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9 이부 십육장 - 결자해지 (2)
* * *
검과 주먹이 충돌했다.
누구도 해를 입지 않았다.
그저 살기가 실처럼 뻗어 나와 맞닿았다.
그 순간 고요한 천마전에선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됐다.
풀어 이르길, 그것은 서로의 살기를 읽어내 일어날 수 있는 수를 양측이 계산하는 과정이었다.
한마디로 논하지 않는 논검.
초월에 이른 자들끼리 해내는 심상적 합의.
목리원은 위광천이 주먹을 거두며 반대쪽 권을 내지를 수 있음을 알았다.
혹은 무릎을 내질러 허리를 칠 수 있음을 알았고, 외에 기파를 뭉쳐 명치로 쏘아낸다거나 강기를 둘러 이대로 힘겨루기에 돌입할 수 있음을 알았다.
위광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목리원의 검이 비스듬히 기울어 목에 파고들 수 있음을 알았다. 권각을 섞어 거리를 만들 수 있음을 알았고, 검의 기파를 날카롭게 만들어 손을 쪼개려들 수 있음을 알았다.
양측이 그런 사실을 알고도 방어 행위를 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앞서 일렀듯, 합의가 있었기에.
툭, 검과 주먹이 떨어졌다.
두 사람은 발걸음을 물렸고 천마전 중심을 기준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둥글게 걷기 시작했다.
“쓰레기 같은 수준은 벗어났나 보군.”
위광천의 말에 목리원은 답했다.
“그러는 당신은 답보하고 있구려. 내게 경지가 따라잡힌 걸 보니.”
“주둥아리만 살아있는 건 가소롭고.”
“그조차 반박하지 못하는 꼴은 우습지.”
한 차례 도발이 오간다.
이내 다시 격돌한다.
살기가 맞닿으며 서로에게 보인 풍경이 있기에.
꽈아아앙!
양측이 같은 것을 노렸기에 이번 역시 무효.
지긋지긋한 힘겨루기가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와중, 위광천이 말했다.
“잡설은 여기까지 하지.”
쿠구궁!
위광천의 마기가 그의 전신을 검게 뒤덮었다.
일반적인 마기는 검붉은색, 그 꿉꿉하고 지저분한 색채가 어지러운 마인의 공력을 상징하며, 그런 관점에서 위광천의 마기는 확실히 특이했다.
하지만 낯선 것은 아니었다.
“천마신공이군.”
천마신공의 진기가 발화한 것이었다.
모든 마공의 극, 마기조차 수족으로 부려 가장 순수한 마도를 뿜어내는 무공이 바로 천마신공이었다.
이는 특이한 일이었다.
상승의 경지로 갈수록 성장이 더뎌지고 어느 순간은 퇴보까지 하게 되는 것이 바로 마공의 특성임을 생각하면, 저것은 차라리 도문이나 불문에서 말하는 정화의 내기와도 닮아있었으니까.
사실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도 아니다.
천마신교란 것이 본디 백련교에서 떨어져나온 집단이었으니.
꽈드득!
순흑색의 마기로 둘러싸인 위광천의 손이 검날을 잡았다.
넘실거리던 형상은 어느새 결정화되어 굳어있었다.
강기공.
목리원은 깨달은 순간 공력을 발했다.
“신공이라면 이쪽도 있소.”
화아아악!
별무리가 기지개를 켠다.
다만 흑색으로 뻗쳐나오는 위광천의 어둠을 밝히겠다는 듯 아스라이 떠오른 별빛이 그의 마기가 가진 장악력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신공 같은 소리!”
꽈아아앙!
땅거죽이 뒤집히며 공간이 어질러진다.
다만 공력의 충돌이라 하기엔 그 이상의 파급력이 속에 존재했다.
아마 초월에 닿지 못한 자가 이곳에 있었다간 그 충격만으로 속이 진탕되어 진혈을 토해냈으리라.
적어도 위광천의 승부를 향한 고집이 호기심 많은 누군가나, 의기로운 누군가의 목숨을 살렸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쾅!
위광천의 권이 목리원의 허리춤을 노렸다.
목리원은 정면으로 받아치며 반격을 시도했다.
쾅! 쾅! 쾅!
한 번의 충돌 때마다 이는 폭발적인 충격.
그에 황폐화 되는 천마전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두 사람의 충돌은 더욱 격해졌다.
속도가 붙었다.
목리원이 이끄는 속도였다.
만련이검 1식, 탈혼번쾌.
콰과과광!
목리원의 신형은 어느새 시각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가 되어 위광천을 몰아쳤다.
위광천은 눈을 감고 의념으로 파악해 짓쳐드는 공격을 죄다 쳐냈다.
키이잉―!
그런 어느 순간 충돌이 멎는다.
목리원의 공세가 변했다.
유성칠검 1식, 칠성극검.
성련의 비기가 위광천의 일곱 관절을 비틀어 꿰뚫기 위해 쏘아졌다.
그에 위광천이 응수했다.
천마신공의 초식, 천마파천장이었다.
쩌어엉―!
머리칼과 옷깃이 나부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다만 피부 위만이 강기로 보호되어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쿵!
그 순간 위광천이 진각을 밟았다.
드드득!
땅울림이 시작되었다.
천마군림보였다.
순간적으로 중심이 어그러진 목리원의 육신, 그것을 본 위광천은 주먹을 뻗어 갈겼다.
꽈득!
목리원의 갈빗대가 부러졌다.
*
쿵!
“커헉…!”
벽에 부딪친 목리원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하나 쉴 틈은 없었다.
위광천이 달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드드득!
발걸음 한 번에 천마군림보의 묘리가 섞여 땅거죽을 다 뒤집는다.
더 이상 평형의 유지는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됐다.
애써 중심을 잡는다.
목리원은 검을 휘둘렀다.
채애앵!
맑은 충격음이 퍼졌다.
정면 돌파가 아닌 흘리기를 시도한 것이었다.
그리하는 동안 목리원의 이성은 반쯤 흐려져 있었다.
천마신공의 패도의 무학이다.
그것은 다만 공세가 짙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울리는 기파의 무게, 전해지는 충격에서의 부담 따위가 모두 상대의 내기를 흐트러뜨리는 형태를 취한다는 뜻이었다.
그런 점에서 공능은 확실하게 목리원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다만, 목리원도 쉬이 물러나진 않았다.
꽈르릉!
천둥이 치듯 목리원의 공력이 울었다.
검에 둘린 묵빛의 검강이 더욱 강한 빛을 발했다.
‘성련은….’
불굴의 무학이다.
가장 어려운 길을 돌아가며 시련을 이겨내는 자들의 무학이다.
“놈!”
키이잉―!
위광천의 등 뒤로 흑색의 마기가 뭉쳐 공의 형상을 취했다.
천마대멸겁.
천마신공의 극의였다.
확실히 끝을 내려는 것일 터.
목리원은 이를 악 물었다.
키이잉―!
마찬가지로 기를 회전시켰다.
검 위로 들러붙어 있던 강기를 쪼갰다.
그리고, 쏘아냈다.
꽈아앙!
허공에서 마기의 구체와 검강의 비가 충돌하며 폭발, 이윽고 결과가 남는다.
위광천의 마기는 흩어졌고, 목리원의 강기는 더욱 잘게 쪼개져 허공을 유영하는 검이 됐다.
이기어검이었다.
실전에서 오래 쓸 수는 없으나, 결전의 한 수는 될 수 있을 수법.
쿵!
이번엔 목리원이 진각을 밟았다.
찌르기 자세였다.
눈을 부릅뜨고 허리를 숙인다.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검끝은 위광천을 향했다.
위광천은 입가에 흐른 피를 닦고 있었다.
내상을 입은 것일 테지.
“…그 수겠군. 네놈 스승이라던 늙은이의.”
위광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목선오와 이선이 벌였던 생사결, 그 마지막 수에서 이선의 숨을 앗아간 초식을.
“좋다.”
위광천은 양팔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어깨 또한 힘을 푼 채였다.
목리원은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의념조차 반격을 말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뭐가 됐든 기회.
목리원의 검게 물든 검이 공간을 내달렸다.
*
이겨내야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저 하나의 수만큼은.
‘교주께서 막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위광천은 한없이 느려진 세상 속에서 고요하게 가라앉은 심상을 마주했다.
눈앞에 목리원이 달려드는 것은 어느덧 정지에 가까운 속도가 되었다.
위광천은 심상의 검은 호수에 돌을 던졌다.
‘이젠 세상에 없는 당신이기에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호수의 깊이는 그가 품은 심마의 깊이였다.
던진 돌은 그 심마에 건네는 의문이었다.
‘하여 고심했습니다. 그렇게 답을 찾았습니다.’
위광천은 폐관으로 스스로를 낮춘 7년, 한 의문에 답을 내었다.
‘당신을 넘을 수 없다면, 당신이 넘지 못한 것을 넘으면 되리라고.’
아득한 갈망 속에서야 열망은 피어난다.
목이 말라 봐야 물이 단 줄 안다.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
위광천은 끝을 모르는 갈증 속에서 본능적인 해답을 찾아냈다.
느릿하게, 목리원이 달려드는 속도보다는 느리고 어기적거리는 거지패보단 빠른 속도로 위광천은 손을 들었다.
그것을 뻗었다.
7년간 깨부수려고 했던 단 한 가지 수를 이겨내기 위하여.
빙글 손목이 돌아간다.
그 순간은 무아(無我)였다.
오로지 하나만을 간절히 바라여, 목표한 바를 넘기 위하여.
쩌적!
비로소 알을 깨고 나와 날개짓을 하는 새처럼 애처롭고 부드럽게, 그리고 장엄하게.
쩌저적!
그렇게 검과 손이 맞닿은 순간.
째애앵!
위광천의 심마에 인 파문이 잦아들며 호수가 맑게 피어났다.
사아아―
목리원의 검을 감싸던 묵색의 강기가 먼지가 씻겨지듯 지워졌다.
목리원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였다.
위광천은 이번 역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목리원의 명치에 손바닥을 댔다.
그렇게 적은 내력을 운용했다.
퉁―!
부드러운 소음.
하나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끄학!”
목리원이 핏물을 토하며 날아가 꽝! 하고 벽에 부딪쳤다.
명백한 이해밖의 일.
후발선제, 그리고 만통의 경지.
위광천은 크게 호흡을 들이쉬었다.
눈이 뜨인 기분이었다.
그 순간 위광천의 몸을 중심으로 흑색의 고리가 떠올랐다가, 이내 연기가 되어 그의 코로 스며들었다.
깨달음과 그것의 검증을 마친 순간에야 손에 쥘 수 있으니.
“닿았다.”
오기조원(五氣朝元).
위광천은 삼화취정의 초월 너머에 존재하는 그것에 닿았다.
껍질이 벗겨지듯 위광천의 피부가 떨어져내렸다.
안으로 돋아있는 것은 뽀얀 새살이었다.
오기조원과 동시에 반로환동에 이른 것이다.
그의 마기는 더 이상 포악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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