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2 이부 십오장 - 형제 (3)
* * *
고개를 돌리니 화원을 가로질러 걸어오는 미인이 있다.
목리원이 살아생전 누군가를 보고 아름답다 생각한 것은 당화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만삭의 배를 조심스레 받친 채로 싱긋 미소 짓는 얼굴이 익숙한 것은 착각일까.
그 외에 느껴지는 기파의 정순함이 탄성이 나올 정도라면 믿어질까.
‘고수다.’
그것도 완숙한 초월에 이른 고수.
고작 이립을 살짝 넘기는 나이로 보인다.
한데도 저 경지라면 이미 방년에는 초절정의 경지에 들었을 것이고 자신과 비슷한 나이엔 초월에 입문했을 것이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별의 가호는 없다.
그렇다면 순수한 무학의 재능이란 말이다.
그 재능만큼은 마치 패웅추를 보는 듯했다.
“그분은 누구시니?”
여인이 물어왔다.
목리원은 흠칫 놀라다 입술을 뻐끔거렸다.
무어라 답해야 하지? 우선 변명이라도 해야 하나?
아니, 그보다 여인의 기파에 경계가 서리기 시작한다.
하기야 중원의 복색, 낯선 초월의 무인, 여인은 단지선의 어머니로 보인다.
아들의 곁에 있는 자가 외인이라면 경계할 만하다.
“나, 나는…!”
목리원이 황급히 말을 이으려던 순간이었다.
“이분은 중원에서 오신 손님입니다!”
단지선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여인의 눈썹이 휘었다.
“응?”
“중원에서 혈마의 일로 찾아오신 손님 분입니다! 제가 응대하고 있었습니다!”
뒷짐을 지며 사뭇 근엄한 척을 하는 게 인상적이다.
하나 여인의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적어도 아들의 파마성이 어떤 성향이고 말을 얼마나 걸러들어야 하는지는 아는 모양새였다.
‘확실히.’
목리원이 깨달은 바로 파마성은 본인이 거짓을 진실로 믿는다면 그 말에 대한 반동이 돌아오지 않는다.
파마성은 ‘진실성’이 아닌 ‘진솔함’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중원에서 오셨다구요?”
여인의 경계어린 목소리에 목리원은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였다.
흐음, 하고 여인이 목리원을 노려봤다.
그런 끝이었다.
“일단 따라오세요. 마침 회의를 하는 중이었거든요.”
목리원은 단지선을 바라봤다.
단지선은 흠! 하며 어른스러운 척 헛기침이나 하고 있었다.
*
목리원은 여인을 따라가며 별다른 말을 듣진 못했다.
서로 인사나 나눌 사이는 아님이 첫 번째 이유요, 역시 경계심이 두 번째 이유였다.
‘혈마가 이곳 출신이었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추측해보자면 꽤 나오는 답이 있었다.
먼저 혈마가 중원을 침공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중원에서 온 사신이라는 입장에 있다.
그렇다면 백련교 입장에선 자신이 호의적인 이유로 찾아온 것은 아니리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쉬이 판단하길 백련교에 책임을 물으러 왔다.
혹은 단천화의 약점이나 역린 따위를 조사하기 위해 백련교를 뒤집으러 왔다.
추측 가능한 어느 쪽이던 그리 긍정적인 방향성은 아니었다.
날 선 분위기 속에서 목리원은 여인을 흘금대며 기시감을 지우기 바빴고, 여인은 그 순간 말했다.
“젊은 나이에 공력이 상당하시네요.”
정면을 보며 무표정하게 내뱉는 말이었다.
목리원은 흠칫하다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기연을 만났소.”
“보통은 기연을 만났다고 초월에 달하지는 않지요. 이립도 되지 않아 보이시는데.”
“보통 기연이 아니었소. 내 삶을 이곳까지 이어준 소중한 기연이 너무나도 많았으니.”
목선오부터 해서 지나온 인연들이 목리원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여인은 흘금 목리원을 보다 다시금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겸양이 과하시네요.”
“하하….”
역시 경계를 지워줄 순 없는 건가.
왜인지 모를 씁쓸함이 몸을 감도는 와중이었다.
“부인?”
저 멀리, 화려한 옷을 입은 사내가 눈을 휘둥그레하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는 딱 봐도 단지선과 외적으로 닮은 곳이 많은 사내였다.
아마 단지선이 건강하게 살이 올랐다면 딱 저리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
“낭군.”
여인이 희게 웃었다.
웃는 얼굴은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치미는 와중, 그녀가 말했다.
“이분은 중원에서 온 손님이셔요.”
다시금 경계 어린 기색을 띤 여인의 소개에 사내, 백련교주의 표정이 굳었다.
“…중원이라면.”
기호지세라, 이렇게 된 거 그 입장을 활용해봐야겠지.
목리원은 포권을 취했다.
“목가라 하오. 사신의 입장으로 이곳까지 왔소. 대화를 나눌 수 있겠소?”
이 환영을 빠져나갈 방법은, 왜인지 이 교주 일가에게 있을 듯했다.
*
자리를 옮겨 응접실로 보이는 공간.
낯선 향의 차가 목리원에게 드리워졌다.
“…수상한 차는 아니니 마셔도 좋소.”
교주가 말했다.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이곤 차에 입을 댔다.
썩 속을 편안하게 해주어 미소가 감돌게 한다.
“환대에 감사하오.”
말하니 교주가 답했다.
“별말씀을, 그보다 별호를 들을 수 있겠소? 당신과 같은 강자라면 이곳에서도 무명을 들었을 법한데. 마침 중원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터라.”
흠칫하게 된다.
이 시기에 묵룡이라는 별호는커녕 목리원이라는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니.
문득 말이 튀어나왔다.
“무, 무명은 없소!”
“음?”
“그, 그게….”
아뿔싸! 싶다가 뒤늦게 떠올린 것이 있었다.
‘맹주님!’
견궐이 이 시기에 암중으로 활약하며 경지를 숨겼었지.
그 입장을 가져오는 것이다.
“아, 암중 단체에 속해있는지라 대외적인 무명을 받을 수는 없었소! 우리는 맹의 그림자이니 말이오!”
속아주어야 할 텐데.
생각하는 중 교주가 납득의 뜻을 내비쳤다.
“하긴… 그자를 막으려면 드러나지 않은 검도 필요하겠지.”
교주의 입가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그가 대뜸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오.”
“으, 음…?”
“단천화의 일은 그를 죽이지 못한 나의 죄요. 그놈이 그리 야망이 큰 놈인 줄 알았음에도 교에서 쫓아낸 것으로 죄를 사하고자 했소. 형제의 정이라는 것이 이 모든 혈사의 원인이겠지.”
그의 처참하게 구겨진 얼굴은 후회의 색을 띠고 있었다.
덧붙이는 말은 그랬다.
이미 목리원은 아는 이야기였다.
단천화가 어떤 죄로 백련교를 나갔고, 이후 천마신교에 몸담은 후 혈천교를 세웠다는 것.
목리원은 무어라 말해야할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사과하실 필요는 없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었고, 그것을 떠나서 혈사의 시대를 살지 않았던 자신에게 사과하는 게 큰 의미는 없을 테니.
그 말이 교주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그렇군….”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직후였다.
“그래, 무엇을 알고 싶어 이곳에 왔소?”
본론이었다.
목리원은 또 고심해야 했다.
‘목적은 없소만.’
따위의 말을 했다간 미치광이 취급이나 받을 테니 말이다.
짧은 고민, 그 끝에 답이 나온다.
그 순간이었다.
“사실….”
쿠구구궁―!
굉음과 진동이 일었다.
목리원과 교주의 시선이 곧장 진원지로 향했다.
목리원의 눈은 찢어질 듯 커지고 있었다.
‘이 기운은….’
마기? 아니다.
단순한 마기라고 하기엔 생기가 너무 진득하게 묻어난다.
한데 그 생기가 도저히 정순한 진기라고는 말할 수 없는 형태다.
꼭, 흡성대법 따위로 누군가의 진기를 덕지덕지 발라 삼킨 듯한 기라 말하는 게 옳을 터다.
목리원은 이런 기운을 생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당황은 당연하다.
그보다 더 큰 감정이 있었으니.
‘설마….’
불안감을 자아내는 추측.
아마도 현실일.
“교주님! 습격입니다!”
쾅! 문을 열고 들어온 교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다.
“단천화가 돌아왔습니다!!!”
그 순간 교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나갔다.
그곳은 단지선과 여인의 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목리원도 황급히 뒤를 따랐다.
‘이것인가!’
이 환영의 목적성이 그에 있는 것인가!
달음박질은 조급하다.
주변은 온통 비명 소리가 가득하며 진득하고 역겨운 기파는 이곳까지 뻗어 나와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런 순간이었다.
“지선아!”
교주의 외침에, 목리원은 바짝 굳어버렸다.
“여령!”
교주가 부르는 이름이 너무나도 익숙했기에.
아니,
‘서여령…?’
그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어느 때 매일같이 머릿속에 이름을 박아두었기에.
“낭군!”
질린 얼굴의 여인, 그녀의 배가 만삭이다.
목리원은 떨리는 눈으로 그곳을 보았다.
“이게 대체….”
“습격이오! 피해야 하오!”
머릿속에 말이 스쳐지나간다.
목리원은 단지선을 바라봤다.
어린 그를 통해, 미래의 그를 겹쳐봤다.
-서여령, 교단의 평신도 중 하나였으며 천애고아였습니다. 남편은 혼인한 지 한 달 만에 명을 달리했으며, 저희가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마침 그녀의 뱃속에 들어있던 대협께서 자미성을 타고났음을 별이 점지해준 이후였습니다.
그 말을 누가했더라.
‘…그래.’
그의 호위가 가로채서 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직접 그 말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피해야 한다!”
그는, 단지선은 거짓을 말한 것이다.
모든 것을, 목리원이 알아야할 것을 전부.
“낭군은…!”
“이곳은 내가 막겠소!”
“아….”
목리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가지지 못했던, 얼굴도 몰랐던 가족이, 그리하여 괘념치 않으려 했던 그런 풍경이.
다름 아닌 이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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