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살검협-314화 (314/334)

EP.315 이부 십사장 - 침입, 격전 (1)

* * *

중심 제단의 파괴는 빨랐다.

단지선을 제외한 전원의 기동력이 무인 중 최상위에 드는 만큼 한번 결정된 사안을 실행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란 것이 없는 게 큰 지분을 차지했다.

콰앙!

머뭇거릴 틈은 없다.

각 중심 제단을 지키는 마인은 약 백 명, 한 개의 대를 이루는 크기였으나 그들 모두가 추풍낙엽처럼 쓸려갔다.

와중 확실히 느낀 사실은 중심 제단은 다른 제단들과 크기나 양식이 다르다는 것 정도.

과정에서 살아있는 맹의 무인을 일곱 정도 더 구했다.

그들을 치료하고 후방으로 보내느라 쓴 시간이 적지 않았으나, 다행히 일에 차질을 빚을 정도는 아니었다.

쿠구궁!

마지막 중심 제단이 흩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때쯤.

“오는구나.”

본대가 십만대산에 진입했다.

*

중원 무림의 전력이 깃대를 높이 치켜든 채 진군하는 광경은 장엄했다.

사이에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걸왕님! 창성님! 도왕님!”

일찍이 만났던 마일석과 사백운, 그에 도왕 진건까지 어느덧 본대에 합류해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목리원은 환히 웃으며 그들을 반겼다.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이쿠, 괴물 같은 놈이 그새 여기까지 따라왔네.”

진건이 껄껄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마일석과 사백운은 싱긋 웃으며 인사를 대신했다.

와중 견궐이 나섰다.

“상황을 들을 수 있겠는가.”

해후를 나누기엔 영 좋지 않은 자리.

목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선 제단의 파괴는 끝을 맺었습니다. 과정에서….”

아차, 단지선에 관한 것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목리원이 숨을 삼키는 순간이었다.

“배교에서 나왔습니다. 탈취당한 법서를 되찾기 위해서.”

단지선의 호위가 말했다.

단지선은 눈을 감았고, 주변의 중역들은 헛숨을 들이켰다.

저런 식으로 빗겨갈 수 있구나.

안도와 의구심이 동시에 차오르는 순간 견궐이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소. 허면 제단을 파괴한 것에 공로가 있으시다는 뜻일 터. 이 일에 관해선 다시 이야기하지.”

“예.”

견궐의 시선이 저 멀리 십만대산 한가운데를 향했다.

“결국 예까지 왔군.”

감회 어린, 하나 따스한 기운이라곤 조금도 맺히지 않은 말이었다.

도리어 그의 목소리엔 노골적인 적의가 가득했다.

“겨우 여기까지 왔소. 이제 물러설 곳은 없단 말이지.”

스릉―

그가 검을 뽑았다.

“십만대산은 넓소. 마교의 근거지 또한 절대 작지 않은 크기임을 다들 알 테요. 이제부터는 작전대로 산개해 저곳을 칠 것이오. 모두 검을 드시오.”

스르릉―

수만의 군세가 하나가 된 듯 검을 뽑아들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진군하시오.”

쿵!

산맥이 울렸다.

*

염소소는 진건, 사백운과 함께 움직였다.

이들 두 사람이 별동대로서 맞을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전쟁의 매듭을 지어야지.”

바로 살아남은 셋의 장로가 이들의 적이었다.

각각 1, 3, 6장로다.

염소소가 우선 말했다.

“모용 놈 복수는 해주어야지. 3장로 그 망할 할망구는 내가 맡으마.”

“나는 1장로를 상대하겠소. 개인적으로 엮인 일이 있어서.”

“소거법이구만, 그럼 내가 6장로로 하지.”

각자가 초월에 이른 마인들이다.

상대가 쉬울 리는 없었다.

아니, 다만 그뿐만이 아니다.

“7년간 이놈들이라 해서 정체했을 리는 없다. 그간 꾸준히 전쟁을 대비해왔으니 더 악랄해졌겠지.”

이번 배교의 술법만 해도 그랬다.

척후의 이상을 감지해 미리 초월의 무인을 파견하지 않았다면 이 거대한 의식에 본대 대부분이 당해버렸을 것이다.

전력의 차이는 극심해질 것이 당연할진저, 이렇게까지 악랄한 마교가 겨우 이정도 방비로 끝내지는 않았을 터란 말이다.

사실상 최중요 전력인 검왕 남궁혁과 맹주 견궐이 본대에 남아있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본디 심부의 강적을 상대했어야 할 그들은 본대의 온존을 위해 진영의 선두에 섰다.

“장로들을 죽이면 전쟁에서의 우열은 확실히 우리 쪽으로 돌아올 게다. 역할이 중요해.”

염소소가 거듭 당부했다.

두 사람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장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 또한 제 역할을 안다는 듯 머지 않은 곳에 마중을 나와 있었으니.

“여기서 찢어지자꾸나.”

각자 있는 곳이 달랐다.

전력의 분산, 수성 측에선 합리적인 선택이다.

“몸조심하시오.”

말한 사백운이 쾅! 소리를 내며 떠났다.

뒤이어 진건도 바람처럼 사라졌다.

염소소는 앞으로 쭉쭉 내달려, 그렇게 3장로 악려후를 마주했다.

기다란 손톱에 실린 마기가 어찌나 보기 흉한지.

“모가지랑 같이 그 손톱도 분질러주어야겠구나.”

염소소가 사납게 웃으며 말하자 악려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무인은 검으로 말하는 법이니.

콰아아앙!

땅거죽이 뒤집혔다.

*

1기 용봉단으로 분류되었던 여섯, 개중 목리원을 제외한 다섯은 각자의 역할이 있었다.

바로 육마의 처치였다.

당장 강호 무림에서 초절정 이상의 무공 수위를 자랑하며 개인을 넘어 집단의 대표로 이름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으니, 이런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됨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그랬다.

육마에 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게 바로 1기 용봉단이었다.

실전에서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취하기 위해서도 그 판단은 옳은 면이 있었다.

여하튼, 그리하여 개인의 별동대를 이끌고 천마신교의 본단으로 밀고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음.”

콰아아아앙!

남궁진천은 마교의 대문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는 조부를 봤다.

시원시원해서 참 보기가 좋았다.

순간 공간 위로 또 무언가 술식 따위가 발현되는 듯한데, 자신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본대에 초월이 둘이다.

괜히 돕겠다고 나서봤자 계획에 차질만 빚을 터.

“진천아, 어서 가자꾸나.”

별동대의 유일한 대원, 숙부인 창성검 남궁운이 말했다.

남궁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 측의 병력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을 뒤로한 채 그대로 성벽을 넘었다.

남궁진천의 목표는 하나였다.

‘검마라고 했던가.’

검마 연리건.

모지리처럼 죽은 생선 눈깔이나 하던 놈.

7년 전과는 다르다.

이젠 확실히 그놈을 이길 수 있다.

본래 지고 못 사는 성격이 바로 남궁진천이었다.

애매한 승부도 그렇다.

그냥 상대가 자신을 ‘해볼 만한 상대’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기분이 나쁘다.

이유는 그것이면 족했다.

“그래서 진천아, 우리 이제 어디로 가냐?”

남궁운의 말에 남궁진천은 주변을 둘러봤다.

막상 성벽을 넘었지만 마교의 본진은 넓다.

단순히 시력만으로는 다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아마 저 끝에 높게 솟아있는 것이 천마전일 테지. 구태여 그곳으로 밀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남궁진천은 마교 측에서도 자신을 대비해 함정을 파두었을 것을 예상했다.

‘함정이 있다면….’

어느 쪽일까.

고민이 있었고, 이내 답이 나왔다.

“…내가 왜 함정을 찾아가야 하지?”

함정이 자신을 마중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존감의 끝, 그런 결론이 내려졌다.

“무슨 말이니 그게?”

남궁운이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였으나 남궁진천의 관심 밖이었다.

남궁진천은 그대로 높이 날아올라, 적당한 평지 위에 기파를 뿌려대며 착지했다.

꽈아아아앙!

일대가 푸른 기파에 휩쓸려 폐허가 되었다.

“끄아아아악!!!”

잠복하고 있던 마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와중 남궁진천은 생각했다.

“흠, 여기가 아닌가.”

자신을 대비한 함정이 이렇게까지 허투를 리가 없다.

턱을 쓰다듬자 뒤늦게 남궁운이 따라왔다.

“야이 정신빠진 놈아! 뛸 거면 뛴다고 말했어야지!”

숙부의 비명을 닮은 목소리는 역시 안중 밖이다.

남궁진천은 그 순간 목덜미를 거슬리게 하는 감각에 집중했다.

“저기군.”

뭔진 몰라도 술수 같은 걸 쓰는 게 분명했다.

누가 목을 죄는 기분이 드는 게 딱 그렇다.

그놈의 의식이겠지.

예상했고, 그것을 실로 옳았다.

감각이 이끄는 대로 내달려 도착한 곳은 거대한 장원이었다.

아니, 장원이었을 자리였다.

내부의 모든 건물이 치워지고 세워져 있는 것은 제단.

그곳의 한가운데 연리건이 앉아 있었다.

주변에 백에 달하는 마인들은 목에 칼을 꽂은 채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것인 듯했다.

그 거슬리는 기운이.

“이건…!”

남궁운이 구역질이 난다는 듯 말을 삼켰다.

연리건이 말했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안 되는 건가.”

가라앉은 생선 눈깔이 남궁진천에게 쏘아졌다.

남궁진천은 미간을 좁혔다.

예의 거슬림이 심해졌기에.

“생자의 혼백을 갈아 저주하는 술법이다. 한데 닿지 않는군.”

그가 몇 번을 봐도 특이한 독문병기를 뽑아 들었다.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하는 무구.

하지만 남궁진천은 알았다.

저 마인 놈은 비겁하게 검수인 척하면서 내가중수법을 쓸 것임을.

“글러먹은 놈이군.”

남궁진천은 검을 뽑아들어 그를 향하며 말했다.

“나를 저주할 것이면 일천은 갈아 넣었어야 했다. 각오가 모자라다. 네놈 양물 크기 마냥.”

남궁진천의 도발에 연리건의 눈썹이 들썩였다.

다음화 보기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