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화. >
잠시 어제를 회상하는 사이, 차는 미끄럽게 움직였고 조용하게 멈추었다.
“도착했습니다 도련님.”
호석이 차량의 문을 열어주고 차에서 내려 강영우의 사무실로 향했다.
딱 봐도.
여길 보고, 저길 봐도.
누가 봐도 사채업자 사무실 같은 모습에 난 픽하고 웃어버렸다. ‘사장님 의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가죽 의자 뒤로 산수화 하나가 걸려있고, 입구쪽 문 위에는 한문으로 된 현판이 걸려있다.
참 구식 인테리어다.
ㄷ자 모양의 7인용 소파의 한 켠에 앉아서 긴장하고 있는 인물.
“강기태씨?”
내 말에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인다.
“처음뵙겠습니다. 펀드매니저 강기태라고 합니다.”
호석의 부하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덩치들이 꽤 겁을 준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레 상석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천우진이라고 합니다.”
“예···”
“우선 앉으시죠?”
“예!”
자리에 앉은 그를 잠시 쳐다보았다.
푸근한 인상에 제법 날카로운 눈매. 저 날카로운 눈으로 경제위기에서 이익을 냈던 사람.
훗날, 마치 ‘매국노’취급을 받으며 더 성장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이기도 했다.
경제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득을 취한 것이 어찌 이 사람 하나뿐이던가? 대기업들 외국인놈들 너나 할 것 없이 기득권이던 놈들은 부동산이며 주식, 심지어 건실한 회사까지 아가리에 쑤셔 넣었었는데, 정작 수십억의 작은 이득을 봤던 이 사람은 매국노가 되었고, 그들에겐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정말 대한민국은 웃기는 나라다.
“아, 차도 한 잔 없었네요.”
호석이 뒤로 손짓하자 직원이 차를 내왔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믹스커피를 홀짝이는 그에게 물었다.
“지금 직장은 만족하십니까?”
“예···”
그럴리가 없다.
그가 반골적 기질을 보이며 경제위기에서 이득을 본 이유는 회사 내부에서 그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고 학연과 혈연, 지연에 밀려 만년 ‘주임’신세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니까.
나는 툭, 현재 그가 다우종금에서 투자중인 포트폴리오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수익률 440%
자유롭지 못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5년 동안 달성한 수익률이었음에도 직급은 고작 ‘주임’.
“그래요? 듣기론 아니던데요? 벌써 주임 5년차던가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의 눈에서는 경계심이.
그의 몸에서는 붉은색 연기가.
내게 적대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회사를 나올 생각 있습니까?”
“예?”
“지금 연봉의 두배, 자유로운 투자금 운용.”
“두배요?”
아직도 붉은색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세배를 드리죠.”
“세, 세배요? 제 연봉이 얼마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뭐, 대충 2400만원 언저리겠죠.”
정말 대충 말했다.
“예··· 그것보다 조금 안되긴 합니다만.”
“우수리 떼고 7천.”
그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돈 싫어하는 놈이 펀드매니저를 한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펀드매니저인 만큼 돈을 좋아해야 했다.
“으음.”
고민하는 듯 사무실을 쭉 둘러보는 그.
“아, 여기서 일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미팅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여기를 택한거죠, 투자 법인을 설립할 생각입니다. 우선 그곳의 투자총괄매니저 직에 당신을 스카웃 하는거고요.”
“투, 투자총괄이요?”
“예, 별로인가요?”
“정말, 투자금 운용을 자유롭게 해도 되는 겁니까?”
“예, 바로는 아니지만 3년 동안 천천히, 당신의 성과를 보고 내가 만족한다면 완벽한 자유를 드리겠습니다.”
붉은색 연기가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노란색 연기로 바뀌고.
“장고 끝에 옳은 결단 없는 법이죠, 3년에 2억 1천만원, 결코 손해가 아니라고 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좋습니다 이직하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호석을 가리키고는 말했다.
“퇴사부터, 법인설립까지 여기 이분과 함께 처리하시고 다시 미팅하시죠, 업무지시는 그 이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정호석과 그는 서로 명함을 주고 받았다.
굳은 결심이 보이는 눈으로 강기태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강기태가 완전히 사라진것을 보고 호석에게 말했다.
“명동에 온 김에, 근처 사장단 얼굴이나 좀 볼까요?”
“예, 도련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같은 시각, 천혁수의 집.
“현재시각, 도련님께서 펀드매니저와 만남을 가지셨습니다.”
천혁수 회장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이 놈이 자신만만해 하더니 김 빠지게 펀드매니저?”
철웅은 대답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로서도 실망의 기색은 숨길 수 없는 모양이지만 애써 티를내진 않았다.
“그 펀드매니저라는 놈은 어때?”
“도련님이 콕 집어서 고르신 것 같은데··· 회사 내부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친구였습니다.”
“꼴통을 불러 왔다?”
“예···”
천혁수 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철웅아.”
“예, 회장님.”
“네 눈에 내 손주놈이 꼴통 같더냐?”
“굉장히 영민해보였습니다.”
“그렇지? 나도 그랬는데 말이야··· 도대체가··· 이 놈이 노인네 가슴을 뛰게 만들어 놓고 갑자기 김을 빼 놔?”
천혁수 회장이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손자놈의 행보가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있게 ‘내기’라는 말을 내뱉던 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실망스러운 행보였다.
하지만 총명하게 빛나던 눈과 모든걸 집어 삼킬것 같던 그 두 눈이 떠오르니 다시금 손자놈의 행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떠올려 보고 있었다.
“투자는 확실한데···”
“지금이라도 60억을 회수 할까요?”
철웅의 말에 천혁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작 60억에 할애비가 말을 바꿔?”
철웅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순 없는 법이다.
“되었어, 그 놈이 제 젊음을 걸었으니, 한 20년 동안 바닥에서 구르다 보면 깨닫는 게 있겠지.”
천 회장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평소처럼 아산댁이 내어온 약주를 기울이며 향을 음미할 따름이었다.
***
처음 도착한 곳은 ‘박사장’이라 불리는 인물의 꽤 규모있는 대부업체 사무실이었다.
굳이 이곳을 처음으로 택한 이유는 거리가 가까워서도 있지만 내게 붉은색 연기를 뿜어냈던 인물이기 때문도 있었다.
“앗 도련님?”
박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날 맞이했다.
“예, 접니다.”
“아, 앉으시죠.”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고 여직원이 내주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어쩐일로···”
조심스럽게 말하는 박사장.
그의 몸 주변에서 붉은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별건 아니고요 주머니가 가벼워서 영.”
“예?”
“주. 머. 니가 가벼워서 영, 뭘 할 수가 있어야죠?”
“아, 아하하 그 그렇습니까.”
당황한 것은 박사장뿐이 아니었다.
정호석 역시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아참! 그러고 보니 도련님한테 용돈을 챙겨드린다는 걸 제가 깜빡하고 있었습니다!”
박사장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가 황급히 뭔가를 챙긴다.
차분히 차를 마시고 있으니, 어느새 나타난 박사장이 이 시절에는 꽤나 귀했던 나이스 스포츠백을 내게 전한다.
“별건 아니고, 도련님 학교 생활 하는데 불편함이 없으시라고 조금 넣었습니다 하하.”
유독 ‘학교’라는 말을 강조한다.
아직은 내가 어리니 처신을 잘하라는 경고가 포함되어 있다.
“에휴, 가방끈 길어서 뭐 하겠습니까? 돈 놀이를 가방끈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사장님은 대학까지 나오셨나요?”
“아, 아뇨··· 주, 중졸입니다.”
되려 한 방 먹은 박사장이 입을 꾹 닫는다.
눈치껏 호석이 스포츠백을 들어올리고.
나는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는 잘 마시고 갑니다.”
“예··· 들어가십시오.”
“그래요.”
***
철웅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혁수 회장이 대소하며 말한다.
“뭐야? 사장단한테 용돈을 챙기고 있어? 이 놈이 돈귀신이 붙은게야?”
“사장단들 사이에서 도련님에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질까 염려됩니다.”
“이 놈이 내기는 뒷 전이고 제 주머니를 채우고 다닌다라, 재미있구만.”
“혹, 용돈까지 자신의 수익으로···”
“안 걸리면 그것도 능력이지, 그런데 이렇게 걸렸으니··· 녀석, 반칙을 써? 하! 이것을 귀엽다고 해야 할지, 얄밉다고 해야할지···”
“다른 사장들에게 연락을 취할까요?”
“하하하, 됐어.”
철웅은 도무지 천혁수 회장이 뭐 때문에 저렇게 웃는지 알기 어려웠다.
무슨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얼마를 받았다더냐?”
“예, 2천만원에서 5천만원까지, 현재까지 총 3억3천만원입니다.”
“고놈 통도 크구나, 고등학생 용돈이 3억 3천이라니.”
“···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명동바닥의 대부업체 중, 방문하지 않은 곳들이 많습니다.”
천혁수가 철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철웅은 입을 닫고 고개를 조아렸다.
“철웅아.”
“예, 회장님.”
“네 놈은 내가 왜 손주놈을 말리지 않나 궁금한게냐?”
“··· 예.”
“너는 지금 내 손주놈이 뭘 하고 다니는 것 같더냐? 단순히 주머니를 불리고, 나와 한 내기때문에 배를 불리고 있는 것 같더냐?”
“예.”
“쯧쯧, 네 놈도 아직 덜 여물었구나.”
갑작스런 핀잔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철웅.
“어제 네 놈과 호석이의 다툼을 생각해 보아라.”
이어진 천혁수 회장의 말에 철웅이 무엇인가 깨닫는게 있었는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며 탄성을 뱉었다.
“아아!”
“그래. 그것이다.”
철웅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반칙도, 주머니 불리기도 아니었습니다··· 서열정리, 지금 도련님께선 서열정리를 하고 계신것이었습니다!”
“하! 이 놈이 하루에도 몇 번씩 실망을 시켰다 기대를 시켰다 하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사장단이 적개심을 갖지 않겠습니까?”
철웅의 질문에 천혁수 회장의 얼굴이 맹수로 변했다.
“되었다, 그 또한 손주놈이 알아서 할 일이지.”
“예···”
***
이틀 뒤.
나와 호석의 목적지는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교무실이었다.
“음! 천우진! 이 자식이 무단결석을 8일이나 해!”
대뜸 날 보고는 손을 휘두르는 담인선생.
쫙!
손바닥과 볼살이 마찰음을 내며 듣기 싫은 소리를 내었다.
“아, 아니··· 그, 누구?”
물론 내 볼이 아니었다.
나 대신 맞은 호석이 어정쩡한 자세로 무감정하게 말했다.
“도련님의 보호자입니다.”
“도, 도련님? 천우진이는··· 고아인데?”
“여태껏, 우리 도련님을 이런식으로 대하신 모양입니다··· 선생이시기에 한 번은 눈 감아드리겠습니다.”
호석의 번들거리는 눈은 감히 일반인 선생이 감당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에이, 삼촌 살살해요, 살살.”
“예.”
나는 품에서 미리 준비해온 서류를 내밀었다.
“자, 자퇴서?”
“예, 선생님 바로 처리해주시죠?”
“어, 음.”
결국 호석이 한 마디를 거들었다.
“모쪼록 다시 볼 일 없기를 바랍니다.”
“아, 그, 예! 꼭 제대로 처리해놓겠습니다!”
선생의 대답에 만족하고 학교를 벗어났다. 밤색 각 그렌져에 올라타자 전화를 받던 호석이 말했다.
“도련님, 강기태씨입니다.”
“법인 설립 했답니까?”
“예, 지금 뵙고자 한답니다.”
“가죠, 강영우 사무실 정리 되었죠?”
“예, 확실하게 처리했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고, 차는 미끄럽게 움직였다.
강영우의 사무실은 전과 다르게 꽤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인테리어 업자에게 내가 자세히 설명하였고, 인테리어 업자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내 의중을 십분 반영해 주었다.
물론 내 뒤에 서 있었던 떡대들이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제법, 투자회사에 어울리는 인테리어에 만족하며 꽤 넓직한 책상위에 앉아 있는 강기태가 날 반겼다.
“아, 본부장 오래 기다렸습니까?”
“아닙니다 대표님.”
어느새 나는 대표, 그는 투자총괄본부장이 되어 있었다.
“사명은 도련님의 요청대로 SKY 인베스트먼트로 만들었습니다.”
“예, 절세는 완벽하겠죠?”
“예! 여기저기 페이퍼 컴퍼니를 돌리고, 종래엔 미국 그 어느 주보다 투자자에게 세금을 적게 물리는 곳에 설립했습니다.”
“좋습니다.”
“처음 지시처럼 60억을 전액 달러로 환전해놓은 상태입니다.”
고작 이틀만에 법인을 설립하고, 60억을 환전했다.
이런 유능한 인재가 고작 주임급에 머물고 있었다니 역시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물론 미래에는 많은 기업들의 기업문화가 변화하지만 역시 아직까지는 능력보다는 연줄이 최고인 모양이다.
미래라고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어쨌든.
“좋아요, 그럼이제 종목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봐야 겠군요.”
강기태게 설레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이 사람에게는 노란색 연기가 보인다.
아직까지 나를 크게 신뢰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냥 돈 많은 집 철부지 망나니쯤으로 보는 모양, 그래도 쩐주이니 대우는 해주는 느낌이랄까?
“미국 대선, 어떻게 보십니까?”
강기태가 말했다.
“아칸소 스캔들과 더불어··· 현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바뀌지 않겠습니까?”
“클렌턴이 재선한다는 가정하에, 선물 옵션에 투자를 한다면 어떤 종목을 골라야겠습니까?”
“예? 재선 한다고 보시는 겁니까?”
“예.”
“······”
어째서 확신하냐는 무언의 질문.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클렌턴의 재선이 확실하다는 가정하에 선물 옵션에 투자합니다. 포트폴리오 구성하고 보고하세요.”
“··· 대표님 이건 투자가 아니라 도박입니다.”
< 제 7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