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32화 (332/334)

EP.333 이부 십칠장 - 혼인 (1)

* * *

전쟁이 끝난 후, 떠나기 전의 일.

목리원은 꽤 여러 사람을 만났다.

우선 함께 중원을 뛰어다녔던 1기와 2기 용봉단, 맹의 사람들과 사사로이 알고 지내던 무인들까지.

거기에 의도치 않은 인연이 엮어 교분을 나누게 된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표적으로 흑사련주였다.

그는 한밤 중에 갑작스레 목리원을 찾아와 술 한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알 수 있었다. 협이라는 것의 무형적 가치.”

“그렇소?”

“은원이다. 누군가에게 지워둔 빚, 그리고 지울 빚이 협과 선의로 계산된다. 또한 뒤따르는 것은 명예욕이다. 인간은 존재의 가치에 집착한다. 협은 그런 무형적 가치를 규정해준다.”

여전히 무감정한 기색의 말이었으나, 그는 분명 목리원을 기쁘게 하는 소식이었다.

“너는 옳은 말을 했다. 힘이 뒷받침되었을 때야 비로소 힘을 가지는 가치, 나는 이제 그것을 안다.”

그날의 술은 유독 달았다.

목리원은 흑사련주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떠난다고 들었다.”

“서역으로 가보려 하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 또한 재미가 아니겠소?”

“돌아오면 서신을 보내라. 선물을 줄 테니.”

“빚을 지우겠다는 말이구려.”

“그 또한 협의일 테니.”

달이 휘영청 뜬 밤이었다.

다음 날은 또 다른 인연을 만났다.

“곽 대협.”

“이리 인사드릴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는 싱긋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목리원은 떠나기 전 그와의 약속을 이행했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셨지.”

긴 이야기였다.

목리원은 떠오르는 순간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그에게 살아온 생을 이야기했다.

곽칠은 모든 이야기를 들은 순간 웃으며 말했다.

“돌아오시는 날, 쓴 책을 가장 먼저 대협께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 이별하고 다음 날.

“자, 이제 가실까요.”

“그래, 갑시다.”

목리원은 중원을 떠났다.

당화서와 함께 한 여행은 무려 계절을 열두 번이나 지새운 긴 여정이었다.

목리원은 중원 너머의 세계를 봤다.

많은 것이 중원과 다르지만, 그들 역시 협의를 필요로 함은 다르지 않았다.

하여 목리원은 그곳에서도 검을 높이 들어 협의를 증명했다.

때로는 아이를 구했으며, 때로는 노인을 구했으며, 또 핍박받는 민초를, 어떤 때는 곤란에 빠진 지주를 구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 중 당화서만이 목리원의 곁에 있었고, 두 사람은 언제나 함께였다.

특이한 일도 많았다.

가령 땅에 잠들어 있던 서역의 거대한 지렁이 영물에게 쫓기거나, 탑에서 법술을 수련하는 승려를 만나거나, 또한 호수의 신기루 속을 거니는 여인을 쫓았던 일까지.

개중 가장 특이한 것은 머리가 붉은 도깨비와의 만남이었다.

목리원은 도깨비의 묘한 공력에 이끌려 그에게 비무를 청했다.

결과는 무승부.

그는 숨쉬듯 축지를 쓰며 목리원의 검을 피했고, 목리원은 그런 그를 향해 심검을 쏘아냈다.

그런 공방 끝에서 더 이어갔다간 생사결이 되겠다 싶어져 검을 거두었던 것이다.

도깨비는 말했다.

먼 미래에 자신의 청 하나를 들어준다면 이고 있는 고민 하나를 지워주겠다고.

목리원은 기꺼이 응했다.

도깨비가 꽤 목리원의 마음에 들었던 상대인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우욱…!”

목리원은 아버지가 되었다.

기나긴 여행의 끝이었다.

*

“…무어라 했느냐?”

3년간 당문에서 지냈던 마일석은 가장 먼저 두 사람을 반겼다.

뜻밖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것도 마일석과 당화서의 시비였던 소향이었다.

“세상에….”

소향은 울먹거렸다.

당화서가 아이를 얼마나 가지고 싶어 했는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결국 소향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펑펑 울며 당화서를 끌어안았다.

“축하드려요. 가주님.”

“고맙다. 내가 없는 동안 세가를 봐준 것도, 이리 축하해주는 것도.”

“정말, 정말….”

“왜 울고 그러느냐. 이리도 좋은 일일진대.”

다른 쪽에선 마일석이 제 뺨을 꼬집다 목리원의 뺨을 꼬집었다.

“이, 이게 꿈이 아니란 말이더냐?”

“악, 걸왕님! 아픕니다!”

“이, 이게….”

마일석은 못 본 새에 감수성이 참 풍부해졌다.

아니, 감수성뿐만 아니었다.

거지 생활을 아예 청산하고 당문에서 호의호식한 일이 얼마나 길었는지 10년 전보다 때깔이 더 좋아져 있었다.

그러다 이 순간만큼은 과거로 돌아가 거지꼴이 되었다.

“아이고! 아이고!”

가슴을 퉁퉁 치며 기쁨에 우는 마일석은 말했다.

“이놈아! 축하한다! 참 축하해!”

그는 목선오를 떠올렸다.

이 광경을 봤다면 누구보다 행복해했을 의형의 몫까지 한껏 기뻐하기로 했다.

“그래, 아들이라더냐 딸이라더냐?”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아비가 되어서 그런 것도 모르더냐!”

“…걸왕님?”

그런 순간이 다 지나고서야 남은 일을 청산할 때가 왔다.

그날 늦은 밤, 당화서는 목리원과 정원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낭군, 이라고 불러야겠지요. 이제는.”

“쑥스럽구려. 역시. 소저를….”

목리원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내 그는 말을 정정했다.

“…부인께 그런 말을 듣는 것은.”

두 사람은 가만히 서로를 끌어안아 체온을 공유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날, 중원에 소식을 퍼뜨렸다.

두 가지였다.

혼례식에 관한 소식과, 당문의 미래에 관한 소식.

“오대 세가의 이름이 바뀌었군.”

사천당문의 이름은 바뀌었다.

사천목가로.

당화서의 아팠던 기억을 모두 지우기 위해,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두 사람은 그런 선택을 했다.

*

전 중원이 움직였다.

다만 유력한 누군가의 결혼식이 아닌, 당대 천하제일인의 세가가 세워지는 날이었으므로.

강호 무림은 힘의 법도를 따른다.

하나, 모두가 그들의 법도에 온전히 납득하여 따르지는 않았다.

체제에 대한 반항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 강자가 되는 것이 아닌, 강자의 곁에 빌붙는 방법을 선택한 이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번잡스러운 행사엔 사고가 따른다.

하여 혼례식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은 자연히 선별될 수밖에 없었다.

선별된 이들은 대체로 그랬다.

목리원과 당화서의 오랜 지인들이었다.

“허, 목 아우가 혼인이란 말이지?”

“여보, 차림이 그게 뭔가요?”

제갈산의 아내 홍선이 그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줬다.

하남의 포목점에서 재회한 제갈산의 인연이 혼인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재혼이라는 것이 주변의 눈총을 받는 일이었으나, 홍선은 행복했다.

징그럽긴 해도, 사랑하는 사내는 그것을 장점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고맙소. 부인.”

제갈산이 싱긋 웃었다.

일운과 혜운은 그런 제갈산의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는 듯 거리를 벌렸다.

하나 축하는 해주었다.

부처님의 자비를 속으로 외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중이었다.

“어딜 갔나 했더니 번식하러 떠났던….”

빠악!

“윽!”

“말 조심해요.”

남궁진천이 서예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녀의 품엔 올해로 세 살이 된 남궁가의 소가주가 안겨있었다.

그랬다.

“저런 인간이 가주라….”

제갈산의 말처럼 남궁진천은 남궁 가의 가주가 되었다.

전대 가주나 장로들은 손자 손녀의 재롱에 껄껄대며 여유롭기나 할 뿐이었다.

“무슨 의미지?”

남궁진천이 제갈산에게 물었다.

제갈산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강호의 미래가 밝다는 얘기였소.”

“그렇군.”

“어휴.”

서예의 한숨은 남궁진천에게 닿지 않았다.

아니, 오늘만큼은 다 부차적인 이야기였다.

1기 용봉단은 주변을 훑었다.

대체로 익숙한 얼굴들.

그들 모두가 웃는 표정이었다.

그중 가장 껄껄 웃는 것은, 저기 멀리 전대의 고수들을 다 모아 술판을 벌이며 껄껄대는 마일석이었다.

“사람이 참 바뀌었네요.”

혜운의 말대로였다.

그나마 사성 육왕 중 현재까지 가장 소식을 접하기 쉬운 것이 마일석과 남궁혁.

거지 생활을 아예 청산하고 지낸다고는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곁에서 술을 홀짝이던 남궁혁은 제 등짝을 팍팍 쳐대는 마일석을 보며 이마에 힘줄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 때였다.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제갈산은 말했다.

“이건 누구 취향이오? 무슨 혼례식이 아니라 출정식 분위기가 되는구려.”

“누구겠어요. 딱 봐도 목씨 취향이구만.”

“아.”

혜운의 탄식과 함께 혼례식이 시작됐다.

멀리, 아주 곱게 치장한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는 이들 사이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대체로 번잡한 분위기였다.

모아둔 게 결국 칼밥 먹는 무림인이다보니 그런 분위의 형성은 어쩔 수 없었다.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축하하는 자리이니 누가 웃음소리에 토를 달까.

백년가약을 맺을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봤다.

독기 넘치던 독라나찰은 어디 가고 새색시가 부끄러운 듯 분칠 너머로도 드러날 정도로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맞은편에 있는 것은 천하제일인이 아닌, 긴장에 몸둘 바를 모르는 푼수같은 새신랑이었다.

그들이 서로를 향해 절을 했다.

그리 일어났다.

“와아아아아!!!”

함성소리가 장내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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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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