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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의 재벌-11화 (11/458)

< 제 11화. >

탁.

달리는 차 안에서 책을 보니 약간 속이 울렁거렸다. 결국 책을 덮고 차창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을 감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스르륵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린놈이 생각이 많구나.”

고개를 돌리니 무슨 고민이든 얘기하면 해결 해 줄 것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 보였다.

“대충 할일은 다 했으니, 이제 다음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할 일을 다 했다? 다 늙은 골방 노인네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그래서 찾고 있는 중입니다.”

“참고로 너와 나의 내기가 끝나기 전까지, 단 1원의 현금도 내어주지 않을 생각이다.”

할아버지는 쐐기를 박으셨다.

아직 돈 버는 ‘재주’를 증명하지 못했으니, 더 욕심을 내지 말라는 뜻.

나는 방긋 웃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차피 고작 6개월 뒤면, 나는 ‘증명’을 하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할테니까. 내게 남은 시간은 너무나 많다.

급하게 ‘체’하면서 먹을 필요는 없다.

“내기는 자신있는 모양이고··· 오늘 시간을 샀으니 내일도 시간을 사면 될테지.”

“아.”

번쩍,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

어린아이의 미래를 ‘시간’이라 말씀하셨다.

맞다, 난 시간을 산 것이다. 미래에 우리 천가에, 나에게 충성할 인재의 시간.

‘삼현키즈.’

과거의 난 그렇게 불렸다.

나 뿐만 아니라, 삼현그룹의 핵심부서의 많은 임직원들이 ‘삼현키즈’출신이었다.

작게는 장학금부터, 많게는 삶의 거의 전반을 ‘삼현’의 돈으로 교육받은 사람들.

그들은 삼현의 충성스러운 ‘직원’이 되어 온갖 더러운것을 손데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오늘, 할아버지가 제법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를 얻은 것 처럼, 삼현은 돈을 뿌리듯 인재들을 수집했다.

어렸을 때 부터 삼현의 돈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당연히 ‘삼현’의 사람으로 삶을 영위한다.

그럼 우리 천가도.

천가 키즈를 만들면 어떨까?

나도 모르게 벌써 나중일이 기대가 돼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표정의 변화를 읽었을까? 할아버지가 픽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네 놈이 날 귀찮게 할 것 같구나.”

역시 우리 할아버지.

눈치가 귀신이다.

“시간은 금 보다 귀하지, 말해보거라.”

“그렇죠, 시간은 금 보다 귀하죠, 그래서 말인데요 할아버지.”

계속해보라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신다.

“애들 좀 키워볼까요?”

“뭐?”

“오늘 처럼, 미래의 좋은 동냥이 될 아이를 찾아다니기 보다, 직접 만들어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귀찮게 하나하나 찾지 말고, 단체로 키우자?”

“예, 이름하야 천가 키즈.”

“쯧, 작명에는 영 소질이 없구나.”

할아버지의 대답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시간’이란 단어를 말하면서 내 생각을 유도했을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저’에겐 한 푼도 내어줄 수 없다고 하셨으니, 다른 아이들에게는 내어주시겠지요? 무려 ‘시간’을 사는 일이잖습니까?”

할아버지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해 보아라, 네 놈 세대에는 써먹을 수 있겠지.”

“그럼 할아버지 지갑좀 열겠습니다?”

"욘석이... 현금은 1원도 안 내준대도?"

"절 위해서가 아닙니다. 할아버지의 노후를 위한 투자인 거죠."

"....."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의사표현을 한 할아버지가 다시 눈을 감았다.

나도 따라 눈을 감고 계획을 정리했다.

***

철웅이 정리해온 서류를 천천히 넘겼다.

천가의 돈은 거미줄과 같이, 대한민국을 넘어 감히 전 세계라고 말해도 될 만큼. 그리고 그 돈과 연관 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자식들.

“당장 손을 뻗을 수 있는 아이가 7천명이라니, 이거 맞습니까?”

“예, 급하게 조사하느라, 정확하지 않겠지만 그것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을겁니다.”

놀랍게도, 사채를 쓰고 있는 보육원의 책임자들의 숫자도 무시 할 수 없었고, 우리나라의 ‘고아’들의 숫자도 너무 많아 또 한 번 놀랐다.

또, 사채라는 밑바닥 금융답게 참 지저분한 부모들이 많았으며 그들에게 내팽게쳐진 아이들의 숫자도 무시 할 수 없는 수였다.

대부분 화류계 혹은 도박꾼, 약쟁이들도 적지 않은 수를 차지하는 아이의 부모들.

당장 돈 몇푼에 아이들을 팔겠다고 아우성 칠 부모들이 널리고 널려 있을터.

현실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양질의 아이들을 ‘천가 키즈’로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올라왔다.

“우선, 아이들의 지능과, 재능에 대한 파악이 먼저겠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억지로 억류하거나 가두지 마세요, 자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

“보육원들의 경우, 그 권리를 이양받는 것으로 일부 변제 하게 하거나, 채권을 소멸시키고 아이들에게는 양질의 보육시설을 만들어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세요.”

“예!”

서류를 덮고 철웅과 호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이들의 지능과 재능이 정리된 서류의 완성까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3개월 내로 가능하겠습니까?”

“예, 각계의 전문가들에게 표준 시험지를 제작하게 하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배포해 시험을 치르게 하겠습니다.”

철웅의 생각에 동조했다.

호석이 머리를 긁적이다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그, 도련님.”

“네.”

“이 재능이라는 것에 ‘주먹’도 포함시킬까요?”

철웅이 호석을 ‘네놈이 그러면 그렇지’하는 눈으로 바라본다.

“확실히··· 그런 아이들도 필요하겠죠?”

내 말에 호석이 밝게 웃는다.

“하하, 제가 그쪽은 전문입니다. 잘 골라 오겠습니다.”

쉽게 생각 하는 것 같기에, 난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전문 경호 인력’이지 양아치 조폭이 아닙니다.”

“예, 특수부대 못지 않게 훈련시켜서 정예로 만들겠습니다.”

철웅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호석이 이 놈이 해군특전 소속이었습니다. 꽤 유명했습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지만 딱히 캐묻지 않았다.

“예, 그럼 전문가시겠네요 확실히.”

“그럼요, 딱 보면 ‘물건’이다 아니다 답이 나옵니다.”

무거운 분위기도 풀 겸, 내가 물었다.

“그럼 나는 ‘물건’이었나요?”

호석이 입꼬리를 진하게 들어올리고는 말했다.

“엄청난 물건이셨죠.”

“그래요?”

“예, 회장님한테 조금만 배우시면 장정 서넛은 거뜬하실겁니다.”

문득 며칠전이 떠올랐다.

명동의 구석진 허름한 5층 건물.

그 건물의 꼭대기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 도장이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각종 운동기구들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이곳이 내가 운동하는 곳이다.”

과연, 할아버지의 풍체가 좋다 했더니 운동을 즐기시는 모양이었다.

잠시 운동기구를 구경하고 있는 사이, 할아버지가 툭 하고는 내 발치에 각종 보호장비를 던졌다.

“착용 하거라.”

나는 두말 않고 척척 장비들을 착용했다.

그 모습에 ‘제법’이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시는 할아버지, 아무런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은 할아버지가 말했다.

“어디, 덤벼보거라.”

“예?”

“재주껏 덤벼보래도?”

할아버지 등 뒤로 서 있는 호석과 철웅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편안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에이, 제가 어떻게 할아버지한테 손을 올리겠습니까?”

“네놈이 이기면 전부를 주마.”

“예?”

“네 놈이 날 눕히면 전부를 주겠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김갑수를 한방에 매치는 것을 봤지만, 술과 담배, 도박에 찌든 중년의 남자와 난 다르다.

“그럼 가겠습니다.”

“오냐.”

제법 익숙한 자세로 할아버지에게 접근했다.

미래의 ‘이종 격투기’를 배웠던 몸이다.

살살 잽을 던지는데, 가드도 올리지 않은 할아버지가 고개를 이리 저리 흔드는 것으로 내 잽을 피했다.

오기가 발동해 진심으로 잽을 던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묘하게 웃으면서 연신 위빙으로 내 주먹을 모두 피했다.

할아버지의 다리는 고정되어 있었고, 습관처럼 로우킥을 날렸다.

일순간, 할아버지 눈이 빛나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쿵!

“커헙.”

나는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도장 내부의 텐션 좋은 바닥이 아니었다면 갈비뼈가 부러졌을지도 모를 파워였다.

“백부님, 도련님 상하시겠습니다. 살살하시지요.”

철웅의 말에 할아버지가 날 일으키며 말했다.

“이 정도로 상할 놈이면 오늘 집에는 기어가게 될게다.”

싸움을 가르쳐 달라고 농을 던졌더니.

진짜 싸움을 가르치시려는 모양이다.

“어우~”

회상 때문에 온 몸에 그 ‘통증’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하하, 그래도 며칠새 벌써 자세가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호석의 말에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시간 되었습니다 도련님.”

“예··· 가시죠.”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힘 없이 철웅의 안내를 받아 그 ‘도장’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일과가 된 ‘수련’을 핑계로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러.

***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이, 움켜 쥘 수 없는 법.

4개월이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나는 할아버지의 ‘무한주머니’에서 돈을 빼, 천가 키즈의 교육시설에 투자했다.

부지와 적당한 건물이 있다면 사고, 없다면 짓는다.

말로는 가벼운 일이지만 그 일이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철웅과 호석의 능력이 내가 아는 것 보다 더 대단했기 때문도 있었으며, 할아버지의 전화 한통이면 철밥통 공무원 놈들이 ‘이렇게 일을 잘했나?’싶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준 덕분이다.

그리고 지금, 철웅이 내게 최종 보고를 하는 날이 되었다.

“파주에는 전문 경호 인력 양성기관을, 말씀하신 하남에는 법조인력 양성기관을 설립했고, 그 밖에 전국 각지의 보육원들의 협조 혹은 관리 이양을 받아 비슷한 계열의 재능인 아이들을 모아두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요, 너무 한 바구니에 같은 계란을 담지 마세요, 서로 다른 사람도 있어야 더 깨닫는게 많은 법일겁니다.”

“예, 조치하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숫자는 어떻게 됩니까?”

“약 700명 가량입니다.”

7천여명이 넘던 아이들 중, 10퍼센트 미만의 아이들만을 선별했다.

철저하게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라는 얘기다.

“년단위 예산은 어떻게 됩니까?”

“보육시설의 경우 단체나 개인이 후원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우리 ‘천가’에서 관리 이양을 받게 되면서, 그 질이 더 올라가니, 여기저기서 후원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확실히, 현재 대한민국 경제상황이 좋은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파주와 하남의 경우가 가장 많은 비용 지출이 예상됩니다. 특히 파주의 경우 ‘스포츠’에 특화되어 있다보니 몸 관리나, 식단 등, 많은 부분에서 까다롭게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금액만 말씀하세요.”

“파주가 연간 11억, 하남이 연간 6억정도의 비용이 소모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좋아요, 이대로 갑시다.”

“예, 처리하겠습니다.”

연간 17억 정도로, 법조인과 함께 전문경호 인력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그 아이들이 사회에 뛰어들 나이까지는 최소5년에서 10년 이상은 필요 할 터.

그래봐야 푼돈.

그 돈으로 판사를 사고, 검사를 사고, 공무원을 산다.

싸게 먹히는 장사고 남는 장사다.

어째서 ‘삼현’이 인재양성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붓는지, 공개적인 인재양성 뿐 아니라, 비공식적인 인재양성에도 힘을 쓰는지.

뼛속까지 삼현’인’이 된 사람들은 죽을 때 까지, 삼현에 충성하며 살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정경유착, 검경유착.

학연, 지연, 혈연이 끈끈한 거미줄처럼 대한민국의 꼭대기를 움켜쥐고 내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언젠가 자리를 내 주어야 한다. 결국은 나이를 먹고 은퇴를 해야 할 나이가 될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미래에 투자한다.

***

어느덧 11월 제법 서늘한 계절이 되었다.

바깥의 날씨와 달리, SKY 인베스트먼트의 사무실은 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

“대표님! 됐습니다 됐어요! 으아아아아아!”

물론 강기태 혼자 난리다.

차마 나에게는 함부로 엉기지 못하고, 호석에게 다가가 연신 서류를 보여주며 자랑한다.

“보이십니까? 예? 제가 짠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이 보이십니까!”

정호석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작게 ‘예, 보이네요.’하고 퉁명스럽게 얘기하곤, 새삼스레 놀란 모습으로 날 바라본다.

“오늘은 이만 퇴근하시고, 아! 통크게 휴가 2주 쏘겠습니다. 2주간 열심히 놀다 오십시오.”

“으아아아! 부자다!”

자신의 1억 7천만원도 어마어마한 수익이 되어 돌아왔으니, 저렇게 기뻐하는 것도 놀랍진 않았다.

“정 실장님, 집으로 가죠.”

“예!”

사무실에서 집까지.

차로 10여분이면 도착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항상 이동하는 차안에서도 공부를 하던 나다.

단어장을 외우고, 논문을 살펴보았다.

정호석은 전혀 의아해하지 않았다.

항상 공부를 하던 내가 공부는 하지 않고, 투자 수익률 보고서만 보고있는데도 말이다.

내 마음을 아는지, 평소보다 빠르게 집에 도착했다.

내딛는 보폭 하나하나에 자신감과 뿌듯함을 가득 담아 내딛였다.

당당하게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처럼 신문을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말했다.

“왔느냐?”

“예.”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예, 오늘 할아버지와의 내기를 끝낼 날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촥!

신문을 접어 내려놓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날 바라보는 할아버지.

“자신 있더냐?”

“예!”

힘찬 대답과 함께, 소파에 앉으며 투자 수익 보고서를 할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으음···”

그 보고서를 보고 할아버지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할아버지 뒤편에 서 있던 백철웅의 동공은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서류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기도 하며 동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입꼬리를 씨익 들어올리며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내 말에 할아버지가 픽 웃으며 보고서를 내려놓고 답했다.

“어울리지도 않는 겸손은.”

할아버지 다운 말씀이었다.

“앞으로도 운이 좋을 예정입니다.”

“하! 이렇게 떡 하니 증거를 가져오니 할 말이 없구나, 철웅아 이것이 몇 배의 수익이더냐?”

“180억이 4700억가량이 되었으니 약 26배의 수익입니다.”

“고작 6개월에 스물여섯배? 세상이 참 변했구나··· 변했어.”

최대한 담담하게 물었다.

“할아버지의 60억은 얼마가 되었습니까?”

< 제 11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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