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8화 (8/458)

< 제 8화. >

“··· 대표님 이건 투자가 아니라 도박입니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런 투자 좋아하시지 않았습니까?”

손사래 치는 강기태.

“아닙니다. 저는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 분석을 통해 투자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게다가 대선주도 아닌 선물 옵션이라니요? 초고위험임은 당연하고 60억이 휴지조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나는 돈이 많은 사람이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사람이니까요.”

이건 아니다 싶은지 짧은 고민이 강기태의 얼굴에 스쳤다.

“강기태 투자총괄본부장님.”

“예.”

“당신은 얼마짜리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예?”

질문의 진의를 알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강기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연봉은 7천만원이죠 그럼 당신의 인생도 7천만원짜리입니까?”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7천만원을 잃는다면 당신은 죽습니까?”

“아니죠, 다시 벌면 됩니다.”

“그럼, 7천만원에 만족하며 살 겁니까?”

“······”

“만약 그렇다면, 그거야 말로 7천만원짜리 인생이 되는거죠 현상유지만을 위해 목숨을 거는.”

“그렇죠···”

난 웃으며 말했다.

“그겁니다.”

“아··· 예.”

“60억 잃는다고 난 죽지 않습니다.”

깨닫는게 있었을까?

그가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당신의 7천만원 여기에 한 번 투자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예?”

“이 도박판에 한 손 걸쳐보란 얘깁니다. 당신의 7천만원이 7억이 될지 14억이 될지 아니면 21억이 될지 아무도 장담해 줄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당신의 인생보다 더 비싼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니까요.”

그의 눈에 순간적으로 스처지나간 것은 욕심이었다. 고민스러운 듯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포트폴리오 구성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이어진 질문에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금방 보고드리겠습니다!”

인생에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사람처럼. 그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별로 좋지도 않은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고 미친듯이 서류에 무엇인가를 적는다.

“예, 그럼 포트폴리오 만들고 계세요. 넉넉하게 3시간뒤에 뵙죠?”

3시간 안에 반드시 포트폴리오를 구성 해 놓으라는 얘기였고 내 말을 알아들은 강기태가 크게 ‘예!’하고 대답했다.

“아, 그리고 투자금액은 60억이 아니라 180억입니다.”

“예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는 강기태.

정호석 역시 논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저는 3시간 안에 120억을 만들어볼테니 본부장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세요.”

“예, 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정호석에게 말했다.

“가시죠?”

“어, 어디로?”

“명동 왔으니까 박사장님이나 보러 가볼까요?”

“예.”

차량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사이.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정호석이 고개를 돌려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련님.”

“네.”

“그, 선물옵션 시장은··· 사채보다 무섭다고 들었습니다.”

“에이, 설마요? 여기는 돈만 잃지 목숨은 잃지 않거든요, 아 물론 절망감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많죠.”

“··· 자신 있으신겁니까?”

“하늘이 도와주겠죠?”

두루뭉술한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실망한 표정은 덤이다.

역시, ‘명장’의 깜냥은 아니다.

전형적인 용장 혹은 맹장이라 불러야 할 ‘칼’이다.

옛날 그 위용이 뛰어났기에 ‘역도’임에도 무예는 뛰어난 장수로 기록된 고려의 무장 ‘척준경’처럼.

아주 유용한 칼, 정호석.

오히려 이런 모습이 더욱 탐났다.

절대 ‘배신’이란 걸 모르는 사람일것 같으니까.

“그, 120억은 어떻게 마련하실 생각이십니까?”

“하하,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사채로요.”

“예?”

내 대답에 경악하는 모습을 보이는 정호석.

히죽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60억 담보로, 120억 못 빌립니까?”

“제 업무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모릅니다만··· 담보가 작아서 안되지 싶습니다.”

“뭐, 박사장이 자세히 알려주겠죠? 마침 도착했네요.”

“아, 예.”

박 사장.

이름은 박무성으로 강영우 다음가는 이인자였다.

내 손에 강영우가 사라졌으니 이제 그가 사장단의 대표격이 되었다. 그리고 나를 적대하는 붉은 연기를 뭉게뭉게 피워올리는 놈이기도 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박무성이 가증스러운 웃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아, 도련님 또 오셨습니까?”

굳이 ‘또’라는 음절을 말하며 날 자극한다.

여유롭게 웃어보이며 자연스레 상석에 앉았다.

“대출 좀 하려는데요?”

“예? 대출이요?”

“예.”

“으음, 얼마가 필요하십니까?”

“120억.”

“예?”

인상을 찌푸리고 박무성을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자꾸 되묻는데, 제가 그걸 좀 싫어하거든요? 알아들으셨으면서 자꾸만 두번씩 말하게 만드시네요?”

대놓고 면박을 줄지는 몰랐는지 기분은 상했지만 참는 기색이 역력한 박무성.

“아, 액수가 액수인지라··· 실례했습니다.”

끝내 ‘죄송합니다’란 말은 하지 않는다.

서열정리는 당했지만 아직 날 인정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나는 웃으며 박무성의 어깨를 두어번 두들기고 품에서 서류를 꺼냈다.

“60억쯤 되겠네요.”

단박에 서류를 파악하고는 날 바라본다.

“이걸 담보로 120억 빌리려고요.”

“아무리 사채시장이 담보에 후하다지만··· 95%를 넘기긴 어렵습니다.”

“그래요?”

“예, 그리고 제가 최대한 힘 써도 20억이 한계입니다.”

“에이, 명동 대표라고 불리시는 분이 겨우 20억이요?”

팍 인상을 찡그리는 박무성.

똑똑똑.

때마침 노크소리와 함께 다섯명의 인물이 박무성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도련님.”

그들은 내가 일부러 이리로 불러온 인물들이었다.

박무성의 경쟁자 적 위치에 있는 사채업자 5인.

여자와 남자가 골고루 섞여있는 성비였다.

“아, 앉으세요 앉으세요.”

나는 내가 사무실의 주인인양 그들에게 손짓했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소파에 둘러 앉았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선이 박무성을 거쳐 내가 박무성에게 주었던 서류에 닿았다. 하나 같이 순식간의 그 서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는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마치 ‘벌써 60억을 주셨다고?’, ‘저 어린게 60억을?’ 하는 표정들이었다.

“제가 사업차 급전이 필요해서 이렇게 사장님들을 불렀습니다.”

“아, 자금규모 60억으로는 조금 모자라셨나봐요 도련님?”

정인숙.

40대 후반의 나이로 알고 있는데 30대 중후반으로 보일정도로 관리를 잘한 여인이 하는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서 저희가 얼마나 해드리면 될까요? 물론 우리 이자가 쎈 건 알고 계시죠?”

“아하하, 정 사장님이 보기보다 화통하시네요?”

“호호호, 우리 도련님 신용이야 풀인데 제가 최대한 쏴드려야죠.”

“오~ 그래요?”

“그럼요!”

정 사장을 필두로.

너도 나도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말을 내게 건넨다. 나는 슬쩍 박무성을 바라보았다.

“하하, 그럼 뭐 저도···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히죽 웃으며 내가 말했다.

“좋습니다. 저는 대충 120억 정도를 융통해볼까 하는데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현재 명동 시장의 이인자 박무성은 최대 20억을 얘기했었다. 그가 그럴진데 다른 사장들은 당연히 그것보다는 적은 금액을 부를 수 밖에 없을터. 호기롭게 말했던 정 사장을 필두로 모두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음, 다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많이 주실까 고민이 많아보이시네요?”

정여사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렇죠 아~ 어, 얼마를 빌려드려야 하나···”

나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행여나 제 말을 오해하시고 충성경쟁이라도 하실까 우려가 돼 금액을 정해드릴게요, 각 20억.”

“예?”

“네?”

“으음···”

“아···”

***

같은시각 천혁수 회장의 자택.

한가로운 오후를 맞이해 물 조리개를 들고 텃밭에 물을 뿌리고 있는 천혁수.

“회장님.”

철웅의 부름에 천혁수 회장이 고개를 돌렸다.

“왜.”

“음, 도련님에 대한 일입니다.”

도련님이란 소리에 천혁수 회장이 하던 일을 멈추고 목제 의자에 앉았다.

“말해.”

“예, 현시각 도련님께서 명동 박 사장 사무실에서 사장단과 만남을 가지고 계십니다.”

“사장단?”

“예.”

“이유는.”

“사채를 쓰시려는 모양입니다.”

“뭐야?”

천혁수 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철웅은 우선 보고를 이었다.

“박무성 사장, 정인숙 사장, 황호식 사장, 김경태 사장, 정희숙 사장, 임지연 사장에게 각 20억 대출을 요구하셨다고 합니다.”

천우진이 만나고 있다는 사장들의 이름을 들은 천혁수 회장이 ‘파하하!’하고 크게 웃다가 말했다. 만남을 가지고 있는 사장들 모두가 강영우의 빈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기 때문.

“20억 씩이라고?”

“예, 총 120억입니다.”

“그 놈이 그런 담보가 있던가?”

“60억짜리 담보서류를 내밀었다고 합니다.”

“크크크큭, 물건이군··· 물건이야.”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철웅아.”

나지막한 부름에 철웅이 ‘예!’하고 절도 있게 대답했다.

“박무성이를 비롯해서 거기 다섯 년놈들이 멍청하지가 않아 120억? 하하하하 이 놈이 사장단을 좀 눌러보고 싶은 마음에 너무 크게 불렀어 아마 내주지 않을게다.”

“그렇습니까?”

“그래, 아무리 내 핏줄이라고 해도 그 놈들도 철칙이라는게 있거든. 서열정리를 하자마자 사장단놈들을 한 번 눌러주고 싶었던 모양인데 이거 어쩌나? 그 놈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들이 아닌데?”

철웅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라도, 회장님을 염두해 두고 빌려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천혁수 회장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물조리개로 텃밭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철웅아.”

“예.”

“내 주머니에서 나간 돈으로 돈 놀이 하는 것들이 정해진 규칙을 어기면 어찌해야겠더냐?”

맑은 하늘, 따스한 햇빛.

5월의 봄 날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 철웅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제거해야합니다.”

천혁수 회장은 당연하다는 듯 계속 텃 밭에 물을 주며 편안한 얼굴로 말한다.

“그렇지, 그러니 그 놈들은 많게 잡아줘도 딱 담보만큼 그러니까 60억. 딱 그만큼만 내줄게다 제 놈들도 제 목숨 귀한건 알고 있을테니.”

“예.”

“네 놈도 그리 알고 신경 끄거라. 내 손주놈이 얼마나 신명나게 노는지 한 번 구경이나 해보자꾸나.”

“예, 회장님!”

***

사장단은 계속 정호석을 힐끔거렸다.

아직은 내 권위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호석의 눈치를 살피고 있음이었다. 바깥에서는 이들이 내 조부의 수족이라고 생각할테지만 이들은 아는 것이다.

자신들이 정호석과 백철웅의 밑이라는 것을.

박무성이 굳은 결심이 느껴지는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120억은 힘들것 같습니다.”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과거의 사채시장에 피바람이 불 때, 서로 출혈을 줄이고자 ‘내기’라는걸 선택했었다고 들었습니다.”

“크흠.”

박무성이 불편한지 헛기침을 토해냈다.

“제가 그때 회장님께 졌습니다.”

굳이 묻지도 않은 TMI를 날려준다.

나는 그의 말에 답변하지 않고 말했다.

“어떠신가요 여러분? 저와 내기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정호석도, 박무성도, 다른 사장들도 모두 토끼눈을 뜨고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렸다.

“6개월 내에 최소 3배, 그러니까 여러분이 빌려주신 돈 120억을 360억 이상으로 만들겠습니다.”

사장단 모두가 실소를 머금었다.

그들도 아는 거다. 저게 말처럼 쉽지 않은 걸 넘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가 이기는 조건은 하나, 6개월 내에 120억을 3배 이상으로 만든다. 지는 조건은 그 반대겠죠.”

박무성이 물었다.

“그럼 도련님이 이기시면 뭘 가져가십니까?”

“원금 120억만 돌려드립니다.”

“도련님이 지시면요?”

박무성을 비롯한 사장단의 얼굴을 쓱 훑었다. ‘어디 한 번 말해 봐, 네가 뭘 줄 수 있지?’하는 표정들이었다.

“박 사장님.”

“예.”

“연산군을 아십니까?”

“알죠, 폭군 아닙니까?”

“연산군이 폭군이 된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음, 뭐 어미의 억울한 죽음 아니겠습니까?”

박무성의 말에 내가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말했다.

“연산군은 ‘왕의 명’으로 자신의 어미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가져다 준 ‘이세좌’를 술을 쏟았다는 이유하나로 죽였죠.”

그제야 사장단이 눈치를 챘는지 낯빛이 서서히 굳는다.

“강영우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신 여러분들은 어떨까요?”

박무성이 입술을 달싹였다.

어느덧 티나지 않게 이를 악무는 모습. 그의 떨림에는 치욕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문득, 전 삶에서 삼현의 이건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랫것들은 작은 모욕은 참지 못하고 복수를 꿈꾸지만 너무 큰 모욕과 공포는 몸에 각인 되어 잊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지, 다시 모욕과 공포가 자신에게 다가올까 두려워 하는 법이야.’

지금은 시기적으로, 사장단에게 확실한 ‘공포’를 주어야 할 때. 그렇기에 미래에 나오는 어느 영화의 대사를 인용해보기로 했다.

“박 사장님.”

“예···”

“내가 내기에서 졌을때 여기 사장단 분들한테 뭐 떨어지는게 없나 그게 궁금한거죠?”

“그렇습니다.”

“살려는 드릴게.”

“.....”

눈을 부릅 뜬 박무성이 날 바라보고 나머지 사장단은 침을 꼴깍 삼켰다. 정호석은 뭐가 재미있는지 입가에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 제 8화. > 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