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1화. >
누구나 자신이 기억하는 IT기기가 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IT기기는 MP3플레이어였다. 그랬기에 SKY전자의 최초 자체제작 상품은 MP3플레이어로 정했다.
옛날, 고작 32메가바이트의 용량을 가진 투박하고 커다랗던 MP3플레이어. 그것을 만들어냈던 기업은 망했지만 다른기업에 흡수되며 훗날 아이리버라는 이름의 MP3플레이어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었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그 정도에서 만족할 생각이 없다.
파인애플사가 만들었던 아이팟은 대단한 인기와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파인애플이란 회사의 이미지를 ‘첨단기술을 가지고 디자인이 예쁜 회사’라는 각인을 시켰다. 우리 SKY전자가 만든 스카이팟 역시, 그런 이미지를 얻어올 계획이다.
게다가 자체 음악 다운로드 플랫폼까지.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저작권’이나 ‘특허’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 일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아무렇게나 다운받고, 아무렇게나 CD에 구워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PC방이라는 곳에서 사용하는 게임의 CD key를 마음껏 도용하던 시기.
“오늘부터 광고가 나갑니까?”
내 물음에 ‘아이디어 뱅크’의 머리가 된 ‘정인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회장님.”
그녀는 분명 사채시장의 거물 중 한 명이었다.
할아버지는 굳이 그녀에게 어떻게 보면 ‘자선’사업처럼 보일 아이디어 뱅크사업에 꼭대기 자리를 주었다.
원래부터 보육원을 관리하고, 많은 봉사활동과 후원을 하던 여인이라고 하니 이미지가 제법 잘 어울리지 않느냐라는 것이 할아버지의 주장이었고,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이디어 뱅크의 첫 사업은 ‘저작권’과 ‘특허권’에 대한 설명, 그리고 불법다운로드등이 얼마나 위험한 행위인지에 대한 인식 넓히기였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기자회견 이후에 방송되죠?”
“기자회견장에서도 먼저 선 보일 예정입니다.”
“아이디어 좋네요.”
할아버지의 기자회견엔 당연히 이목이 쏠릴 수 밖에 없다. 현 대한민국의 가장 튼튼한 은행이고 서민들의 압도적인 찬사를 받는 은행이니까.
“감사합니다.”
특유의 편안한 웃음, 확실히 할아버지가 좋은 인재를 꽂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나도 기자회견장에 따라가고 싶지만, 괜히 할아버지에게 쏠려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가져오고 싶진 않기에, TV로 보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가만히 기다렸다.
곧 아나운서가 오늘의 기자회견을 짤막하게 소개하며 화면이 바뀌고, 할아버지가 단상위에 서서 말을 잇는 모습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아이디어 뱅크 사업에 후원해주신 기업 명단을 말씀드리자면, 대현그룹이 30억, 삼현그룹이 30억, GL그룹이 30억··· 대명건설이 5억, 대한종합금융그룹이 200억, SKY그룹이 500억, 이렇게 약 1000억여원이 모였고, 이것은 모두 아이디어뱅크의 사업에 쓰일 예정임을 말씀드립니다.
나와 할아버지가 미국에 있는 동안.
아이디어 뱅크란 사업을 핑계로 기업들의 돈을 뜯어간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우리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히려 노이즈마케팅 효과로 ‘아이디어 뱅크’사업에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니 만족스럽다. 실제로 대한종합금융그룹과 SKY그룹이 가진 바 ‘힘’으로 힘 없는 대한민국의 ‘대기업’을 상대로 패악을 부린다던 여론은, 오늘의 저 기자회견 이후로 쏙 들어갈 터.
대한민국의 최고라 치부하던 대현과 삼현도 고작 30억을 보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200억, 나는 500억을 넣었다.
액수의 규모부터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는 일이었다. 그러니 감히 우리가 패악을 부렸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어서 뉴스 화면에 아이디어 뱅크의 첫 사업이라 할 수 있는 ‘공익광고’가 송출되기 시작했다. 무분별한 불법다운로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광고.
이게 사실, 앞으로 스카이 팟이 출시되고, 자체 음악 다운로드 플랫폼까지 계획하고 있는 우리 SKY에게는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외국과 다르게 분명, ‘돈을 내고 음악을 다운로드 해라’라고 얘기하면 반발할 국민들이 적지 않을 터 였다. 실제로 각종 P2P사이트가 횡횡하던 시절이 있었기에 결코 우려 따위가 아니었다.
“실무진 회의 몇시죠?”
내 질문에 뒤에 서 있던 비서가 말했다.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계열사, 부서 별로 협의할 것들이 많아 미리 모여있었습니다.”
“아, 바로가죠.”
“네, 회장님.”
***
쾅!
테이블을 내려친 이건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30억을 뜯어가 놓고, 우리 삼현의 이미지를 개똥으로 만드는구나··· 대현이고 뭐고, 전경련 전체의 이미지가 개똥이 되었어··· 고작 사채업자 나부랭이의 이미지 띄우기에 이용되었군.”
남종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이건의 혼잣말을 듣고만 있었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이건의 침실에 단검이 꽂혀 있었던 일로인해 바깥으로 외출을 거의 하지 않던 이건. 자연스럽게 그의 얼굴을 초췌해졌고 살을 빠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래도 제법, 남종현 그가 알던 이건 회장의 얼굴이 되어 있었으니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저 서릿발 날리는 분노가 어째서인지 반갑다고 느껴질 만큼 크게 걱정하고 있던 그였다.
“불법 다운로드? 고작 저따위 광고에 내 피같은 돈 30억을 써! 망할놈들··· 전경련의 노인네들은 뭐하고 있더냐?”
“별 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쯧쯧, 한번 고개를 숙였다고 아주 수그릴 모양이구나··· 그래, 천우진이 그놈 미국에서 무엇을 얻어 왔더냐?”
“아직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분명 방산과 관련된 일이겠지?”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건이 히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멍청한 놈들··· 이미지에 목매다 헛돈을 쓰겠구나. 방산은 돈 먹는 하마지,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성과에 비해 걷어들이는 소득이 크지가 않아. 적자만 면해도 다행이라고 얘기할 그런 ‘더러운’사업이지··· 놈들이 기고만장해 패착을 두는구나.”
어쩐지 남종현의 귀에 이건의 걱정은 기우라고 들렸다. 자신의 머릿속에 SKY는 그 돈 먹는 하마라는 사업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낼 것 같다는 그런 상념이 떠올랐다.
“전자 놈들 소집해, MP3플레이어인지 뭔지 그딴 걸 만드느라 정신 없는 틈을 타, 우리는 휴대폰 사업에 더 집중한다. 성능을 끌어 올리고, 저 MP3플레이어 기능까지 집어 넣는다면, 단숨에 SKY를 엿먹이고 휴대폰 점유율을 더 굳건히 다질 수 있을게야.”
남종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이건 회장의 말은 설득력 있다. MP3플레이어 기능이 탑재된 휴대폰. 듣기만 해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식사 하고 있을테니, 1시간 30분 뒤로.”
“예! 회장님.”
***
대통령과 마주앉아 청와대에서 차려준 밥을 먹었다. 확실히 저번 연회장에 먹었던 식사와는 꽤 비교되는 식사였다.
“부지는 선정 하였습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수저를 내려놓고 말했다.
“매우 넓은 규모의 부지가 필요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대통령.
“단순 생산 뿐, 아니라 시험운전까지 하려면 더욱 그렇겠지요?”
“예, 해서 공군기지 인근의 부지를 선택하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 군의 활주로를 사용하겠다는 말씀이군요.”
“예.”
“흐음···”
웃음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이 와중에도 뭐 빼앗을게 없나 생각하는 모양이기에 그랬다. 간신히 웃음을 참아내고 말했다.
“대통령님.”
“예, 천우진 회장.”
“고속성장을 이어가던 대한민국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직장을 잃은 가장들이 너무 많습니다.”
“크음···”
알아 듣게 얘기했지만, 그래도 뭔가 바라는게 있는 모양, 거듭 얘기하지만 나, 그리고 할아버지.
SKY와 대한종합금융그룹은 호구가 아니다. 서민들을 위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오해하는 모양인데, 이는 큰 착각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새롭게 취업해야 할 청년들도 넘쳐 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고 계시면서 아직도 SKY로부터 받아내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대통령이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북측과의 외교문제로 굳이 우리 SKY의 방산 진출을 발표 하지 않는 것은 이해 해 드렸습니다.”
“···”
“하지만 공장 설립에 필요한 부지 확보와, 시험비행등을 협조 할 활주로 제공 따위에서 뭔가를 얻고자 한다면, 잘못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미 국민들은 SKY가 방산에 진출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국위선양이라며 얘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돕지 않아 철회한다는 얘기를 전하면 어떻게 될까요?”
“크음.”
“우린 호구가 아닙니다. 청년들과 실업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될 SKY그룹의 방산사업. 돈 먹는 하마라 불리는 그 사업에 헛 돈을 투자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듣기가 힘들었는지 비서실장이 나서려는 찰나, 대통령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고정하세요 천 회장. 이해했습니다.”
“확실히 이해하셨습니까?”
“크음, 그러니까 지금 천우진 회장은 우리 정부가 ‘땅’을 내놓으란 얘기지요?”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하고 찔러본 것 같았다. 대통령도 현 정부의 지지율에 타격이 올 만한 행동은 하고 싶지 않을 터.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정확합니다. 또한, 국방과학연구소와 적극적 협력관계 구축에도 힘써주시길 희망합니다.”
“죽어도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말씀이군요.”
“사업가입니다. 사익을 우선하죠.”
“후우···”
미리가져왔던 서류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이냐는 듯 날 올려다보는 대통령.
영어가 가득한 그 서류는, 모두 워싱턴에서 직접 체결해온 계약서들이었다.
“미국의 군수기업들과 계약한 내용입니다.”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보자, 비서실장이 황급히 그 서류들을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전투기부터 시작해 많은 것들을 우리 ‘SKY항공우주개발’은 위탁생산 하게 될 것입니다.”
“··· 김 차관에게 들었지만··· 그게 정말 계약되었단 얘기요?”
“비서실장이 가져간 계약서를 검토하면 될 일이죠, 거짓은 없습니다.”
“하! 정말 미국에서 OK를 했단 말이지요?”
“확실합니다. 물론, 최신형 무기는 아닙니다.”
“예, 알겠습니다. 구형무기라도 그것의 위탁생산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소. 사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SKY그룹의 행보에 우려를 표하고 있소.”
“그렇겠죠, 명실공히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의 기업이 되었으니까.”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가 자꾸만 SKY에 특혜를 준다는 인식이 후일을 도모하는데 걸림돌이 될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오.”
“이런 기회를 저버린다면, 그것만큼 멍청한 일이 없을 겁니다.”
“크음···”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와 우리 SKY는 호구가 아닙니다. 정부에게 받아야 할 혜택은 모두 받아야겠습니다.”
그 사이 비서실장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얼마나 흥분하고 있는지 반짝이는 두 눈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정말··· 정말이군, 하하 이거 외통수입니다. 외통수.”
“모쪼록 청와대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발표 시기는 좀 뒤로 미루더라도, 최대한 SKY항공우주개발사에 적극 협조하리라 약속하겠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무진들 보내십시오, 우리측 실무진들과 협의하며 결정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터.”
“그리하지요, 국방과학연구소의 실무진들도 몇 보내겠습니다.”
“예.”
***
스카이 팟의 모든 개발은 끝났다.
디자인부터 품질까지 모든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기술로는 이정도가 최대라고 불러도 좋았다.
이제 겨우 1세대 일 뿐, 시작일 뿐이다.
그래도 그것이 갖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고 확신했다.
“신제품 설명회, 회장님이 직접 하실 겁니까?”
“그래야죠, 나 만큼 이 녀석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하하, 실무진들도 두손 두발 다 들었던 회장님의 열정이라면 충분히 우리 스카이 팟을 주목받게 만드시리라 기대 하겠습니다.”
SKY전자의 사장 김흥수.
그는 타타다우 전자의 상무이사로 일하다 이번 인수합병 과정에서 SKY전자의 사장직책을 부여 받았다. 워낙 경험과 일을 잘 하는 사람이기에 인사이동에 불만을 갖는 인물은 없었다.
“그나저나··· ‘신제품 설명회’라는게 과연··· 얼마나 파급력이 있을지.”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법의 홍보였기에 그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 못할 건 없었다.
하지만 난, 과거 한 시대를, 특히나 스마트폰 시장을 평정했다 말 할 수 있는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를 떠올렸다. 이제 그 혁신은 파인애플사가 아닌, 우리 SKY가 대신 할테다.
“기자들도 방송사에서도 온다고들은 하는데··· 영 반응이 미적지근 합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재계서열 1위 그룹사의 최초 자체 개발 상품이기에 관심은 주려고 하지만 과연 그렇게 까지 할 일이냐는 뜻이다.
강기태, 찰리 박, 정호석을 비롯한 대 회의실을 꽉 채운 많은 중역들이 비슷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판때기 제대로 만들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 작은 목소리에 모두가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크게 돈 들이지 않고, 전 세계에 홍보할 판때기를 말이죠.”
SKY전자의 목표는 글로벌이다.
SKY그룹의 목표도 글로벌이다.
세계 최고의 그룹.
그리고 그것의 첫발을 내딛는 사업이다. 결코 가지고 있는 의미가 저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작지 않았다.
정말 제대로 판때기를 깔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홀덤 판에서 따왔던 소원권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 제 6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