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7화 (17/458)

< 제 17화. >

둘은 말 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는 여유롭게 자리를 지키며 둘을 관찰했다.

작게 소곤거리며 서로 대화를 하는데, 굳이 귀기울이지 않았다.

“편하게 얘기하세요, 잠시 자리를 피해드리죠 넉넉하게 한 시간이면 되겠죠?”

세르게이는 날 붙잡고 싶어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래리가 세르게이를 말리며 말했다.

“예, 배려에 감사합니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입고 있던 하와이언 셔츠를 벗어 던지고 뜨거운 태양아래 반짝이는 수영장 물 속에 몸을 맡겼다.

수영을 하며 더위를 식히길 한 30분 쯤, 철수가 멀리서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미미한 표정 변화지만, 철수의 얼굴에서 읽히는 감정은 확실히 ‘자신감’이었다.

타올로 머리카락을 닦으며 물었다.

“다 봤어?”

“예.”

“어때?”

“신기했습니다.”

“이해는 되고?”

“예.”

난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줘봐.”

철수가 내민 종이를 살폈다.

내가 보기엔 그냥 영어로 된 명령어들이고, 그 옆에 빼곡하게 한글로 주석을 달아 놓았다.

녀석이 얼마나 열심히 분석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봤을 때 녀석은 컴퓨터 언어의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다.

‘천재’

녀석은 천재였다.

“저기 보여?”

래리와 세르게이를 가리키며 한 질문에 철수가 그들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도 너와 같은 천재지.”

“아.”

“배울게 많을 거다. 아니면 이겨야 하거나.”

“이기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커다란 타올을 걸치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생각은 끝났습니까?”

래리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아무래도 투자는 받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경영권과 연구개발 때문이겠죠?”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래리.

나는 웃으며 철수가 가져왔던 그 서류를 건넸다.

내가 컴퓨터 언어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코딩의 코짜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지만, 아마 내 앞에 래리와 세르게이는 이해할터.

그들의 표정은 놀람으로 물들었다.

“아, 이렇게 하면 확실히 신뢰성이···”

“정확도가 엄청나겠는데?”

“속도도 빠를거야.”

어느새 두 천재가 내가 내민 서류를 보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무알콜 칵테일을 마시는 나를 보며 래리가 물었다.

“이건··· 당신이 개발한겁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건 랭크덱스라고 중국인이 만들었죠.”

“아아··· 중국인···”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 그걸 전 세계가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으음···”

“세상에는 수많은 천재가 있고, 수많은 벤쳐기업가들이 있습니다.”

“그렇죠.”

“천재라고 모두가 성공하지 못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벤쳐사업가 모두가 성공하진 못합니다. 결국 꼭대기에 앉아 ‘성공’이라는 과실을 먹는 사람들은 한정적이죠.”

래리와 세르게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집중했다.

“그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잠시 고민하던 둘이 말했다.

“열정이 부족해서?”

“성공 직전에 포기해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둘다 틀렸습니다.”

그럼 뭐냐는 듯 날 바라보는 그들에게 자신있게 대답했다.

“돈이죠.”

“예?”

“아아.”

세르게이는 모르는 듯 했지만, 래리는 내 말을 이해한 것 같았다.

“이 세상 어떤 프로젝트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성공하기까지는 ‘돈’이 필요하고, ‘돈’이 해결된다면 시간을 사고, 사람을 사서 어떻게든 성공하게 만들 수 있는 법이죠.”

래리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한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내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천재들에게 ‘검색엔진’을 만들라고 얘기한다면, 과연 당신들은 날 이길 수 있을까요?”

“······”

“······”

“천만 달러로 안 되면, 이 천만 달러, 그걸로도 안 되면 1억 달러, 성공할 때 까지 돈을 쏟아 붓는다면 만들지 못 할까요?”

래리와 세르게이는 이제서야 완벽하게 이해했다.

“부는 항상 대물림 되죠, 그 이유는 뭘까요?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다른겁니다.”

문득 전 삶의 일이 생각났다.

“특허 양도 받았어?”

이건 회장의 말에 난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끄러미 날 쳐다보는 이건의 눈빛을 차마 마주보지 못했다.

“쯧, 아직 덜 여물었구나.”

“죄송합니다.”

내게서 시선을 옮겨 1비서실장을 쳐다본 이건.

“준비되었습니다.”

그의 말에 이건이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이건의 저택 지하밀실.

아무나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되고, 살아서 나가긴 힘들다는 그 곳에, 내게 벼락같은 호통으로 욕을하던 김영조 사장이 의자에 묶여 있었다.

“김사장.”

이건의 나지막한 부름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김영조가 번쩍 고개를 지켜들곤 소리쳤다.

“이 개새끼들! 이런다고 내가 우리 기술을 넘겨 줄 것 같아?”

이건이 픽 웃었다.

“김영조 사장, 좋은 말로 서류 보냈을때 사인하지 그랬나.”

“평생을 바쳐서 탄생한 기술이야! 그 피 같은 기술을 헐값에 넘기라고? 웃기지마!”

“쯧쯧.”

고개를 젓는 이건.

그의 눈짓에 1비서실장이 벼락같이 달려들어 김영조의 몸을 두들겼다.

한참을 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김영조 사장에게 말하는 이건.

“네가 사람인 줄 알아? 차렷.”

악다구니를 쓰던 김영조 사장이 어느새, 이건의 명령에 따라 비틀거리면서 차렷자세를 취했다.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 꼭 대접해주면 제깟놈이 사람인줄 알고 사람행세를 하려고 들어, 네들은 개 돼지야, 개 돼지. 네가 뭐라고?”

김영조 사장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개 돼지···”

이건이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사인해, 살고 싶으면, 넉넉하게 넣어줄테니까 어디 한적한 곳에가서 은퇴생활이라도 하라고, 알겠어?”

“크흐윽···”

회상을 끝내고 래리와 세르게이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의 얼굴에서 김영조 사장의 모습이 언뜻 비춰지는 것 같았다. 올곧고 대쪽같던 사람, 거친 폭력과 협박앞에 끝내 무릎 꿇던 기술자.

대기업들의 성장 방법, 치킨게임으로 끝내 약자의 기술을 갈취하고 제것으로 만드는 그 방법. 그걸로도 모자라 필요하다면 약자의 ‘숨’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끊어 버리는 잔악무도한 것들.

피로 점철된 그 자리에 올라 떵떵 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들.

‘그런 것들이 재벌이지.’

그리고 난, 그런 재벌들 위에 올라서야 한다.

기득권을 뜯고 씹고, 맛보고 즐겨야 한다.

배울건 배우고, 버릴건 버려야 한다.

놈들처럼 더럽게 정상에 오른다면 전 삶의 억울했던 내가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럴리가.’

이건과 같은 방법을 쓸 생각도 없다. 쓰고 싶지도 않고, 내가 래리와 세르게이에게 한 말들은 모두 사실이다. 결국 돈을 퍼부으면 미래의 구골을 탄생시키지 못할까?

가능하다.

확실한 미래가치를 알고 있기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공격적으로 마케팅 할 수 있다.

오직 나만.

그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베팅했겠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확실한 미래에 베팅하는 것이다. 그러니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래리와 세르게이의 프로젝트를 사는 것, 그것은 내게 쉬운 길이다. 편한 길이고.

같은 ‘돈지랄’이라도 나만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나는 조금 더 적은 금액에, 조금 더 쉽고 빠르게 가고 싶을 뿐입니다. 부디 당신들이 나와 같이 갔으면 좋겠군요.”

래리가 내 말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나와 이 친구는 원하는 목표가 있고, 함께 그리는 미래가 있습니다.”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굳이 스탠퍼드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둘이 프로젝트를 만들었고, 끝내 성공해 ‘기업’을 일군다.

편한 길을 놔두고 미래의 큰 성공을 위해 가시밭길을 걷는 일이었다. 둘의 각오와 꿈이 없었다면 결코 걷기 힘든 길이다.

어쩐지 나와 비슷하지 않은가?

앞으로 돈을 벌기로 마음먹으면 얼마든 벌 수 있었다. 수십조도, 수백조도 우습다.

솔직히 그렇게 큰 돈도 필요가 없다. 수십조만 있어도 떵떵 거리면서 편안하게 즐기며 살 수 있다.

하지만 난 굳이, ‘이건’을 무너뜨리고 ‘삼현’을 얻고자 한다. 힘들지 모르고 가시밭길일지 모른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 한다. 가고 싶다.

“이해합니다. 당신들이 그리는 미래, 나와 함께 그리자는 얘깁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고, 당신들의 생각, 당신들의 기술, 당신들의 계획에 내가 투자해주겠습니다. 내 품에서 당신들의 꿈을 마음껏 펼치세요.”

“지속적인 투자를 약속하신다는 말입니까?”

“예, 약속합니다.”

둘이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제 다시 당근을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날 빤히 바라보는 그들에게 말했다.

“천만달러에 49퍼센트의 지분. 또한 당신들이 원한다면 지분처리의 우선협상권을 드리죠.”

두 사람이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지금 내 말은 그들의 경영권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당신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습니다. 내가 지분을 몇퍼센트를 갖게 되던, 당연히 당신들에게 자유를 줄 생각이었어요, 이번 투자를 1차 투자라고 생각하고 49퍼센트의 지분만 가져오는 걸로 하죠.”

그래도 생각이 필요한 표정들이었다.

“나는 꽤 바쁜 사람입니다. 모레 이곳에서 떠나죠, 그때까지 답변을 주세요.”

“배려에 감사합니다.”

“원하신다면 이곳에서 숙박을 하셔도 됩니다. 경비는 내가 처리하죠.”

그 말을 끝으로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거 래리와 세르게이를 봤던 적이 있다.

전세계 경제인들이 모이던 자리에서,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참,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찌들고 찌들어, 꽤나 냉철한 경영인들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순진한 개발자 그 이상, 이하도 아닌것 같았다.

“철수 너는 저들과 대화를 하던가 해 봐, 아마 통하는게 많을 것 같은데?”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철수가 밝은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야망을 가득 품고 있지만, 아직은 어린 청소년일뿐이니 절로 이해가 되었다.

***

원래는 실리콘 밸리에서 철수에게 ‘프로그래밍’과 ‘개발자’의 삶과 같은 것을 보여주려 했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장미빛 미래를 꿈꾸고 있는지도 알려주려 했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꽁돈 3000만 달러에 계획이 바뀌었다. ‘선물’이라는 단어에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돈이 생겼다.

가만히 있는 돈은 ‘죽은 돈’이라고 얘기하던 어떤 성공한 사업가의 말 처럼.

나는 3000만 달러를 열심히 일하게 만들 생각이다.

“소문은 좀 퍼졌나요?”

빌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보스, 우리 팀에 아주 입이 가벼운 친구가 있습니다. 신뢰하셔도 좋습니다.”

“좋아요 기대해보겠습니다.”

빌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안내했다.

그곳은 실리콘밸리 활성화를 위해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설이었다.

다양한 벤처기업가들이 자신들의 기술과 사업계획을 피력하고, 투자자들은 마음에 드는 투자처를 컨텍하는 장소.

꽤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일제히 시선이 내게 쏠리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소문이 퍼지긴 퍼진 모양이다. 두눈 가득 어떠한 열망과 욕심들이 자리잡은 사람들을 지나치고 지나쳐, 통유리로 된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금부터 한팀씩 브리핑을 할겁니다.”

“좋네요, 바로 시작하죠.”

기회의 땅 미국이라더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노다지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3000만 달러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내게 돌아올지, 몹시 기대가 되었다.

물론, 단순하게 미래에 전도유망한 기업을 주우러 온 것이 목적의 전부는 아니다.

가재잡고 도랑치고, 다른 목적도 존재한다.

아마도 그 목적이 좀 더 ‘주’가 된다고 봐야할 것 같다.

“똥줄 좀 탈 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혼잣말에, 나를 따라온 변호사가 ‘팔든?’하면서 날 바라본다.

“아, 혼잣말이에요 혼잣말.”

“예.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 안으로 바짝 긴장한 인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 제 17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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