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5화 (5/458)

< 제 5화. >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말했다.

“모릅니다.”

강영우놈의 몸에서 붉은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붉은색 연기는 거짓과 적의.

초록색 연기는 진실과 선의.

노란색 연기는 그것들의 중간 어딘가.

‘새로운 능력까지 생겼다?’

하늘이 내게 왜 이렇게 기회를 주는지 모르겠다.

전 삶이었는지 아니면 예지몽 속 미래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늘 하늘을 원망했었다.

태생이 억울했고, 가진바 능력을 모두 뽐내기 어려웠기에 억울했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의 기회와 더불어 새로운 능력까지 주다니 거짓과 진실, 적의와 선의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게 앞으로 내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안 봐도 눈에 선하다.

검사? 판사? 그런 놈들에게 더 좋은 능력 아니냐고?

아니다.

이건 경영자에게 가장 좋은 능력이다.

회사를 꾸리는데 아주 핵심적인 능력이다.

나도 모르게 입고리가 씨익 올라간다.

어째서인지 내가 웃자, 사장단이 몸을 떨었다.

그들을 신경쓰지 않고 들고 있던 서류철을 펼쳤다.

강영우의 모든것이 낱낱이 적혀있는 서류들, 그 중 하나의 사진을 뽑았다.

강영우와 그의 아내와 품에 안겨있는 어린아이.

단란해보이는 가족사진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그것을 들고 호석을 불렀다.

“호석아재!”

“예! 도련님.”

다가온 호석아재를 쳐다보고 말했다.

“칼 주세요.”

호석의 눈이 떨린다.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려 하기에 말했다.

“주세요.”

작지만 강한 어조였고 단호하게 말하자 품에서 꽤나 질 좋은 단검 하나가 나왔다.

사진을 칼에 꽂고 그대로 내려 찍었다.

“끄으으윽.”

강영우가 왼쪽 허벅지를 부여잡으며 신음했다.

고통의 순간도 잠시, 허벅지위에 피가 번지는 상황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사진에 시야를 고정한다.

“신중하게 혓바닥 놀려, 너 하나로 끝내고 싶다면.”

부들부들 온 몸을 떨던 강영우.

“정말··· 정말 오늘 처음 뵙습니다!”

사장단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몇몇은 내게 적개심을 보인다.

아마도 강영우와 뜻을 함께하던 놈들일터.

강영우도 대단했다.

가족들의 안위보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다.

욕심 많은 놈들은 이런것이 무섭다.

욕심에 눈이 멀어 세상 그 무엇보다 자신만을 생각하니까.

“네 놈이 부하들을 내게 붙여놓은 이유는?”

“그런 적 없습니다.”

오리발.

이 놈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다.

“꼭 똥인지 된장인지 맛을 봐야 아는 놈들이 있지. 네 놈도 그런 부류인가?”

고개를 들어 사장단의 눈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여긴 법정이나 취조실이 아니야, 유감스럽게도 법정에서 처럼 ‘증거’가 있어야 하는일이 아니거든? 얼마든 ‘심증’으로도 처벌 할 수 있다는 것. 그걸 알았어야지.”

허벅지에 꽂혀 있던 칼을 비틀어 뽑았다.

“으윽.”

피가 흘러 강영우의 가족사진이 붉게 물든다.

다시 칼을 휘둘러 강영우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잘랐다.

“끄아악.”

“고통만 늘어날 뿐이다. 네 놈의 잘못 모든걸 고해 그것에 따라 네가 어떻게 가게 될지, 너와 연관된 모두가 어떻게 될지가 결정될테니까.”

내 말에 장내는 더욱 고요하게 변했다.

강영우도 멍청하지 않다면 깨닫는게 있을터.

아직도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지 못한 놈에게 나는 무감정하게 말했다.

“옛날, 반역은 구족을 멸했지. 아예 씨를 말렸단 얘기야 어떻게 생각하지? 못할 것 같나?”

그제야 강영우가 악어의 눈물을 떨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7년전······”

강영우의 설명이 이어지는데 강영우의 몸뚱이에서 시시각각 피어오르는 연기의 색이 달랐다.

때로는 초록색, 때로는 노란색, 때로는 붉은색.

하는 말과 나오는 연기의 색을 머릿속에 정리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이며 어디까지가 애매한지 확실하게 정리해두어야 했다.

내 부모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시 만삭이었던 어머니의 뱃속에서 난 운좋게 살아남은 듯 싶었다.

그리고 그 어린 신생아를 강영우는 빼돌렸다.

강영우가 말한 것 중, 진실만을 취합해 정리한 정보는 이것이 전부였다.

난 찜찜한 부분이 있어 물었다.

“우리 부모님의 교통사고··· 네 놈은 그것과 연관이 없나?”

조부가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분노가 절절끓는 눈으로 강영우를 바라본다.

사시나무 떨듯 강영우의 몸이 떨린다.

차마 할아버지의 눈을 바라보지 못한다.

내 눈도 아마 할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강영우는 감히 내 눈도 쳐다보지 못했다.

“그, 그것이.”

대답은 필요 없다.

망설이는 순간.

이미 답은 들은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고개를 숙여 강영우만 들을 수 있게 속삭였다.

“이건은? 이건도 네놈의 그 더러운 술수에 손을 보탰나?”

강영우의 떨림이 더욱 심해졌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의 색깔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대답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되었든 분명히 관여했다.

부모님의 죽음과, 내 삶에 관여를 했던 하지 않았던.

이건을 치워야 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길이다.

“과, 관여를···”

강영우의 입이 열리려는 순간.

놈의 턱을 움켜쥐고 크게 말했다.

“호석 아재!”

“예. 도련님!”

“잡으세요.”

“예!”

굳이 듣는 귀가 많아서 좋을게 없는 사실이다.

할아버지의 그늘에서 감히 헛 생각을 품기엔 어렵겠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나 변수를 만들어내기에 아직은 ‘이건’에게 ‘적’이 될 필요는 없었다.

적인지, 아닌지 헛갈려할 정도.

그 정도가 딱 적절하다.

그러니 저 위험한 혓바닥은 제거해야한다.

호석은 눈치껏 오른팔로 강영우를 뒤에서 끌어안듯 붙들고, 왼손으로 놈의 아랫턱을 밑으로 내렸다.

나는 왼손을 놈의 아가리에 집어넣어 혀를 잡아채 쭈욱 뺐다.

촤아악! 후드득.

“끄으으으으으!”

놈이 대리석 바닥에 누워 꿈틀 거리고, 난 선언하듯 말했다.

“다들 혀 관리 잘 하세요, 혀를 잘 못 놀리면 명이 짧아집니다.”

할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써 먹어 보았다.사장단은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젖은 수건을 내미는 아산댁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보이는 것으로 감사함을 표하고, 손을 닦으며 말했다.

“이 놈의 심복들은 모두 처리하세요 깔끔하게, 뒤탈이 없도록.”

“예!”

사장단이 하나의 목소리로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이제 일들보세요 바쁘신 분들의 시간을 너무 오래 빼앗았습니다. 오늘 못다한 대화는 다음에 직접 한 분, 한 분 찾아뵈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축객령에 사장단은 나와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서둘러 집을 벗어났다.

내 바짓가랑이를 잡으려는 강영우.

호석은 그런 그를 위에서 지그시 누르며 감히 내게 손을 닿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예.”

강영우를 데리고 호석이 사라지자 가사도우미들이 서둘러 집안을 정리했다.

그 사이 나는 할아버지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보기 불편하셨죠?”

“됐다··· 네가 가지고 있을 분노를 어느누가 헤아릴 수 있겠더냐?”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나저나, 우진이 네가 마지막에 그놈에게 속삭였던 것이 무엇이냐?”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건, 이건 회장과의 연관성을 물었습니다.”

“뭐?”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되묻는 그.

“분명··· 꿈에서 보았던 얼굴은 둘이었습니다. 강영우와 삼현의 이건.”

쾅!

“감히 그 놈들이 이 나를 능멸해?”

어느새 귀신같이 나타난 아산댁이, 좋은 향이 나는 차를 내왔다.

“어르신, 노기를 다스리는데 효과가 좋은 차입니다.”

“으음.”

눈에서 활화산처럼 끌어오르던 분노가 조금 옅어지고,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너무 컸구나.”

맞다.

삼현은 너무 컸다.

예전처럼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조아리던 그들이 아니다.

메모리 시장의 선두를 달리며 점차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으며, 휴대폰 시장에도 뛰어 들어 대한민국 재계서열의 당당히 1등을 차지하고 있는 놈들이다.

미래엔 ‘스마트폰’을 개발해내며 전세계 시장에 이름을 떨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터.

지금도 거인이지만 미래에는 공룡이 될테다.

“할아버지 놈들이 세를 불려 지금은 우리가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우리도 세를 불리면 될 일입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도 이르다 하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자, 이제 고작 18살입니다.”

할아버지가 놀란눈으로 날 바라보다 곧 따뜻하고 뿌듯함이 서린 눈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내 손주는 이제 겨우 18살이지··· 하하하, 네가 이 할애비보다, 니 애비보다 낫다! 과연 우리 천가의 핏줄이로다!”

잠시 크게 광소하더니 다시 침착하게 말하는 할아버지.

“이건이 그 놈은 눈치가 제법이야 강영우가 죽어도 자신의 비밀이 밝혀졌으리라 예상 할 놈이다.”

“맞습니다. 그러나 예상하는 것과 정확히 아는것은 엄연히 다른 일입니다. 그러니 일단, 강영우를 죽이고 단순히 ‘손자놈을 숨겼기에 죽었다’ 정도로 끝내야 합니다.”

“눈가리고 아웅이지만 하지 않는 것보단 좋겠다?”

“예, 속임수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법이지요.”

할아버지가 크게 웃었다.

정말 호탕한 웃음 그 자체였다.

“크허허! 잘 컸구나 잘 컸어! 내 손주놈이 아주 잘 컸구나! 이래야 천가의 핏줄이지! 이래야 내 핏줄이지!”

차를 한 모금 마셔 입가심을 하고는 내게 물었다.

“손속에 자비가 없더구나, 단지 복수더냐?”

“본보기였습니다. 찢어죽이고 싶은 마음도 사실이나 감정보단 먼저 사장단에게 이 ‘천우진’을 제대로 각인시키고 싶었습니다.”

“강영우놈의 가족들은, 처리할 셈이더냐?”

“굳이 숨까지 거둘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공포’는 새겨주어야 할 듯 싶습니다.”

“그래, 감히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못하게 해야지 좋아, 고 놈 성깔이 나를 쏙 빼다 박았구나!”

단숨에 차를 비워낸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산댁!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 한 잔 해야겠네.”

소리 소문 없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아산댁이 특유의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어르신, 저녁상을 준비하겠습니다.”

아산댁이 사라지고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오냐.”

“호석아재와 철웅아재도 식사를 같이 했으면 싶습니다.”

할아버지의 눈썹이 떨렸다.

불쾌함의 표현으로 보였다.

할아버지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서 있던 철웅이 나섰다.

“도련님, 저희는 감히 회장님과 겸상하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할아버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역시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와 할아버지의 눈싸움에 당황 한 것은 철웅이었다. 크게 표를 내진 않으나 좌불안석 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고 놈··· 욕심이 많구나 벌써 보따리를 내놓으라니.”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설마요, 그저 할아버지 보따리를 구경하고 싶을 뿐입니다.”

“오냐 어디 감히 들여다 보아 봐라 녹록치 않을테다.”

철웅은 나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모양.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무슨 그저 구경정도에.”

쉽게 내주지는 않겠다는 얘기.

하지만 난 이 정도로도 만족했다.

어찌되었건 결국은 내것이 될 것이고, 내어줄 수 밖에 없을테니까.

“저녁때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잠쉬 쉬었다 오거라 씻기도 해야 할테고.”

“예!”

크게 대답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

방으로 사라진 우진을 바라보던 천혁수 회장이 말했다.

“철웅아.”

“예.”

“어떻더냐?”

“좋았습니다··· 부친께서 오늘 이 일을 보셨다면 크게 기뻐하셨을것 같습니다.”

천혁수 회장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예, 정말 회장님이 나이만 어려지신 것 같았습니다.”

“예끼, 네 놈 아비가 살아 있었으면 ‘무슨 소리야? 회장님보다 100배 낫지’하고 내 속을 뒤집어 놨을게야.”

“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내가 백가 놈 속도 모를까?”

“예, 저보다 더 잘 아시죠.”

“쯧, 나도 늙은게야··· 오늘따라 보고 싶은 놈들이 많으니.”

“큰일 날 말씀을 하십니다 도련님이 증손자, 고손자 보고 가라시잖습니까?”

“썩을 놈, 내가 노망나는 꼴을 봐야겠더냐?”

철웅이 특유의 무표정을 지우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휴, 아직도 어지간한 장정 서넛은 쉽게 다루시잖습니까.”

“쯧, 요즘 것들은 영 근성이 없어.”

“하하하.”

천혁수 회장이 철웅을 빤히 바라보았다.

천혁수 회장의 곁을 그의 부친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오던 철웅.

지금 천혁수는 완벽한 주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자세를 공손히 하고 감히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철웅이 네가 올해 마흔 셋이던가?”

“예, 회장님.”

“네 아비가 먼저 가고 벌써 스무해가 지났구나.”

“그렇습니다.”

“손주놈의 요구에 처음으로 우리가 겸상을 하는구나.”

그는 천혁수 회장의 의중을 꿰뚫었다.

“제 주군이 누구신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면 되었다.”

< 제 5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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