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15화 (315/334)

EP.316 이부 십사장 - 침입, 격전 (2)

* * *

분명한 도발.

연리건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새삼스레 반응할 이유는 없었다.

검룡… 이제는 검치라 불리는 남궁진천이라는 사내에 대해 꽤 알고 있으므로.

우둔함을 가장하여 무례를 즐기는 사내.

하나, 그런 단점조차 흠집을 낼 수 없는 고강한 무공을 지닌 사내.

‘상대는 초월이다.’

즉, 이런 것에 일희일비해선 상대할 수 없는 난적이다.

물론 전심전력을 다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흠집이나 내면 잘한 일이다.

자신은 초절정의 후반기, 남궁진천은 완연한 초월.

두 경지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아무렴, 신교와 백도 무림 사이에 파인 골이 차라리 그 간극보다는 가까울 것이다.

이제와서 전투 중에 초월로 상승하는 일을 노린다?

어림도 없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은 이제 고인이 된 패웅추나 가능한 것이다.

연리건은 스스로에게 그런 무재가 없음을 잘 알았다.

하나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오오오―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었다.

연리건은 심장에 검지를 박아넣었다.

그 순간이었다.

화르르륵!

연리건의 안광이 처음으로 빛났다.

그것은 그의 안색처럼 음울하고 공허하게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뭐냐.”

남궁진천의 미간이 좁아졌다.

짜증, 불만 따위가 보였다.

“억지로 경지를 열어젖힌 건가?”

정답이다.

“아서라. 해봐야 제대로 된 초월은 보지 못한다. 도리어 선천진기가 다 타들어 가 죽기야 하겠지.”

그 또한 정답이다.

다만 초월에 한 번이라도 대항하기 위해, 천마의 수신 호위로서 한순간 공력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려 초월의 무인의 걸음을 한순간이나마 멎게 하는 그런 대법이었다.

그걸 알고도 쓰는 것이었다.

“생채기 하나는 내겠지.”

그저 전력을 조금이라도 깎을 수 있다면 그만.

남궁진천의 인상이 왈칵 찌푸려졌다.

“우습다. 나는 그런 것으로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다.”

돌연 연리건의 입에서 헛웃음이 삐져나왔다.

‘보통은 다른 걸 묻지 않나.’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냐는 둥, 스스로의 목숨을 소중히 하라는 둥.

예상했던 답이 있었고, 그에 보란 듯이 되돌려주려던 답도 있었다.

한데 저 미치광이에겐 통하지 않을 성 싶다.

연리건은 다만 읊조렸다.

“천마군림, 만마앙복.”

“병신 머저리 집단 답군. 와라.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테니.”

무어라 해야 할까.

죽음을 앞둔 순간 연리건은 묘한 감상을 느꼈다.

천마의 수신 호위가 되기 위해 태어나 그것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일, 자신을 그저 도구로 취급하며 단련해왔던 지난 생.

누군가는 충분한 감상을 띄울 최후임에도.

“주둥이에 한 대 갈겨주지.”

연리건의 머릿속엔 남궁진천의 주둥이에 주먹을 한 대라도 갈기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도발에 남궁진천은 코웃음 쳤다.

아, 아닌 줄 알았건만 역시 자신은 양물이 작다는 도발에 걸린 게 맞는 듯했다.

놀라운 일이다.

자라나며 이렇게 이성적이지 않았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대법의 영향인가? 그도 아니면 저 미치광이의 도발이 천외천의 지경에 올랐다거나.

…아니, 어느 쪽이든 중요한 일은 아니다.

쾅!

연리건은 그대로 전신믜 마기를 다 끌어올린 채로 달려나가 주먹을 뻗었다.

정직하게 남궁진천의 인중을 노리는 공격이었다.

승부의 향방은 순식간에 결정됐다.

쩌어어억!

단 일 검.

연리건은 인지하지도 못한 순간 펼쳐진 하나의 수가 그의 어깨부터 허리까지를 단번에 끊어내었다.

즉, 몸이 두동강이 났다.

“끄륵…!”

핏물이 샘솟았다.

마기에 취해 몸이 부상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려졌던 까닭일까.

연리건은 남궁진천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내뱉는 말까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피할 가치조차 없어 두동강을 냈고. 생채기는 역시 안 나는군.”

시큰둥한 표정이 끝까지 사람을 열받게 했다.

연리건은 끅끅 헛웃음을 흘리다 숨을 거뒀다.

*

혜운은 본단의 북서로 향했다.

이곳까지 오기 전 남궁진천에게 들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맡아야 할 계집이 있다.

-네?

-색마. 색공을 쓰는데 면역이 없는 놈들이라면 꽤 번거로울 것이다.

-…시비 거는 건가?

-네가 아니면 안 된다.

-야이 새끼야. 이리 와봐.

조금 험악한 분위기가 되었으나 어쨌든.

확실히 색공이란 것이 불가나 도가 계열 무공으로 중화할 수 있는 종류의 무공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받아들였다.

자신 말고도 일운이 있긴 했으나, 애초에 일운은 7년 전부터 쭉 노리던 상대가 있어 왔으니 새삼 색마를 상대할 이유도 없다.

‘이용당하는 것 같은데.’

생각하며 아미파의 후배들을 이끌고 혜운은 마인들을 썰어나갔다.

촤아아악!

“끄헉!”

마교 또한 맹의 본대를 막기 위해 입구 쪽으로 병력을 집중시킨 상태다.

목표지점까지에 커다란 방해물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딜 가야 할지 또한 명확했다.

“어휴, 닭장 냄새.”

혜운이 콧잔등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독한 분내, 그리고 그 속에 가려져 은은하게 풍겨오는 비릿한 살내음.

색공을 쓴다는 마녀이니 오죽하겠는가.

전각 앞에 멈춰선 혜운은 후배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오는 것들이나 막고 있으렴. 안에는 혼자 들어갈 테니까.”

“하, 하지만 사형!”

“됐단다. 있어봤자 방해야. 너희는.”

휘적휘적 혜운은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고요했다.

아니, 무인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 하나, 전각의 꼭대기층의 끈적하고 역겨운 것 외에는.

‘개판이네.’

혜운은 여유롭게 텅 빈 전각을 올랐다.

그리고 꼭대기층의 문을 발로 뻥! 차서 연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어휴, 늙어서 추하게 무슨 짓이람.”

“어머, 비구니?”

색마 양고혜.

그녀가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반쯤 헐벗은 꼴로 혜운을 반겼다.

혜운의 시선은 그녀의 주변을 향했다.

목내이처럼 말라붙어 죽은 사내의 시신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다만 색공으로 내력을 흡수하기 위함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진건과 함께 수행할 적 혜운이 들은 게 꽤 있었다.

본디 흡공이라는 것은 제아무리 마공에 속한다 해도 시전자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이상을 몸에 욱여넣을 수 없는 법이다.

양고혜도 그럴 것이 분명했다.

아무렴, 그게 가능했다면 저 마녀가 천마가 되었을 것 아닌가.

“의식? 왜, 배교에서 훔쳐 왔다는 거.”

“알려주어야 하니?”

“할망구가 허리나 흔들어 대면서 애지중지 정기를 모았을 걸 생각하니까 안타까워서. 의식이라도 되어야 할 거 아냐? 안 그럼 너무 추하잖아.”

양고혜의 입가가 삐걱였다.

혜운은 과장되게 눈을 뜨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어머, 팔자주름.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그래도 사실인 걸 어떡해.

덧붙이니 양고혜에게서 폭발적으로 마기가 흘러나왔다.

“네년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구나? 소문이 십만대산까지 퍼지던데. 비구니 주제에 가랑이나 벌리고 다닌다고.”

“누구처럼 뿌리까지 빨아먹진 않죠. 그 정도로 간절하지는 않아서.”

“언제까지 그렇게 여유롭게?”

“그쪽보단 훨씬 오래? 와, 근데 말하는 거 되게 할머니 같다. 너는 이렇게 안 될 줄 알아? 막 그런 뜻으로 들리는데 내 착각인가?”

혜운은 이죽이며 백색의 검기를 피워올렸다.

남궁진천이 본다면 ‘주제에 안 맞게 정순하군’이라고 표현했을 것이 분명할 정도로 맑은 검기였다.

두 여인의 기가 격돌했다.

한걸음 발을 내디디며 서로에게 가까워질 때마다 마루가 들썩였다.

그렇게,

쾅!

격돌했다.

이 또한 남궁진천의 말로 치환하면 그랬다.

정파 제일 탕녀와 마교 제일 탕녀의 격돌이었다.

*

제갈산은 꽤 바삐 움직였다.

아무래도 다른 동료들에 비해 상대해야 할 적의 정보가 많이 풀리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빙궁에서 흘러들어온 놈이라는데.’

빙마 태을벽.

정보가 그게 끝이다. 실제로 전선에 제대로 나선 적도 없고.

북해의 빙궁이라 하면 빙공을 주로 사용하는 거대한 새외무림 집단이다.

그런 곳의 출신이 왜 마교에 있는지부터 어떻게 그를 상대해야 할 것인지까지.

아니, 그 이전에 그놈이 대체 어디에 있을지를 찾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이질적인 기운을 찾는다? 아니, 교의 진영 전체가 예의 의식에 둘러싸여 있다. 방어는 하고 있지만 역으로 파고드는 것은 불가능할 터.’

이럴 줄 알았으면 단지선에게 조금 더 많은 정보를 들어두는 건데.

새삼스러운 마음이 떠오르는 중이었다.

멈칫―

제갈산의 발걸음이 멎었다.

입매가 삐뚜름하게 솟았다.

“이야.”

어찌나 친절하신지, 적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차가운 인상 따위보다 확실한, 냉기가 서린 기파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쪽이 태을벽이우?”

“….”

“쩝, 사람이 답이 없어.”

제갈산은 조갑을 손에 끼웠다.

그리하며 태을벽을 관찰했다.

‘초절정… 나랑 엇비슷한 정도인가?’

둘 다 정석적인 무공을 사용하진 않는다.

저쪽은 빙공, 이쪽은 진법.

수 싸움이 꽤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우리 사이좋게 얘기나 할 사이는 아니니 바로….”

덜컥!

기습을 노리던 제갈산의 몸이 멎었다.

떨리는 시선은 발목을 향했다.

얼어붙어있었다.

‘어느 틈에?’

경악이 떠오른 순간.

쾅!

태을벽이 순식간에 짓쳐들어와 주먹을 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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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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