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22화 (22/458)

< 제 22화. >

먼저 차량에 오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정호석이 홀로 차량에 올랐다.

“김장원씨는요?”

“아, 돈만 몇푼 달라기에 현금만 좀 줬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녹색 연기를 뭉게뭉게 피워내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을까.

“사람좀 풀어서, 김장원씨 감았다는 놈들 좀 수배해보세요.”

“아마 밀항을 했지 싶은데··· 우선 알겠습니다.”

“예.”

“다음은 어디에요?”

“목포입니다.”

“가죠.”

“예.”

차량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나는 눈을 감았다.

오늘만 움직여야 할 곳이 세군데나 되기에 잠깐이라도 쉬어야 했다.

그래도 한 대부업체의 ‘머리’역할을 하던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이 가진 기운이란게 일반인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군대의 이등병과 병장이 차이가 나는 것 처럼.

***

우르르.

약 50명의 장정들이 우리의 앞을 막았다.

“박충수씨, 죽고 싶습니까?”

내 물음에 장정들 사이에 고개를 빼꼼히 내민 박충수가 말했다.

“살려고 이러는거 아니오?”

“60억만 내 놓으면 될 일을 왜 키우는지 모르겠는데?”

“60억이 뉘집 개 이름이오?”

“그니까,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빌리셨으면 갚아야지 사채 한다는 분이 그런 기본도 모르시나?”

“채권 회수가 안 된다고 누누이 말 했잖소? 사정좀 봐주시오 사정좀!”

“글쎄, 지금 하는 꼬라지가 협박하는 것 같은데? 내가 쉬워 보이시나?”

“배째 씨불, 네 놈이서 뭘 어떻게 하겠다고?”

슬쩍 정호석을 쳐다보았다.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정 실장님.”

“예! 도련님.”

“배신자는 어떻게 처리합니까?”

정호석이 날카롭게 빛나는 눈으로 박충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은퇴죠.”

“생각보다 처벌이 약하군요.”

“··· 때로는 죽음이란 것도 있습니다.”

“그건 마음에 드네요.”

박충수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아야 뭐더냐? 다 재껴부러야?”

50명의 장정들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저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할아버지가 내게 이 일을 맡길때, 이런 반항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지하경제의 왕이 과연 그랬을까?

내가 처리 할 수 있고, 정호석을 곁에 두었다.

그것으로 할아버지는 믿는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능히 해결 할 수 있음을.

그리고 할아버지가 굳게 신뢰하는 정호석이라는 인물은 나 역시 신뢰하고 있었다.

보라.

50명이 다가오는데도, 정호석과 그의 부하직원 둘은 어떠한 긴장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여유롭기까지 해 보인다.

그러니 내가 불안한 것은 무엇도 없다.

“박충수 숨만 붙여서 데려오세요.”

내 명령에 직원들을 비롯한 정호석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답했다.

““예!””

전라도에는 그런 말이 있다.

여수에서 돈 자랑 하지 말고, 목포에서 주먹자랑 하지 말아라.

과연 목포의 주먹들이 셀지, 할아버지의 심복 정호석이 셀지, 기대가 되는 순간.

“연장 꺼내.”

정호석의 명령과 함께, 50대 3이라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우리 직원들의 무기는 단검, 검날의 길이 20cm안팍의 군용 대검과 비슷한 무기였다.

추풍낙엽.

정호석을 필두로 우리 직원 둘이 지나가는 자리에는 팔이나 다리 하나에서 피를 흘리는 깡패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끝내.

“저, 정실장님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푹, 푹, 푹.

다리에 두방, 오른팔에 칼을 맞은 박충수가 비명을 질러댔다. 살이 뒤룩뒤룩 오른 돼지 같은 놈이, 진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른다.

질질 끌려 내 앞에 무릎꿇고 앉은 박충수.

손을 내밀자 정호석이 공손하게 두손으로 단검을 건넨다. 흠칫 놀라는 박충수를 바라보았다.

이미 두 눈에 ‘반항심’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사, 살려만 주시면 짖지 않고 잘 따르겠습니다.”

“60억은, 어디있어?”

“채권을 아직 회수하지···”

거짓.

붉은색 연기가 그가 말하는 것이 거짓임을 상기시켜주었다.

발로 툭, 박충수의 가슴을 밀어찼다.

직원들이 눈치껏 박충수의 양팔을 바닥에 붙이고 무릎으로 막아서서는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리 박 사장님 간덩이가 얼마나 부었으면, 내 돈 60억을 꿀꺽 하셨을까?”

“저, 정말입니다!”

“간이 어디에 있더라? 여긴가? 여기?”

칼 날로 배 이곳저곳을 살짝살짝 건드리니 사시나무처럼 몸을 떠는 박충수.

“금고가 있습니다!”

“에이, 말하지 마요 나는 돈보다 박충수씨 간이 얼마나 큰가 그게 더 궁금해.”

“살려만 주십시오 살려만! 사무실 책상 아래, 비밀 지하실이 있습니다!”

내가 몸을 일으키니 직원둘이 박충수를 질질 끌고 사무실로 향했다. 꽤 무게가 나가는 책상을 치우니 확실히 마루바닥에 ‘손잡이’가 보였다.

덜컹.

손잡이를 들어올리자 계단이 드러났다.

벽면을 더듬던 정호석이 스위치를 올리니 어스름한 밝기의 빛이 선명하게 계단을 비추었다.

계단을 내려가니 사람이 걸어서 통과해도 될 사이즈의 금고가 나타났다.

“이새끼 간이 큰게 아니라, 욕심이 크네.”

내 말에 덜덜 떨면서 힘겹게 금고의 다이얼을 돌린다. ‘철컥’소리와 함께 열린 금고의 내부에는 나무 팔레트 위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현금다발이 가득했다.

직원하나가 튀어나가 액수를 살폈다.

“90억쯤 됩니다.”

내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이 놈이 진짜 우리 할아버지 돈을 꿀꺽 하려 했던 거다. 그리고 그 돈은 내 돈이기도 했다.

“6, 60억 주면 될거 아니오?”

“이자가 붙었어.”

“대관절 그런 법이 어디 있소!”

“몰랐나본데, 내 세상에선 내가 법이야.”

“이익···”

턱밑에 데어진 칼날에 힘겹게 입을 여는 박충수.

“이, 이자가 얼맙니까.”

나는 씨익 웃고는 말했다.

“네 목숨.”

“뭣?”

정호석을 바라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이 내린 명령을 이해하는 모습이 좋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돌죠.”

““예””

“호텔 잡아 놓을테니까 천천히들 오세요, 고생들 하셨는데 편히 쉬셔야지.”

들고 있던 칼을 정호석에게 돌려주고, 미련없이 금고에서 나왔다. 천천히 바깥으로 나가는데, 정호석이 따라왔다.

“모시겠습니다.”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정호석이 운전하는 차량에 올랐다.

입맛이 씁쓸했다.

사람이 나고 죽음을 어디 감히 인간이 결정할 수 있던 일인가. 이번 삶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혀야 할지 알 수 없다.

“너무 잔인합니까?”

내 물음에 정호석이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음, 말주변이 없어 어떻게 표현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삼촌.”

정호석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삼촌으로서 얘기하자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왜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정호석.

“어쩔 수 없는 일에, 네가 손을 쓰니까··· 죄책감이라는게 무서운 놈이거든.”

“그런가요, 그럼 정실장의 대답은요?”

“옳은 일을 하셨습니다 도련님, 지하 세계가 어떻게 깨끗하겠습니까? 양지라고 다릅니까? 정치인, 법조인은 혓바닥으로 사람을 죽이고, 경제인은 돈으로 죽이고, 우리는 손으로 죽일 뿐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말은 아니니까.

“좋은 본보기가 될 겁니다. 도련님도 그걸 의도하시고 굳이, 목포를 오신 것 아닙니까?”

맞다.

박충수에게 ‘사채’는 곁다리였다.

목포를 주름잡는 전국구 조폭의 머리였다.

가진 현금자산이 90억쯤일 뿐, 나머지를 다 처리하면 꽤 대단한 금액이 나올테다.

욕심을 품으면 모든걸 빼앗긴다는 교훈을 심어줄 생각이었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잠시지만 내가 맡을 지하세계의 법칙은 그것이다.

그래야 내가 떠나고 남은 자리에 누가 오르던, 감히 ‘배신’을 꿈꿀 수 없을테니까.

유명한 고전 ‘군주론’에서 ‘공포’와 ‘잔혹’함이 얼마나 효과적인 ‘통치’인가를 얘기한다.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운 세상이다.

“공포가 효과적이란 얘기군요.”

“예, 그것 때문에 굳이 손을 쓰신거잖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눈을 감았다. 예정했던 3개의 일정이 끝났으니 푹 쉬어야겠다.

“이틀은 쉽시다.”

“하하, 예.”

***

전 삶에서도 피를 안 봤다면 거짓말이다.

누군가의 사지를 자르는 일도 했었다.

나는 삼현인이니까 삼현의 명령에 따라야 하고, 알아서 꼬리를 흔드는 개새끼가 되었어야 하니까.

하지만.

언제나 누군가의 피를 보는 일은 참 뭣같은 일이었다. 심력의 소모, 정신력의 한계.

술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심지어 지금 삶에서는 술도 마시지 못한다. 아직 미성년자라는게 참··· 물론 술을 마신다고 누가 욕할까 싶지만, 결국 잡생각을 털어내기 위해 나는 몸을 움직였다.

호텔에 딸려있는 헬스장에서 땀을 뽑아내고 있을 때, 김장원이 등장했다.

할아버지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백호라면, 정호석은 커다란 그리즐리베어와 같은 느낌이었고, 백철웅은 커다란 독수리와 같은 느낌이었다.

며칠만에 등장한 김장원은 어느새 사나운 늑대와 같은 모습이었다.

“멀끔해지셨네요?”

“흐흐, 멋 좀 내봤습니다잉.”

한결 밝아진 모습이다. 확실이 무엇인가에 의욕이 생긴 사람에겐 생기가 돈다.

땀을 닦으며 미팅룸에 들어갔다. 시원한 생과일 음료를 마시며 김장원에게 물었다.

“계획은 대충, 생각해보셨어요?”

“아따, 여자에 환장헌 재벌 3세 감는데 거창한 계획까지 필요하겄습니까? 쪼까 약한 ‘약’으로 시작허다가, 마무리는 뽕으로 시마이치믄 될 일이죠잉.”

피식 웃어버렸다.

잘못생각해도 한참 잘못생각하고 있다.

‘망나니’로 유명한 이재현이지만 가진바 능력까지 평범이하의 망나니는 아니었다. 눈치가 얼마나 빠꼼인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특히나 자신에게 ‘해’가 될 것 같은 위험은 정말 빠르게 알아챈다. 바퀴벌레의 생존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허접한 계획은 안 먹힙니다.”

“잉? 그랍니까?”

나는 천천히 며칠간 생각해두었던 계획을 김장원에게 설명했다.

“워따, 영화네 영화··· 염라대왕도 속아불겄소잉.”

“이해했습니까?”

“아따, 나가 그랴도 요 대구빡은 쓸만헙니다. 완벽하게 이해했으니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며 호석에게 말했다.

“정실장님, 김사장님 한테 차 하나 내어주세요, 트렁크에 총알좀 실어서.”

“예, 다섯개면 될까요?”

김장원을 쳐다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정도믄 남아 돌 겁니다.”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장원이 마주 잡으며 말했다.

“서울서 뵙겄습니다.”

“그래요.”

***

대한종금.

할아버지가 설립한 회사의 이름이었다.

오늘 창립행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정재계의 인사들이 속속들이 행사장 내부로 진입하고 있었다.

“약속을 지켰지?”

할아버지의 말에 픽 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슬아슬했네요.”

“녀석, 자 그럼 이제 종금사를 차렸다 다음은 무엇이더냐?”

“달러를 최대한 많이 끌어오세요.”

“달러를?”

“예, 달러의 가치가 상상을 초월하게 될겁니다.”

“흐음··· 그래, 확신을 하니 네 놈의 확신에 투자를 해봐야겠구나.”

흐뭇하게 웃으며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떠세요? 양지로 올라오신 기분.”

“글쎄다. 아직 이렇다할게 없구나.”

“내년부터 명성이 쌓일겁니다.”

“그래?”

“예, 물론 할아버지가 좋은 일을 많이 하셔야겠지만.”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라?”

할아버지의 푸념에 피식 웃어버렸다. 곧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래··· 몇 놈이 갔다고?”

800억을 회수하는 과정에대한 얘기였다.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공포가 지속되면 반발이 생긴단다.”

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반항’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제 양지에 올라가 자신들에게 손을 쓰기 어렵다는 우매한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나를 너무 쉽게 보았기 때문도 있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핏덩이라고 생각하기에, 솔직히 손을 좀 과하게 쓰기도 했다.

“예, 주의하겠습니다.”

“알아들었으면 되었다.”

“이제 들어가시죠? 주인공이 등장할 타이밍인 것 같습니다.”

“하하, 그래.”

이렇다할게 없다고 했지만, 주인공이 등장하라는 내 말에 ‘기쁜’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먼저 들어가고, 나는 조용히 나중에 들어갔다.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나’를 기다리던 인물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딱히 보고 싶지 않은 ‘놈’이 말이다.

“야, 우진아.”

이재현이 히죽 웃고 있었다.

어디를 봐도 이건회장은 보이지 않았다. 이재현만 따로 참석한 모양이다.

“우리가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던가?”

내 말에 놈이 팍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형인데?”

“그래서?”

“어디 미국 살다 왔냐?”

“벌써 뒷조사 다 했으면서 내숭은.”

“뭐야? 네 후다 따는거 걸렸냐?”

자신의 곁에 서 있던 사내를 날카롭게 쏘아본다.

그 사내의 얼굴이 기억난다. 내가 선임비서가 될때까지, 저 사람이 3비서 실장을 맡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 쪽팔리게···”

다시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더니 말한다.

“그래, 뭐 반말해라 어차피 대학 동기가 될 것 같은데.”

조금 놀랐다.

전 삶에서 분명, 지방대에 들어가는게 쪽팔려서 유학을 갔던 놈이다. 그런대 동기가 된다고?

“오, 요즘세상에도 돈으로 성적도 사고 그러나보다?”

“대한민국에서 삼현이 못할게 뭐가 있겠냐?”

나를 자신과 동류로 봤나? 너무 편하게 말한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친한척 내 어깨위에 팔을 척 걸치더니 말한다.

“성적표 나올때 됐는데, 성적표 나온날 한 잔 할까?”

“아직 미성년자라.”

“에이, 내숭은 너 설마 아다냐?”

“······”

“이 새끼 아다네, 오케이! 형이 그날 풀 코스로 쏜다 어때?”

친절하고 친근하게 접근하지만, 뻔히 다 보였다.

온 몸뚱이에서 붉은색 연기를 진득하게 피워 올리는데 속으면 병신이지. 어디 얼마나 대단한 판때기를 만들어놨나 구경좀 해보실까?

“재밌겠네.”

이재현이 나의 긍정적인 표현에 눈을 번들거리며 재촉한다.

“그렇지? 응? 오는거다?”

“그래, 연락줘.”

“오케이! 거기 다른애들도 올 거니까, 편하게 와 편하게.”

“알았어.”

웃으면서 내 등을 팡팡 두들기고 사라지는 이재현.

놈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열심히 뺑이쳐라.”

절로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 제 22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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