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철혈의 재벌-3화 (3/458)

< 제 3화. >

쿵, 쿵, 쿵.

심장이 고막을 터뜨릴 듯 뛴다. 단순히 눈을 마주쳤다고 이렇게 심장이 뛸 수 있을까 싶었다.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서서 날 죽일듯 쏘아보는데 그 기백이 정말 대단했다.

여포? 조조? 유비? 관우?

그런 인물들의 눈빛이 이랬을까?

삼현의 이건 회장의 눈빛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말 수도 없는 사선을 헤쳐왔을 법한 눈이다.

삼현의 3비서실장으로 지내면서 수많은 거인들을 만나보았지만 이 정도 기세를 뿜어내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

얼굴만 알았지 실제로 보기는 처음인 천혁수 회장.

부디 그가 나의 조부가 맞기를 간절히 바랐다.

“네놈이 내 손자라고?”

“예.”

“웃지마! 정들어!”

벼락같은 호통이 고막에 때려 박힌다.

“아오, 할아버지 손자놈 귀 나가요 살살 말씀하셔도 다 들립니다!”

“이 놈이 어디서 어른한테!”

어차피 벌어진 일, 세게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게다가 이미 할아버지의 몸에서 나오는 연기가 조금씩이지만 초록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왠지 마음에 안정을 주는 색이다.

“아산댁! 냉수좀 내와!”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고 소파에 앉아 있는 날 빤히 쳐다본다. 눈빛이 드릴도 아니고 얼굴을 뚫어버릴 것 처럼 강렬하다.

할아버지의 운전기사였던 인물이 내게 말했다.

“이 집에선 아무도, 소파에 앉을 수 없다. 오직 회장님께서만 가능한 일.”

그의 말처럼 조폭 놈들은 피를 흘리면서도 모두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공손히 앉아 있었다.

어차피 막나가고 있던 찰나니까 픽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이 집에서 소파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둘이겠네요,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손자인 나.”

사내가 어이없다는 고개를 흔들다 내게 접근하려하는데 할아버지가 한쪽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묻는다.

“네가 왜 내 손자야?”

“출생의 비밀은 모릅니다.”

“그런데?”

“꿈을 꿨어요.”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며 말하는 할아버지.

“꿈? 꿈에서 내가 네 할애비디?”

“예.”

“하!”

편안한 인상의 여인 아산댁이 할아버지에게 냉수를 내오자, 단숨에 비우더니 크게 심호흡하며 말했다.

“후우, 그러니까 학생이 내 손자란 걸 꿈으로 알았다?”

“네.”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유전자 검사 해보면 될 일이죠 할아버지.”

“네 놈 간덩이가 얼마나 큰지, 배를 갈라보고 싶은 심정이구나.”

무감정하게 내뱉는 그 말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무거운 분위기에 불쑥 아산댁이라 불린 여인이 할아버지의 어깨춤을 잡아 주무르며 말했다.

“진정하셔요 회장님, 학생 말처럼 유전자 검사 해보면 되잖아요?”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건장한 사내 한 명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회장님, 찾으셨습니까.”

운전기사 역할을 하던 사내와 다를 바 없이 척 봐도 거구의 사내였다. 얼굴과 손에 어마어마한 흉터들을 가지고 있는 그.

운전기사와 함께 할아버지의 ‘칼’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영우는?”

“그,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뭐야?”

퍽 챙그랑.

유리잔이 조폭놈들 중 하나의 얼굴에 맞았다.

조폭놈은 얼굴이 찢어지는 고통에도 그저 고개를 조아리고 신음소리 한 번 흘리지 않았다.

“영우 어디갔니?”

조폭들 중, 머리 역할을 하던 사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한다.

“저, 저희도 모릅니다 회장님!”

“이 새끼들이···”

말을 하던 조폭놈의 몸뚱이에 초록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신호등이냐고.’

어이가 없었다.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꼭 신호등처럼 사람의 몸에서 피워오르는 저 연기들, 아마도 내 눈에서만 보이는게 분명한것 같다.

할아버지가 방금 집으로 들어온 사내에게 눈빛을 보내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놈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있던 조폭놈의 손가락을 꺾여서는 안될 방향으로 꺾어버렸다.

“끄으으윽.”

아산댁은 물론 장내의 그 누구도 눈쌀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사람의 뼈가 부러지는 상황에서.

사실 나도 익숙했기 때문에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다 놈에게 질문했다.

“강 사장 어디갔어?”

“저, 정말 모릅니다··· 아시잖습니까? 저희도 명령에 움직이는 놈들입니다.”

빠각.

다른 손가락 하나가 더 부러졌다.

“아직 손가락은 많아. 그 다음은 발가락이고, 그 다음은 이빨이야, 그래도 말을 안 하면 귀를 자르고, 코를 자르고 눈깔을 파 주마.”

조용하게 얘기하는 할아버지의 음성에 조폭놈의 사타구니에서 누런 액체가 줄줄 세어 나왔다.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진짜 모르는 모양이구만··· 그나저나 요즘것들은 영 근성이 없어, 손가락 두개 부러졌다고 오줌을 지리고.”

세상을 집어 삼킬 것 같은 눈으로 귀를 자른다는 둥 눈깔을 파버린다는 둥 얘기하는데 버틸 수 있는 놈들이 얼마나 될까?

나도 모르게 긴장 돼 침을 꼴깍 삼켰다.

얼마만에 이렇게 긴장하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저 연기.

색으로 구분하자면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예상컨데, 붉은색은 적의와 거짓말.

초록색은 선의와 진실.

그리고 노란색은 그것들의 중간 어디쯤.

‘거짓말 탐지기?’

아직은 정확히 이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나는 장내에 벌어지는 일에 집중했다.

할아버지 천혁수가 말했다.

“좋아, 영우 얘기는 이쯤 하고, 이 학생을 납치하려던 이유는 뭐야?”

“강 사장의 지시였습니다.”

이번엔 빠르게 대답이 나온다.

그의 대답에서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의 생존욕구가.

“왜?”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대답해보라는 뜻이었다.

“제가 할아버지 손자라서요.”

“하, 또 그 소리냐? 그런데 너는 내가 두렵지 않은게야?”

“세상 어떤 손자가 자기 할아버지를 무서워해요? 해치지 않을 걸 뻔히 아는데.”

“하! 고놈 배짱 한 번 두둑하구나.”

다시 고개를 돌려 서릿발 같은 눈으로 조폭놈을 바라본다.

“네 놈들도 여기 이녀석이 내 손자라서 납치를 하려 했던게냐?”

“저희는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강 사장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할 수 있다면 ‘제거’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이제 내 말에 어떤 신빙성이 생겨버린 상황이다.

할아버지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했다.

“강영우 수배하고, 김박사 들어오라고 그래. 아니지 김박사, 황박사, 이박사 셋 들어오라고 그래.”

할아버지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던 사내가 멀찍이 떨어져 바쁘게 여기저기로 전화를 한다.

조폭의 손가락을 부러트렸던 사내가 조폭들을 끌고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고 아산댁이라 불린 여인이 몇명의 가사도우미를 더 불러오더니 집을 청소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다들 익숙한 모양이다.

날 빤히 바라보는 할아버지.

아직 경계의 빛을 꺼트리지 못했기에 할아버지의 몸 주변에선 노란색 연기가 피어오른다.

질문 한 마디 없었다.

그저 날 살피듯 바라보기만 할뿐.

맹수의 제왕인 호랑이의 눈빛이 저럴까?

이건 회장의 눈빛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는데, 바꿔야 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눈빛은 내 할아버지의 눈빛이라고.

부디, 내가 겪었던 미래에서··· 할아버지의 손자가 나이길 간절히 바랐다.

다시 얻은 기회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버릴 수도 있기에.

얼마나 지났을까? 체감상 2시간을 훌쩍 넘은 것 같은데 시계를 휙 쳐다보니 40분쯤 지났을 때였다.

하나같이 안경을 쓴 중년의 사내 셋이 집안으로 황급히 들어왔다.

“회장님 찾으셨습니까!”

40분의 침묵이 깨지고, 드디어 할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그래, 이 놈이랑 나랑 유전자검사를 좀 해봐야겠는데.”

흠칫 놀란 세명의 인물이 날 바라본다.

“회장님··· 현재의 기술로 유전자 검사의 신뢰도는 100퍼센트가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네 놈이 유전자 검사인지 뭔지 해보자고 하지 않았더냐?”

“어, 저도 TV로만 봐서요···”

실수다.

지금이 96년도라는 것을 간과한 실수.

의사, 혹은 박사로 보이는 인물들 중 한 명이 나서며 말했다.

“우선, 우리 연구실에 회장님 자제분과 며느님의 혈액샘플은 가지고 있습니다. 혈액형 검사부터 진행해볼까요?”

할아버지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해봐.”

“예! 유전자 검사도 가능은 하나, 우리나라보다 현재는 일본의 기술이 더 좋습니다.”

“그것도 진행해. 역시 황박사가 일을 잘 해.”

할아버지 입에서 칭찬이 나오자 황박사의 얼굴에 크게 미소가 걸렸다. 그러자 다른 둘이 다급히 말한다.

“제가 아는 라인으로 빠르게 검사가 가능 할 겁니다.”

“저도 일본쪽에 연이 좀 있습니다.”

묘하게 박사들에게서 경쟁심리가 엿보였다.

“좋아, 최대한 빠르게 결과를 가지고 오는 놈에게 내가 확실히 보답하지.”

박사 셋이 순식간에 내게 달라붙었다.

각자의 가방을 열어 주사를 꺼내고 면봉과 함께 머리카락 혈액까지 빠르게 체취한다.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움직임.

그러나, 애초에 할아버지의 손자라고 주장하던 것은 나다. 그러니 나는 ‘마음껏, 무엇이든 해보세요,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와 같은 느낌으로 당당히 혈액과 모발등을 내 주었다.

박사들이 사라지고, 할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네 놈은 오늘부터 결과가 나올때까지 이 집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못나가 알았어?”

“학교는요?”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네.”

생각보다 간단하게 대답하니 혀를차면서도 내심 만족해 보이는 할아버지. 그는 아마도 배짱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한참 휴대폰을 붙잡고 있던 운전기사가 가까이 다가와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회장님, 아무래도··· 작정하고 숨은 것 같습니다.”

“강영우가 숨었다?”

“예···”

할아버지가 날 바라보는데 순간적으로 노란색이었던 연기가 초록색과 뒤섞이기 시작했다.

강영우의 태도로 짐작하건데 내가 자신의 친손자일 확률이 높아졌기에.

“다 들어오라고 그래.”

“예!”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에 운전기사가 다시 전화기를 붙들었다.

***

이 어린 육체에 과한 긴장을 했었는지, 나도 모르는새 단잠에 빠져 있었다.

눈을 떴을 때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다.

“잠이 오더냐?”

“아오, 잘 잤는데요?”

어느새 할아버지에겐 붉은색 적의가 아닌, 노란색과 초록색이 뒤섞인 연기만 보일 뿐이었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찌뿌둥한 몸을 푸는데, 무릎을 꿇고 공손히 앉아있는 수십의 인물들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다 온것 같은데?”

할아버지의 질문에 나는 스리슬쩍 자리에 앉았고, 운전기사 노릇을 하던 사내가 말했다.

“예, 다 모였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곤 잠시 날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무릎 꿇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강영우 도와준 놈들, 앞으로 나와.”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운 질문에 모두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눈깔들 굴리지 말고 빨리 나서! 다 모가지 날아가고 싶은게야?”

노호성이 터지자, 몇몇의 인물이 앞으로 나왔다.

모두 어디선가 ‘사장님’혹은 ‘회장님’소리를 들을법한 연배의 인물들이고, 그 분위기가 호락호락해보이지 않는 인물들이었지만 할아버지 앞에서는 하룻강아지와 같아 보였다.

나는 그저 흥미롭게 그 장면을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내가 눈엣가시 같은지 몇몇 인물들에게서 붉은색 연기가 피워올랐다.

나는 오히려 그런 인물들의 면면을 천천히 살피며 머릿속에 각인 해 두었다.

“그래 박 사장, 네 놈부터 말해봐 뭘 도와줬어?”

할아버지의 질문에 앞으로나선 인물들 중 가장 왼쪽에 사내가 말했다.

“신분증 몇개를 파줬습니다.”

“위조신분증?”

“예, 깨끗하게 말린 신분증입니다.”

“이유는?”

“그냥 늘 하던대로, 중국쪽과 동남아쪽에 일이 있다고만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놈들이 언제부터 일을 그렇게 건성건성 했어!”

“죄, 죄송합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인것 몰라?”

“면목없습니다.”

“그건 그 다음으로 제일 싫어하는 말이야!”

박 사장이란 인물은 그저 고개를 조아리고 몸을 덜덜 떨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 네 놈은 뭘 도와줬어?”

“인천과 부산의 세관 몇몇을 소개시켜줬습니다.”

“이유는 모르고?”

“아가씨 몇을 보낸다고만 들었습니다.”

“이것들이 단체로!”

쾅!

할아버지가 맨 손으로 대리석으로 된 테이블을 내리쳤다. 어찌나 세게 쳤는지 할아버지의 손이 걱정될 정도였다.

“희숙이 네 년은?”

“저, 저는 의사 몇을 소개시켜줬습니다 어르신.”

“의사?”

“그, 아가씨들 와꾸를 조금 바꾼다고···”

“성형외과 말이야?”

“네.”

“썩을.”

욕과 함께 노골적인 분노를 표출한 할아버지가 날 바라보았다.

“네 놈 생각은 어떻더냐?”

“강영우에 대해서요?”

“그래, 그 놈이 어떻게 한 것 같아?”

모두가 내 입에 주목한다.

나는 입을 열어 간단하게 핵심만 설명하기 시작했다.

< 제 3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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