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34화 (334/334)

EP.335 종장 - 천살검협전 (完)

* * *

“그럼 우선아, 여기서 두 사람이랑 놀고 있거라.”

당화서가 목우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그시 미소 짓는 모습은 몹시나 아름다웠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절로 안심을 떠오르게 하는 부드러움이 가득했다.

목우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궁영과 남궁현이 말했다.

“저희가 잘 돌볼게요!”

“응, 동생이니까.”

“후후, 잘 부탁하마.”

당화서의 말에 목우선은 빵긋 웃으며 답했다.

“저녁에 뵈어요!”

오늘은 남궁세가의 손님이 온 날, 목우선은 형님과 누님이 생겨 기뻤다.

*

사천 목가에는 손님이 꽤 많이 오가는 편이었다.

주로 강호 무림에서도 명문으로 알려진 곳의 핵심 인사들이었는데, 목가가 생긴 지 고작 6년 언저리밖에 되지 않아 사용인들은 이런 날마다 부산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접대에 힘썼다.

특히 목우선의 기억 속에 인상 깊게 자리해 있는 것은 숙부인 단지선의 방문 때였다.

다른 때보다 유독 철저한 당화서의 모습에 의아함을 띄워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목리원은 말했었다.

-두 사람이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렇단다.

-왜 안 좋나요?

-하하….

목우선은 당화서가 방문 때마다 온종일 재밌게 놀아주는 단지선과 사이가 나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기야 단지선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 있었던 일 따위를 어찌 목우선이 알 수가 있겠는가.

목우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두 사람 사이의 어떤 오해가 빨리 해소되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또한 그것이 지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늘의 손님은 단지선이 아닌, 남궁세가였으니 말이다.

“우선아! 오늘은 뭐하고 놀까?”

이번이 네 번째 방문.

남궁세가는 사천목가의 손님 중에서도 목우선에게 유독 반가운 손님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는 손님 중 또래라고 할 만한 이들이 남궁세가에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남궁영과 남궁현, 각각 목우선의 누님과 형님이었다.

남궁영은 목우선을 아주 어여뻐 해서, 이렇게 올 때마다 품에 꼭 끼고 다녔고, 남궁현은 근엄한 척을 하며 목우선에게 형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목우선은 남궁영의 품에서 답했다.

“보물을 찾으러 가고 싶습니다!”

“보물?”

“예!”

목우선의 눈에 장난기가 서렸다.

그것은 악독함보다는 순수한 호기심에 가까운 장난기였다.

목우선은 요동이라 불릴 정도로 요사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진 소년이었으나, 그런 귀티 나는 외모와 다르게 왈가닥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꼭 어린 시절의 목리원처럼 말이다.

“이건 비밀인데…!”

목우선은 금단된 정보를 푸는 사람처럼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목가의 어딘가에는 아버지가 숨겨놓은 전천후의 비급이 있다고 해요…! 그걸 찾으면 천하일절의 고수가 될 수 있다고 어머니가 그러셨습니다!”

그것은 당화서가 농을 섞어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순수한 목우선은 그걸 믿을 수밖에 없었고, 외인인 남궁가의 두 사람 또한 정보의 출처에 대한 신뢰 탓에 한껏 구미가 당기는 얼굴이 되었다.

“천하제일인의 비급…!”

남궁현이 특히 뺨을 붉히며 설레했다.

그는 아버지인 남궁진천이 천하제이인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 비급을 얻어 아버지를 천하제일로 만드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었다.

-역시 현이 너밖에 없다. 남궁가의 소가주답구나.

으하하하! 상상 속 남궁진천이 웃었다.

하하핫! 상상 속 남궁현도 웃었다.

“빠, 빨리 찾으러 가보자꾸나!”

남궁현이 몸이 달아 외치자 남궁영은 헤헤 웃었다.

‘귀엽다.’

올해로 열세 살, 남궁영은 한참 꿈에 젖어있는 남동생들이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

세 사람은 커다라다는 말로도 모자란 목가의 장원을 탐색했다.

그래봐야 아이들이 꺄르륵 웃으면서 뛰어다니는 정도지만, 당사자들에겐 거대한 모험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셋은 유독 커다란 나무 밑을 살피거나, 처마 밑으로 기어들어 가 숨겨진 장소를 찾거나, 혹은 기둥 뒤에 존재할지 모르는 공간을 찾기 위해 공력까지 발해 안력을 키웠다.

그런 어느 순간이었다.

“보물이라면 경비가 있는 건물이 아닐까?”

남궁영의 의견에 두 소년은 오오! 소리를 냈다.

확실히 보물을 그저 묻어두기엔 불안함 점이 있을 것 아닌가.

경비가 그 앞을 지키고 있다고 보는 게 훨씬 그럴싸하단 말이다.

목우선은 그런 장소를 알았다.

“비서고입니다!”

과거 사천 당가가 모은 것과 목리원이 직접 쓴 여러 무공이 모여있는 비서고.

그곳이라면 목리원이 숨겨둔 전천후의 비급이 있을 지도 몰랐다.

“가자!”

남궁현이 말했다.

목우선은 아장아장 뛰며 두 사람에게 외쳤다.

“저를 따라 오세요!”

그렇게 도착한 비서고.

입구를 지키는 것은 목가의 여 무인이었다.

“소가주님? 그리고 남궁가의 자제분들까지….”

“안에 들어가게 해다오!”

그 순간 무인은 곤란함에 휩싸였다.

암만 소가주라고 해도 허락되지 않은 비급을, 그것도 외인이 함께하는 앞에서 보여줄 수는 없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무인이 머뭇거리자 목우선의 눈썹이 늘어졌다.

“안 되느냐?”

꼭 비맞은 강아지처럼 사랑스럽고 애처로운 표정이었다.

요동 목우선, 그는 얼굴이 무기였다.

“그, 그것이…!”

그녀의 심장은 극독에 당한 것처럼 꽉 조여왔다.

애써 외면하려고 고개를 돌렸으나, 그조차 쉽지 않은 상황.

‘제발 누가 나 좀 구해다오!’

속으로 외치는 순간이었다.

“들여보내 주거라.”

목리원이 나타났다.

남궁진천과 함께.

“가, 가주님!”

“아버지!”

“마침 이곳에 들를 일이 있어서 왔는데 우연이구나.”

목리원이 지그시 웃으며 말하자 곁의 남궁진천이 대꾸했다.

“별 시답잖은 무공이면 각오하라. 내 반드시 경을 칠 테니.”

“남궁 형, 나한테 못 이기잖소.”

“무어라 했지?”

“아무것도 아니오.”

남궁진천의 눈이 부릅 뜨이는 것과 별개로 상황은 정리됐다.

목우선은 방방 뛰며 목리원에게 안긴 후 말했다.

“이 속에 전천후의 비급이 있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어머니가 그러셨습니다! 비서고에는 아버지를 천하제일로 만든 비급이 고이 모셔져 있다고.”

목리원은 놀란 듯 입을 벌리다, 피식 웃었다.

“음, 그래. 비급이 있긴 하단다. 그야말로 영원불멸한 힘을 약속받는 비급이지.”

세 아이가 찢어질 듯 크게 눈을 떴다.

특히 남궁현은 남궁진천에게 다가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진천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지만 말이다.

와중 목리원이 말을 이었다.

“보면 알 수 있을 게다.”

지체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목리원은 아이들에게 곧장 비서고 안을 보여줬다.

그렇게 온갖 서책이 가득 들어차 있는 비서고 안, 목리원이 도달한 자리에서 세 아이는 비급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서책?”

그것은 흔히들 잡서라 일컫는, 어떤 서책의 전권이었다.

목리원은 말했다.

“강호협객전이라 한단다. 협이란 무엇인지를 일러주는 글이니 이것보다 더한 비급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 무인의 힘은 곧 협에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조금은 김 빠지는, 그리고 아이의 모험에 어울리는 결말이었다.

*

목우선은 그날 이후로 강호협객전에 관심을 품게 됐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그 책의 전권을 독파하기 시작했고, 서책 속 이야기에 심취해 그렇게 마지막 권에 도달했다.

‘천살검협전.’

듣기론 마협 이후 거의 30년 만에 돌아온 최종장이라던가.

그것을 펼치는 목우선의 속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그 정도로 낭만을 쫓는 무인들의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늦은 시각의 독서가 시작됐다.

그렇게,

『살귀의 운명을 타고나, 다만 바라는 것은 협이었다.』

목우선은 서책 속 세계로 빨려들어갔다.

이야기의 끝을 보는 순간, 목우선의 꿈은 다시 한번 협객이 되었다.

*

『맺으며.

곽칠표란 이름으로 글을 쓴 세월이 일평생이다.

한때는 내가 생각하는 협을 온 세상에 알리고자 했고, 여느 인간이 그렇듯 나 또한 풍파 속에서 시들어만 갔다.

마협의 이야기 이후 20여 년은 특히 그랬다.

나는 스스로 붓을 꺾었다.

다만 내 목소리를 부르짖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겁쟁이가 되어 세상에 협을 알리겠다는 의조차 잊고 살았다.

이 이야기는 그런 순간에서부터 시작됐다.

무기질적이었던 나의 삶에 나타나 다시 한번 협이라는 먹을 칠해준 어떤 무인이, 바로 그가 나의 협을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워 준 것이다.

그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나는 이 종장을 끝으로 붓을 놓겠지만, 누군가는 이리 우스웠던 나의 이야기를 이어가줄 테니.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현실이 되어, 강호에 협이 존재함을 알려줄 테니.

저자로서 할 이야기는 더 없다.

그저 길고 길었던 강호 협객전의 끝을 고하며 이 종장에 관한 것을 다시 한 번이르니.

이것은 세상이 악하라 하여도 악하지 않으려 했던,

운명을 넘어 스스로의 의지만을 믿으려 했던,

그리하여 검으로 협을 이룩한 한 남자의 일생이었다.

다시 이르길,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협객의 이야기다.

천살검협전天殺劒俠傳 <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작가후기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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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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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papapa입니다.

어쩌다 보니 제 작가 인생 중 가장 길어진, 유일한 300화 이상 소설 천살검협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분명 네 번째 작이었는데 이 소설보다 늦게 시작한 작품 두 개가 먼저 완결이 나버리니 조금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렇게 긴 이야기를 끝내니 역시 감개무량하네요.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고 아쉬운 마음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이 부분은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개인적으론 끝에서 연재 주기까지 흔들려 부끄러운 마음이 꽤 큽니다.

그래도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끝까지 써 내려가는 경험은 참 소중하고, 무엇보다 끝까지 따라와 주신 독자 여러분께는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끝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번을 다해도 모자랄 정도로요.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고, 내일도 모레도 영원히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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