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33화 (333/334)

EP.334 이부 십칠장 - 혼인 (2)

* * *

혼례식장은 이윽고 어딜가나 술판만 보일 지경이 되었다.

일렀듯, 애초에 높은 자리라 해봐야 모두 칼밥 먹는 무림인 밖에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게다가 객으로 온 이들이 모두 아는 이들에다 서로가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으니 회포를 푸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 가득한 것이었다.

특히 용봉단 쪽이 그랬다.

“이제부터 전쟁이다. 기억해둬라.”

남궁진천은 얼큰하게 취한 채로 목리원에게 어깨동무했다.

“쉬운 것이 없다. 밤낮없이 우는 아이, 부인의 소바….”

빠악!

남궁진천이 서예에게 뒤통수를 후려 맞고 기절했다.

서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축하드려요. 혼례도 아이도.”

목리원은 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남궁영은 신기하다는 듯 당화서의 배를 쓸었다.

남궁세가 소공자인 남궁현은 이 난리통에도 어미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을 뿐이었다.

순간이 길게 이어졌다.

목리원은 당화서와 함꼐 식에 참석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고, 그렇게 장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자리는 늦은 밤까지 끝나지 않았다.

정말 해가 뜰 때까지 이어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부인, 먼저 들어가 주무시오.”

“예, 손님들 배웅만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를 품고 있는 당화서는 더 무리를 시킬 수 없어 먼저 돌려보냈다.

목리원은 그녀를 방까지 데려다준 뒤 밤공기를 맞으며 크게 호흡을 들이켰다.

별이 밝은 밤이었다.

마치 목선오가 함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에 먹먹한 감정이 물씬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대협.”

누군가 다가왔다.

목리원은 고개를 돌려 정체를 확인한 후,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곽 대협이시구려.”

이제 도착한 것일까, 식을 진행하는 동안은 보이지 않았던 터라 새삼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곽칠은 머쓱한 듯 웃으며 걸어왔다.

“미안하오. 내 먼 길을 오느라 제 시간에 맞추지 못했소이다.”

“이리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오.”

“무얼, 혼례 축하드리오. 게다가 아이도 생기셨다지.”

목리원은 뺨을 붉혔다.

아버지가 된다는 설렘은 역시 아직 낯설었기 때문.

곽칠은 그런 목리원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러다 품에서 서책 한 권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걸 전해드리러 왔소. 약속한 대로.”

목리원의 눈이 큼직하게 뜨였다.

그 서책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기에.

“강호협객전….”

마협의 이야기 이후로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지 않은 강호협객전, 그 마지막 이야기였다.

목리원이 더듬더듬 서책을 받자, 곽칠은 말했다.

“당신 덕이오. 내가 문인으로서 이리 내 협을 다시 세상에 부르짖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는 그간 많이 늙었다.

공력을 제대로 쌓지 못한 몸은 주름이 늘었고, 똑바로 서 있던 허리는 굽어 노인의 그것이 되었다.

그럼에도 목리원은 그의 미소에서 힘을 느꼈다.

마치, 이 밤하늘을 비추는 하나의 별로 느껴질 만큼 충만한 힘이었다.

목리원의 입매에 호선을 그렸다.

“…당신은 언제나 협객이었소. 글을 쓰지 않던 그 순간마저 나를 일깨웠으니.”

목리원은 서책을 소중히 품에 안았다.

곽칠은 끌끌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과찬이시오.”

그리 그가 돌아섰다.

미련은 없다는 듯 당당한 걸음으로.

목리원은 서책을 살폈다.

그리하고선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강호협객전 종장]

그런 제목 아래 깔린 부제 탓이었다.

[천살검협전(天殺劒俠傳)]

참으로 그럴싸한 이름이었다.

*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간다.

사천목가라는 이름이 낡은 현판을 치우고 반듯하게 자리할 만큼.

수많은 이들의 축하 아래서 혼인을 마친 남녀가 부모가 될 만큼.

“공자님이십니다!”

그런 환희에 찬 외침과 함께 두 사람의 결실이 이 땅에 내려왔다.

당화서와 목리원은 아이를 사이에 두고 온기를 나눴다.

“고생하셨소.”

“아이는….”

“자, 부인을 닮아 참 어여쁜 아이오.”

쭈글쭈글한 신생아의 모습이라 한들 부모 눈에 어찌 그것이 어여쁘지 않을 수 있을까.

당화서는 울었다.

목리원은 조심스레 당화서의 손을 붙잡았다.

당화서가 물었다.

“아이의 이름은 어찌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에 목리원은 답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둔 이름이 있었기에.

“…우선.”

본디 자신이 가졌어야할 이름을 아이에게 주었다.

역경 없이 태어났다면 누구보다 화목한 가정 아래서 웃음꽃을 피웠을 이름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목우선이 어떻소?”

당화서는 그 뜻을 이해하곤 웃음을 흘렸다.

“참으로 좋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세 사람이 되었다.

*

다시 6년이 흘렀다.

사천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누구냐 묻는다면 사람들은 천하제일인 묵성(墨星) 목리원을 꼽았다.

가장 아름다운 이가 누구냐 하면, 그 또한 묵성 목리원을 꼽았다.

하나, 가장 어여쁜 이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달랐다.

-요동(妖童), 요동 밖에 없지.

요동 목우선.

사천 사람들은 6살 배기 아이에게 그런 별호를 주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목가의 공자님을 본 사람 모두가 말하더군. 경국지색이라, 그 아리따움이 벌써부터 요사스러운 기를 뿌려대 훗날 강호엔 그를 차지하려는 여인들로 인해 피바람이 불 것이라고.

참으로 과장같은 소문이었으나 목우선을 본 모든 이들은 그의 말에 지극한 공감을 표했다.

당장 목가의 하인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공자 탓에 하루하루 한숨이 깊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특히 그랬다.

“보거라! 나도 이제 목검을 들 수 있게 되었다!”

눈을 반짝이는 소가주의 모습은 요망했다.

6살 배기 남아의 이목구비와 앳된 목소리가 ‘요망하다’라는 단어를 써야할 정도였다.

처져 있음에도 눈꼬리만은 치켜 올라가 흐르는 물결을 연상케 하는 눈매.

조막만하게 오똑한 코와 새빨간 입술, 젖살이 탱탱함에도 얇은 턱선.

머리칼은 흑단 같았고 피부는 백옥같았다.

어찌 부모의 장점만을 똑 떼어와 날카로움과 깜찍함을 동시에 품었으니 저리 작은 목검을 ‘에잇! 에잇!’ 하며 휘두르는 모습이 그리도 치명적일 수가 없었다.

하녀들은 속닥거렸다.

“저리 어여쁘셔서 정말 누가 납치라도 해가면 어떡하죠?”

“가주님이 천하제일인이시니 그나마 다행이지!”

“그래도 미약 같은 것으로 홀리려드는 사람이 있다면….”

“후후, 무슨 걱정이니? 우리의 예전 이름이 당문이 아니었더냐. 독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알지. 그보다 마님이 누구신지 잊은 게니?”

그제야 하녀들은 한시름을 놓았다.

독라나찰 당화서.

과거 이 집안의 안주인을 일컫던 이름이기에.

또한 그 피가 목우선의 혈관에도 흐르고 있기에.

“마님께서 혹시나 싶어 소가주님의 피를 연구해보셨다더구나. 그때 아신 게지. 소가주님이 만독불침의 몸을 타고나셨다는 것을.”

무림인으로서 천혜의 재능이었다.

좋은 근골을 중요성을 톡톡히 느끼게 할 정도로 말이다.

목우선은 무재를 타고났다.

천하제일인인 아버지의 근골, 만독불침인 어머니의 피를 동시에 물려받아 이미 순수한 공력으로 단전을 이뤘을 정도였다.

물론 본인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과보호가 심한 당화서가 목우선에게 글이나 그림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하나,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는 일.

“우선아.”

“아버지!”

“가주님을 뵙습니다!”

목리원이 연무장에 나타났다.

오늘은 목우선의 첫 무공 수련이었다.

*

목우선이 가장 좋아하는 것 세 가지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먹(墨)이었다.

첫째와 둘째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랑이 많은 부모에게서 매일 넘치리만큼 그것을 받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새하얀 종이 위를 까맣게 칠해가는 그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랬다.

“자, 이것이 성련(星聯)이란다.”

목리원의 새까만 검신이 공간을 물들였다.

새까만 밤하늘을 짓고, 그 위로 무수히 많은 시린 별빛을 지어냈다.

목우선은 낯에 뜨는 별을 봤다.

어린 감상으로도, 아스라이 빛나는 별빛에 덜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목우선은 이런 떨림을 겪은 적이 없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아….”

목리원은 울먹이는 목우선을 향해 지그시 미소지었다.

“네가 배워나갈 검이다. 그리고 평생을 안고 가, 또 다른 이에게 물려줘야 할 검이지.”

목리원의 손이 목우선의 머리 위에 닿아, 그것을 쓸었다.

“선아.”

“예.”

목우선은 태산 같은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언제나 멋있다고 생각한 미소가 그의 얼굴 위로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목소리는 귀가 아닌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성련은 협객의 무학이다. 우리는 협을 행하는 이유로 검을 들었으며, 또한 낯선 누군가의 미소를 지키기 위한 여정을 걸을 것이다.”

“협객….”

“그래, 협객.”

목우선은 목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 위로 목리원의 손이 덮였다.

“그렇기에 일인전승, 비인부전. 우리는 모든 것이 변해도 변하지 않을 단 하나의 가치를 위해 이 검을 쥐어야만 한다.”

목우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이야기였음에도, 그것이 마냥 답답하게는 느껴지지 않아서.

목리원은 물었다.

“그래 줄 수 있겠느냐?”

목우선은 답했다.

“…네! 아버지처럼 꼭 멋진 협객이 될 거예요!”

그것이 목우선이 처음 품은 꿈이었다.

아이는 그날부터 낮에 뜨는 별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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