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17화 (317/334)

EP.318 이부 십사장 - 침입, 격전 (4)

* * *

본대는 전황은 치열했다.

천마신교의 대문 앞에서 이어진 공방은 어느 한쪽의 물러섬도 없이 이어져 갔으며, 그에 따라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피는 운무처럼 공간을 붉게 수놓았다.

고성과 비명, 그리고 내기와 마기가 뒤얽혀 혼란스러운 전장.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챈 것은 마일석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치열한 것이지?’

왜 싸우고 있느냐, 따위의 우습지도 않은 사고가 아니었다.

도리어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어떻게 마교가 맹의 본대와 치열한 접전을 벌일 수 있는 것이냐.’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양측의 전력 차이가 너무 극심했던 까닭이다.

이곳까지 오며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본대끼리의 싸움을 두고 적 측의 주요 전력을 봉인하는 일이었다.

그를 위해 사백운, 진건, 염소소가 마교의 장로들에게로 갔다.

1기 용봉단이었던 현 강호의 새로운 기둥들이 육마를 막으러 갔다.

즉, 적측의 최고수들은 모두 발이 묶이 상태다.

그에 반해서 보라, 이쪽은 초월이 셋이다.

검왕 남궁혁, 맹주 견궐,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백도 무림의 전력이 다 이곳에 있다.

수적인 우열을 차치하고서라도, 한 측 집단에 초월의 무인이 셋이나 있는 상황에 접전은 있어선 안 된단 말이다.

촤아아악!

“끄아아아악!!!”

그럼에도 전력이 엇비슷하다.

마일석의 눈이 흔들렸다.

‘이상하다.’

기시감이 떠오르는 순간 이 전장의 어색함이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지?

이 전투가 시작된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아니, 나는 방금까지 누구를 상대하고 있었지?

덜컥, 어깨가 들썩인다.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뜨이는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

등 뒤에서 괴성과 함께 흉포한 내력이 느껴졌다.

시선을 돌린 마일석은 흠칫 놀랐다.

“방주?”

후임으로 개방을 맡겼던 현 개방주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쾅!

방어책은 본능적으로 발휘된다.

마일석은 이화접목의 수를 써 개방주의 내력을 튕겨냈다.

“크헉!”

피를 흩뿌리는 중에도 실핏줄이 터져나간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아연실색할 상황이었다.

이지를 잃은 아군이 아군을 공격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제야 풀리는 의문.

쿠우우웅!

끔찍하리만큼 강력하게 느껴졌던, 또한 거칠게 느껴졌던 내력의 충돌을 일으키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게되었다.

“야이 멍청한 놈들아!!!”

남궁혁과 견궐.

두 사람이 서로를 노리고 있었다.

*

목리원은 맹의 대열 어디에도 끼지 않았다.

태초, 이 전쟁이 재발할 것임을 예견한 그 순간부터 목리원의 비밀에 관한 사실을 알고 있던 중역들이 그에게 하나의 역할을 미리 배정해두었던 까닭이다.

“천마전은 저쪽일 것입니다. 보패가 반응하고 있습니다.”

바로 위광천의 상대역이었다.

그들의 스승이 동귀어진한 날, 그 이전부터 얽힌 질긴 악연의 실이 두 사람을 이었기 때문이다.

은원을 베는 것은 스스로여야 함을 무림이라는 숲에 몸담은 모든 이들이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른 용봉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목리원은 자리를 빠져나왔다.

단지선과 함께 천마전으로 향하는 길을 뚫었다.

다른 인원은 없었다.

“한데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별도의 병력을 함께 데려오지 않은 것.”

“그게 무슨 말이오?”

“천마전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단지선은 냉정하게 말했다.

“희생을 감내하는 한이 있어도 병력을 더 데리고 와야 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위광천과 마주하기까지 최대한 전력을 온존해야 하니….”

“푸흐흐.”

목리원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려버렸다.

그에 단지선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떠올랐다.

목리원은 우선 사과했다.

“아, 미안하오. 비난의 뜻은 아니오.”

정확히는 모르는 사람이라면 확실히 단지선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불현듯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목리원은 기색을 가다듬고 말했다.

“괜찮소. 그자는 절대 그런 수를 쓰지 않을 인간이니까.”

“예?”

“위광천이라는 자는 전략이라는 이유보다 알량한 자존심 하나가 더 중요한 인간이오. 마인답고, 무인답지.”

그것은 직접 검을 맞대본 상대이기에 확실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때로는 한번의 결투가 백번의 대화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줄 때가 있었다.

높은 경지에선 더욱이 그랬다.

목리원은 그와 결투를 나눌 적 분노, 모멸감, 절망, 증오, 자괴감따위를 느꼈다.

당시 그는 그런 감정을 느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말이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결투였다.

마교 쪽은 천마 이선이 등장하며 사기가 드높아진 때였고, 동시에 천살성을 다시 손에 쥐는 일이 눈앞에 있는 때였다.

그럼에도 그런 부정적 감정이었다.

목리원은 그 이유를 알았다.

마일석이 말해주었다.

-싸우던 중 갑자기 천마 놈을 향해 뛰어가더구나. 딱 형님의 생사결이 끝을 맺으려는 때였다.

어쩌면 자신과 닮았을지도 모른다.

위광천이 진정 바란 것은 스승의 인정, 혹은 스스로의 의지로 우뚝 서는 일이었겠지.

끌려다니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고, 동시에 끝맺지 못한 결투에 목매었을 것이다.

적이고 마인이다.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저 끝에 자리한 사내지만 무인, 숙적으로서 이르자면 그는 절대 전면전에 얄팍한 수를 더하지 않을 것이었다.

“자존심.”

“…?”

“내가 더 뛰어나다. 그따위 수를 쓰지 않아도 나는 이길 수 있다. 겁먹은 개처럼 짖을 수는 없다.”

흘려내듯 말한 목리원은 이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 승부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목리원은 손은 검자루를 쓸고 있었다.

시선은 인위적인 안개에 둘러싸인 천마전을 향했다.

“그는 분명 그런 생각일 테요. 수를 쓸 바에 스스로 목을 매달 인간이지.”

“어찌 장담하십니까?”

“그를 알기에, 좀 더 확실한 근거를 들어, 천마전까지 가는 이 뻥 뚫린 길에서 누구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오. 의식 탓은 아님은 그 보패가 말해주지 않소? 그는 그저 옥좌에서 기다릴 것이오.”

확신에 단지선의 미간이 슬쩍 좁아졌다.

하나, 이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보다는 그를 잘 아실테지요.”

“잡설이 길었구려. 이만 또 움직여보지.”

목리원은 그리 말하고 천마전을 향했다.

안개 너머로는, 오로지 위광천의 마기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

사마공은 정좌한 채로 부관의 보고를 받았다.

“의식은 순조롭게 치러지고 있습니다. 신교의 본대는 전장을 이탈, 중원 놈들이 제 살을 파먹는 중입니다.”

“그래, 물러가거라. 특이사항이 있다면 다시 오도록 하고.”

“존명.”

스륵―

부관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사마공은 깊은숨을 내쉬며 정양을 끝냈다.

‘역시 몸으로 의식을 받아내는 것은 무리수였나.’

십만대산 전체에 펼쳐둔 진을 직접 조율하느라 꽤 많은 심력을 소모했다.

진이 완전이 깨져나간 후 상황을 파악, 조치를 취해 빠른 회복이 가능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다.

사마공은 남아있는 욱씬거림을 털어내며 생각했다.

‘육마는 끝났군.’

연리건, 양고혜, 태을벽과 이어두었던 연결이 끊겼다.

이럴 때 오강악 그놈과 패웅추가 살아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아니.’

사마공은 회의적이었다.

위광천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어찌 되었든 7년 전 전쟁에서 종지부를 찍지 못한 순간 파멸은 예정되어있던 것이니.

문득 허탈한 숨이 흘러나왔다.

‘본대 측의 의식도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애초에 적측이 본대에 붙인 초월만 셋이다.

최초 돌격을 가장해 혼란을 만들고 의식으로 서로를 해하게 만들었다곤 하나, 임시방편이다.

초월에 다다른 무인이라는 것들의 특징이 있다.

어떤 현혹을 쓰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기시감을 느끼고 스스로 그 벽을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아무렴, 그렇지 않았다면 십만대산에 펼쳐둔 진을 목리원 측이 그리 쉽게 부수지는 못했을 것 아닌가.

다른 쪽도 마찬가지였다.

‘장로들도 이기진 못하겠지.’

애초에 ‘패배’를 위해 출진했다.

사실상 난전을 통한 승리를 바랐다면 장로들은 본대 쪽으로 붙었어야 맞는 일이다.

혼란 속이라면 배수나 되는 적 측의 초월을 어찌 쉽게 처리할 수 있지 않았겠나.

사마공은 다시 한번 이 상황을 평했다.

“염병할 상황이군.”

하나의 대법을 실행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일은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 모든 투쟁에 대의는 존재하는가.

회의감이 치솟는다.

그럼에도 멈추지 못하는 스스로가 참 아둔하게 느껴진다.

사마공의 입가에 쓴 미소가 걸렸다.

왜 하필 이 순간인지.

-현공아, 또 명상에 빠져 있더냐.

간자로 들어갔던 무당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죽을 때가 되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인가.

사마공은 이내 그를 털어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대한 법진이 한껏 자리한 참모전.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사마공은 입술을 달싹였다.

손은 이미 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어찌 예까지 오셨습니까.”

라는 물음에 지그시 웃으며 멈춰선 사내.

민머리에 승복, 그 위로 도드라진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

“오랜만입니다. 악귀 시주님.”

소림의 투승, 일운이었다.

다음화 보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