인네 아들 목숨인지 삼현자동차인지.”
“······”
이재형이 허탈한 표정으로 잠시 천정에 매달려있는 샹들리에를 바라보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고는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크크큭.”
돌연 웃기 시작하는 이재형.
“애초부터 당신 같은 노친네는 상대할 수 없던 사람들이었어, 어떻게 그들의 예측을 한치도 빗나가지 못하지?”
“무, 무슨 소리더냐!”
“당신은 척수까지 욕심에 매몰된 하등한 인간이랍디다. 아들놈의 목숨보다 네 놈의 삼현이 더 중요한 그런 인간··· 크크큭, 고작 이런 인간이 두려워 보고픈 내 핏줄을 보지 않고 살았다니··· 시발, 인생 뭣 같군. 그 잘난 면상에 휴대폰 던져버리기 전에 휴대폰이나 받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받아든 이건.
“통화버튼만 누르면 돼. 그럼 전화가 연결될 거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전화기를 귓가에 가져간 이건.
-아, 아버지! 아버지! 아들 좀 살려주십시오! 이놈들 미친놈들입니다! 정말 죽일 거라 이 말입니다!
“재, 재영이··· 재영이냐?”
-예, 아버지 아들 이재영입니다! 살려주세요!
벌벌 떨리던 이건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떨어졌다 붙기를 반복하는 입술, 분명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선택을 망설이는 모습이다.
그러던 어느순간.
마른세수와 함께 아들을 걱정하던 아비의 가면이 떨어져 나가고, 본래 이건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다.
두 얼굴의 이재영이 누굴 닮았나 했더니, 핏줄은 속일 수 없는 법. 이건은 지금 이재영의 그 얼굴과 몹시 닮아 있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책임도 네 놈이 지는 것이라고.”
-아, 아버지!
“삼현은 내 세상이야! 내 나와바리!”
-이 미친 노인네야 노망났어! 아들이 죽게 생겼다고!
“내 나와바리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어! 멍청한 놈들, 네 놈이 내 핏줄이라고? 애비의 삼현에 누만 끼치는 네 놈이? 네가 누구 때문에 따순밥상을 끼니마다 챙겨 먹은 것 같더냐!”
-··· 살려주세요 아버지··· 나 살고 싶어요!
“흥! 네 놈이 그 알량한 계략에 빠진 순간,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났어, 가거라 이 삼현은 내가! 삼현의 주인인 내가! 반드시 지켜낼 테다.”
세상 모든 것을 가져야 직성이 풀릴 이기심 가득한 눈빛, 어떤 것도 제 앞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참기 힘들어할 탐욕스러운 그런 얼굴이다.
그런 이건을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젓는 이재형.
벌벌 떨고 있는 남종현에게 시선을 옮긴 이재형이 말했다.
“희연이 어딨어?”
남종현은 거칠게 전화기에 노호성을 터트리는 이건을 쳐다보았다. 공항에서 이재형을 맞닥뜨렸을 때, 과연 삼현에도 봄이 올까 했던 그 우려는 이제 현실이 되어 있었다.
“저 노망난 노친네 모가지를 따버려야 남 실장 당신 입이 열리나?”
어느새 이재형의 손아귀에는 날 선 군용대검이 들려있었다. 이건은 이재형은 안중에 없다는 듯, 전화기에 집중했다.
문득.
남종현은 과거, 이재형의 열다섯 살 시절이 떠올랐다. 어미를 잃어 슬픔에 잠긴 소년이 서슬 퍼런 눈으로 식칼을 들고 이건의 품으로 돌진하던 그 모습이.
이번엔 그 칼끝이 자신을 향할까, 이번에도 역시 이건을 향할까. 그런 것은 잘 모르지만 우선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모, 모시겠습니다.”
남종현을 따라 이재형이 나가서도, 통화는 계속되었다.
-아들내미 목숨보다 네 놈의 삼현이 더 중하다고?
“시정잡배보다 못한 것들··· 누가 사채업자 출신들 아니랄까 봐 결국 살수를 쓰는구나. 천혁수네 할애비가 시키더냐?”
-말은 바로 해야지, 아들놈 말처럼 정말 노망이라도 들었어? 네 놈이 먼저 걸어온 싸움이야, 남을 죽일 줄 알았으면, 나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어야지.
“결코 네놈들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금방이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게 네가 될 순간도.
이건은 부들부들 떨며 휴대폰을 던져버렸다. 그가 미친 듯이 고함을 쳐 보지만 바깥에서 집무실로 들어오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
전화를 부숴버리고 이재영을 쳐다보았다.
“살려줘! 살려달라고!”
이미 사람의 몰골이라 부르기 어렵다.
그런데도 두 눈 가득 생에 대한 열망이 가득해 보였다. 백철웅이 검은색 서류철을 열더니 사진을 한장씩 한장씩 보여주며 읊었다.
“한지민, 23세 3년차 삼현의 가사도우미, 행방불명. 유연석 33세 5년차 삼현 보안의 직원, 행방불명··· 황인호 29세 삼현 시큐리티의 직원, 행방불명··· 김유진··· 이윤성··· 총 19명이 네 놈과 만남을 마지막으로 행방불명.”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있는 이재영.
백철웅은 무감정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삼현전자의 1차 하청업체 대서양전자의 사장, 삼현전자와 로열티 분쟁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 1차··· 하청··· 조미전자··· 사망··· 사망··· 사망··· 총 8명의 1,2차 하청업체 업주들이 기술이전 계약에 관련된 상태로 사망.”
백철웅의 어깨를 두들겨주고 이재영을 쳐다보았다.
“네 놈이 살아야 할 이유 한 가지만 말해봐.”
“다, 다 아버지가 시킨 일이야! 내가 말할게! 내가 밝힐게! 검사든 경찰이든 불러만 줘! 내가 다 말한다고!”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검사든 경찰이든 다 얘기하겠다?”
“저, 정말이야 진심이라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뭐?”
김장원을 쳐다보니 두 손으로 공손히 군용대검을 건넨다.
“깜빵에가나?”
“그··· 그렇겠지···”
“그다음은?”
“죗값을 받겠지?”
놈의 아래턱을 잡았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죗값을 치른다니 이건 뭐, 유머도 아니고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이땅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을리 없다.
“어디서 자꾸 개가 짖나?”
“으으으, 으으으!”
“안 죽여, 쫄지 마.”
놈의 두 눈에 안도가 서린다.
이재현을 나락으로 처박고 죽였다.
놈은 자신의 아비에게 인정받고 종래에는 삼현을 거머쥐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알았고, 그것이 인생에 전부라 믿는 부류였다.
그렇다면 이재영은 어떤 부류의 인간인가.
이재영은 자신의 아비를 동경했다.
“너는 꼭, 나를 닮았어.”
내 말에 이재영의 두 눈에 의문이 가득 떠오른다.
전 삶의 나의 마지막 얼굴이 이놈과 같았을까? 아니다. 전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놈과 나의 공통점은 ‘죽음’이 다가옴에 따라 느끼는 공포 하나뿐이었다.
저 얼굴은 내가 원하는 얼굴이 아니다.
동경하던 인물의 추악한 민낯을 보게 되고, 그것에서 오는 상실감, 더불어 스스로가 목표 삼았던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는 패배감.
그런 얼굴로 죽어야 옳았다.
“그러니까 넌 살아라. 두 눈과 두 귀로 네 아비가 어떻게 추락하는지, 어디까지 떨어지는지, 똑똑히 지켜봐.”
놈의 두 눈에 희망이 보인다.
이것 또한 내가 원하던 것은 아니다. 세상을 위해, 정의감에 불타 놈을 벌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딴 대의명분 따위는 필요 없다.
“내가 말했던가? 용이 뱀을 닮을 순 없다고?”
고개를 젓는 이재영.
놈의 뺨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네 놈들에게 배운 방식은 너무 쉽잖아? 살인 멸구··· 그런 방식은 너무 자비로워. 다시 말하지만 넌 오래 살아라. 그랬으면 좋겠어.”
삼현가의 개로서 살았던 전 삶.
난 내 두 손에 수없이 많은 피를 묻혔다. 그때는 그게 옳은 일이라 생각했고 당연하다 생각했다. 어느 순간 일상처럼 되어버린 그런 일들.
아까 백철웅이 읊었던 그런 힘 없는 사람들을 삼현은 ‘살인 멸구’라는 편안한 방법으로 지워버렸다. 그들의 가족들은 감히 ‘증언’하지 못했다. 병풍 뒤에 누워 있을 사람이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고작 그런 공포에 만족해서야 되겠는가? 난 이건에게 더한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주고 싶다. 매일 밤을 악몽에 시달렸으면 싶었다.
문득 미래의 어떤 영화가 떠오른다.
나는 고개를 돌려 김장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평소 업무지시를 하는 듯 무감각한 말투로.
“여기 썰고, 그리고 여기, 또 여기 복사뼈 위로.”
놈은 팔과 다리에 군용대검이 닿을 때마다 움찔움찔 놀랐다. 김장원과 정호석, 백철웅이 사색이 된 얼굴로 날 바라본다. 김장원이 침을 꼴깍 삼켰다.
정말이냐는 듯 날 바라본다.
“그, 진통제 같은 거 있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기절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그런 거.”
“이, 있습니다.”
“그런 것도 몇 방 놔주시고 하세요?”
“예, 회장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공포에는 더한 공포가.
선의에는 더 큰 선의가.
그것이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이다.
쫄쫄쫄.
이재영의 사타구니에서 출발한 액체가 놈의 바짓단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 김장원에게 명했다.
“이것도 썰어요, 꼴 뵈기 싫으니까.”
< 제 6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