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6화. >
일주일 전.
하남시 인근의 단독주택.
남종현이 비밀리에 사들인 그곳에는 미리 우리 사람들이 감시카메라와 함께 도청장치를 심어 두었다.
녹화된 영상과 함께 도청장치를 통해 녹음된 내용에 난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짧은 언급이지만, 분명 이재영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냈던 사고··· 아니지, 네가 냈던 그 교통사고.’
그 짧은 내용으로도 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내 부모의 교통사고와 이재영, 이재형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정호석과 백철웅, 김장원이 내 눈치를 살폈다.
“정 사장님.”
“예, 회장님.”
“놈들 동선 파악하시고, 경계가 느슨할 때 바로 돌입합니다. 잠시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습니다.”
“예!”
발코니로 나가자 멀지 않은 곳에, 이재영과 이재형이 대화를 나누는 집이 있을 터. 어쩐지 어둠 속에서도 그 집이 선명하게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평소 담배를 태우지 않았다.
그걸 알고 있는 백철웅이 굳이 나를 따라 나와 품에서 고급 담배케이스에서 작은 시가를 하나 꺼내어 건넸다.
“고마워요 삼촌.”
백철웅이 손을 뻗어 어깨를 다독여준다.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위로가 전해졌다. 어쩐지 할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차가운 가슴’을 강조하던 그 말이.
몇 모금의 연기를 뱉어내다 말했다.
“철웅 삼촌.”
“그래.”
“할아버지한테는 얘기하지 말죠, 오늘 도청내용.”
“그게 좋겠지?”
“예,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 그러자··· 백부님 건강도 예전 같지는 않으니까.”
“처음부터 삼현 놈들과 강영우가 연관되어 있었나 보네요, 우리 부모님의 죽음부터 말이죠.”
“미안하다··· 나와 호석이가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하는데.”
어느새 시가를 다 태우고, 다시 집안 내부로 들어갔다. 슬쩍 화면을 보니 이재영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
“당분간은 감시를 붙일 모양입니다. 우리의 경호 수준이 궁금한 것 같습니다.”
김장원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스산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쳐 불믄, 저것들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지 않겄습니까? 아직 개인 무장도 챙기지 않았는디요.”
정호석과 백철웅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견 일리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호석 삼촌.”
“으음?”
“지금 돌입하면, 우리 직원들 피해 없습니까?”
“······”
확답을 내리기 어려운지 입술을 달싹이다 멈춘다.
백철웅을 보아도, 김장원을 보아도 ‘피해없다’라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날이 별로네요.”
누구보다 분노하고 있으며, 마음이 급할 내가 뱉은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생뚱맞다 느꼈을까? 아니었다.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 한 말인지 깨달은 모양이다.
정호석과 백철웅, 김장원이 감동한 표정을 짓는다. 무장한 놈들에게 돌입할 우리 직원들은 분명 어떤 피해를 보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니까.
““예! 회장님.””
사람의 진심은 전해지는 법이다.
능력 있는 자들을 평생 안고 가야 할 내가, 소인배적인 모습을 보일 순 없다. 이기심이 가득한 통치는 적절하지 않다.
삼현의 이건처럼.
내가 놈과 닮을 순 없다.
용이 뱀을 닮을 순 없으니까.
“정 사장님, 백 사장님은 평소 하던 대로 나와 할아버지 경호하시면서, 놈들이 붙일 감시자 확실하게 파악해 놓으세요.”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돌려 김장원을 쳐다보았다.
“김 사장님은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시죠?”
“흐흐, 염병할 면상을 계속 쳐다봐야 할 팔자인갑네요?”
“하하, 예. 아무래도 놈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김장원 사장이 적합할 겁니다. 갑자기 백 사장님이나 정 사장님이 나와 할아버지 곁에서 사라지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요.”
“알겄습니다. 지켜만 보믄 됩니까?”
그럴 리가 있냐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놈들도 사람이니 처먹어야 살 것 아닙니까?”
내 말을 이해했는지 김장원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아따, 또 고것은 제 전공이지라.”
“놈들의 뱃속에 그것들이 들어간 순간, 연락하세요 그러면 우리가 바로 올 겁니다.”
“흐흐, 알겄습니다.”
***
일주일 뒤 서울 한복판.
천우진의 차량을 감시하던 용병이 말했다.
“우리도 이동하지.”
“오케이.”
서둘러 건물에서 내려와 자신들의 차량 앞에 도착한 둘. 불법 주정차 되어 있던 차량이 푹 주저앉아 있었다. 바퀴 네개 모두 바람이 빠져있기 때문.
“어떤 시발!”
용병과 함께 있던 30대 젊은 한국인 사내가 광분해 소리치더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죽일 듯 쏘아보았다.
그의 어깨를 검게 그을린 외국인 용병이 두들기며 영어로 말했다.
“쯧, 누가 장난을 친 모양인데 좋게 가자고, 놈들 동선 별것 없으니까 우선 수리부터 하지?”
“좋아, 보험사를 부르지.”
한국인 사내가 어디론가 전화한 지 고작 5분 만에 나타난 렉카.
“아이고, 어떤 미친놈이 이래놨어?”
“가까운 타이어 가게까지 얼마나 걸려요?”
“아, 제일 가까운 곳은 여기서 15분 거리에 있는데, 제가 아는 곳은 25분 거리에 있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기사님 아는 곳으로 갑시다.”
“오케이~! 차량부터 올릴게요.”
바람 빠진 차량이 트럭 위에 평평하게 고정되고.
“택시로 따라오십니까?”
기사의 질문에 30대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차에 타고 가도 되죠?”
“쯧, 불법이긴 한데···”
“대충 갑시다.”
대충 가자며 건네는 만 원짜리 몇 장에 기사가 씨익 웃으며 차 안 작은 아이스박스에서 박카스 두 개를 꺼내어 손님들께 주며 답했다.
“그러죠 뭐.”
그들은 손수 트럭 위에 올라 자신의 차량에 올라 이상한 기계장비들을 점검하고, 뒷좌석 가방을 확인했다. 그 가방에서는 권총 두 정과 총알, 원화가 들어있었다.
“문제없지?”
“어, 깨끗해 타이어에만 장난질 한 모양이야.”
“쯧, 하루 쉰다고 생각하자고 대장도 별 지랄은 안 할 테니.”
“그러지.”
“그나저나 이거 맛이 좋은데? 바까쓰?”
“아, 박카스라고 피로회복제야.”
“오~ 근데 피로회복제인데 왜 이상하게 졸린 지 모르겠어.”
“하하하,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보지, 편하게 쉬라고 나도 편하게 쉴 테니, 적어도 20분은 눈 좀 붙이자고. 요새 며칠 통 못 쉬었잖아?”
“그러지 뭐.”
그들이 잠에 빠져있는 사이, 차량은 서울을 벗어나 근교의 한 폐차장에 도착했다. 렉카 기사가 손을 들어 입구에 들어오는 또 다른 렉카 차량을 반긴다.
“왔어?”
“어, 그래. 문제없었지?”
“어, 우리 회장님 감시하던 놈들은 박카스를 신나서 마시던데?”
“크크큭, 우리도 그래. 서둘러, 짐이랑 신분증만 꺼내고 저기에 넣자고.”
폐차를 그대로 압축시켜버리는 기계.
그곳에 사람이 탑승한 차량이 그대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
모니터 속 이재형 일당은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잠들어 있었다.
“아따, 오셨습니까?”
코를 후비던 김장원이 반갑게 날 맞이했다.
이어서 들어오는 백철웅을 확인하고 물었다.
“그쪽 감시자들은 처리했죠?”
“예, 회장님 쪽 안테나들과 사이좋게 폐차장으로 향했을 겁니다.”
“자, 그럼. 시작합시다.”
명령을 내리니 김장원이 웃으며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자~ 드가자~”
특유의 명령에 모니터 속에 검은 복면을 입고 권총으로 무장한 인물들이 속속들이 이재형 일당이 머무는 내부에 모습을 드러낸다. 빠르게 움직이며 놈들의 손발을 케이블타이로 결박하고.
-치익, 클리어.
-치익, 클리어.
-치익, 클리어.
약속된 신호가 속속들이 무전기 내부로 송출되었다.
“지가 모시겠습니다잉.”
피식 웃으며 김장원을 따라 느긋하게 걸었다. 백철웅이 건네오는 시가도 거절하지 않았다. 놈들의 보안시스템에도 이미 카메라는 있었겠지만, 김장원이 사전에 알아서 처리해 놓은 상태.
“근데 저놈들 어떻게 뻗어 있어요?”
내 질문에 김장원이 우스꽝스럽게 손가락으로 V를 그리며 말한다.
“아따 며칠은 집구석에서 밥을 해 먹더라 이 말입니다. 그랴서 솔찮이 뻑쩍지근 헌디, 오널은 저 넘들 막내가 밥을 홀라당 태워불더라고요잉?”
“그래서요?”
“흐흐, 주변에 짱개집에 배달을 시키걸레 언넝 약을 탔죠잉.”
“하하, 잘하셨네요.”
“무색무취에 한 숟갈만 먹어도 코끼리도 뻗어부는 약입니다. 제깟 놈들이 버티겄습니까? 제 눈까리 보이시죠?”
붉게 충혈된 자신의 눈을 가리키는 김장원.
고개를 끄덕이니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저 넘들 감시하느라 이 눈깔이 빠져 부는지 알았습니다.”
무거운 분위기여야 할 지금, 김장원 덕분에 분위기가 한풀 가볍게 느껴졌다.
집 내부로 들어서자, 어느새 모든 무장을 해제시킨 놈들이 사이좋게 무릎 꿇고 잠에 빠져들어 있는 모습.
김장원은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놈들의 우두머리 이재형의 허벅지에 군용대검을 꽂아 넣었다.
“끄읍!”
고통에 잠에서 깬 이재형.
우리를 보더니 ‘쯧’하고 혀를 찬다.
이미 살기를 포기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충분히 거친 삶을 살아왔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거친 눈빛이었다.
갈라진 목소리도 마찬가지로, 굶주린 맹수와 같은 느낌을 준다.
“시발··· 블랙맘바가 이끄는 경호팀이라더니··· 병신같이 사지로 들어왔군.”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철웅이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호석이 군시절 별명이 블랙맘바입니다.”
머쓱한 표정의 호석.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 그래도 천가 키즈의 PMC 훈련소에 정호석이 등장하면 모두가 우러러보더니 다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웃음기를 지우고 이재형에게 다가갔다.
“나 알지?”
“그래.”
딱딱한 군인 같은 대답.
“너와 이재영의 대화에서··· 우리 부모님의 교통사고에 대한 얘기가 나오더군.”
“도청 장치가 있었나?”
이재형의 물음에 김장원이 천정을 가리켰다.
이재형이 화재경보기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푸하하, 블랙맘바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도 방심한 내가 병신이군··· 고작 삼현의 애송이 놈의 일 처리를 믿은 내가 병신이야. 뱀 새끼가 날 담가 버리려는 게 느껴져서 너무 그쪽만 신경 썼군.”
뭣 같은 자책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아 허벅지에 꽂혀 있던 칼을 비틀었다.
“끄읍. 시이바알!”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후우, 교통사고가 뭐?”
놈의 혓바닥이 짧은게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로 칼을 비틀어 뽑았다.
“자세하게 얘기해줬으면 싶은데?”
까드득 어금니를 깨물며 비명을 지르지 않은 놈이 거친 맹수의 눈으로 날 바라본다. 가소롭기 짝이 없는 모습이지만 순순히 대답하기에 가만히 지켜보았다.
“자세한 것은 모른다··· 어느 날 이재영이 내게 연락했고, 자기 대신 운전자가 되라고 하더군, 그게 끝이야.”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 조건으로 나와 내 동생은 이건의 호적 아래 들어갔다. 내가 병신이었지··· 그때는 너무 어렸어, 이건 그놈이 하늘이라 생각했지, 그다음 하늘은 이재영이 그놈이 가질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부모님의 사고기록에 적힌 운전자의 이름이··· 황재형이었나?”
“어머님이 황 씨셨다.”
“사고는··· 사고였나? 고의였나?”
“모른다.”
놈의 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그러고는 이재영의 번호를 찾으며 놈에게 말했다.
“이재영이를 불러.”
짧은 고민을 내비친 두 눈.
곧 결심한 듯 대답했다.
“좆까.”
“동생 때문인가?”
“······”
백철웅이 놈 앞에 여러 장의 사진을 꺼냈다.
모두 삼현의 막내딸 이희연의 사진이었다.
“우리도 언제든, 너희 삼현 놈들처럼 아니, 네 놈들보다 더한 칼춤을 출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
저벅저벅.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발소리가 들려온다.
온몸이 저릿저릿하게 떨렸고 뒷목이 빡빡하게 느껴진다.
“뭐야, 왜 이렇게 어두워?”
저 뭣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 할아버지의 말씀 ‘가슴은 차갑게’가 다시 한번 생각난다.
손을 뻗어 형광등의 스위치를 누르며 말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당황한 놈의 얼굴이 보인다.
“이재현이 한 실수를, 네 놈도 똑같이 하는구나.”
놈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놈.
“하긴, 이건이라고 달랐나? 그래도 이건 그놈이 제 자식들보다는 조금 낫군, 적어도 두려움은 느끼니까···”
“오, 오지 마!”
“하나 묻자.”
“무, 뭘?”
“부모님의 교통사고, 사고였나?”
“그, 그건 이재형 저놈이 가해자야!”
오른손에 들려있던 군용대검을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놈의 뺨이 길게 찢어지며 피가 튀었다.
“끄으으읍!”
뒤돌아 다시 지하실 계단을 오르려는 놈의 왼쪽 오금과 오른쪽 발목을 찔렀다. 철푸덕 엎어진 놈이 기어서라도 계단을 오르려고 했다.
계단을 꼭 쥐고 있는 놈의 오른손등을 대검으로 찍으며 물었다.
“쉽잖아? 맞다, 아니다. 그것만 대답해.”
“그, 그, 아 아버지가 시킨 거야! 그래!”
뒤쪽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주자, 어느새 다가온 직원들이 놈을 뒤쪽으로 끌고 갔다. 사방에 둘러진 비닐, 그리고 천장에서부터 쭈욱 내려온 로프에 놈의 양 손목을 감아 묶었다.
“사, 살려줘! 이것도 다 아버지가 시킨 거야! 우리는 아버지 명령에는 복종할 수밖에 없다고!”
“돈으로 지랄하면 돈으로 때리고, 주먹으로 지랄하면 주먹으로 패준다. 그게 내 방식이야.”
“······”
“돈으로 SKY를 이길 수 없으니, 더러운 술수를 꿈꿨나?”
“살려줘! 살려달라고 시발!”
비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상황이 바뀌었다면, 난 살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이미 전 삶으로 인해 여실히 드러났다.
“유감스럽지만, 내가 만들 철옹성엔 용서는 없다.”
저벅저벅.
어두운 계단을 지나, 모습을 드러낸 이재형.
거친 맹수 같던 놈이 어느새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피칠갑을 한 순한 양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네가 아는 한,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을 보여줘, 죽이진 말고.”
내 말을 이해했는지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뒤쪽으로 물러나고, 김장원은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 제 66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