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화. >
회귀인지, 아니면 예지몽이었는지. 너무 생생해서 회귀라는 쪽에 무게추가 기울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내 미래를 알게 되었고,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
그렇다면?
당장 이시간부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일단··· 내 할아버지를 만나야하는데···”
교문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내게 사람이 붙어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원래도 붙어있었겠지만 그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게 벌어진 일이 ‘회귀’라고 확실하게 정하면 설득력이 높아진다.
수십년을 쌓아온 경력으로 내게 붙어 있는 놈들이 두 부류의 인간들이란 걸 느꼈다.
하나는 더러운 냄새가 나니 조폭나부랭이들인 것 같고, 또 하나의 그룹은 비열한 냄새가 나니 재벌가의 뒤처리를 해주는 놈들일 터.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대학등록금을 벌기 위해 어떻게든 일용직 아르바이트라도 하려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안돼! 너 같은 놈들은 믿을 수 없어!’
‘너 아니어도 일 할 놈들 많아!’
고작 공사장 일용직에도 나는 ‘고아’라는 이유로 취직할 수 없었고, 그 사실에 다시 한 번 세상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었으며 어린 마음에 절망 했었다.
그때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인간이 ‘이건’회장이었다.
‘이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면, 우진이 네 대학생활 내내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을게다.’
나는 감동했고, 눈물을 흘리며 진심을 담아 감사의 말을 전했었다. 그는 내게 구원자였고, 희망이었으며 아버지였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무리 고아라도 일용직 취직도 못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에 입김이 작용했을테고, 그 의심의 추는 지금 날 미행하고 있는 강영우 놈의 수족들이나 이건 회장놈의 수족들에 의해서라는 합리적 의심이 떠올랐다.
‘나’라는 존재를 철저하게 통제했고, 내 앞에서 위선을 부려 스스로 충성하게 만들었다는 합리적 의심.
‘이건···’
까드득.
어금니가 부서져라 입을 앙다물었다.
그래도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
고작 몇 푼의 등록금과 그것을 빌미로 ‘강제 취업’을 시켰다. 당시의 난, ‘대기업 취직’은 어지간한 대학을 나와도 하늘에 별따기라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고마움을 품고 살았다.
1998년의 20살 청년에겐 ‘취직’은 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감이 자리 잡던 시대니까.
97년의 IMF의 충격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결코 씻을 수 없는 기억이기에 ‘행운’을 잡았다고 생각했었다.
“병신 같은 놈.”
그게 함정인줄도 모르고 스스로 함정에 발을 디밀었던 것이다.
지금 놈들의 감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할아버지 천혁수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
그러나.
‘내가 당신 손자요.’라고 얘기한들, ‘어이쿠! 우리 손자 반갑구나!’하고 날 맞이할리 없다.
그런 개막장드라마 같은 전개를 기대하느니 접시물에 코 박고 뒤지는게 빠를 터.
답답함에 무작정 명동으로 들어왔는데 어쩐지 미행하던 놈들의 다급함이 느껴진다.
“저런 미행도 눈치채지 못하는 놈이었구나.”
새삼 스스로가 한심했다.
저렇게 한심한 놈들이 미행하고 있었는데, 일평생을 모르고 살았다니 어이가 없다.
지금쯤 강영우와 이건에게 보고가 들어갔을테다.
“왜 안 죽였을까?”
문득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다.
그냥 일찍 죽였으면 될 일을, 왜 날 살려두었을까?
“아아.”
스스로 깨달았다.
아직 내가 가진 이 핏줄의 효용가치가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 이건은 강영우에게 날 미끼로 돈을 뽑는 것이고, 강영우는 호시탐탐 내 목을 노리고 있을테다.
‘하지만 죽일 순 없겠지, 그렇게 된다면 이건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무기를 쥐어주는 꼴이니까.’
그렇잖은가?
천혁수 회장에게 강영우가 날 죽였다는걸 얘기하는 순간, 강영우는 끝이다.
아직 대한민국의 사채시장은 내 조부 ‘천혁수 회장’이 꽉 틀어쥐고 있을 시기니까.
“아아!”
번쩍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지금 강영우와 이건은 나를 사이에두고 ‘신경전’이 뜨거울 터.
그러니까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도, 날 미행하는 저 두 부류의 인간들이 내게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할테다.
절로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그럼 외통수를 하나 날려줘야겠네.”
***
땅 값이 드높기로 유명한 명동.
사람이 붐비는 그곳에서 비효율적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저택이 하나 있다.
내 목적지는 그곳이었다.
명동 사채시장의 거부이자, 미래의 저축은행의 총재가 될 사람의 집.
이제 겨우 몇미터면 내 조부의 집이 보일텐데 난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젠장’
내 생각이 틀렸거나, 저 놈들 중 한놈이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거나.
“어이 학생.”
날 미행하던 놈들 중, 한 무리였다.
세 명의 사내에게서 꽤나 위압적인 느낌을 받았다.
훈련받은 군인 이상의 어떤 기세가 있다.
‘비서실’놈들이 확실하다.
이름하야 처리부, 해결사 놈들이 분명하다.
“네, 왜요?”
“어디 가는길이야? 보아하니 이 동네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음?’
왜인지 그에게서 붉은색 연기같은게 넘실거렸다.
기분탓일까? 우선 내 목숨줄이 달린 일이니까 나는 현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건 아저씨들이 알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이자식이 어디 어른이 얘기하는데.”
인상을 찌푸리며 점점 내게 다가오는 놈들.
훈련한 몸뚱이가 아닌 내가 저것들을 상대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더 다가오시면 소리지를겁니다!”
어디 한 번 지를테면 질러봐라 하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다가온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정말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사람살려어어어어억.”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르자 곳곳에서 ‘드르륵’하는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새끼가!”
천천히 다가오던 발걸음이 이제 빨라졌다.
어떻게든 날 제압 하려는 모양.
드르르륵.
품에서 대형 커터칼을 꺼내들자 놈들이 일순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도 인생 단맛, 쓴맛, 똥맛까지 다 본 새끼야, 자신있으면 들어와봐! 한 새끼는 무조건 데려간다!”
시간끌기용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당연히 칼은 휘두르겠지만 아마 저 놈들이라면 무리 없이 날 제압할테다.
“거기까지! 아따, 여그는 우리 영역 아니었소? 인자 우리한티 넘기고 그짝들은 쪼까 빠져줍시다잉?”
뒤쪽에 조폭들 셋이 등장했다.
비서실쪽에서 나온 놈들 중 하나가 말했다.
“아이, 무식한 깡패새끼들··· 지금 시간끌기 하는거 딱 보면 몰라?”
조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따 아새끼가 뭘 안다고 시간을 끌어요 끌기는, 개뿔 뭣 같은 소리는 집에가서 하시고 그짝은 여그서 빠지라 이 야그입니다.”
“이 새끼들이 눈에 뵈는게 없지?”
조폭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조시나 까 좝솨.”
나한테는 잘 된 일.
조폭놈들도 지금 도박을 걸고 있는것이다.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시간을 끌고 있음을 알터 비서실 놈들은 위험부담을 안고 가기 어려울테니 자리를 피할테고, 그러면 조폭놈들은 날 납치해서 죽일터.
비서실에서 나온 놈들의 표정이 애매하다.
정말 금방이라도 발을 뺄 것 같았다.
“동네사람들! 여기 조폭들이 사람 죽여요오오옥!”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누가 경찰에 신고좀 해주세요오오오옥 살려주세요옥, 저 아직 고등학생입니다악!”
조폭놈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더니 곁에 있는 부하놈에게 말했다.
“아야 뭐더냐? 언넝 저 쬐깐한 놈 아가리 봉해야?”
“예!”
조폭 둘이 내게 다가오고 나는 칼을 휙휙 휘두르며 위협했다.
“아따 이것은 뭐, 장난감이냐?”
피식 웃으며 커터칼을 낚아채려 한다.
아무리 훈련되지 않은 몸뚱이라도 ‘경험’이라는게 있다.
비서실 놈들한테 말 했지만, 인생 단맛, 쓴맛, 똥맛까지 다 보며 살았던 나다. ‘칼부림’은 기본이고 ‘도끼부림’이나 ‘총부림’도 겪었다.
무슨말이냐면.
퓩!
“크으윽 이새끼가!”
저렇게 방심하고 함부로 손을 뻗을만큼 호락호락한 실력은 아니라는 얘기다. 내 몸 하나는 지킬 실력이 있다. 물론 전문깡패나 전문격투가한테 비빌 실력은 아니다.
깡패놈 하나의 손아귀에서 줄줄 피가 흐른다.
“내가 신고했다! 경찰들 금방온데! 학생 조금만 버텨!”
저 멀리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비서실 놈들도, 조폭놈들도 잠시 망설인다.
“우린 철수한다!”
비서실 놈들은 철수를 선택했고 조폭놈들은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모양.
“뭐더냐! 언넝 데리고 와야? 짭새들 뜨면 골 아파분다잉.”
확실히 조폭놈들 뒤가 없는 놈들이라 더 무섭다.
천상 죽기살기로 달려들어야 하나 보다.
다시 달려드는 조폭놈 하나의 허벅지를 베어냈다.
찌르기에 적합하지 않은 칼이니 어쩔 수 없다.
상처도 얕다. 피는 흐르겠지만 그정도가 한계다.
병원에 가서 몇바늘 꿰매면 될 일.
“아따 느그 빙시냐? 카타칼에 뭘 그리 쫄고 지랄들이냐! 밀어 붙여!”
조폭놈의 명령에 칼 한 방 맞겠다는 각오로 달려드는 놈들에게 난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 놈이 뒤에서 날 끌어 안았고 남은 한 놈이 내 배를 향해 사정없이 훅을 날렸다.
퍽.
“우웁.”
토악질이 올라올 만큼 세게 맞았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도 젖먹던 힘까지 쏟아부어 발버둥치니 쉽게 옮기기 어려운 모양.
결국 조폭놈 둘이 한놈은 상체 한놈은 하체를 잡고 서둘러서 날 옮기려 한다.
끼이이이익.
중후한 매력이 있는 검은색 각그렌져 한대가 멈추어 섰다.
90년대를 풍미했던 그 차량의 창문이 지이잉 내려가고 낮은 음성 하나가 들려왔다.
“무슨일이야?”
조폭들이 우뚝 멈추어 섰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저승사자라도 만난 꼴이다.
창문을 내리고 말을 내뱉은 남자는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이윽고 운전석 창문너머 작은 틈으로 호랑이 상을 한 풍체 좋은 사내가 보였다.
운전석의 앉아 있던 사내가 재차 말을 이었다.
“무슨일이냐고, 네들 강사장님 애들 아니냐?”
“그, 그게···”
“이 새끼들이.”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내가 차에서 내렸다.
이윽고 뒷자석 상석으로 가 문을 열어주자 그 호랑이의 탈을 하고 있는 남자가 내렸다.
“아아!”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남자가 내 할아버지 천혁수 회장임을 깨달았다.
희끗희끗한 머리가 그의 나이를 보여주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강인해보이는 팔뚝은 절대 그 나이로 보이지 않았다.
예순이 훌쩍 넘었을 나이임에도 40대 못지 않은 건장함을 자랑하는 노인.
“할아버지!”
나도 모르게 그를 불러버렸다.
“음?”
“할아버지! 저 천우진이에요! 할아버지 손자!”
“뭬야?”
천혁수의 표정이 굳었다.
짙은 눈썹이 꿈틀거리며 당황과 분노를 표현한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서도 붉은색 연기 같은 것이 넘실넘실 피어 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이 연기는 또 뭐냐···’
나는 긴장감에 절로 침을 꼴깍 삼켰다.
경찰차의 경광등이 반짝이고 경찰 여섯이 이리로 걸어왔다. 조부는 그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내게 똑바로 걸어왔다.
“네 놈이 내 손자라고?”
“예.”
“하, 아이야 세치혀를 잘 못 놀리면 명이 짧단다.”
긴장감에 온 몸이 굳어버릴 것 같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어쩔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천혁수 회장의 손자가 아니라면··· 이번 삶은 여기서 끝나겠지.
“제가 할아버지 손자이기에 손자입니다!”
그렇다고 물러날소냐, 이미 뒤가 없다.
“하, 네 놈이 내가 누군 줄이나 알고?”
“천혁수 회장님 아니십니까?”
눈썹이 꿈틀거렸다.
난생 처음보는 내가 자신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진한 핏빛의 연기가 노란색으로 고정되었다.
붉은색 연기보다는 그래도 적대감이 낮아보이기에 잠시 안도했다.
경찰들이 나와 할아버지가 있는곳으로 다가와 말했다.
“학생, 학생이 살인 피해자야?”
나 대신,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자네들은 그냥 가지, 내가 알아서 처리 함세.”
“예?”
“나 천혁수야.”
“아, 예!”
경찰들은 마치 대통령이라도 쳐다보듯.
할아버지에게 경례를 올리고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나와 조폭무리는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내가 처음 목적했던 할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갔다.
< 제 2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