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3화. >
몇 시간 뒤.
푹신푹신한 소파 위, 널브러져 있는 이재현과 그의 똘마니라 부를 수 있는 재벌집 망나니들.
김장원이 혀를 차며 이재현의 뺨을 몇 대 후렸다.
쫙, 쫙.
“어이, 어이~ 도련님?”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고 있는 이재현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갔네, 가부렀어··· 쯧, 뭐가 이렇게 쉽냐잉 암만 여물지 않은 애송이어도 글제.”
김장원이 품에서 전화를 꺼냈다.
“예, 대표님 끝나부렀습니다.”
-그래요? 그럼 나오세요, 바로 경찰들 갈 겁니다.
“그란디 대표님.”
-예.
“나가 참말로 궁금헌게 있습니다.”
-말 하세요.
“워째서 이리 허접한 놈을 담가불면 편할 걸 자꾸 약쟁이로 맹그십니까? 다 이유가 있으시겄지만··· 아따 이 후레배 잡놈들 노는 꼬라지 하는 말 뽄새가 몇 시간 같이 안 있었는디, 복장이 터질 것 같은디요···”
-고생하셨습니다. 일단 나오세요, 오늘 고생하셨으니까 소주나 한 잔 하면서 얘기하죠.
“쯧··· 알겄습니다.”
전화를 다시 품에 넣은 김장원이 물끄러미 이재현을 내려다보았다.
“워따··· 미안헌디 너는 쪼까 맞아야쓰겄다. 기냥 가기가 솔찮이 뻑쩍지근혀서.”
퍽, 퍽, 퍽.
***
봉고차에 오른 김장원의 얼굴은 화가난 늑대와도 같았다. 불만이 꽤나 많이 쌓인 느낌.
“하하, 많이 언짢은 모양이네요?”
내 질문에 김장원이 마음은 그런데 차마 그렇다고 말은 하지 못하는 표정. 피식 웃으며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에게 건내며 말했다.
“우선 손에 묻은 피 부터 닦으세요, 뭐 한다고 더러운 피를 묻혀 오셨어요?”
“아따··· 그냥 가기는 영, 저번에도 그렇고 뻑쩍지근 혀서요, 워차피 저 놈 또 들어가봤자 얼마 있지도 않을 거신디요, 또 마약병동 들어가서 여염집 처자랑 노가리나 까다가 나오겄죠잉.”
“그게 불만이에요?”
“대표님이 저것들 말하는 꼬라지를 보셨어야 헙니다··· 진짜 귀가 썩습니다 썩어문들어져요.”
안 봐도 뻔했고 듣지 않아도 들린 것 같았다.
놈들이 가진 선민의식이야 전 삶에서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던가?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을테니 김장원의 불만을 이해 못할 건 없다.
“김 사장님.”
“예, 대표님.”
“진짜 처벌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예?”
김장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저 놈, 이재현이 절망과 공포라는 나락까지 떨어지고 나서 숨통을 끊어놓고 싶어요. 좌절하고 또 좌절해서 미쳐버리길 바란단 말입니다.”
김장원의 동공이 세차게 떨렸다. 어쩐지 정호석이 운전하고 있는 차량도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따··· 우리 대표님이 피 묻히길 꺼려서 그란줄 알았더니··· 엄청 무서운 분이시네요.”
살짝 떨리는 김장원의 목소리, 정호석도 공감하는 듯 싶었다.
“놈이 가장 무섭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얻고 싶어하는 건 제 아비의 마음과 인정이죠. 맹목적으로 제 아비의 관심을 원하는 놈입니다.”
“그렇습니까?”
“이재현 저 놈은 제 형들과 다르게 어려서부터 욕심이 많은 놈이었습니다. 그 욕심이 꼭 이건과 닮았기에 이건은 오히려 그런 셋째 아들을 엄하게 다뤘죠.”
김장원이 놀라하며 말했다.
“아따··· 하루이틀 걸려서 조사하신게 아닌갑네요잉.”
피식 웃으며 난 말을 이었다.
“여튼, 그래서 이재현은 제 아비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해 결국 삼현을 얻고 싶어하는 놈이죠. 나는 놈이 그토록 열망하는 것들을 확실하게 차단해버릴겁니다.”
“아아, 그랴서 굳이 ‘약쟁이’로 만드시는 갑네요.”
“그렇죠, 이건 그 놈은 아무리 제 아들이라고 해도 자신이 쌓아올린 삼현이란 성에 오물을 던지는 인간을 용서 할 리 없습니다. 한 번은 몰라도 두 번은 없는 인간이죠, 그게 그가 제 형들을 다 제끼고 삼현을 거머쥔 이유입니다.”
때마침, 봉고차 옆으로 경찰차 수대가 지나쳐간다.
입꼬리를 스륵 들어올리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운전을 하던 정호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네.”
“그, 삼현에서 우리를 의심하진 않겠습니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의심이야 진즉부터 하고 있었을테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 확신은 아니다.
“삼현 놈들은 너무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예?”
김장원도, 정호석도 내 얘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
“놈들은 자신들이 마치 ‘신’이라도 된 듯 착각하는 부류죠, 감히 대한민국에선 누구도 자신들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이런일을 이렇게 쉽게 당하는 것이죠, 김종석씨의 배신은 절대 그들이 생각 할 수 없는 종류일겁니다.”
“······”
“군주론에는 이런말이 있습니다. 공포는 효과적인 통치의 수단이지만, 지속된 공포는 반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요.”
“아아··· 오랫동안 공포 통치를 이어가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예, 자신들은 ‘잘못’하는 부류가 아니라는 썩어빠진 생각에 매몰되어 있거든요. ‘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로운 ‘개’를 데려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 할 겁니다.”
“삼현에 피바람이 불겠군요.”
“그러니까 결론은 공격에 대한 방비따위는 되어 있지 않을테니까, 걱정할게 없다는 얘깁니다. 설령 우리를 눈치 채더라도 마찬가지고요.”
정호석이 어쩐지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죠, 감히 대표님을 어쩌지 못하겠죠.”
***
똑똑똑.
“뭐야?”
벌컥, 이건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는 비서실장 남종현이었다.
“회장님···”
“뭔데 보고를 망설여?”
이건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다.
그도 그럴게, 어떻게 하면 카이 자동차를 삼킬까를 고민하던 찰나였기 때문이었다.
“재현 도련님이··· 또 마약에 손을 대셨습니다.”
쾅!
“뭐야?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게 맞아?”
“예.”
“그런 망나니 같은 놈이! 풀려난지 몇 시간이 되었다고 또 약을 해!”
“죄송합니다.”
촤라라락.
책상위에 있던 서류들이 남종현의 얼굴을 맞고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 새끼들이 어떻게 관리를 하면 내 자식새끼가 그모양이 됐어!”
“3 비서실, 선임비서 김종석이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하!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줬더니 배신을 했다? 말해 봐, 네 놈들에게 해주는 대우가 부족하더냐?”
“분에 넘칩니다.”
“헌데 왜 자꾸 이런일이 생겨?”
남종현이 대답을 망설였다.
이건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말해보래도!”
“··· 재현 도련님은 감히 저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회장님.”
“하! 네 놈들이 내 핏줄을 컨트롤 하려 했어?”
“그, 그것이 아니라······”
쫙!
남종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이건.
“핑계는 필요 없고, 지금 일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어?”
“우선, 마리화나 10kg이 도련님과 건양의 차남, 후성의 삼남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도대체 그 놈은 어디서 자꾸 마약을 들여오는거지?”
“돈이면 안될게 없으니···”
“그래··· 이 나라에 돈이면 저승사자도 부리지 쯧. 후우···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제 형들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놈이 욕심과 눈치가 제법이라 두고보았더니··· 너무 방치했다 싶군.”
남종현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건양과 후성에 연락해 찬조 좀 하라고 그러고, 돈좀 찔러 줘 목격자나 따로 덤터기 씌울 놈은 없어?”
“처리하겠습니다.”
“재현이 그놈··· 정신 차리면 보고 해, 직접 얼굴을 봐야겠어.”
“예!”
***
세상이 경직된 것 같고, 눈물과 울음소리, 부부들끼리의 싸우는 소리가 이골이 날 것 같은 대한민국의 97년 8월.
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피가 마르는 찰나에 터져나온 소식.
재벌가 망나니들의 마약파티 소식은 국민들의 지탄을 받기에 너무나도 충분한 일이었다. 언론은 연일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고, 무엇보다 삼현의 삼남 이재현은 ‘특사’로 풀려난지 고작 하루도 되지 않아 다시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입건되었으니, 국민들의 분노는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대통령의 입에서 ‘마약 철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크게 이슈가 되었고, 덕분에 마약파티에 참석한 건양, 후성, 삼현은 바가지로 욕을 먹고 있었다.
쫙.
이건이 자신의 아들 이재현의 뺨을 후렸다.
이재현의 동공이 세차게 떨렸다. 단 한번도 자신의 아비가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른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네 놈이 끝내, 이 아비의 삼현에 아비의 얼굴에 똥칠을 하는구나.”
“아, 아버지··· 정말 대마초인줄 몰랐습니다!”
이재현의 말에 얼굴이 붉어진 이건이 신문 뭉텅이를 그의 얼굴에 던지며 호통쳤다.
“시끄러워! 겨우 한 달을 못참고 약을 해? 미국으로 조용히 건너갔으면 될 일을 이따위로 만들어!”
“······”
“이제 네 놈 입에 ‘아비’라는 말을 담지 마라, 네 놈은 내 가문의 수치다. 돌아오는 해에 대통령 특사로 빼주마, 그것이 마지막 애비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할터, 미국으로 가 네가 하고싶은대로 살아라. 약을 처먹든 계집질을 하던,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
“아, 아버지!”
“아비라고 부르지도 마! 평생 편안하게 먹고 살고 싶으면 그 입에 감히 나를 담지 말아라, 네 놈이 ‘삼현’과 얽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얘기야, 알아 들어?”
“크윽···”
***
재벌가 망나니들의 재판은 이례적인 속도로 치뤄졌다. 정부가 경제위기를 속이고 싶어하니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시선을 돌릴 자극적인 뉴스가 필요하기 때문이겠지.
원래라면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 몇이 고생을 해야 했을텐데, 이번 삶에선 욕받이 할 ‘재벌가 망나니’들이 있으니 정부 입장에선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연예인들 입장에서 호재일지도 모르겠다.
‘삼현의 삼남 이재현, 중증의 마약중독 치료감호소 이송.’
‘재벌가 망나니들 징역 5년, 삼현가 망나니는 징역 10년’
‘이번에도 솜방망이 처벌 아니냐, 국민들의 원성 무시하는 법원의 판결’
‘대한민국도 마약 청정국가 아니다. 마약사범들에게 철퇴내려질 것’
신문을 접고, 운전석에 앉아 있던 김장원과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정호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준비 됐죠?”
김장원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정호석은 기다렸다는 듯 먼저 밖으로 나가 차량 문을 열어주었다.
기다렸다는 듯, 검은 모자와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차량에서 내렸다. 치료감호소의 후문 으쓱한 곳에서 사내 여덟이 우리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의 복장은 ‘간호사’복과 함께 ‘교도관’복장도 보였다.
드르르르륵.
그들의 손에 끌려오는 물체는 병원침대였다. 바퀴소리가 요란하지만 주변에 우리를 의식하는 눈은 전혀 없었다. 어두컴컴한 밤인 것도 한 몫하겠지만, 애초에 눈들을 없애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마 지금 침대를 가져오고 있는 저들은 우리를 ‘삼현가의 인물로 착각할테다.
문득 이건이 입 버릇처럼 얘기하던 말이 떠올랐다.
‘돈 이면 저승사자도 부리는 게 한국이다.’
정말 그런 것 같아 씁쓸했지만, 지금 내게는 도움이 되는 상황이니 별 말 없이 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덜컹이는 움직임도 잠시.
바퀴달린 침대가 멈추었고 시야를 가리고 있던 이불이 조심스럽게 걷어지며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들어왔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를 세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맞은편에서 허리를 세우는 김장원이 보였다.
“이재현은요?”
조용한 물음에 조용하게 대답하는 정호석.
“맞은편입니다.”
“갑시다.”
드르륵, 드르륵.
두개의 문이 열리고 나는 가슴팍에 달려 있던 플래시를 켰다. 그제야 고른 숨소리가 멈추고 이재현이 번쩍 눈을 떴다.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하는 이재현.
“아이 시발, 자는데 뭐야? 이새끼들이 내가 누군지 몰라?”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신 삼현의 망나니.”
“이 시발놈이!”
당장이라도 침대에서 일어나 달려들 것 같은 표정인데 수갑 때문인지 제 자리에서 발버둥만 치는 놈. 양 손에 수갑이 묶여있는 것이 반항이 심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놈의 침대 곁으로 가까이 간 정호석이 머리맡에 있던 등을 켜는 사이 난 마스크를 벗었다. 내 얼굴을 확인한 놈이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짓는다.
“처, 천우진?”
“반가워, 오랜만이지?”
잠시 멍하니 있는 이재현.
그 사이 작은 의자를 놈 앞에 가져가 앉았다.
“너였냐? 네가 시발··· 날 약쟁이로 만들었어?”
“빨리도 눈치 챘네?”
“이 개새끼가 내가 누군줄 알고? 사채 놀음이나 하던 노친네 믿고 설치는거냐?”
“아직 상황 파악이 안돼?”
“내가 여기서 나가면, 네가 살 수 있을것 같냐? 여기 대한민국이야 개새끼야, 우리 삼현의 세상.”
피식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네가 지금 살 수는 있을 것 같고?”
놈의 눈이 크게 떠지고 동공이 세차게 흔들린다.
명백한 공포가 놈의 눈에 보였다.
“네가 다시 나왔어도, 삼현의 세상은 없어 내가 그렇게 만들거거든.”
“무, 무슨.”
“이유를 알고 뒤지면 좀 덜 억울하더라.”
“뭐?”
“그래서 난 이유따윈 알려주지 않으려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장원이 마스크를 벗고 품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흉신악살처럼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이재현이 덜컥 굳어버렸다.
주사기가 점점 이재현의 팔뚝으로 다가가고.
“시발, 안돼! 안돼! 간호사! 교도관! 이 시발새끼들 다 어디간거야!”
미친듯 고함을 치는 놈에게 말했다.
“앞으로 한 시간동안, 폭탄이 터져도 아무도 안 온다. 알잖아? 돈이면 저승사자도 부리는게 대한민국이라는 거.”
“살려줘, 살려줘라 우진아 나한테 왜그러냐 도대체!”
놈의 팔뚝에 결국 주사기가 꽂히고.
“가라, 너 같은 것들은 지옥이 더 어울려.”
< 제 33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