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4화 >
아주 미친듯이 고개를 흔들어 재끼는 이재현.
‘도리도리’라고 불리는 마약이 어째서 ‘도리도리’인지 알 것 같았다.
“신났다 아주.”
“그치? 신나지?”
이미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로 보였다.
내 파트너였던 여자가 이재현이 입을 벌릴 때 마다, 엑스터시를 입 안에 넣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먹은 엑스터시가 벌써 다섯 알이다.
그러니 제 정신을 차릴래야 차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충분한 것 같으니, 나는 걸음을 옮겨 음악이 나오던 스피커를 꺼버렸다.
춤을 추던 여자들이 날 바라본다.
“퇴근들 해.”
여자들이 똥 씹은 표정을 했지만, 곧 내 눈을 보더니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뭐야? 왜? 우리 둘이 놀려고?”
싱글벙글 웃다 못해, 입이 찢어저라 벌리고 있으니 침이 줄줄 흐르는 이재현. 전 삶, 마지막 순간에 날 보며 웃고 있던 이재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화가 났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쳐 오르다 허탈했다.
너무나 허탈하도록 쉬웠다. 이렇게 허술했다.
힘이 있으니, 돈이 있으니 이재현 같은 허접한 놈을 감아버리기가 이렇게 쉬웠다.
하늘같았고, 하늘이어야 했던 존재가 이렇게 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전 삶의 나의 모든것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 쉽냐, 이 개새끼야···”
“어어, 막 욕한다? 크크큭, 시발러마~”
그래도 좋다고 싱글벙글.
저벅저벅 걸어가 이재현의 머리끄덩이를 부여잡고, 아래위로 흔들었다.
“오냐, 그렇게 좋다는데 내가 좋게 해주마.”
보통사람들이라면 토악질이 올라올 것 같은 상황일텐데 이재현은 ‘키키킥’하고는 이상한 웃음을 흘린다.
때마침 저벅저벅, 층계를 오르는 김장원이 보였다.
굶주린 늑대와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그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자아~ 그럼 이놈을 어찌 해불까요?”
찰나의 고민이 스쳤다.
당장이라도 찢어죽이고 싶지만 참았다.
이것보다 더한 복수가 필요하다.
“뽕 맛좀 보여줍시다. 딱 숨넘어가기 전까지만.”
“잉~ 약 없이는 살지 못허게 만들어라 이말이시죠?”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문제 되지 않겄습니까?”
“이대로 가긴 아쉽잖아요?”
“흐흐 하긴, 지난 몇주간 이새끼 하고다니는 뽄새를 봤는디, 왐마왐마 김일성이 저리가라 합디다··· 영화 드라마 거기서 나오는 개차반 재벌들은 재벌도 아닙디다, 세상천지에 이리 들어운 넘들이 있을 줄은 참말로 몰랐다 이말이죠잉.”
대충 알만했다.
자신 외에는 모두 ‘개’로 생각하는게 이재현이다.
자신이 키우는 개.
자신을 위해 사냥하는 개.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개.
그런 개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가만두고 보지 않는 인물이었다. 잘못한게 없어도 잘못을 만들어 내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던 놈이었다.
그러니 지금 김장원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직 덜 고통스럽거든요 이새끼는··· 이 새끼가 가장 원하던 것을 빼앗고, 가장 공포스러워 하는 상황을 주고 난 뒤에, 그때가서 합시다.”
“이 놈은 사람 아닙니까? 두들기면 아프고, 모가지에 칼 디밀면 무섭지, 제깟놈이 뭣인디 버팁니까?”
“아뇨, 이 새끼들은··· 사람 새끼가 아닙니다.”
“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김장원에게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아직은, 아직은 아닙니다, 줄게 많이 남았거든요.”
“예?”
“고통, 공포, 그런 것들을 말이죠.”
“뭐 도련님이 다 생각이 있으시겄죠? 도련님만 믿고 갑니다.”
김장원과 대화를 하는 사이, 손을 멈추고 있었더니 이재현이 내손을 툭툭 치며 말했다.
“에이 떠들지 말고 더 해줘, 더.”
어서 자신의 머리를 흔들라는 듯, 내 손을 양손으로 꽉 쥔다.
“재현아, 더 좋은거 해야지?”
내 물음에 이재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더 좋은거? 뭔데? 근데 내가 형인데? 어? 왜 둘이 얘기하고 있어?”
김장원이 친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려주까?”
“어 이새끼 반말을해? 개가 주인한테 반말을? 우히히, 근데 왜 기분이 좋지? 아 궁금해 니네 둘이 뭔데?”
김장원이 굳이 입을 열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는 친절함을 보였다.
“그러니까 말이야···”
약 3주 전.
이재현이 자주 출몰한다고 소문난 고급 술집.
김장원이 이재현이 출몰했다는 소식에 술집앞에 도착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스읍, 후.”
하얀 담배연기 사이로, 문득 천우진의 말이 떠올랐다.
‘뱀의 아가리에 잠시 들어가셔야겠습니다. 그게 우리 작전의 시작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뱀의 아가리에 대가리를 디밀러 온 김장원. 담배를 비벼 끄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사전에 섭외해둔 화류계 여인에게 스윽, 알약을 내밀었다.
“이재현이 술잔에 넣어.”
“뭐? 오빠 이러면 나 죽어.”
“그리고 걸려.”
“뭐? 걸리라고? 무슨 개소리야 진짜!”
“닥치고 걸려, 그다음에 불어. 김장원이가 이 약을 타지 않으면 죽이겠다 협박했다고. 알아 들었어?”
“··· 오빠, 무슨일인지 모르겠는데, 이거 하지마··· 오빠 그러다 진짜 죽어.”
김장원이 피식 웃고는 말했다.
“닥치고 일이나 해, 큰걸로 한 장 짜리다.”
“시발··· 나 얼굴에 스크래치 나면 안돼, 알지?”
“책임진다.”
“오빠라서 믿는다.”
입술을 앙 다물고 이재현이 술을마시고 있다는 룸으로 들어간 여인,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방의 문이 ‘쾅!’하고 열렸다. 장정 둘에게 끌려나오던 여인이 손가락으로 김장원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 새끼에요!”
김장원은 반항 한 번 없이 순순히 장정들의 손에 이끌려 이재현이 있는 룸 안에 들어갔다.
거만하게 앉아 있는 이재현이 말했다.
“일단 좀, 두들겨.”
김장원을 끌고 왔던 사내들이 김장원을 두들기고, 만신창이가 된 김장원을 확인한 이재현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좀, 볼만 하네.”
이재현의 그 뱀같은 눈을 마주하자, 다시 천우진의 말이 생각나는 김장원.
‘김 사장이, 연기를 좀 해줘야 됩니다. 쉽지 않겠지만, 믿어볼게요?’
입술을 한 번 깨물고 화들짝 놀라는 리액션을 취하며 무릎을 꿇고는 말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너 뭐하는 새낀데, 내 술에 약을타냐?”
김장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긴 설명을 들은 이재현이 들고있던 크리스털 잔을 김장원의 얼굴에 던졌다. 이마가 깨지고, 얼굴 여기저기 유리가 긁고 지나가며 피가 흘렀다.
“천우진 그새끼한테 예뻐보이고 싶어서 이 지랄을 해? 뒤져 개새끼야.”
그게 신호라도 되었는지, 장정들이 김장원을 더 밟았다. 기나긴 린치의 시간이 끝나고, 숨을 헐떡이는 김장원에게 이재현이 말했다.
“말해봐, 널 어떻게 죽여줄까? 응?”
“살려··· 주십시오, 뭐든지 해불겄습니다.”
“네가? 네까짓게 뭘 해줄 수 있는데?”
“제가 평생, 더러운 짓거리 하믄서 살아부렀습니다. 인자 도련님 심기를 어지럽히는 것들은 나가 다 처리해불겄습니다.”
“흐음···”
“온 몸이 부서져라 도련님을 위해 일하겄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뱀처럼 번들거리는 눈깔로 이재현이 말했다.
“그럼, 천우진이 한 번 감아볼래?”
김장원은 오소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천우진의 예측이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놈은 나를 감아버려라, 죽여라같은 말을 할겁니다.’
덕분에 이재현의 눈에는 ‘공포’에 몸을 떠는 것 처럼 보였을테다.
“시켜만 주시믄 이 한 몸 부서져라 해불겄습니다! 그 핏덩이 감아부는 것이 뭣이 어렵겄습니까?”
천우진을 감겠다는 얘기에, 내내 분노만 토해내던 어린뱀은 흥미를 보였다.
“그렇게 된 것이다 이것이여.”
“히히히, 맞다 우리 그렇게 만났지? 히히히 아 빨리 천우진 그 개새끼 뽕쟁이 만들어야 되는데? 어! 그러고보니까 너 천우진이랑 졸라 닮았다 개새끼야? 죽어!”
붕 휘둘러오는 손을 피하자, 김장원이 놈의 몸을 발로 밀어차 소파에 앉히고는 무릎으로 가슴을 눌러 반항을 못하도록 하고 뺨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에휴, 이 모지리 시끼야, 판때기를 깔아 놓을 때는 판에 호구 빼고는 다 네 사람으로 맹글었어야지··· 쯧, 네 놈은 한참 멀었다. 우리 도련님한테 비빌라믄.”
그러고는 능숙한 동작으로 주사기를 만지더니 내게 물었다.
“몇 알이나 처먹었습니까?”
“대여섯알.”
고개를 끄덕이곤 주사기에 있던 투명한 약물 일부를 버리곤, 이재현의 오른팔에 꽂았다.
“좋아지는거, 좋아지는거.”
이재현에게 반항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약이 들어가고 얼마지나지 않아, 이상한 소리와 함께 천정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침을 질질 흘리는 이재현.
김장원은 대충 주사기들은 이곳 저곳에 던져 놓고, 품에서 흰색 가루 한뭉텅이를 꺼내놨다.
“필로폰 2kg입니다. 이 정도면 잘만 엮으면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지 싶은디··· 암만혀도, 재벌 놈들이 무슨 수를 써도 쓰지 싶습니다. 이런 던지기로 사형은 힘들겄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마도 잘 해야 5년쯤 받겠죠.”
“그것도 약물중독으로 빠져나가서 감방 말고, 병원에서요?”
“그렇겠죠.”
“니미럴···”
“두세요, 그게 내가 원하는 거니까.”
“도통··· 도련님 말씀은 나가 이해하기가 힘드네요잉.”
“알게 되실 겁니다.”
“예, 기대 하겄습니다.”
김장원이 밀가루 같은 필로폰을 이재현의 손에 꼭 쥐어줄 때. 또각또각, 높은 하이힐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헐벗고 있던 모습이 아닌, 꽤나 어울리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온 내 파트너가 김장원에게 말했다.
“오빠 안 가?”
굶주린 늑대같던 표정에서, 어느새 푸근한 골든리트리버와 같은 표정으로 말하는 김장원.
“잉, 가야제~ 일 봤으믄.”
“입금은 확실하지?”
“아따, 확실허제!”
힐끗 날 바라보는 김장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확실히 저 여자가 아니었다면 이번 계획은 실패했을지도 모르겠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는 어떤 도박영화의 대사처럼.
저 여인은 자연스럽게 이재현의 손바닥에 있던 마약을 오른손으로 집고, 미리준비해 두었던 왼손에 있던 약을 내 입에 넣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물론 내 눈엔 모든 상황이 보였다.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재현은 내가 ‘약’을 먹느냐 마느냐만 신경쓰느라 눈치채지 못했을터.
사전에 김장원이 분명 ‘춤’을 춰야 ‘약효’가 빨리 돈다라는 언질도 했을테니, 자연스럽게 춤판이 벌어졌고, 수영장의 따뜻한 물에 원래의 마약은 빠르게 녹아 사라졌다.
“아따, 요 며칠 영화 한 번 제대로 찍었더니 솔찮이 뻑쩍지근 하네요잉.”
피식 웃으며 품에서 준비해둔 봉투를 김장원에게 주었다. 김장원이 봉투를 받아들고는 살살 흔들며 여자에게 확인시켜주었다.
“어, 얼마야? 응응? 왜이렇게 봉투가 얇아? 아, 나 지금 막 설레 두근두근거려!”
신나서 떠드는 여자, 김장원이 피식 웃으며 여자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미숙아.”
“아이씨, 실비아 정이라니까!”
“잉, 그려 정미숙이.”
김장원이 봉투를 건네다 정미숙이 손을 뻗으니 다시 슥 뒤로 빼며 말했다.
“엠바고 확실허게 하는것 알제?”
“아오 알았다고!”
얼른 봉투를 받아들고 ‘호호’하고 불어서 봉투 안 내용물을 확인하는 정미숙.
“와아, 세 장이나 들었네? 대~박!”
돈을 보고 신난 여자를 내가 불렀다.
“이봐요.”
“네~ 돈 많은 오빠.”
“오빠는 무슨.”
“에이~ 돈 많으면 오빠고 여보, 당신이지!”
“됐고, 세치혀가 길면 명이 짧아요.”
덜컥 굳어서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다, 이내 웃음기를 지우고는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명심할게요··· 어차피 저도 이거 떠들면 저 망나니 집구석에서 가만두지 않을거에요.”
“알아들은 것 같으니, 경찰들 오기전에 가세요.”
“네, 네.”
나는 바로 이재현이 누워 있는 곳을 벗어나 3층으로 올라갔다. 그 곳의 작은방에 홀로 누워 경찰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당장이라도 이건에게 전화해 말하고 싶었다.
‘어때? 이번에는 훅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하고, 비아냥거리면 놈의 속을 긁어 놓고 싶었다.
하지만 때가 아니겠지, 곧 그 때가 올것이다.
고작 이정도의 훅이 아니라 치명적인 비수가 네 놈의 심장을 찢어발길 시간이.
***
경찰서 앞.
국민들의 이목을 앗아갈 인물이 등장하니, 썰물처럼 기자들이 튀어나갔다. 내게 취재요청을 하던 것이 방금 전 같은데,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질 정도다.
“이재현씨! 언제부터 마약에 손을 대셨습니까?”
“대한민국에 필로폰을 유통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삼현그룹의 비자금 창구가 마약 유통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말도 안되는 질문을 쏟아내는 기레기들.
기자들 중 한 명이 날 쳐다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피식 웃어주면서 슬쩍 손을 흔들어주었다.
하여간 기레기들, 돈 값을 제대로 해주니 만족스럽다.
지이이잉.
차량의 창문이 내려가고, 할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경찰서가 좋은게야?”
“하하, 그럴리가요.”
“가자, 두부라도 먹어야지.”
“저보단 할아버지가 더 기분이 좋아보이시는데요?”
“하하, 그 뱀같은 놈이 똥씹을 표정을 할 것 같으니,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구나.”
피식 웃으며 차량에 올랐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차량 안에서 할아버지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다음은 무엇이냐?”
“대학부터 가야죠?”
쫙.
할아버지의 손바닥이 내 허벅지에 닿았다.
제법 따끔했다.
“의뭉은, 내가 그걸 물었어?”
따끔한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돈 벌어야죠.”
“돈?”
“예, 세상을 집어 삼킬 만큼.”
“주둥이 한 번 거창하구나.”
“또 내기라도 해야 믿으시겠어요?”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
“크흠, 일 없다.”
“달러 매입은 잘 되고 계시죠?”
“오냐, 순조롭다 원래 명동 불법시장에 외화는 많았어.”
“예, 중요한 총알이 될 겁니다. 절대, 기업들한테 대출 주지 마세요, 특히 달러는.”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할아버지, 약간의 불편한 기색이 느껴졌다.
“돈 놀이의 기본은 빌려주고 이자먹기인데?”
“다음달, 재계서열 14위 한보가 부도날겁니다.”
잘 달리던 차량이 휘청거렸다.
정말이냐는 듯 룸미러로 날 쳐다보는 백철웅.
정호석의 몸은 어느새 뒤로 돌려져 있었고, 할아버지또한 떨리는 동공을 감추지 못했다.
< 제 24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