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화. >
어린시절.
그러니까 정확히는 현재의 내가 완벽하게 기억하는 그 시점부터.
늘 사람 좋은 얼굴로 세상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 있었다.
현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이며 글로벌 세계기업으로 이름을 떨치는 ‘삼현그룹’의 회장 이건.
보육원에서 나고 자랐던 나는 그를 동경했다.
고아들을 살뜰하게 챙기며 지원을 아끼지 않던 그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 감사함이 뿜어져 나왔고, 마치 은혜 입은 까치처럼, 어디서 박씨라도 물어다 바쳐야 할 것처럼, 마음 속 족쇄가 되었다.
덕분에 장성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당히 삼현일가에 입성하여 최측근인 비서실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렇게 내 인생은 삼현으로 시작해 삼현으로 끝낸다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왜! 왜에!”
온 몸에 남은 힘을 쏟아 악다구니를 뱉었다.
피칠갑을 하고 악다구니를 쓰는데도 ‘어디서 개가 짖나?’정도의 표정으로 말을 뱉는 이재현.
“아오, 하여간 우리 천 실장 기운도 좋아 응?”
능글맞게 웃으면서 내 뺨을 툭툭 때리는 이 인간에게 배신당한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망나니 삼남 이재현.
이 놈을 손수 사람새끼로 만들고 쥐뿔 능력도 없는 주제에, 꽤 잘 나가는 ‘오너’로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나다. 기라면 기고 까라면 까고, 그런 치욕에서도 어떻게든 이 놈을 올려야겠단 일념 하나로 미친 듯이 봉사했다.
가히 일생 전부를 놈을 위해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서 히죽히죽 입꼬리를 처 올리고 있는 삼남 이재현.
그를 장남의 자리를 위협하는 후계자 위치까지 올려놓았더니, 이제와 토사구팽이라고?
너무 빠르지 않은가? 사냥개를 삶아 먹으려면 적어도 하던 사냥은 마저 끝내야 하지 않나?
“도대체 왜 지랄인지, 말이나 좀 해보라고!”
삼현 내에서도 내 명성이 결코 적지 않다.
삼현의 장남 이재영조차 킹메이커로서, 날 스카웃 하길 원하지 않았냐 이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내가 죽어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삼남 이재현, 그러니까 내가 왕으로 추대하고 싶었던 이 놈이 아무리 병신이라도 그만큼 병신 멍청이는 아니다.
내가 없으면?
놈은 모래성 위에 앉아 있는 꼭두각시 황제나 다름이 없다.
“좋게 좋게 가자, 우진아.”
발길질에 부러진 앞니 몇 개가 허공으로 비산한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을까? 이재현이 슬그머니 다가와 말했다.
“너도 이제 일 그만하고 어? 토끼 같은 자식새끼들도 낳고, 여우같은 마누라 궁둥이도 두들겨 봐야지 새끼야. 저승에서, 크크큭.”
난 바보가 아니다.
스스로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안다.
출신과 태생이, 천애고아였다는 게 억울하고 또 억울했다.
조금만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재계 서열 10위권의 기업들은 바라지도 않는다.
50위, 아니 100위 안에 들어가는 집에서 태어나기만 했다면, 한국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실제로 삼현그룹도 내 손을 타고 글로벌 기업이 되었잖은가? 물론 그 공은 삼현그룹의 재벌3세들이 가져갔지만.
“그거 말고 이유! 이유를 말하라고!”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왜 고문당해야 했으며, 왜 내 모가지를 단두대 위에 올려놓았는지.
천연덕스럽게 저리 말하는 이재현을 찢어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이 궁금증을 해결해야 했다.
“당신 밑에서 정말 개처럼 일만했잖아? 내가 뭐 마음에 안 들게 한 일이 있나? 도무지 모르겠다. 나한테 왜 이러는지, 죽일 때 죽이더라도 말이라도 좀 해라 시발!”
궁금했다. 너무 억울하기 때문에 더 궁금했다.
“오우~ 우리 천우진 실장 한 성깔 하시네? 성질 부리는걸 처음봐서 신선하다 신선해.”
놈은 굳이 피지도 않는 담배를 물려주곤 불을 붙이더니 말했다.
“천우진 실장. 강영우 알지?”
아주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자, 이재현이 아직도 장남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이유.
명동 사채시장의 ‘강영우’ 때문이 아니던가.
자산규모를 추측하기 어려운 사람. 사업 좀 하는 사람치고 그에게 손 안 벌린 이가 없을 만큼 영향력이 큰 인물.
그런 인물이 이건 회장과 장남 이재영 부회장을 후원하고 있었다. 그러니 삼남 이재현은 언제나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었고.
문제는, 여기서 갑자기 그 이름이 왜 나오는가?
“그 강영우가 부탁을 하더라고.”
“......”
“너를 확실하게 없애주면, 우리 형 이재영이 아니라, 나 이재현을 밀어주겠다고.”
개소리다.
강영우가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날 죽이려하는가?
고작 삼현그룹의 3비서실장인 내가 두려워서? 망나니 삼남 이재현을 사람구실 하게 만들어놔서?
아무리 생각해도 개소리가 맞다.
“끝까지 개소리냐···”
“아니 진짜라니까? 왜 못 믿냐?”
“나 까짓 게 뭐라고 그 양반이 날 노려! 말이 된다고 생각...”
버럭 지른 소리에 이재현이 움찔 뒤로 몸을 피하며 말했다.
“아 새끼, 놀래라··· 키킥,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저럴까?
“지금 강영우가 젊었을 때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는 다 늙어서 벽에 똥칠을 하고 있는 천혁수 회장이 명동을 쥐고 있을 때, 그 노친네의 ‘손자’를 몰래 빼돌렸다는 소문이 있어, 그걸 도운 게 우리 아버지 이건 회장이고.”
눈을 부릅떴다.
말도 안 되는 음모론 같은 얘기인데.
어쩐지 지금 상황과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진다.
‘내가 그 손자라면?’
지금 이재현이 날 죽이려는 이유가 설명된다.
그리고 강영우가 날 죽이려는 이유도 설명된다.
왜?
이 대한민국은 웃기게도 ‘정통성’따위를 좋아하니까, 천혁수 그 괴물의 모든 재산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혈육일 테고, 그 유일한 혈육이 ‘나’라면 모든 게 설명된다.
“천혁수 그 노친네가 지금 생사를 오락가락 하고 있거든? 올해 103세인가 그런데 어쨌든, 근데 그 노친네가 아직도 ‘손자’를 찾아 헤맨다네? 물론 강영우를 시켜서 말이야 크크크큭.”
입에서 깊은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이재현이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어때? 대충 계산이 들어서지?”
“내가! 내가 천혁수의 손자라면! 오히려 날 이용해서 명동바닥까지 잡아야지! 그게 더 효과가 빠르지 않나? 자길 키워준 사람도 배신하는 ‘강영우’따위의 말보다 당신을 위해 30년을 개처럼 일한 날 믿는 게 맞지 않냐고!”
이재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에휴, 우리 천 실장 뒤질 때 되니까 감이 이렇게 떨어지나? 천혁수 그 노인네가 한국대병원 VVIP실에서 바깥으로 나오지 않은 게 벌써 8년째야, 그 동안 강영우 그 돈 귀신이 가만히 있었을까?”
이해했다.
이 개 같은 머리가 쓸데없이 이재현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해버렸다.
“팔 다리 다 잘린 노친네, 소문으로는 노망도 들렸다는 것 같은데, 그런 노인네를 등에 업어봤자 우리 형이랑 아버지가 눈 하나 깜짝 하겠어? 돈귀신 ‘강영우’정도는 등에 업어줘야 아버지가 날 좀 인정해주지.”
그렇구나··· 그렇게 된 거구나.
“천혁수 그 노친네한테는 참 고마워, 우리 삼현이 이렇게 클 수 있던 것도 다 그 노친네 주머니에서 나온 돈 덕분인... 아! 아니다.”
히죽 웃으며 말을 잇는다.
“너 덕분이다. 그 노친네 돈 받아 쓸 수 있었던 것 말이야, 네 놈의 납치를 잘 봉합하고 이용해 먹은 우리 아버지에게 강영우가 돈을 갖다 바쳤으니까, 너 덕분이네··· 맞네 맞아, 너 덕분에 우리 삼현이 이렇게 컸어! 크크크크큭.”
머릿속에 번개라도 치는 듯.
모든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삼현의 사람으로 일 하면서 정말 이상한 상황과 이상한 말들을 많이 들었었는데, 그게 왜 이제야 떠오르는 것일까.
그때는 왜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문득, 삼현그룹의 현 회장인 ‘이건’과 그의 부인이 내 앞에서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쟤야?’
‘그래.’
‘쯧.’
나는 어렸고 무슨 의미인지 몰랐었다.
당시 내 나이 막 스물이 되던 때였다.
그저 고아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날, 이건 회장이 내게 말하기를.
‘너는 들어도 못 듣고, 알아도 알지 못하고, 말 할 수 있어도 말 할 수 없어야 한다.’라고 말했었다.
그 말은 항상 내 머릿속에 맴돌았고, 나는 그 옛날 조선시대의 내시나 궁녀들처럼 삼현그룹 일가를 왕처럼 떠받들고 살았었다.
소름이 돋았다.
그토록 동경하고, 존경하던 ‘이건’회장.
그 놈이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고 조종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세상이 무너져버렸다.
부정하고 싶었다.
유독 날 챙겨주고 실수를 눈감아 주던 그 사람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니.
그래, 오히려 이게 더 설득력 있다.
직원을 종이라 생각하고, 종놈의 실수엔 가차 없던 철혈의 재벌총수 이건.
그런 그가 유일하게 용서해주는 ‘직원’ 천우진.
그 타이틀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목적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삼현가의 군주가 고작 종놈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이유.
멍청한 개망나니 삼남 이재현이 날 죽이려는 이유.
‘나’란 존재가 필요했던 거다.
강영우란 놈을 캐시카우로 쓰기 위해서는 ‘나’란 인질이 필요했던 거다.
난 그것도 모르고 이 망할 납치범들에게 충성을 다하며 살았다니, 염병할 스톡홀롬 신드롬도 아니고.
“크크크큭.”
미친것처럼 웃음이 튀어나왔다.
왜 이제야.
왜 이제서야!
“키킥, 재밌지? 응? 하여간 나는 네가 진짜 신기했다니까? 아니 개뿔 가진 것 없는 천한 고아새끼가 어떻게 그렇게 재주가 좋나 싶었어, 진짜 세상에 천재라는 족속들이 있구나 했다니까? 솔직히 까놓고, 너 아니었으면 삼현이 지금처럼 이렇게 글로벌하진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거의 다 타들어간 담배를 입에서 빼주고, 새 담배를 물려 불을 붙여주면서 말을 잇는다.
“진짜, 네 할배 천혁수를 닮아서 돈 버는 재주는 아주 귀신같은 놈이었는데 아쉽다 아쉬워, 할 수만 있음 너 죽인 척하고 살려둔 다음에 나중에 써먹고 싶은데 아오, 사채 만지던 놈이라 그런지 잔인하기가 아주 그냥... 무슨 삼국시대도 아니고 ‘수급’을 달라고 지랄이냐 지랄이.”
자신의 입에도 담배를 하나 물더니 마지막 인사를 내뱉는 이재현.
나는 혼자 낄낄 거리며 웃었다.
실성.
그래... 이런 게 실성일까? 정신을 놓는다는 게 이런 걸까?
“아~ 참 쓸 만했는데··· 잘 가라, 저승에서는 행복하고. 그나저나 천혁수 그 노친네도 참 안타까워, 그렇게 애타게 찾는 손자 놈을 숨기고 납치한 놈들한테 뺏긴 줄도 모르고 가게 생겼으니··· 쯧쯧쯧. 야 천 실장아, 저승 가서 네 할배 만나거든 잘 해드려라. 그 불쌍한 노인네 가엽잖아?”
“이 개새끼가!!”
툭.
이제야 왜 내가 단두대에 묶여 있었는지, 그 실타래가 풀리는 것 같았는데.
시야가 여러번 회전하더니, 이내 온 몸의 감각이 사라졌다.
***
번쩍.
다시 눈을 떴을 때.
“자, 그러면! 근의 공식에 대해서······”
익숙한 풍경, 추억이 가득한 공간에서 난 눈을 떴다.
‘학교라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목이 잘렸다.
그런데 학교, 그리고 몸을 더듬으니 목은 물론이고 팔다리가 전부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눈 앞에서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이재현이가 쪼개고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 그리운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보이는가. 그리고 그런 담임선생의 머리위로 보이는 달력.
1996년 5월을 가리키고 있었다.
‘돌아왔다?’
내가 겪은 것은 ‘미래’인가, 아니면 ‘꿈’인가.
꿈이든 미래든, 이렇게 생생할 수 있는가.
말로만 듣던 회귀라는 게 이런 건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수업은 귓등으로도 들어오지 않는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게 먼저다.
‘그러니까 나는 천혁수의 손자고, 강영우와 이건 그 찢어죽일 놈들의 계략으로 삼현의 개로 살았다는 거네.’
이재영이나 이재현 따위는 거의 엑스트라다, 이건과 강영우가 메인이다.
아니 강영우도 엑스트라나 다름 없을 테다.
진짜 악랄하고 더러운 수를 쓴 놈은 삼현 그룹 회장 ‘이건’이다.
철혈의 군주, 철혈의 경영가.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이 주범일 게 틀림없다.
드르륵.
의자를 뒤로 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같은 반 친구들도, 그리고 담임선생도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선생님,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오늘은 조퇴하겠습니다.”
“뭐? 야! 우진아! 천우진!”
선생의 말은 듣지도 않고,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학교 건물을 벗어나 운동장, 이어서 교문까지 이어지는 익숙한 길을 걸어가며 난 단 하나만 생각했다.
‘모조리 씹어 먹어 주마.’
다음 스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까드득-
진짜 복수를 위해.
연관되어 있는 모두를, 사돈의 팔촌을 비롯한 네 놈의 모든 것을. 진짜 철혈의 재벌이 되어 그 잘난 피륙을 씹어주마.
< 제 1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