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30 이부 십육장 - 결자해지 (3)
* * *
목리원은 휘청휘청 몸을 일으켰다.
사고를 거친 행동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목리원의 머릿속은 직전의 충격으로 진탕이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흐린 시선은 와중에도 위광천을 향했다.
최소한의 판단은 가능했다.
몸 주변으로 퍼져나온 검은 고리 형태의 마기, 그것이 위광천의 코로 스며들었다.
‘오기조원…!’
상상 속에나 존재한다 여겼던, 목선오가 죽기 전 도달했던 그 경지.
또한,
‘환골탈태.’
벗겨진 피부 아래로 드러난 뽀얀 피부는 그의 육신이 완전히 재생을 끝냈음을 의미했다.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상황이 절망적으로 치달았음을.
이대로 패배하는 것인가.
생각했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두 다리로 서있으니 패배가 아니었다.
아직 할 수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등 뒤에 너무 많은 것이 있으니.
“일어서는가. 어리석게도.”
위광천의 목소리는 고요했다.
이때까지 만난 언제나 무언가 억눌린 듯 들끓던 기색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자신을 죽일 듯 바라보던 시선까지 사라져 있었다.
그는 허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뜻모를 말을 중얼거리니.
“…과연, 이런 것을 보신 겁니까.”
그는 그제야 감정이랄 것을 드러냈다.
목리원이 보기에 꽤 부정적이고, 허탈한 감정이었다.
“나, 는….”
“무용하군. 네놈은.”
위광천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한데 그가 서있는 곳은 목리원의 코앞이었다.
“참으로 무용하다. 이 발악은.”
툭, 위광천의 검지는 이번에도 목리원의 명치에 닿았다.
결과는 부드러운 움직임과 다르게 여전히 파멸적이었다.
콰과과광!
천마전의 한쪽 벽이 무너져내렸다.
목리원의 초점이 어긋났다.
*
강호 무림이 존재한 이례, 경지의 구분이란 것은 지극히 실전적인 이유로 발생, 진화해왔다.
그래야만 무학이란 것을 구분하여 때에 맞는 수련과 발전 방식을 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이야기의 연장이었다.
무림은 초월 이상의 경지에 이름 붙이지 않았다.
초월에 닿는 것만으로도 극소수에, 그 속에 우열을 가리기엔 심상이라는 비규격적인 요소가 따라붙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실제로 오기조원 너머라는 환상에 닿은 이가 강호에 나타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오기조원에 달하는 순간 선계의 문이 열린다.
무학에 욕심이 있는 이라면 오를 것이고, 인간으로서 땅에 몸을 뉘일 이라면 은거하니 오기조원 너머를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하나, 천마신교에는 그 경지를 구분하는 말이 있었다.
마의 극에 치달아 극마, 그것을 넘어 마에 연연하지 않게 되기에.
비로소 탈마(脫魔).
오래 전 한 천마가 도달해 그 실존을 알렸고, 10대 천마 이선에 의해 다시 한번 증명된 경지.
위광천은 그에 올랐다.
‘….’
그의 시선은 허공을 유영했다.
허공 어딘가에 있는 선계와의 연결을 쫓았다.
다만 하나의 생각을 떠올리길, 이것이 폐관을 끝내고 나왔던 이선이 본 풍경이라는 것.
-무용하다.
그의 말대로, 이 연결을 보는 순간 땅 위의 모든 것이 무용하게 여겨졌다.
그가 어떤 감정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처참했다.
‘나는….’
아니었다는 것이.
이리 경지에 올라올 수 있었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이선의 적이 아니었다는 것이 사무치게, 또한 끔찍하게 절망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위광천은 목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하나였다.
이선의 적이 되는 것이었고, 그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와 같은 자리에 섰음에도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만이 지금 위광천을 흔들었다.
압도적인 허망함.
그것은 이선이 느꼈을 무용함보다는 분명 더 큰 감정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후드득―
돌무더기를 걷어내며 목리원이 비틀비틀 일어났다.
위광천은 그제야 목리원을 바라봤다.
끔찍함의 원흉이라면 그중 하나는 저 비루한 몰골의 사내일 터다.
이제와 보길 참으로 별것 아닌 미물 하나였다.
“일어서나. 의미도 없이.”
걸음이 공간을 격한다.
위광천은 목리원의 멱살을 쥐어 들었다.
“끄헉…!”
“의문의 해답을 찾았다. 한데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군. 아마 한 가지는 여전히 의문이기 때문이겠지.”
위광천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승자의 여유였고, 허무에 휩싸인 자의 의문이었다.
“대체 무엇이 그리 대단하여 교주께선 네놈의 스승과 싸우려 했을까. 그 진전을 이어받은 네놈은 알겠나?”
“꺽…!”
“싸움을 원하는 것이라면 선계로 등선하셨으면 될 것을. 그저 비슷한 경지를 바랐다면 그곳에도 적수는 많았을 것을. 한데 굳이 목선오였다.”
아마도 이유는.
“의념에 있겠지. 나 또한 이제야 느낀다. 이 땅 전체를 뒤덮는 것들의 숨결이, 그곳에 담긴 의념이.”
어떤 것은 초라했고, 다른 것은 처절했다.
모난 것도 있었고, 반듯한 것도 있었다.
하나, 모든 것이 평이했다.
그렇기에 위광천은 목선오가 이선을 자극할 만큼 남달랐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말해보라. 무엇이 특별한가.”
꽈악―!
위광천은 목리원의 멱살을 틀어쥔 손에 힘을 더했다.
“무엇이 그리 달랐기에 그 노인이었나. 교주께선 어찌하여 등선 위에 그를 두셨나.”
경지가 아닌 진전을, 의지를 이어받은 이 비루먹을 종자에게선 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무엇이 그리도 달랐기에 이선이 목선오를 선택했는지 답은 여전히 요원하다.
“답할 수 없나?”
위광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죽어야지.”
위광천이 목리원을 바닥에 메다 꽂았다.
쾅!
목리원의 눈 위로 흰자위가 드러났다.
위광천의 펼쳐진 손아귀는, 그런 목리원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래.’
위광천은 그제야 결정을 내렸다.
‘등선해야겠군.’
등선한 이들이라면 특별할 터다.
개중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겨루고 싶은 상대 하나쯤은 있겠지.
그런 이를 만나 모든 것을 쏟아내고 죽는다면 이선의 그 감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못 찾는다면….
‘…다 부숴버리면 그만이지.’
지금처럼 말이다.
위광천은 땅 위에서의 마지막이 될 순간, 시야에 잡힌 목리원에게 말했다.
“살아온 삶의 보잘것없음을 후회해라.”
그의 손이 천천히 뻗어나왔다.
*
목리원의 흐린 시야 너머로 보이는 것은 여전히 위광천이었다.
딱, 그의 신형만큼이 또렷하게 보였다.
목리원의 눈이 끔뻑였다.
그의 움직임이 아주 느리게 보이고 있었다.
달싹이는 그의 입술 모양으로, 목리원은 이명으로 고장 난 귀를 대신해 뜻을 헤어렸다.
-살아온 삶의 보잘것없음을 후회해라.
뚝뚝 끊기는 사고는 그의 말을 그대로 이행했다.
정보가 걸러지지 않은 것이었다.
사고는 일순 점멸하며 뻗어나갔다.
‘나는….’
단우선으로 서여령의 뱃속에 자리 잡아, 요람이 아닌 제단 위에 뉘어져 울었던 갓난아이.
어미의 웃음소리가 아닌 비명을 자장가 삼았고, 깨끗한 물이 아닌 피로서 몸을 씻어낸 아이.
그러한 때, 목선오의 손에 의해 처음으로 사람의 온기를 마주한 아이.
유년기를 지났다.
‘…성련문.’
11대 제자, 소문주, 문주.
별의 잔혹함을 안타까워하던 여성운의 마음이 빚어낸 신공의 계승자.
밤하늘의 별을 담은 검을 품었으며, 그 검으로 별이 그리는 운명을 걷어내는 자.
‘무인 목리원.’
묵검이었고, 묵룡이 된.
중원 무림의 고수 목리원.
‘나는….’
끔찍하게도 사랑해 마지않는 스승 목선오가 있었으며, 부모 같던 걸왕 마일석이 있었으며, 강호를 나와 만난 수많은 인연과 그 어딘가의 연인이 있었다.
은혜를 입힌 이가 있었으며, 원한을 지게 한 이가 있었으며, 그러한 삶을 살아 오늘까지 검수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나는, 나의 삶을.’
후회하는가.
그리 자문하는 순간이었다.
눈앞 위광천의 손아귀는 흐릿하게 지나온 것들이 비추는 듯했다.
답은 그제야 나왔다.
목리원은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무엇도 후회하지 않았다.
사연이 있는 삶이었으나, 스스로 행한 모든 일은 떳떳했다.
바라던 꿈은 협이었고, 나아간 길은 고행이었다.
그리 살아오도록 길을 닦아준, 그리고 함께 걸어준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목리원이다.
단우선을 떼어내고 성련문을 떼어내고 인연마저 떼어내고 목리원이다.
그러니 떼어낼 수 없었다.
목리원의 꿈은 협객이었고, 지금 떼어내려는 것은 그 꿈을 위해 쌓아올린 것들이었으니.
‘목리원은….’
인생을 살았다.
그것은 가장 동경했던 어떤 협객의 생이었다.
-살아온 삶의 보잘것없음을 후회해라.
그 생은 보잘것없지 않단 말이다.
꽈악!
목리원은 아슬아슬하게 손가락 틈에 걸쳐있던 검을 있는 힘껏 쥐었다.
손아귀가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처럼 날 선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충만한 삶이오.”
새어나가는 소리로 겨우 읊조리며 목리원은 출수했다.
무너진 자세로 뻗어낸 검은 느릿하고 힘없었다.
하나,
“충만할 거요…!”
처음으로 무용하지 않았다.
화악!
목리원의 눈에 정광이 깃들었다.
지르는 검의 움직임 속에는 의가 맺혀 있었다.
검이 공간을 한 치 지날 때마다 생이, 경험이, 여정이 담기기 시작했다.
느린 검이 공기와 함께 가르는 것은 세월이었다.
검이 걸으니 강서의 산골 어딘가를 걸어 수양현, 귀곡과 안휘를 지나 무한.
그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일주한 중원과 신강, 다시금 돌아와 강서, 무한, 사천, 하남, 감숙, 그리고 십만대산을 넘어 지금 천마전까지.
길은 사람 간의 은혜와 원한을 인연으로 엮어 쌓아 올린 역사였다.
그것을 비로소 말하니 은원과 인연이었다.
더욱 축약하여 강호, 무림.
끝으로 검 끝에 걸렸으니 의념.
사아아―
충격은 없었다.
그저 무형의 손아귀와 한자루의 검이 맞닿았다.
툭!
그 순간 위광천의 눈이 크게 뜨였다.
묵색의 기파가 잔잔히 목리원을 휘감았다.
“나는…!”
목리원의 몸 주위로, 고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후회하지 않았소.”
칼날이 손등을 파고들었다.
어떤 초식도 아닌, 다만 강호 무림의 목리원이 휘두른 검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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