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0 이부 십오장 - 형제 (1)
* * *
그것은 부지불식간 일어난 일이었다.
쿠구구궁―!
지반이 흔들렸다.
기류가 변했고, 하늘이 거무죽죽해졌다.
그 일련의 변화에 마교로 돌격하던 모든 맹의 병력들이 멈춰 섰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재난을 앞둔 숲에서 동물들이 위기를 감지하며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건….”
마침내 정리가 끝난 본대의 어딘가, 마일석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남궁혁은 침음을 흘렸고 견궐은 검을 재차 말아쥐었다.
다른 장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육마를 처치한 1기 용봉단도, 그리고 장로들을 막 이겨내던 세 명의 초월도.
“크흐흐….”
염소소는 들려온 웃음소리에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선 사지가 뽑혀 나간 채 피범벅이 된 3장로가 광기 어린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염소소의 인상이 확 찌푸려졌다.
“…무엇을 노리는 게냐?”
한껏 날카로워진 목소리.
하나, 답을 들을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3장로는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 평온하게 생을 마감해가고 있으니.
그제야 드는 생각,
‘함정?’
천마신교까지 달한 이 모든 여정이, 이제까지의 모든 승전보가 사실은 함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확실히 그렇다.
‘너무 쉬웠다!’
무려 마교의 본단이다.
암만 마교의 세가 위축되어 있고 맹의 전력이 높았다 한들 이런 일방적인 구도는 말이 안 된단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염소소는 경공을 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쓰러졌다.
쿵!
‘어?’
하고 당황할 새도 없었다.
염소소의 정신은 아득한 심연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
우우웅―
단지선이 들고 있던 보패에서부터 은은한 금빛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갑작스레 발생한 이변에서 목리원과 단지선, 그리고 그의 호위를 감싸 지켜주고 있었다.
“이게 대체….”
목리원의 입에서 황망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도대체 이 이변의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나, 본단에 진입해 천마전까지.
목리원이 움직이는 길엔 그 무엇도 없었다.
달리 기감을 넓혀봐도 어딜가나 맹 측의 승전보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이 갑작스레 뒤집힌 것이다.
아니, 뒤집혔다 말 할 수 있을까?
“…마교의 병력들 또한 쓰러졌소.”
무언가가 기감을 틀어막고 있다.
꼭 시야를 가리는 안개가 정보의 수위를 조절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에 경계심을 한껏 끌어올리던 중,
쿵!
“교주님!”
단지선이 쓰러졌다.
목리원은 헛숨을 들이켰다.
“이, 이보시오!”
단지선의 피부가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었으므로.
*
단지선은 안개 속에 있었다.
그것이 어떤 사술적 환각작용에 의한 일임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손이 작다.’
몸은 어릴 적의 것으로 돌아와 있었고.
‘아프지 않다.’
살아가는 매 순간 걸림돌이 되었던 몸뚱어리가 어느때보다 강건하다.
결정적으로 하나 더.
“지선아.”
어머니가 눈앞에 있다.
백련교의 어느 정원에, 잔뜩 부른 배를 손으로 받치며.
단지선은 이것이 환각임을 알면서도 흐린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리하며 답했다.
“…예.”
무심코 생각한다.
바깥은 어찌 되었을까.
그 기묘하던 술법이 보패를 꿰뚫어 자신에게만 적용된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목리원과 호위도 같은 환영에 빠져 있는 걸까.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감정이 이리 요동침에도 그 걱정이 가슴 한켠에 자리한다.
어머니가 손을 뻗었다.
“이리 오렴. 왜 그러고 있니.”
묻는 말에 다가간다.
단지선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따스하고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의 감각이 이리도 선연함에 순간 현실을 잊을 뻔했으나, 그것을 다시금 붙잡아 속에 담았다.
단지선은 생각했다.
‘일단….’
따라가 보아야지.
환영을 나가는 법은 역시, 직접 맞부딪치는 방법 말곤 존재하지 않을 테니.
*
이젠 흐린 기억 속 이야기다.
서장의 산맥 어딘가에 있는 백련교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오가는 사람들의 밝은 미소도 또한 어머니의 이 활기찬 웃음소리도.
“그래서 너희 아버지가 말이야….”
기억에 있는 것처럼 어머니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내도록 하셨다.
단지선이 좋아하지 않는 기억이었다.
선대 백련교주는 가장으로서는 꽤 모자람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그렇습니까.”
단지선은 그리 말하며 어머니의 말을 흘렸다.
어머니는 구김살이 없으셨다.
이런 반응에 익숙해져 그러려니 하는 것 또한 기억 속 그대로였으니.
“아휴, 우리 지선이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무뚝뚝할까.”
누구도 닮지 않으려 했습니다.
허점투성이인 아버지를 닮으면 모자란 교주가 될 터이고, 그저 활기차신 어머니를 닮기엔 제가 너무 얌전한 사람이라.
두 분을 꼭 닮아야 할 것은 동생이면 족하지요.
사내아인지 여아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어여쁠 것입니다.
제가 평생을 지켜야지요.
그런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마음에 조금 더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어서.
동생이 생긴다는 기대감이 그리도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서.
다만 이제와 생각하길.
‘무엇도 지키지 못했구나.’
너무 어렸다.
부모님을 구하고 동생을 품 안에 지키기엔 어렸다.
백련교를 온건하고 단천화를 물려내기엔, 이 비루먹을 몸뚱어리는 너무 작았다.
파마성이라는 천성은 그 순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단지선은 이 꿈이 과거의 어느 시점인지를 알 수 있었다.
‘아.’
“부인, 지선아.”
단천화가 백련교로 돌아오던 때의 일이구나.
“낭군!”
어머니가 아버지를 발견하곤 환히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가만 웃으며 손짓한다.
단지선은 다가가며 어머니보다도 흐릿해진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되새겼다.
이렇게 보니 자신은 아버지를 조금 더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생각이나 하던 중이었다.
“회의는 잘 끝나셨나요?”
어머니의 물음에 아버지가 답한다.
“…항상 하던 대로지.”
아버지의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그늘이 져 있었다.
단지선은 알았다.
저 회의의 내용이 무엇인지.
‘혈천교.’
자신이 태어나기 훨씬 전 백련교를 떠나 마교에 투신했던 숙부.
그가 혈천교라는 이름으로 중원으로 나가 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에 백련교가 취해야 할 자세에 관한 회의였다.
나서서 단천화를 막아야 한다는 부류와, 이미 파문한 이를 신경 쓸 이유는 없다는 부류의 싸움.
아버지는 전자였다.
어머니는 후자였다.
장로들도 부부의 갈라진 의견처럼 서로 다른 자세를 취했다.
그러니 이렇게 회의가 길어지는 것이다.
무엇도 결정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걱정이 많소. 그놈이 얼마나 악독해질 수 있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서.”
“…저는 낭군이 해를 입을까 걱정되는 걸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단지선은 그 광경을 봤다.
그 순간 생각한다.
‘오늘이었지.’
쾅!!!
“아아아아악!!!”
폭음과 비명은 전조 없이 밀려 들어왔다.
마른 하늘에 떨어진 날벼락처럼, 갑작스레 몰려온 해일처럼.
“이, 이게 무슨!”
“교주님! 적습입니다!”
피투성이 교인이 허겁지겁 달려와 사실을 알린다.
아버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내 한껏 날카로운 얼굴이 된 아버지가 말했다.
“부인, 지선이를 데리고 피해 계시오.”
“저도…!”
“뱃속에 우리 아이가 있소.”
어머니의 입이 꾹 다물렸다.
백련교 최고수인 어머니가 전력 외가 된 상황.
다시 생각해도 단천화의 일정은 소름 끼칠 정도다.
“지선아!”
단지선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폭음의 반대편으로 달렸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등 뒤에 남겨두었다.
아버지의 등이 보인다.
저것이 단지선이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콰아아앙―!
폭음과 동시에, 등을 진 아버지의 시선 끝으로 한 사내가 히죽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봉두난발과 혈기를 줄줄 흘려내는 번들거리는 눈.
혈마 단천화.
그가 그곳에 있었다.
검색
기억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단천…!”
“시끄럽다.”
꽈앙!
아버지는 무인으로서 모자랐다.
정확히는,
“낭군!”
어머니와 단천화보다 모자랐다.
“꺼억…!”
어머니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절대 단천화를 이길 수 없음을.
그가 남겠다 선택한 순간, 자신과 어머니가 도망칠 일말의 유예를 위해 목숨을 버릴 선택을 했다는 것을.
하나 그 유예조차 만들지 못했다.
단천화는 끔찍하리만큼 강했기에.
그가 사용하는 마공은 그리도 추악했기에.
“지선아….”
어머니는 쓰게 웃으며 단지선을 끌어안았다.
“…숨어있거라. 다 잘 끝날 테니까. 응?”
그날은 그 말에 따랐다.
너무 두려워서, 혼란스러워서.
단지선은 입술을 뻐끔거렸다.
이번엔 다른 말을 하고 싶었으나, 역시 불가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므로.
아, 역시 평생을 가도 이 얼굴에는 이기지 못하는 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단지선은 발걸음을 뒤로 물렸다.
그렇게 뒤도는 순간,
피잉―!
세상이 뒤집혔다.
*
“지선아.”
다시 처음이다.
백련교의 어느 정원, 만삭의 배를 손으로 받친 어머니와, 어린 자신.
‘그랬군.’
이제야 확실시 된다.
이것은 가장 끔찍한 기억을 반복하는 사술이다.
그 순간, 한 가지를 더 인지하게 되니.
‘바깥은?’
누가 기다리고 있더라.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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