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9화 (39/458)

< 제 39화. >

삼현의 비자금 창고 정보는 총 3군데였다.

규모는 다 일반 단독주택 같았다. 얼핏 봐서는 가정집 혹은 별장정도로 보이는 곳들.

어느 한 군데라도 먼저 털린다면, 그 정보는 순식간에 다른 곳에 전달될테니 경계가 강화될터.

“할아버지, 철웅 삼촌이랑 일 하나 하려고 하는데요?”

내 질문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호석이 놈으로 부족한 일이더냐?”

“예, 동시에 여러곳을 가야 할 것 같아서요.”

“말 해 보거라.”

잠시 망설여졌다.

‘할아버지 손자가 도둑질 하려고요’라고 하면, 거의 백이면 백 말리지 않을까 싶었다.

“눈먼 돈이 있어 주우러 가려고요.”

“눈먼 돈이 있다?”

“예.”

“삼킬 수 있는 돈이더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삼키기 어려울 것 같아서 뿌릴려고요.”

“뿌려?”

“예, 요즘 특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눈먼 돈을 주워와 뿌리겠다?”

“예.”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할아버지.

내 의중을 샅샅이 살피는 모습이었다.

“이놈 위험한 계획을 세우고 있구나.”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위험하진 않을겁니다. 알아도 어쩌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서요.”

“풀어서 얘기해.”

“이건 회장의 비자금 창고를 몇군데 알게 되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할아버지.

“그래서 눈 먼 돈이구나.”

“예, 불법적으로 만들어놨을테니 어디 신고도 할 수 없겠죠.”

“이건 그 뱀같은 놈이 방비를 해 놨을 터인데?”

“소문에 의하면 메인 비자금 창고는 놈의 저택 지하에 있다고 합니다.”

“아아, 나머지는 곁가지다?”

“예, 규모가 크진 않을 것 같습니다.”

잠시 말 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입을 여는 할아버지.

“푼돈일지도 모르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느냐?”

“아마 위험하지 않을 겁니다.”

“흐음, 놈의 주머니를 털겠다라··· 그렇구나, 놈의 진짜 주머니를 털기위한 과정이야, 그렇지?”

단박에 내 의중을 꿰뚫은 할아버지.

“네, 맞아요. 카이그룹 인수를 욕심내면서도 제 곳간은 건드리지 않으려 할겁니다. 그러니 곳간을 건드릴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야죠.”

“하! 좋구나. 철웅이 저놈, 현장일을 통 안해서 멀쩡하더냐?”

뒤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던 백철웅이 말했다.

“아직 멀쩡합니다 회장님.”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이렇게 멀쩡한데?”

“어휴, 저는 아직 회장님 상대하기 버겁습니다.”

철웅의 너스레에 피식 웃은 할아버지가 다시 날 쳐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계획은 무엇이냐?”

“이건의 비자금 창고 위치는 강원도 평창, 경기도 양평, 인천항 인근. 이렇게 세 곳입니다.”

계획의 ‘계’자도 말하지 앉았는데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호라, 동시에 세군데를 덮치겠다?”

역시 할아버지란 생각이 들었다.

눈치가 정말 귀신이다.

“예, 양평은 저랑 김장원 사장과 갈 계획이고 인천항 인근과 강원도 평창쪽에 백 실장, 정 실장을 보내려고 합니다.”

“쯧, 손자놈 도둑질 시키는 할애비가 되겠구나.”

“하하, 도적질이 아니라 의적질이 될 겁니다. 김장원 사장은 우리가 ‘활빈당’이라며 좋아하더군요.”

“녀석, 하여간 기름칠 한 혓바닥은 한시를 쉬지 않는구나.”

허락이었다.

“철웅이 네가 고생하거라, 가까운 인천을 맡아.”

아직까진 백철웅을 내 품에 주지 않겠단 뜻이 포함된 명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할아버지 뜻에 따르라는 신호를 보냈다.

“예, 회장님.”

“오늘 밤에 바로 가느냐?”

“네, 이미 적절한 인원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머리만 필요하다는 얘기구나.”

“하하, 예.”

“오냐, 일 보거라 오늘은 이 노인네 혼자 적적하게 탁주나 한 사발 해야겠구나.”

굳이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말.

행여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걱정을 하고 있겠다는 얘기와도 같았다.

“걱정하실 일 없을겁니다.”

“세상일을 너무 쉽게만 보지 말거라,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도 변수라는 것은 있는 법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내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자 백철웅이 할아버지에게 깊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날 따라 나왔다.

“도련님.”

“네, 실장님.”

“요즘 호석이 그 놈 얼굴이 좋더라니··· 이런 재미있는 일들을 하고 계셨습니까?”

분명 정호석의 입을 통해 내 일거수일투족이 보고 될거라 생각했는데, 백 실장이 모르고 있는 것은 의외였다.

할아버지가 더 이상, 내 상황을 보고 받지 않는 모양이다. 이제 완전한 신뢰를 얻어낸 것 같다.

“오늘 고생 좀 해주세요.”

“고생이랄게 있겠습니까?”

자신감 넘치는 표정.

현장일에서 손을 거의 놓은 것으로 알았는데,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라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이럴때 쓰는 걸까? 백철웅이 과연, 몸을 쓰는것은 어떨지 몹시 궁금하지만 실제로 볼 길은 없으니 조금은 아쉬웠다.

“예, 그럼 믿겠습니다.”

“네, 걱정하지마십시오.”

“자세한 얘기는 정호석 실장이 얘기해줄겁니다.”

“네, 통화하겠습니다.”

***

경기도 양평의 비자금 창고.

이 곳은 잘 알고 있던 곳이다. 전 삶, 이곳에서 꽤 많은 돈을 캐리어에 담아 옮겼던 기억이 선명하니까.

“얼마나 있나 구경이나 해봅시다.”

내 말에 김장원이 눈과 코만 뚫린 복면을 썼다.

총 일곱의 남자들이 김장원을 따라 복면을 쓰고, 그것을 확인한 김장원이 말했다.

“준비들 되었제?”

““예””

“흐흐, 대표님 댕겨 오겄습니다?”

“예.”

허락이 떨어지자 김장원이 손을 뻗어 비자금 창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드가자~”

어쩐지 몹시 신나보이는 그.

총원 8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야심한 야밤, 조용하게 침투를 시작했다. 빠르게 경보하듯 주택으로 위장한 창고로 접근하는 우리 직원들.

산보라도 하듯, 천천히 걸어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구경했다.

“뭐, 뭐야?”

다급하게 튀어나오는 양복쟁이 몇이 보였다.

이왕지사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하게 접근하던 직원들이 쏜살 같이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무리를 이룬 늑대가 사냥감을 공격하는 것과 같은 모습.

훌쩍 뛰어 올라 삼단봉을 찌르는 직원들, 이어서 약간의 스파크가 눈에 보이고 경비들은 풀썩 풀썩 자리에 쓰러졌다.

그 사이, 뒤쪽에 새롭게 나타난 양복쟁이 하나가 품에 손을 넣는 찰나.

“아따 고것은 안되제!”

김장원이 이리처럼 날렵하게 움직여 놈을 덮쳤다. 놈의 손에 들린 것은 경보장치로 보였다.

“이거시 끝이여? 아따 몸도 못 풀었는디.”

주변을 둘러보던 김장원의 말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우리 직원들의 실력이 대단해서 인지 좀 싱겁게 끝난 기분이 들긴 했다.

양복쟁이 여덟을 김장원을 포함한 우리직원 여덟이 제압하는데 걸린시간은 5분이 넘지 않았다.

분명 전 삶에서 이 양복쟁이들은 삼현의 칼들이었다. 어지간한 조폭들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만큼 현재 할아버지의 직원들이 확실히 이런쪽으로는 좀 특화되어 있는 것 같았다.

명동을 오시하던 이유 중, 이것도 분명 한몫을 할 터.

내부로 들어가니 출입문 바로 안으로 커다란 금고 문이 보였다.

“워따 금고 사이즈 보소?”

출입문 전체가 금고로 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직원들은 금고를 확인하고, 다시 차량에 가 다양한 장비들을 챙겨왔다.

내가 열어버릴수도 있지만 참았다. 전문 꾼으로 보일지도 모르니까.

약 20분 정도가 흐르고, 결국 금고의 문을 거의 강제로 열었다.

“총 얼마에요?”

“잉, 현금이 30억 금괴가 한 50억쯤 되지 싶습니다. 채권도 솔찮네요.”

“무기명이죠?”

“예. 깨끗한 놈덜로 120장이네요.”

“총 200억?”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김장원.

방안을 쭉 훑는데, 확실히 아직 5만원권이 없어서인지, 봉고차가 아니었다면 옮기기에 지장이 있었을 것 같았다.

“다 챙기고, 가죠.”

“예.”

우리 직원들이 돈을 옮기는 사이 품에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예.”

-강원도 끝냈습니다. 총액 200억입니다.

“알겠습니다. 자세한건 만나서 얘기하시죠.”

-예.

정호석에 이어 백철웅에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도련님, 인천 끝냈습니다. 총액 200억입니다.

“알겠습니다. 우리 창고에서 뵙죠.”

-예,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다 옮겼으면 이동하죠.”

““예.””

하나 같이 200억을 말한다. 이건의 평소 성격을 보여준다. 완벽하려고 하고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그 짜증나는 성격을 말이다.

***

부스스한 몰골로 눈을 뜬 이건.

계속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를 짜증섞인 눈으로 바라보다 전화를 들어올렸다.

“뭐야?”

기분이 좋을리 없으니 톡 쏘듯 전화를 받은 이건.

-회장님, 인천, 양평, 평창의 창고가 털렸습니다.

잠시 가만히 있던 그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뭐라고?”

-인천, 양평, 평창······

“네들 도대체? 이새끼들이··· 남종현 실장 바로 들어오라고 해.”

-예!

자신의 기업 사명이 선명하게 찍혀있는 휴대폰을 바닥에 던져 부숴버린 이건이 씩씩 거리는 거친 숨을 내쉬며 침실을 벗어나 집무실로 들어갔다.

담배를 두 개피쯤 태웠을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남종현이 들어왔다.

퍽.

“읍.”

재떨이에 맞은 남종현이 비틀거리며 신음을 삼켰다.

“네들 요즘 일 처리가 왜 이 모양이야?”

“죄송합니다.”

“도대체 창고가 한 날 한시에 털릴때 네 놈은 어디서 뭘 했어?”

“면목없습니다 회장님.”

“어떻게 된 일인지는 파악이 됐어?”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 곳 모두, 같은 놈들이 턴 것 같습니다.”

“같은 놈들?”

“예, 하나같이 짜기라도 한 듯, 새벽 1시에 실행되었습니다.”

이건이 고개를 옮겨 시계를 쳐다보았다.

현재시각은 오전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할거야?”

“무기명 채권과 현금은 어떻게 할 방도가 없습니다만, 금괴를 처분하려 들면 반드시 걸리게 되어있습니다.”

“확실해?”

“예, 금괴의 앞, 뒷면에 음각되어 있는 표식이 있습니다.”

“그 정도 금 처리할 수 있는 사람 대한민국에 몇 없어, 알지?”

“예!”

이건이 손짓하자 눈치빠른 남종현이 나뒹굴고 있던 재떨이를 주워 자신의 옷으로 닦더니 이건의 앞에 내려놓았다.

담배를 비벼 끈 이건이 말했다.

“이번일에 관련된 놈들부터 훑어, 이제 도무지 네 녀석들을 믿을수가 없구나.”

“··· 죄송합니다.”

“됐어, 듣기 싫으니까 내 돈에 손덴 놈들이나 찾아 와.”

“예, 회장님.”

“종현이 너도 너무 오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

“고인물은 썩는 법이야, 네 놈이 썩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야 할게다.”

“명심하겠습니다.”

“나가 봐!”

***

맛깔난 아침 식사를 끝내고, 거실에 앉아 아침뉴스를 보며 할아버지와 티타임을 즐겼다.

-금일 새벽, 전국 각지에 천사의 손길이 전해져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사항, 김의찬 특파원 연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김의찬 특파원입니다. 지금 이곳은 서울의 한 보육원시설로 경제가 흔들려 지원이 끊겨 어려움을 앓던 중, 어제 새벽 5시경 현금다발이 가득들어 있는 사과 박스를 전달받았다고 합니다.

-액수가 얼마였습니까?

-현금은 총 3억원 상당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정말 어려운 시국에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현금상자를 발견한 보육원 직원 ‘이’씨의 말로는 상자에 동봉된 메모를 보고 그자리에 주저 앉아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습니다. 이 돈이면 당분간 아이들이 굶지 않겠다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메모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제가 그 메모를 입수했습니다. ‘모쪼록 배고픔에 꿈을 접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바른 곳에 사용해주세요.’라고 적혀 있는 이 쪽지는 많은 국민들의 심금을···

할아버지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 작품이더냐?”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푼돈에 욕심 내어 무엇하겠느냐?”

“하하, 예.”

뉴스 화면은 다시 데스크로 바뀌고, 데스크에는 꽤 많은 인물들이 나와 있었다.

-박근우 경찰청장님, 일명 ‘천사의 손길’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익명 기부’사건인데요, 경찰은 어떻게 보고 있으십니까?

-정말 대단한 일을 하신 분이죠, 할 수 있다면 찾아내 표창장을 드리고싶습니다.

-총액이 상당하던데요? 현재까지 조사된 금액은 얼마입니까?

-지금도 계속 신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만, 현재까지 밝혀진 총액은 130억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와, 정말 마음씨 좋은 독지가란 이럴때 하는 얘기인 것···

할아버지가 물었다.

“얼마나 가져 왔더냐?”

“600억쯤 됩니다.”

“음? 생각보다 적구나.”

“전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는데요?”

“허허, 그래?”

“예, 그 욕심많은 놈이 이곳저곳에 이렇게 많이 숨겨놓았을 줄은 몰랐습니다.”

“흠··· 아마도 ‘약’칠 용도로 마련해둔 것들일게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단숨에 차를 비워내곤 픽 웃더니 말했다.

“이건 그놈, 속 좀 쓰리겠구나 제 돈이라면 1원 한푼도 아까워 할 놈인데.”

-그런데, 그 기부금 상자에 어떤 표식이 있었다고요?

-예,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식인데, 얼핏 보면 구름처럼 생긴 그것이 독지가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저 표식은 무엇하러 남겼느냐?”

“약 좀 오르라고요.”

고개를 갸웃하는 할아버지에게 더 이상 설명은 생략했다. 저 표식은 내 회사, 내 그룹이 만들어졌을 때, 우리 회사의 로고로 사용할 셈이었다.

좋은 일을 꼭 숨길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만약 그때가 된다면, 이건 그놈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 기대가 되었다.

< 제 39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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