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59화 (59/458)

< 제 59화. >

미 국방성 차관이 입을 벌렸다.

“잠깐! 두 분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지금 천우진 회장이 말한 얘기는 상당히 민감한 사항입니다!”

우리나라 외교부 차관 김윤식은 날 바라보며 눈으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이 새끼가 도대체 왜 지랄이야?’

“최신무기를 위탁생산하겠다고는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런 염치없는 짓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전 시즌의 구식 무기는 얼마든 가능한 일 아닙니까?”

윌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제기랄··· 미친 노인네들, 이런 건 예상도 못했을 테지.”

다시 날 바라보며 말한다.

“도대체 천우진 회장 당신은···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는 거요?”

글쎄.

내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그는 감당 할 수 있을까?

SKY가 방산에 진출하면 좋은 점을 꼽자면.

첫째. 애국적 이미지.

둘째. ‘규모’의 어필, 많은 임직원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경제효과를 시사한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함부로 건드리기 어렵다.

마지막 셋째. 이게 가장 핵심이고 내가 노리는 가치다.

바로 첨단기술.

단기적으로는 당장 GPS기술이 탐난다. 미래의 무인항공기 드론과 같은 것들의 핵심기술이라 할 만하고, 그다음은 위성기술도 당연히 탐이난다. 그러니 록히드마틴의 전투기 같은 것들은 반드시 따내야 한다.

미 외교부 차관이 나섰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미국입니다. 미국의 군수기업들이 SKY와 협조 할 것이라는 확신은 없소.”

윌리가 외교부 차관의 팔을 짧게 잡는다.

외교부 차관이 인상을 찌푸리다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하는 그가 거들어봤자 방해일 뿐이란 것은, 나와 윌리만이 알고 있다.

“한국이 자주국방을 이룬다면··· 우리에게도 이득이겠지요?”

윌리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난 내 이득만 봅니다.”

미 국방성 차관, 미 외교부 차관도 기가 찬다는 듯 ‘하!’하고 코웃음을 쳤다. 한 나라의 기업이 첨단무기를 생산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국방력이 상승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니까.

“쯧··· 일단 타진은 해 볼 테니 잠시 워싱턴에서 기다려 주겠습니까?”

“좋습니다. 가능한 빠르게 부탁하죠.”

“후우··· 알겠습니다.”

결국 CIA한국 지부장 윌리에게 확답을 받고서 나와 외교부 차관 김윤식은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천우진 회장님.”

“네 차관님.”

고개를 돌리니 김윤식이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까 중간부터 어쩐지 뜨거운 눈빛을 보내더니, 내 뜻을 곡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감히 제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순 없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아까는 내가 훼방을 놓는다는 식으로 쳐다보더니, 어느새 생각이 정리되었던 모양. 기득권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았는데, 보기보다 나라와 국민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애국자인가 싶었다.

“됐습니다. 다 내 배 불리자고 하는 일입니다.”

“예, 부디··· 첨단무기를 갖춘 대한민국의 군수기업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평화에 찌든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평화는 외교가 아니라 힘에서 온다는 것을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발언 굉장히 위험한 발언입니다. 지금 대통령께서 들으면 노호성을 터트릴 겁니다.”

“하하하, 그렇겠죠. 그분의 신념이야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역사가 증명하지 않습니까? 힘없는 평화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과연··· 자주국방이 실현될 수 있을까 싶어, 벌써 가슴이 떨립니다.”

더 닭살 돋고 손발 오그라드는 칭찬은 듣기가 거북했다.

“됐습니다. 나는 당분간 워싱턴에서 지내야 할 것 같으니, 차관님은 먼저 가십시오.”

차관 김윤식은 깊게 허리를 숙이고는 내가 탄 차량이 떠나갈 때까지 허리를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정호석이 내 옆에서 말했다.

“저 사람 진심으로 감사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

“그러게요,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네요.”

“이야기는 잘 성사되셨습니까?”

“힐튼호텔에서 한 약속을 기억한다면, 반드시.”

“아아! 그때 CIA에서 왔던?”

“예.”

정호석도 깜짝 놀란 얼굴로 말한다.

“설마, 그때부터 준비하셨던 겁니까?”

“글쎄요.”

선망 어린 저 눈빛이 부담스럽다.

피곤하기도 하고, 뭣하기도 하고.

그저 눈을 감고 차량이 호텔로 향하기를 기다렸다.

***

록펠러의 저택.

호숫가에서 돗자리를 펴 놓고 책을 읽고 있는 손녀를 멀리서 바라보던 록펠러가 홀로 읊조렸다.

“도대체가···”

그는 자신과 체이스, 삭스와 천우진이 했던 홀덤을 며칠이 지나도록 잊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동양의 신비 뭐 그런 것일까?”

혼잣말을 뱉던 그가 생각에 잠긴 듯, 연신 시가를 피웠다.

분명, 그 홀덤 판에서 천우진은 노스트라다무스도 울고 갈 예언가적인 면모를 보였다. 마지막, 자신과 천우진 둘이 남았던 그 순간이 떠오른 록펠러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팔에 수북이 나 있던 금발의 털이 삐죽삐죽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자신의 속마음을 낱낱이 까발려진 게 도무지 얼마 만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꼭, 자신의 아버지가 어렸을 적, 자신의 거짓말을 간파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천우진과의 마지막 대화.

‘한국에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음?’

‘확실하지 않으면 베팅을 하지 말아라.’

‘하하하, 지금 내게 하는 말인가요?’

‘록펠러씨, 당신의 카드는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확신하죠?’

‘당신의 온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호오, 좋은 확신이네요 그럼 올인하겠소.’

‘후회하지 않습니까?’

‘나는 후회하는 삶을 살아본 적 없소.’

‘콜, 받겠습니다.’

“도대체 그 어린 애송이가···”

똑똑.

노크소리에 고개를 돌린 록펠러.

“왜?”

“한국인 천우진이 방금 국방성 차관, 외교부 차관, CIA지부장윌리와 만남을 끝냈습니다.”

“대화 내용은?”

“군수기업 설립과 미국 방산 업체들과 만남이었습니다.”

“호오, 진정 그는 노스트라다무스인가?”

“예?”

“아니야, 나가 봐.”

“예.”

다시 고개를 돌려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이는 손녀딸을 눈에 담는 록펠러. 딱 자신의 손녀딸이 천우진과 비슷한 연배였다.

그래서 더욱 뇌리에 천우진이 떠오르는 록펠러.

“어째서인지, 가지고 싶군.”

***

호텔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휴대폰을 꺼냈다.

-오, 벌써 또 보고 싶은 겁니까? 천.

“하하, 체이스 부탁이 생겨서요.”

-오호라, 어떤 부탁입니까? 저번 홀덤판에서 ‘딴’ 소원권을 사용할 셈입니까?

“에이, 그 귀중한걸 이런 일에 쓸 수 있나요?”

-쯧, 이거 어깨가 무겁군요.

며칠 그와 함께 지냈다고 제법 친목이 다져졌다.

나와 체이스의 대화는 아주 편안했다. 그는 미국 상류층답게 고급어휘를 구사하고 예의 바른 영어를 사용했다.

습관 같은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존대의 개념은 없지만 분명 예의의 개념은 있는 언어가 영어였다. 그리고 상류층이 쓰는 저 귀족적 언어도 많이 배워 놓아야 할 것 중 하나다.

한마디로 그가 내게 존댓말을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친우로서 존중해주고 있을 뿐이란 얘기다.

“군수기업 설립을 할 것은 알고 있죠?”

-그때 얘기했으니 분명 기억하고 있죠.

“이번에 미국 군수기업들에게 위탁생산을 받아볼까 합니다.”

-··· 무기의 생산을 한국의 공장에서 하겠다는 얘기군요.

“정확합니다.”

-그 노인네들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들 밥그릇이 걸려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능하다면 확실히 SKY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이득이 상당하겠군요.

“그래서 체이스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흐음··· 삭스에게도 부탁을 하는게 좋겠네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화기 너머 체이스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게 느껴졌다.

-혹, 록펠러에게?

“아뇨, 겨우 이런 일로 소중한 소원권을 쓸 수 있나요?”

-하하, 역시 그렇지요? 과연 우진이 그에게 무엇을 말할지 기대가 됩니다. 만약 그 자리가 생긴다면 나도 꼭 초대해야 합니다?

“하하하, 약속하겠습니다.”

-최대한 협조하도록, 요청하겠습니다. 한국에서 했던 약속도 아직 남았으니.

“감사합니다.”

-쯧, 떠나기 전 또 보면 좋겠지만 역시, 어렵겠죠?

“예, 사업적 목적이 달성되면 다시 효도해야지요.”

-좋아요 우진, 기회가 되면 또 봅시다.

“좋은 날이 있다면 꼭 초대해 주세요.”

체이스와 전화를 끊고 바로 삭스에게도 같은 부탁을 했다. 그도 흔쾌히 들어주겠노라 했으며, 역시 체이스와 마찬가지로 록펠러에게 소원을 말하는 자리에 자신을 꼭 동석 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통화를 끝낸 나는 칵테일을 마시며 멍 때리는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 문득, 록펠러의 말이 떠올랐다.

‘돈이 많거나, 없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죠.’

‘그렇습니까?’

‘두 부류 모두,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글쎄요, 공감하긴 어렵군요.’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아무리 써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런 공허함이 있어요, 아무리 맛있고 좋은 음식도 매일같이 먹는다면 쉽게 질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죠.’

‘그렇다면 없는 사람들은 왜 재미가 없죠?’

‘아무리 갈구해도 채워지지 않으니까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란··· 너무나도 재미가 없답니다.’

개소리.

난 개소리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돈이 많다던 재벌가의 누군가가 저런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있는 놈이 주제넘게 없는 놈을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는 행위다. 기만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현재의 삶이 재미있다.

과연, 채워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앞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부와 권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까?

***

체이스와 삭스의 입김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까? 아니면 윌리를 위에서 조종하던 누군가가 약속을 이행한 것일까? 미국의 군수기업들은 분명 순순히 위탁생산 계약을 찬성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먼저 그들이 요구하는 생산시설을 갖출 것이었다. 어렵지 않은 내용이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지금 사용하는 미군이 사용하는 무기가 3세대라면, 나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2세대 무기를 위탁생산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으며, 현재의 무기가 아닌 3세대 무기를 위탁생산하기 위해서는, 추후에 4세대 무기 등장 후, 협상을 통해 진행하기로 얘기가 되었다.

저들도 사업을 하는 양반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도 내 목적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으니, 위탁생산으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은 ‘없다’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엄살을 좀 부려 ‘시설 투자비’는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만족할 만한 성과라 자부할 수 있었다.

“이놈, 얼굴이 좋은 것이 잘 처리된 모양이구나.”

다시 L.A로 돌아온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할아버지.

“하하하, 그럼요 할아버지 핏줄 미국놈들한테도 안 밀립니다.”

“흐음, 오늘은 그랜드캐니언에서 캠필을 해 볼까 하는데, 네 놈도 같이하겠느냐?”

“오, 좋죠 낭만적이네요.”

“우진이 네가 피곤할 것 같으니, 차량은 미리 보내놓고, 우리는 헬기로 이동하기로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준비가 다 되어 있기에 내가 준비할 것은 없었다. 그저 이동할 시간까지 편하게 쉬는 것이 내가 할 일의 전부였다.

“아, 할아버지 여자친구는 만드셨어요?”

“파하하하, 오냐 많은 여인네를 만나고 다녔다. 오랜만에 아주 난봉꾼이 되었어.”

백철웅을 쳐다보았다.

진짜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

믿기가 힘든데, 할아버지가 거짓을 얘기하실 분은 아니니 그냥 믿어드리기로 했다.

딩동.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에 내가 피식 웃으며 농을 건넸다.

“오, 할아버지 여자친구가 할아버지가 그리워 찾아온 모양인데요?”

피식 웃으며 철웅에게 고갯짓하는 할아버지.

철웅이 문 앞에 서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앞에는 정말, 여인이 서 있었다.

“와, 할아버지 능력 짱.”

나도 모르게 엄지를 추켜들었다.

정말 젊고 아름다운 미모의 금발여인이 그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흐음, 나는 저렇게 어린아이를 만나지 않았다만.”

아무리 높게 쳐 줘도 20대 중반을 넘지 않을 것 같은 앳된 얼굴.

“헬로 미스터 천?”

그녀의 말에 난 다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가 양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할아버지에게 다가와 정말 반갑다는 듯, 뺨을 맞대고 입으로 ‘쪽’하고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보내는 선물이에요, 지난번 우진이 특별히 부탁했던.”

말과 함께 내민 샴페인.

그제야 나는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의 시선은 나를 향한다.

“내가 아니라 네 놈인 것 같구나.”

“예, 그런 것 같네요.”

한국어를 알아 들을 리 없는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아이의 할애비는 누구더냐? 이런 고급 샴페인이라니.”

“아, 록펠러요.”

할아버지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것은 철웅과 호석도 마찬가지였다.

< 제 5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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