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8화 (28/458)

< 제 28화. >

JB모건의 체이스, 골드만글러브의 삭스.

저 둘은 두려운 것이다.

앞으로 211억 달러가 얼마나 더 커질지 가늠하기 어려우니 이렇게 옵션을 행사하라며 내게 온 것이다.

지금, 단순하게 211억달러라는 큰 돈때문에 저 둘이 움직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짓이니까. 영업이익이 마이너스 되는 것은 기업으로서 좋지 않다.

주가의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는다. 특히나 투자사, 증권사, 은행등은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신뢰를 잃은 금융사의 주가는 당연히 곤두박질 칠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저 둘의 손해는 단순히 내게 지급할 돈이 전부가 아니라, 그 이후에 이어질 주가하락과 이미지 추락까지 염두해 두고 있는 것이다.

스윽 고개를 돌려 강기태를 바라보았다.

강기태가 조용히 귓속말로 말했다.

“대표님, 가만히 두면 최소한 280억불입니다.”

일부로 ‘불’이라는 단어로 ‘달러’라는 말을 삼가하는 모습, 역시 돈냄새는 기가막히게 맡는 사람답게 눈치가 좋다. 행여나 저들이 우리들의 말을 듣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포함된 말이었다.

“우리는 알고, 저들은 모르는게 뭐라고 생각해요?”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강기태가 눈을 크게 뜨더니 말한다.

“아아, 바트의 가치.”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전 삶에서 나는 바트가 얼마나 추락하는지 명백하게 보고 왔다. 그러나 저들은 아직 알지 못하는거다, 끝 없는 나락으로 걸어갈 것 같으니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이다.

또한, ‘나’라는 변수가 베팅한 5억7천만 달러도 조금이나마 태국이 추락하는 것에 한 손을 보탰는지도 모르겠다. 200억 달러가 훌쩍 넘어가는 돈은 이제 ‘세계시장’에 변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생각 하고 온 조건이 없습니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하니, 그들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조건부터 가져오세요.”

내가 소파에서 몸을 떼니, 체이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한다.

“가져 왔습니다!”

다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저들은 알고 있는거다 하루, 한시간이 지날수록 내 돈은 자가증식하는 어떤 생물처럼 미친듯이 불어나고 있을테니까.

“우선 고객님의 투자회사 스카이 인베스트먼트를 우리 JB모건의 ISDA 파트너로 모시겠습니다.”

“골드만글러브도 마찬가지입니다.”

헛웃음이 튀어나온다.

ISDA, 국제 스왑 파생상품 협회의 약자이다.

일정 액수의 자본을 굴리는 투자사는 저 협회에 가입할 수 있고, 저 협회에 가입해야만 사고 팔 수 있는 상품들이 있다.

한 마디로 ‘있는 놈들만 같이 놀자’하는 곳이다.

“궁금해서 물어보는데요.”

“예, 말씀하시죠.”

“듣겠습니다.”

“200억 달러의 투자운용금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ISDA를 따는게 어려울까요?”

선심쓰듯 말했지만 사실 200억대의 투자금을 굴리겠다고 협회에 가입하겠다 얘기하면 두손두발 번쩍 들면서 달려와서 가입서를 디밀터.

체이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예, 쉽겠죠 그러나 조금이라도 귀찮아 하실 수 있는 고객님을 대신해, 우리가 대신 일을 처리해드리겠다 뭐 그런의미였습니다.”

능구렁이같은 스크루지 영감이 잘도 빠져나간다.

대단한 혓바닥이다.

“또요.”

“세금문제를 대신 해결하겠습니다.”

이건 좀 솔깃한 조건이다.

저들도 그걸 노리고 히든카드를 내민 것 같았다.

“어떤 방식으로 해결 하려고요?”

“우리회사와 골드만글러브가 ‘대납’형태로 움직일겁니다. 이미 정부와 협의는 끝났습니다.”

“호오.”

280억 달러를 벌었다고 280억 달러가 전부 내 돈이 되는게 아니다. 엄연하게 세전금액이다. 지금 저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 온전한 수입을 가져갈 수 있게 해준다는 얘기다. 어떤 방식으로 그게 가능한지는 저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고 나는 그냥 앉아서 돈만 벌면 된다.

힐끗 바라보니 CIA한국지부장이라던 인물이 매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노인네들이 그걸 승인해줬어?’하는 표정이다.

그만큼 미국 내에서 JB모건과 골드만글러브가 가지고 있는 힘이 대단하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체이스와 삭스는 그 대단한힘을 지키기위해 내게 사정을 하고 있는 중이고.

“그리고 또요?”

이어진 내 질문에 가까스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던 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단한 조건인걸 아는 놈이 왜그래? 하는 표정이다.

“불투명한 수익 대신, 확실한 수익을 챙겨드리는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님, 그런데 부족하십니까?”

문득 영화 타짜의 주인공 대사가 떠오른다.

“나도 인생 단맛, 쓴맛, 똥맛까지 다 본 새끼야 그러니까 말빨로 조지지마.”

“······”

“······”

한국말이었지만 된발음이 많이 들어갔으니 뉘앙스는 확실하게 전달된 것 같았다.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두분이 빨리 내 옵션을 청산하게 하려는이유, 솔직히 골드만글러브랑 JB모건도 태국 바트화로 재미좀 보려고 하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당신들이 나서서 공격하기 시작하면 ‘내 옵션’의 가치는 더욱 오르고, 당신들이 얻을 수익이 떨어지고, 어쩌면 수익이 아니라 마이너스일지도 모르고. 안 그래요?”

핵심.

심장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 표정들이다.

“알고있는 대규모 헤지나 사모들도 난리를 칠테고, 쭉쭉 하락하는 바트화 가치에 손발이 떨리는 거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 당신들은 아직 하나의 조건을 더 가지고 있을텐데요.”

이어진 내 말에 체이스와 삭스가 눈빛을 주고 받더니 잠시 사무실 내부에 침묵이 들어앉았다.

“충분히 고민 하세요.”

눈치가 빠른 우리 스카이인베스트의 얼굴마담 리셉션 김혜원이 내게 냉커피를 내왔다. 엄지를 척 들어올려주곤 호로록, 냉커피를 마시며 잠시 저 둘을 지켜보았다.

1분 1초마다 내 돈의 가치가 바뀌는데, 당연히 고민이 오래갈 수 없다.

“하아, 이거··· 월가에 어린 천재가 나타난게 아닌가 싶군요.”

“그러게 말이야··· 이거 우리가 고객님한테 졌구만 확실하게 밟혔어.”

“하하, 오랜만입니다. 개인이 우리를 압도하는 건.”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에 어쩐지 편안함이 느껴질정도다.

“고객님이 말씀하신 마지막 조건, ‘수수료’ 포기하겠습니다.”

“우리 골드만글러브도 마찬가지로 포기합니다.”

역시 내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이것도 다 염두에 두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너무 채찍만 던졌다.

이정도로 채찍질 당했으면, 당근정도는 던져줘도 되겠지.

“두 분의 솔직하고 냉철한 판단력에 감탄했습니다.”

“하하, 젊은 천재에게 그런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군요.”

“앞으로 좋은 파트너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씨익 웃으며 말했다.

“수수료는 그대로 드리겠습니다.”

둘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굳이 공돈을 준다고?’하는 표정들이다.

200억달러가 훌쩍 넘는 수입에 수수료 퍼센티지를 먹이면 적은 돈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 기준에서 그렇게 큰 돈도 아니다. 나는 앞으로 세상의 돈을 쓸어담을 테니까.

“대신 쉬울 수 있는 다른 조건을 걸고 싶군요.”

체이스가 다 식어빠진 믹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말씀해보십시오.”

삭스도 마찬가지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두 분과 아주 우호적인 관계형성.”

“이미 파트너가 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체이스의 말이 맞습니다.”

“그 정도 드라이한 관계 말고요, 전폭적인 지지를 원합니다.”

“으음.”

“아아.”

둘이 다시 말이 없어졌다.

수수료라는 돈 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기에 둘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전제를 달죠, ‘한국시장’에서라고.”

둘이 서로를 쳐다본다.

이건 뭐, 무조건 들어줘도 손해가 아니다. 한국이란 나라는 저들의 입장에서 그냥 ‘용돈벌이’정도의 작은 나라일테니까. 고도의 성장을 이어가는 대한민국을 세상은 아직도 과소평가 하고 있다.

수수료라는 그 얼마 안되는 돈으로, 저 둘의 힘을 일부나마 가져온다면 미국이라면 그저 고개를 숙여대는 윗대가리들의 행동엔 제약이 올터.

“좋습니다.”

“좋습니다.”

흡족한 웃음이 둘의 얼굴에 떠오른다.

“그럼 계약서 작성하시죠?”

***

같은 시각 이건 회장의 집무실.

“이 보고서 언제 받은거야?”

날카로운 이건의 질문에 어물쩍 거리는 사내 둘.

이건이 혀를차며 말했다.

“쯧쯧, 금융정책실장, 대외경제국장이란 놈들이 쯧쯧··· 그나저나 천혁수 이 노친네는 이걸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하여간 돈 냄새 하나는 기가막히게 맡는구만.”

이건의 힐난에 얼굴을 붉히고 있던 사내들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인물이 말했다.

“하하, 이 회장님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아닙니까? 이거 우리가 아무한테나 알려주는게 아닙니다. 크음.”

이건이 온 몸 가득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지만, 그래도 말을 꺼낸 사내를 함부로 하긴 어려운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래도 우리 김 수석님이 이렇게 발걸음을 해주니 감사합니다.”

“허허, 우리나라 경제의 기둥아니십니까?”

그는 대한민국의 현 경제수석이었다.

이건이 골똘히 무엇인가를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대처 할 생각입니까? 외환보유고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경제수석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IMF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판단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손에들린 보고서가 보고된 시기부터 대처했다면 더욱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겠지만, 이미 훌쩍 시기가 지난 상황이다.

그렇다고 대처를 할 수 없느냐, 그렇지는 않았다. IMF가 아니더라도 얼마든 다른 방법들을 강구해볼 수 있었다. 최후에나 쓸 방법이 IMF다.

“어마어마한 시장개방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이건의 입에서 핵심이 흘러나왔다.

저 말은 대한민국에 외국자본이 커다랗게 흘러온다는 것이고, 그건 곧 대한민국 경제가 외국자본에 의해 흔들리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은 최대한 컨트롤 해 봐야지요, 이번이 좋은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시끄럽게 떠드는 놈들, 일은 안하고 월급은 받아가는 놈들, 그런 놈들때문에 우리 이 회장님같은 기업가들이 힘든 것 아닙니까?”

경제수석의 말에 이건이 피식 웃었다.

“노조고 뭐고 그런 빨갱이같은 생각 품고 있는 것들 싹 다 쳐내고, 열심히 일할 놈들만 남겨야죠.”

서민들은 나락으로 보내고, 기득권들은 더욱 큰 힘을 얻게만들겠다는 말과 일맥상통.

빈익빈 부익부의 극대화를 얘기하는 경제수석의 눈에 언뜻 광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건은 매우 흡족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IMF에서 들어오는 달라는 어떻게 됩니까?”

이건의 질문에 경제수석이 뭘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표정을 짓는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대답이지만, 이건은 이미 들은 것이나 진배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처조카가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데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하다보니, 취업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경제가 나아저야 할 텐데요.”

경제수석의 입에서 나올소린가 싶었지만, 장내에 그 누구도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건이 힐끗 남종현을 쳐다보았다.

“마침 적당한 자리가 있습니다.”

남종현의 대답에 경제수석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바쁘게 움직이셔야 할 회장님이니까, 우리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예, 멀리 안 나갑니다.”

***

소파에 앉아 나를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정말 대한민국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하구나.”

“예.”

“태국처럼··· 우리나라도 그리 되리라 보느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태국보다 위험도가 높았다는 평가들이 있던 미래였다. 그나마 말도 안되는 ‘국민성’으로 외환위기를 타파한 대한민국이 특이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IMF로 갈겁니다.”

“하··· 멍청한 놈들이 통째로 나라를 갖다바쳐?”

“은행설립 끝났다고요?”

“오냐, 월 말에 창립행사가 있을게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조만간 할아버지 외화보유고에 대해서 파란지붕에서 어떤 요청이 날아올수도 있습니다.”

“크음··· 내 돈을 탐내겠다?”

할아버지를 믿기에 이 정도 언질만 던져주었다.

곧 달러가 왕이고, 황제고, 신이 되는 세상이 올테다.

“저는 일이 있어서 일어날게요 할아버지.”

“오냐, 네 놈도 바쁘구나.”

“바빠야죠, 길바닥에 돈이 나뒹굴어다니는데.”

“허허, 좋은 말이구나.”

피식 웃으며 정호석의 경호를 받으며 차량에 올랐다.

“미팅 장소가 어디라고요?”

“예, 도련님 힐튼 호텔 커피숍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저번에 이건 그 뱀같은 놈에게 훅을 날려줬으니, 이번에는 숨도 못쉴 만큼, 커다란 바디블로 한 방 날려줄때가 된 것 같았다.

문득, 미래의 줄임말이 생각났다.

“이걸 명존쎄라고 하던가?”

< 제 28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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