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1 이부 십오장 - 형제 (2)
* * *
목리원은 호위에게 물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오? 갑자기 백련교주가 왜….”
부지불식간 쓰러진 단지선 탓에 혼란이 일었다.
혹여 그는 이유를 알까 했으나 답을 아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호위도 상태가 이상했다.
“으음….”
눈을 깜빡거리는 모습이 영 정신을 못 차리는 듯하다.
그제야 목리원도 깨닫길,
‘…보패를 뚫고 들어왔다? 이 기묘한 현상이?’
이제까지의 의식과는 다르게 이번 의식은 특히 괴악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나 떠오르는 의문, 왜 자신에겐만큼은 이 현상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가.
목리원은 답을 갈구했으나 많은 것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
‘…위광천.’
오로지 자신만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그 원인은 위광천에게 있으리란 것.
고개를 들어 천마전을 바라봤다.
이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나, 그도 아니라면 일단 단지선과 호위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하나.
고민했고, 이내 답이 나왔다.
‘우선 두 사람을 숨기자.’
근처에 다른 적이 없긴 하지만 혹여 마인들이 숨어 이곳을 지켜보고 있다면 큰일이다.
공기가 진동한 후엔 기감이 꽤 흐트러져 있었다.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란 말이다.
행동은 빨랐다.
목리원은 슬슬 휘청거리는 호위와 단지선을 양 어깨에 얹은 후 주변을 두리번 거려, 외진 곳의 모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보패는 어느덧 빛을 잃었다.
그럼에도 정신에 이상이 없는 걸 보면 확실히 자신에게 통하는 의식은 아닌 모양.
그리하여 모옥의 가장 외진 방에 두 사람을 눕힌 직후였다.
찌이잉―!
“윽…!”
목리원은 두통을 느꼈다.
그것은 꼭 누군가가 기다란 장침을 미간 한가운데로 꽂아 속을 휘젓는 듯한 감각이었다.
‘갑자기?!’
당혹스러운 마음은 순간이다.
이윽고 어지럼증이 머리 끝까지 치솟는다.
휘청거리던 중 단지선과 손끝이 스친 순간,
우우웅―
목리원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징징 울리는 머리를 붙잡고 눈을 뜬 순간, 목리원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곳은….’
웬 화원이었다.
중원과는 다른 양식이 눈에 띄는 건물들이 자리해있고, 그 앞으로 이름 모를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인상을 찌푸린 목리원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내부를 관조했다.
‘기력이 상하지는 않았다.’
공력을 발해보니 묵색의 기파가 손아귀 안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며 안전을 확신, 그리하여 주변을 둘러봤다.
‘대관절 여기가 어디란 말인지.’
암만 봐도 생전 와본 곳은 아니었다.
분명 그리 쓰러졌다면 어떤 환각 속일 테고, 환각이라 함은 기억에 있는 것들을 재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란 걸 생각하면 너무 당황스러운 것이다.
대체 뭘까.
가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누구십니까?”
앳된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리원은 흠칫했다.
아이가 이리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기를 눈치채지 못했단 것에.
휙, 고개가 돌아갔고 목리원의 놀람은 더욱 커졌다.
‘…백련교주?’
뽀얀 뺨, 아이답게 작은 체구와 초롱초롱한 눈, 그리고 입고있는 고급진 의복까지.
모든 게 기억 속 단지선과는 달랐으나 이목구비만큼은 딱 알 수 있을 정도로 단지선과 닮아 있었다.
그제야 떠올리는 사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쓰러지기전 단지선과 몸이 스친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의식에서 유일하게 멀쩡했던 자신과, 셋 중 가장 먼저 의식에 당한 단지선의 몸이 닿으며 무언가 교란이 일어난 걸지도 모르겠다.
즉, 달리 말해서.
‘백련교주의 과거?’
그리 생각하는 게 옳은 듯하다.
목리원은 가만 마음을 추스르고 말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소?”
순진한 눈망울만 봐도 대충은 알겠으나 확인차 건넨 말.
“누구십니까?”
단지선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곧 죽어도 파마성의 주인이다.
이 의식이 별의 특성을 해할 정도가 아님은 작은 혈향에도 예민한 몸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을진저,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니라는 것일 터다.
“흐음….”
고민에 빠져 있자 단지선의 얼굴 위로 의심의 기색이 짙어졌다.
“…외인?”
흠칫, 목리원의 몸이 떨렸다.
상황도 파악하지 못한 채로 의심을 살 수는 없기에.
‘뭐가 됐든 이 환영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백련교주다.’
그렇다면 근처에 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 목리원은 답했다.
“외, 외인이 아니라….”
“맞지 않습니까? 복식이 이곳의 복식이 아닙니다.”
“그, 그건…!”
“또한 이 정원에 출입이 가능한 사람은 모두 얼굴을 외워두고 있습니다. 개중 당신과 같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 몰랐을 수도….”
“당신처럼 헌앙한 사람을 못 알아볼 리 없습니다!”
칭찬에 기뻐하는 게 먼저일까.
아니, 또박또박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조목조목 말을 반박하니 목리원의 말문이 턱 막혔다.
이것이 단지선의 어린 시절임을 알고 있음에도 새삼 어색함까지 치솟았다.
목리원이 아는 단지선은 곧 쓰러져 죽을 사람처럼 비실대는 사람이었다.
눈 밑에 그늘은 푹 꺼져 있었으며, 목소리 또한 한마디 내뱉는 일에도 힘겨움이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가 어릴 적엔 이리도 명랑했다니 괴리감이 안 들 수 없지 않나?
“정체를 밝히십시오!”
척!
삿대질하는 얼굴 위론 흥분이라 할 것까지 맺혀 있었다.
아마 정답을 맞춰 기쁜 듯했다.
목리원은 허허 웃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중원에서 오셨겠지요! 요즘 숙부의 일로 골머리를 썩이실 테니까요!”
단지선이 문득 그런 말을 내뱉었다.
무시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음…?”
숙부, 목리원은 그자가 누구인지 알았다.
혈마 단천화다.
어머니의 원수이자, 중원의 재앙이자, 스승에 의해 목이 달아났던 악귀.
그것들이 다 스쳐 지나간다.
목리원은 그제야 단지선의 과거에 들어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볼 수 있다…?’
눈빛이 흔들렸다.
이 시간대, 이 환영이 얼마나 넓이 뻗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스승의 젊을 적을 볼 수 있었다.
그곳까지 미치지 못한다 한들,
‘…어머니를 뵐 수 있다.’
단지선이 이르길 모친은 백련교의 교인이었다.
아직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을로 내려가 아이를 밴 여인을 찾다 보면 자신과 닮은 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가슴이 먹먹하게 젖어드는 기분.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열망을 접는다.
‘…아니잖느냐.’
그런 것에 빠져 있어선 안 되지 않던가.
이곳은 환영이다.
또한 현실의 몸이 있는 곳은 천마전 직전이다.
여유를 부릴 틈은 없다.
한데도 이리 마음이 기운다.
주먹이 꽉 쥐어지는 순간이었다.
“자, 제게 용건을 말하십시오.”
단지선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저는 이 백련교의 소교주 단지선이라 합니다. 중요한 용건은 본디 중한 인물에게 맡겨야 하는 법. 중원의 일이라면 저를 통해 말하시면 됩니다.”
애써 점잖은 척 무게감을 잡는 아이의 모습이 참 앳되다.
그 모습은 꼭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의 것과 같았다.
심각한 와중에도 그 모습에 피식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역시 누구든 아이일 적엔 어여쁜 법인 듯하다고.
잡생각이나 떠올리며 목리원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구나. 내 중원에서 온 것은 맞으나 네가 말한 용건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흘러들어왔다 말하는 것이 옳겠지.”
“거짓말! 어른들의 사정이라며 말하지 않으려는 속셈임을 압니다!”
단지선은 콧방귀를 뀌곤 말을 덧붙였다.
“저는 소교주입니다! 들을 자격은 충분하니 당신께선 저를 무시하는 행사를 해선 안 됩니다! 저도 어엿한 어른이니까요!”
스스로가 어른임을 강조함에 목리원은 어이가 다 없어지는 지경이었다.
“너는 고작 예닐곱도 안 되어 보인다만?”
하고 말하니, 단지선이 답했다.
“어른이 맞습니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목소리로, 씨익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저는 곧 동생이 생길 거니까요!”
우뚝, 목리원의 손끝이 멎었다.
“남동생이면 단우선! 여동생이면 단예선입니다! 저는 남동생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형님으로서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줄 거니까요!”
해맑게 웃는 단지선의 모습이 미래의 모습과 겹친다.
그가 했던 말, 그의 얼굴, 행동 따위를 다 되짚는다.
‘교주는….’
동생이란 것에 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어째서 그랬을까.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생각하길.
‘…지키지 못했겠군.’
스스로 이른 사실은 단천화의 습격으로 백련교 전체가 붕괴 직전까지 갔다는 것이다.
아마 그것이 단지선의 역린이 아닐까.
어쩌면 피폐함에 절어있는 그 모습이 가족을, 또한 태어나지도 못한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참함에서 오는 것일지도 몰랐다.
문득 그가 가엾게 여겨졌다.
하나 목리원은 그 마음을 괜히 드러내지 않았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위로를 할 수 있을 수는 없을뿐더러, 설령 미래로 돌아갔다 한들 괜히 타인의 상처를 들쑤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랬더냐.”
하고 답한 순간이었다.
“지선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아주 청아하고, 왜인지 익숙하게만 들리는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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