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54화 (54/458)

< 제 54화 >

맛있게 자셨던 똥이라도 올라오나 싶은 얼굴의 이건. 처음으로 놈에게 내가 직접 날린 독설이었기에 나로서는 통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건의 오른팔이라 부를 수 있는 남종현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비서실장씩이나 되셔서, 자리 안내를 똑바로 했어야죠, 왜 당신네 회장이 내 자리에 앉아있죠?”

주주총회의 가장 상석 자리에 감히 앉아 있는 이건.

나는 공표하듯 외쳤다.

“삼현전기란 이름은 오늘부터 세상에 없습니다. SKY일렉트로닉스로 흡수될 것입니다.”

주주들에게 통보하듯 얘기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이건을 바라보았다.

“남은 지분 넘기시죠? 곳간도 텅텅 비었을텐데.”

“크음, 어디 두고 보지.”

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지만, 역정을 내진 못한다. 보는 눈이 많으니 그럴터, 또 내 얘기가 자신의 귀에만 들릴 크기이기에 더 그렇다. 내 얼굴은 지금 아주 예의바른 청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결국 이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주주총회장을 벗어났다. 이제 완벽하게 삼현전기가 내 손에 들어왔음이다. 미래에 ‘전기엔진’의 핵심이.

***

며칠 뒤. 예상했던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 언론은 시끄러웠다.

기존에는 신문만 시끄러웠던 반면, 이제는 TV에서도 우리 회사에 대한 우려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기름을 붓는 인물이 있었으니,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의 회장으로 있는 타타다우의 총수 김유중이 그 인물이었다.

기자회견이라도 하듯, 유감을 표명하며 카메라 앞에서 SKY그룹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었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모양입니다.”

찰리 박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확실히 김유중은 눈치빠르게 우리 SKY가 다음 타겟으로 삼을 기업이 자신이란 걸 깨달은 것 같았다. 현재 부실이 심화되고 있을터, 마치 젠가 게임의 막바지에 다다른것처럼. 그렇기에 어떻게든 우리가 제 놈을 신경쓰지 못하도록 만들고 싶은 모양.

물론 본래의 기득권들이 지금 우리를 좋게 생각할리 없으니 연합하는 거야 쉬웠을테고 말이다.

대현, 삼현.

그리고 그 밖에 다른 기업들.

모두가 계열사 한둘 쯤은 우리에게 헌납한 상황이었다. 유일하게 자신의 것을 모두 지키고 있는건 타타다우 뿐이니 우리 다음 타켓을 예측하는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 일터.

“이번엔 좀 다른 방식으로 갈 겁니다.”

내 말에 찰리 박이 눈을 빛낸다.

과연 어떤 방법일까 궁금한 모양이다.

굳이 그에게 대답해주지 않고, 정호석 사장에게 시선을 던졌다.

“정 사장님, 천혁수 회장님과 일정 조율하고, 편하신 시간 받아주실래요?”

“예, 회장님.”

공적인 자리에서 ‘할아버지’란 호칭을 쓸 만큼, 난 어리석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내 태도가 기분 좋은지 정호석은 빙그레 웃었다.

“김 비서님?”

뒤에서 차분히 서 있던 김비서를 불렀다.

“네, 회장님.”

“중역회의 소집하세요, 1시간 뒤 대회의실로.”

“네!”

강기태와 찰리 박, 정호석까지 의아하단 얼굴로 날 바라본다. 왜 중역회의를 소집하는지 모르겠단 얼굴, 여태껏 중역회의는 거의 없었다. 보통 실무자 회의만을 추구하던 편이었다.

“언론이 이렇게 시끄럽고, 전경련이 압박을 가하면 아마도 곧, 국세청이든, 검찰이든 들이닥칠 겁니다.”

놀란 표정을 짓는 강기태.

정호석에게 물었다.

“우리 법무팀 믿어도 되겠죠?”

정호석이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대통령이 핸들링하는 것 아니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대단한 자신감.

사채업.

불법과 합법이 오가고 편법은 당연하게 진행되는 세상, 당연히 ‘법’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복잡한 세상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 나의 할아버지 천혁수 회장님이다.

정호석이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좋네요, 백철웅 사장한테도 얘기 전하세요, 조사에 대비하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정호석에게 명했다.

“아, 김장원 사장 저녁이나 같이하자고 해주세요.”

“예, 회장님.”

1시간 뒤.

대 회의실을 빼곡하게 채운 인사들.

모두가 SKY그룹의 중역들이었다.

“다들 바쁠테니까, 본론만 빠르게 하겠습니다.”

““예!””

“아마 조만간, 국세청부터 시작해서 각종 기관에서 우리 회사를 조사 할 겁니다.”

중역들도 어느정도 예상은 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깨끗하잖아요?”

모두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수긍했다.

설립과정부터 인수합병 과정까지 모든 것을 깨끗하게 진행했고, ‘과하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굳이 부채까지 일괄적으로 변제했다.

굳이 내지 않아도 될 숨겨진 세금까지 찾아서 세금신고하고 모두 해결했다. 범법행위는 당연히 없었다.

“그러니까 기관에서 요청하는 서류들 모두 내어주세요, 중요 서류들은 따로 표기하고, 사본 준비하시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십시오, 문제가 생겨도 여러분이 책임질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책임은 내게 있고 문제는 내가 해결합니다.”

제법 믿음직스러웠을까?

많은 중역이 고개를 끄덕이며 뿌듯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반대로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테고, 신뢰하게 될 테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주시면 됩니다. 회의라고 거창하게 소집해 놓고 얘기가 너무 짧았네요. 서면으로 통보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면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아, 굳이 얼굴을 보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니 여기 계신 분들도 각자의 자리에 돌아가서 부하직원들에게 안심하라고 전하세요.”

““예! 회장님.””

“좋습니다. 그럼 이만 끝내죠.”

막 회의실을 벗어나려는 그때.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것처럼. 양복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게 신분증을 디밀었다.

“천우진 회장님?”

“네.”

“안녕하십니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황익현 검사입니다.”

비릿하게 웃고 있는 입꼬리, 자신감 넘치는 두 눈동자. 대검 중수부면 검사에 임용되고 나서 질풍가도를 달렸을 터.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자부심이 검사놈의 두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서요?”

퉁명스런대답에도 허허롭게 웃으며 말한다.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임의동행입니까?”

“압수수색영장은 나왔습니다.”

“호오.”

누군가 제법 힘을 쓰긴 쓴 모양. 대검 중수부를 움직였으니 그 영향력이 적지 않은 인물일터, 그게 김유중인지, 전경련 회원들 전부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는 모르겠다.

경제인, 검찰의 유착 관계야 말해야 입이 아플 정도로 오래되었고, 심지어 집안의 사위를 검사나 판사로 두고 있는 기업가들도 적지 않을테니 누가 힘을 썼는지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놈들일테니까.

고개를 돌려 김비서를 불렀다.

“김비서.”

“네 회장님.”

“사내 방송 및 공문 띄우세요, 적극협조하라고 일반직원들도 확실히 알 수 있게.”

“네.”

다시 고개를 돌려 검사를 바라보았다.

“임의동행이죠?”

“우선은?”

어느새 혓바닥이 제법 짧아졌다.

픽하고 웃음이 튀어나온다.

“이따 갑시다. 내가 공사다망해서.”

검사 놈의 눈이 꿈틀거린다.

“자신 있으신 모양이네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자존심이라도 상했을까 얼굴이 붉어지는 놈.

과연 검사도 성적순은 아닌것 같았다. 학연, 지연, 혈연. 그딴 ‘맥’이 더 중요한 집단 답게 능력은 대단치 않게 느껴졌다.

“파고 싶은 만큼 파 보시고, 나는 일이 있어서 오늘은 좀 힘들 것 같네요, 내일 자진출두 할테니까 맞이할 준비나 해 놓으세요.”

할 말을 다 끝내고 검사 놈을 스쳐 지나갔다.

까드득.

이를 씹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중역들은 검사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인 날 우러러보는 눈치다.

대검 중수부.

과거 공안부의 힘이 압도적일 때가 있었다. 군사정권이 바로 그랬다. 남산에 끌려가면 없던 죄도 만들어지던 그런 시절에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공안부보다 중수부를 더 처준다. 공직자 비리 전담 수사라고 봐도 될 정도로 힘있는 놈들을 건드리는 곳이라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그 힘 있는 놈들을 건드려야 할 중수부가, 힘이 애매하게 있는 놈들만 건드리고 있는 시국이다. 그리고 놈들이 뭔가 크게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그 애매하게 힘 있는 놈으로 보였나 보다.

하여튼, 지금 중역들은 그런 두려운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이 대다수다. 검찰의 눈 밖에 나 없던 죄도 생겨 목숨을 저버린 거인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러니 나는 더욱 보란듯이 당당한 보폭과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사옥을 빠져나갔다.

***

차량에 오르니 품속 전화가 울린다.

“네, 할아버지.”

-그래, 중수부라고?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났어요?”

-뉴스 속보로 봤다.

“속보가 나갔어요?”

이건 좀 놀랐다.

아마도 언론플레이까지 같이 겸하고 있나보다.

도대체가 대한민국의 기둥이 어디까지 썩어있는 건지 계속 혀만 차게 된다.

“할아버지쪽은 괜찮은가 보네요?”

-부담스럽겠지, 스카이랑 다르게 우리는 계속 서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으니까.

“하긴,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테니까.”

-그렇겠지, 그래야 하고.

“내일 출두했다가 풀려나면 바로 회견 준비하시죠?”

-오냐, 준비해두마 몸 성히 다녀오거라.

“하하하, 예.”

할아버지도 크게 걱정은 없었다.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계셨을 터, 또.

확실한 것은 ‘대통령’라인에서 내려온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위협이 될 수 없었다.

해봐야 야당의 꼭대기 정도일 터.

대대로 오래도록 권력을 유지해 왔으니 그 힘이 적지 않을테지만, 아직 대통령의 집권 초기이므로 감히 힘 싸움에서 우열을 쥐긴 어려울테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천우진 회장, 대통령입니다.

“예, 대통령님.”

-고생이 많습니다.

“별일 아닙니다.”

-원한다면 힘을 쓰겠소.

“아뇨, 전혀요 오히려 이 기회에 우리 SKY가 얼마나 깨끗한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게 우리나라 검찰이요.

“대통령님이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쯧,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숨겨 무엇하겠소?

“걱정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 SKY의 법무팀도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요.”

전화기 너머 짧은 침묵이 흐른다.

-정말 도울 일은 없소?

“예, 도움은 괜찮습니다.”

-후우, 그 자신감 믿어보겠습니다.

“그러시죠.”

통화를 끝내고 적막이 싫어 말했다.

“라디오 좀 듣죠, 우리를 뭐라고 떠드나.”

채널 몇개를 돌리자 뉴스가 흘러나온다.

-네, 속보입니다. SKY그룹 본사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압수수색을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절차상 문제가 없는 인수합병 과정은 생략하더라도, 인수합병에 사용된 ‘달러’가 문제인데······

대부분의 뉴스 채널에서 SKY그룹을 매도하고 있었다. 정호석이 분한 표정으로 묻는다.

“회장님, 반격은 어떻게 할까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갈까요? 비리 검사에 맞서는 정의로운 검사 느낌으로.”

정호석이 알겠다는 듯 활짝 웃으며 말한다.

“정의찬 검사 준비시킬까요?”

“아, 그 검사가 이재현 마약스캔들 핸들링했던 검사죠?”

“예, 우리와 연이 좀 닿아있습니다.”

“좋네요, 정의찬 검사에게 힘 좀 실어주시고, 타타다우 조사했던 자료 넘겨주세요, ‘분식회계’라는 소스 잔뜩 묻혀서.”

“하하, 예 알겠습니다.”

***

오랜만에 방문하는 김장원 사장의 사무실.

과거 SKY인베스트먼트가 잠시 머물던 그곳이다.

“잉? 아따, 회장님 오셨습니까.”

특유의 능글맞은 인사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입꼬리를 들어 올리고, 잔뜩 기대서린 두 눈을 보건데, 대충 내가 자신에게 일을 시킬 것이란걸 깨달은 모양.

“이미 예상하고 계신 것 같으니까, 일 좀 합시다.”

“흐흐 좋죠잉, 안 그랴도 겁나게 뻑쩍지근 혀부렀습니다.”

피식 웃은 내가 경고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만?”

“워따, 그라믄 더 재미있겠네요.”

자신이 죽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방증이리라.

“좋네요.”

“잉? 아따 회장님 무슨 일인지 말씀은 해주셔야지요?”

“음··· 메신져?”

“예? 메 뭐요?”

김장원이 고개를 돌려 정호석을 쳐다본다.

정호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차장검사실.

“황 프로,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거야 지금? 내가 제대로 보고서 보고 있는게 맞아? 말이 돼! 온 국민이 이 사건에 관심이 많아, 털어서 먼지가 안 나? 소기의 성과라도 있어야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는 그런 소리라도 할 거 아냐!”

천우진 앞에서 한껏 자신감 넘치던 표정을 하던 검사의 꼴이 말이 아니다. 밤을 꼬박 새웠는지 얼굴에는 개기름이 줄줄 흐르고,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은 필요 없고 새끼야! 핸들링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똑바로 해야 할 거 아니야! 이거 틀어지면 너만 역풍 맞냐? 나는 물론이고 대검 전체가 물 먹는거야, 알아들어?”

“천우진 회장 이제 겨우 성인된 놈입니다. 그 애송이가 말실수하는 순간 게임은 끝입니다.”

차장검사가 얼굴을 한번 쓸고는 말했다.

“똑바로해, 지방이나 돌아다니다 정년 맞이하고 싶지 않으면.”

“예!”

황익현 검사가 까드득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두 눈에선 반드시 천우진을 옭아매겠다는 어떤 각오마저 느껴졌다.

< 제 54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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