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16화 (16/458)

< 제 16화. >

수능이 끝나고 이틀 뒤.

현관문 앞에 할아버지가 배웅을 나오셨다.

“호석이가 잘 준비해두었다고 하니 걱정 말거라.”

“에이, 그럼요.”

“그래··· 수능 만점이라더구나.”

“예?”

할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놈 답안지가 400점 만점이라고.”

“예에?”

“이녀석이 자꾸 의뭉을 떨어? 전국에서 네 놈만 유일하게 만점이라더구나, 고생했다.”

스스로도 놀랐다.

‘쉽다’라고 느껴지긴 했지만 ‘만점’을 맞을지는 몰랐다. 원래의 역사라면 만점자가 없는 시험이었다.

처음 400점 만점의 시험이 치뤄지는 만큼, 새로운 유형의 문제도 많았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벌써 성적이 공개가 되었나요?”

“네놈것만 따로 알아 보았다.”

“아아.”

“손자놈이 전국에서 1등을 해 왔으니 할애비가 선물을 줘야지.”

“괜찮아요 할아버지.”

“됐다, 미국 가면 선물이 도착해 있을게다.”

할아버지가 손수 트렁크에 내 캐리어를 실어주었다.

그러곤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갔다.

“하여튼, 츤데레라니까.”

“예?”

호석의 반문에 대답하지 않고, 차량에 올랐다.

‘그나저나 선물이라.’

내심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과연 할아버지가 뭘 준비해주셨을지 솔직히 매우 궁금했다. 차량은 아무런 문제없이 움직여 공항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오셨습니까 도련님.”

강기태의 밝은 인사와, 김철수의 어두운 인사가 날 반긴다. 웃으며 철수의 어깨를 툭 치고 말했다.

“밝게 살아 짜식아.”

“예···”

강기태가 불쑥 끼어들었다.

“하하, 대표님 오시기전에 철수랑 얘기를 좀 했는데, 사투리가 창피해서 말수가 줄었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랬습니까?”

“예, 서울말 연습한다고 계속 저한테 어떻냐고, 서울사람 같냐고 물어보는데 아오, 귀에 피가 나는 줄 알았습니다.”

강기태의 너스레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고, 30대 초중반의 사내가 호석에게 작게 뭐라고 얘기하자, 호석이 날 보고 얘기했다.

“준비되었습니다. 가시죠.”

“예.”

우리 일행은 나를 포함 총 8명.

나와 강기태가 붙어 앉았고, 철수와 호석이 같이 앉았으며, 주변에는 4명의 경호인력이 우리를 감싸듯 둘러 앉았다.

비행기에 앉자마자, 나와 강기태의 입에선 ‘일’얘기가 튀어나왔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예측분석을 토대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봤습니다.”

강기태가 내민 서류를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과거, 미국의 세력들의 움직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시 감각적이고, 능력 좋은 사람이 분명했다.

“역시 이 정도가 한계죠?”

“예, 조금더 공격적으로 하려면 역시 새로운 선물옵션을 만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비행기가 이륙하고, 스튜어디스들이 각자 주문한 음료를 돌렸다.

정호석은 날카로운 눈으로 부하직원들을 살폈다.

“삼촌.”

“엇.”

“편하게 해요, 편하게 비행기 안이니까.”

“그럴까?”

“맥주나 샴페인 한잔씩 하세요, 공짜 잖아요?”

“그래도···”

“취하지 않을 만큼만 하세요.”

너무 꽉 조이면 안 되는 법이다.

풀어줄 줄도 알아야 한다.

“비행기 떴을 때 드셔야지, 도착할때쯤 드시면 그게 더 큰일이에요.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니까 더 철저하게 움직이실 것 같은데, 미리 힘주면 지쳐요.”

호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다.”

“예.”

호석의 눈에서 호의가 뿜어져 나온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훑고 있던 호석의 부하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들었지? 도련님이 허락하셨다, 그렇다고 미친듯이 처먹어라?”

“예! 알아서 컨츄롤 하겠습니다.”

“혓바닥 굴리기는, 알아서들 해. 실수하면 죽는다.”

“옙!”

강기태도 씨익 웃으며 맥주를 시켰다.

***

첫번째 목적지 L.A에 도착한 우리.

우리를 마중 나온 커다란 덩치의 흑인이 반가운 얼굴로 호석과 포옹했다.

호석의 입에서 자연스러운 영어가 튀어나왔다.

“깜둥이, 잘 지냈냐?”

“보자마자 인종차별이라니, 옐로우 몽키 대가리가 많이컸군.”

어디서 영어를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갱스터라고해도 믿을만큼 거친 영어였다. 서로 아무렇지 않게 예민한 단어를 뱉는 것을 보니 꽤 친분이 두터운 모양이었다.

“이분이 네 보스야?”

“그래, 잘 모셔라 내 목숨보다 귀하신 분이다.”

“호오, 반갑습니다. 웨스턴 PMC 빌리라고 합니다.”

“예, 천입니다.”

“첸?”

“스카이라고 부르세요.”

“아아, 스카이 이름 좋네요.”

덩치가 큰 캐딜락 SUV 4대가 우리를 태우고 화려한 도시 L.A의 중심지로 향했다.

“스카이, 당신의 빅 보스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아, 당신이 운반했군요?”

“예.”

“선물은 뭡니까?”

“개봉하면 안된다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호텔에 준비 되었나요?”

“예.”

난 고개를 끄덕이곤 눈을 감았다.

땅덩어리가 넓은 미국 답게, 차로도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해야 했다.

비행기는 아무리 편해도 피곤하다.

언제 타도 변하지 않은 진리였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니, 호석이 조심스럽게 날 들어올리려 하고 있었다.

“아, 깨셨습니까?”

“네, 도착했어요?”

“예, 체크인 다 되었습니다 올라가시죠.”

고개를 끄덕이고 특급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 방 4개와 거실까지 있는 방은 아주 흡족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 커다란 보스턴 백 3개가 올려져 있었다.

“저게 선물인가보죠?”

빌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망설임 없이 보스턴 백의 지퍼를 열었다.

“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할아버지 답다고 해야 할까?

내가 어째서 웃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들.

찌이익.

지퍼를 닫고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이러면 생각이 좀 달라지는데?”

“예?”

호석의 반문에 고개를 젓고는 그에게 말했다.

“음, 스탠퍼드 대학에 랠리 브린, 세르게이 페이지라는 두명의 인물이 있을겁니다.”

“아, 예.”

“둘 한테 얘기좀 전해 주세요.”

“뭐라고 전달할까요?”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쩐주가 왔다고 얘기하세요.”

정호석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빌리?”

“예.”

“비자 관련해서 문의가 있는데요?”

“잘 아는 변호사를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아닙니다 보스.”

“내일까지는 호텔에서 푹 쉴겁니다. 철수나 본부장님은 관광하셔도 됩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강기태가 ‘예!’하고 대답했고, 철수는 설레는 마음을 감추며 ‘예.’하고 대답했다.

빌리와 그 일행들이 사라지고, 호석과 강기태, 철수와 함께 저녁식사 테이블에 앉았다.

밤 9시가 넘어가지만 창밖의 L.A는 낮보다 더 환해보였다.

막 포크를 움직이려는 철수에게 영어로 물었다.

“철수는 영어 좀 하니?”

포크를 내려 놓은 철수가 말했다.

“네, 국제대회에 출전하려면 거의 필수적인 거라 열심히 배웠습니다.”

제법 유창한 발음의 영어가 튀어나왔다.

원어민 수준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독학으로 배운 회화치고는 아주 훌륭했다.

의사소통의 문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미국에서 지내볼래?”

“예? 저요?”

“어, 일 좀 배우라고 꽂아줄게.”

“······”

대답하지 않는 철수의 걱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아직은 엄마의 품이 좋을 나이.

“원한다면 네 어머니도 같이 지내게 해줄 수 있어.”

그제야 표정이 풀린다.

잠시 고민을하더니 당차게 물었다.

“제가 미국에서 배울게 있는거죠?”

파스타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녀석의 질문이 내 의중을 꿰뚫고 있기에 웃음이 지어졌다.

“맞아.”

“예, 그럼 미국에서 있겠습니다.”

“좋네.”

힐끗 호석을 쳐다보았다.

“예, 도련님 빌리와 함께 철수의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좋네요, 위치는 실리콘밸리 근처로 해 주세요 아마 거기서 학교도 다녀야 할 것 같고요.”

“예.”

다시 철수에게 말했다.

“미국엔 아직도 인종차별이 존재해, 쉽지 않을거다.”

“이겨내겠습니다.”

“좋네.”

더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았다. 철수의 눈빛만 보아도 녀석이 잘 해낼거란게 느껴졌다.

독심.

지금 철수가 품고 있는 마음일터.

“대표님.”

강기태의 부름에 그를 바라보았다.

“래리 브린? 세르게이 페이지? 그 사람들이 누굽니까?”

“본부장님 처럼, 황금알을 낳은 거위들이죠.”

“예?”

굳이 강기태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않고, 나는 마저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며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을 뿐이었다.

***

따르르릉, 따르르릉.

“에이 씨 뭐야!”

금발의 푸른눈의 백인이 신경질 적으로 붙잡고 있던 키보드를 놓고는 전화를 받았다.

“이시간에 누구에요?”

-래리브린?

“누구요?”

-의뢰인이 당신들을 찾습니다.

“의뢰인?”

-그가 당신에게 이렇게 얘기하라고 했습니다.

“······”

-쩐주가 왔다.

“뭐, 뭣?”

래리가 멀리 골머리를 싸매고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또 다른 금발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 잠깐만요.”

-예.

“이, 이봐 세르게이!”

그의 부름에 키보드를 두들기던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아, 왜!”

“그, 우리가 벌써 투자를 요청했던가?”

“내가 얘기 했잖아? 며칠전부터 여기저기 찌르고 있다고.”

“그, 쩐주가 우릴 찾는다는데?”

“뭐?”

어느새 둘은 전화기에 가까이 섰다.

침을 꼴깍 삼키고, 래리가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그, 얼마나 투자를 하겠답니까?”

-시간되면 내일 미팅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차를 보내죠.

“아, 예.”

-점심쯤이 좋겠네요, 오전 9시까지 준비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역시, 우리 알고리즘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줄 알았다고!”

세르게이의 말에 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투자를 할까? 지분은 얼마나 줘야하지?”

“글쎄? 10만? 20만? 아··· 경영과 개발에 차질이 없어야 할텐데.”

이렇다할 돈이 없어 허름한 사무실의 몇 대의 컴퓨터만 덩그러니 있는 그들의 사무실에.

둘은 열띤 토론을 펼쳤다.

토론의 주제는 얼마에 몇퍼센트 지분을 주느냐가 주를 이루었다.

***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태양 아래 저마다의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며 수영하는 금발의 미녀들을 쳐다보며 한가롭게 무알콜 칵테일을 들이켰다.

“흐음~”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평화롭다고 할까?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느낌이었다.

눈요기는 덤이고.

당장이라도 아가씨들에게 술을 한 잔 권하며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미성년자였다.

“보스.”

선베드에 한가롭게 누워있는 내게 빌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빌리.”

“말씀하셨던 두명의 인물이 찾아왔습니다.”

“아, 그래요?”

“예.”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제법 차려입은 청년둘이 보였다. 미래의 거부들이 때가 타지 않은 모습이라니 신선했다.

커다란 파라솔 밑 알루미늄 테이블에 나와 빌리가 소개해준 변호사, 래리 브린과 세르게이 페이지가 둘러 앉았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주변에는 허리춤에 권총을 꽂아 넣고 있는 경호원들이 눈을 빛내며 지키고 있었다.

꿀꺽.

래리와 세르게이가 잔뜩 긴장을 했는지,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아,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되요, 편하게 갑시다 편하게.”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래리가 슬쩍 빌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쩐주분이?”

빌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이분이 빅보스입니다.”

래리와 세르게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래리가 말했다.

“엄청난 동안이시네요?”

빌리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년에 미국나이로 만 18세가 되십니다.”

둘이 매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진짜냐는 듯 날 쳐다본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 어린나이에 이런경호를 받으며 자신들에게 투자까지 하겠다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닐터.

그러나 궁금증이나 해결해주자고 말을 길게 할 필욘 없겠지. 바로 본론을 끄집어냈다.

“아직 회사를 설립하지는 않았죠?”

래리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직 프로젝트 단계이긴 하나, 곧 투자를 받고 설립할 예정이었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공교롭지만 타이밍마저 완벽했다.

“생각 해 놓은 조건이 있습니까?”

“우리는 우선 하드웨어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불가피한 시설투자비가 필요합니다.”

“연구개발비도 필요할테고요.”

“그렇죠.”

나는 손을 뻗어 붉은색 무알콜 칵테일을 쪽 빨며 말했다.

“그래서 얼맙니까?”

래리가 스윽, 서류를 하나 내밀었다.

꽤 제대로 준비하고 나온 모양이다.

“20만 달러에 15퍼센트?”

“예.”

난 피식 웃었다.

수백조가 훌쩍 넘어갈 기업의 수장들이 내미는 배포가 너무 작았다.

물론 이 시기에 저 둘의 사업의 가치를 정확하게 꿰뚫어볼 사람은 없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다시 태어나도 불가능 하리라.

“삼촌.”

내 부름에 미리 준비하고 있던 호석이 할아버지가 준 선물이 들어있는 보스턴백을 테이블위에 ‘퉁’하고 올렸다.

제법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이게 뭐냐는 듯 날 바라보는 래리.

“열어보세요.”

찌이익.

지퍼가 열리고.

“허업.”

“커억!”

래리와 세르게이가 보스턴백 가득 들어있는 돈 뭉치에 매우 놀란다. 난 웃으며 말했다.

“지분 70퍼센트에 천만달러.”

< 제 16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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