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4 이부 십삼장 - 십만대산, 척후 (5)
* * *
맹의 경비태세는 확실했다.
자그마한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막사로 향하는 모든 길목을 반경 100장까지 경계했으며, 중심으로 갈수록 그 경계는 더욱 삼엄해져 설령 초절정의 고수라 한들 함부로 구역을 넘어설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경계, 그리고 구역의 구분을 넘나들어 한번에 최심부까지 달려간 사내가 있었다.
“제사란 말인가? 그것도 배교의?”
“예!”
바로 목리원과 일행에 의해 구출된 맹의 척후였다.
그는 하나 남은 팔로 땅을 짚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엉망진창이 된 꼴, 수뇌부는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배교의 진이 마교에게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하오.”
“혹여 배교와 마교가 결탁했다면 그는 큰일이오! 배교는 중원의 남단에 암약하고 있소! 지금 무주공산이 된 맹이….”
“그렇다면 병력을 돌려야….”
“안 될 말이오! 병력을 돌린다면 당장 눈앞의 마교는 어찌한단 말이오! 그보다 이미 적진에 있을 살성 대협과….”
소란스레 의견이 오갔다.
그것을 멈춘 것은 남궁혁이었다.
“다들 그만.”
내력이 깔린 낮은 울림에 공간이 일순 얼어붙는다.
모든 시선이 남궁혁에게 몰렸다.
그는 다만 평소와 같은 심드렁한 얼굴로 무인을 턱짓했다.
“이놈 말이 끝나지 않았다. 남은 회의는 이야기를 다 듣고 하도록.”
남궁혁을 아는 사람이 들었다면 그답지 않게 냉철한 의견이라며 감탄을 했겠지만 다행히 이곳에 남궁혁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유일하게 사실을 아는 맹주 견궐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할 뿐이었다.
“더 이를 것이 있다면 말하거라.”
견궐의 말에 무인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이윽고 터져 나오는 말은 그랬다.
“묵룡 대협의 전언이십니다.”
그것은 미리 목리원이 일러둔 말이었다.
“정보책을 통하여 마교가 배교의 술법을 탈취한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이곳까지 뻗쳐있는 의식의 종류를 파악하는 일을 끝냈고, 소란에 적들이 방비를 단단히 할 터이니 진군 준비를 서둘러 주십시오. 저희는 이곳에서 남은 의식을 파훼하겠습니다.”
간결하고 의도가 확실한 말이었다.
수뇌부의 의견이 한쪽으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견권이 말했다.
“각 진영의 준비에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각각 말했다.
“일각이 안 걸릴 것이오.”
“이각 정도가 필요하오. 막 아이들이 경계를 끝낼 시기라.”
“당장도 가능하다.”
의견들을 수렴하여 최종적으로 결정 내려진 것이 있었다.
“이각 안에 모든 준비를 끝내시오. 머뭇거렸다간 더 큰 화를 입을지도 모를 일이니.”
애초에 이곳에 온 순간부터 전쟁의 준비는 끝난 것이었다.
언제 십만대산으로 돌입할지 시기를 정할 일만 남았던 만큼, 십만대산에 산재한 위험 요소와 그 파훼가 확실시된, 그리고 마교의 방비가 더 단단해지기 전인 지금이 적기다.
견궐의 명령에 자리가 곧장 파해지려는 순간이었다.
“여기가 수뇌 막사가 맞느냐.”
입구 쪽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울렸다.
“헛!”
누군가가 헛숨을 들이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입구를 걷어내며 들어오는 거구는, 그리고 그 곁의 두 사내는 백도 무림의 수뇌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차, 창성님!”
“걸왕님… 그리고 도왕님!”
“늦어서 미안하네. 산골에 있었더니 영 소식이 늦어서.”
창성 사백운, 그가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
걸왕 마일석과 도왕 진건이 이어 들어왔다.
견궐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전대 맹주와 현 맹주가 잠시 시선을 나눴고, 이윽고 견궐의 입술이 다물렸다.
사백운은 대뜸 그리 말했다.
“고생 많았네. 이제부터는 그 짐, 조금 덜어도 되네.”
견궐의 입가, 수염 아래로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
십만대산 어딘가.
단지선과 마주한 목리원 일행은 꽤나 날선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최초 남궁진천이 칼을 넣었다 빼며 우스꽝스러움을 연출했음에도 그랬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애초에 백련교 자체가 중원과 그리 친하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이유요, 두 번째는….
“…혈마 놈이 백련교 출신이라는 말이렷다?”
단천화를 역린으로 여길, 누구보다 단천화의 끔찍함을 피부 위로 느꼈을 염소소가 이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단지선은 자신을 소개하며 일단 이 사태의 근원이었던 단지선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 살갗을 찢어발길 정도의 살기다.
목리원은 살기가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님에도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하나 단지선은 평화로운 안색이었다.
다만 평화롭다기보단, 이런 살기의 따끔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감함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야할 터.
단지선은 염소소의 살기를 온전히 받아내며 말했다.
“중원엔 죄송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쯤 염소소는 인상을 찌푸리며 살기를 거뒀다.
“…쯧, 되었다.”
목리원은 그제야 안도했다.
단지성의 파마성은 이런 순간에조차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는 입밖으로 내뱉는 모든 말이 진실 되어야 하는 주박에 걸려있으니 자연히 그의 말에 신뢰도가 더해지는 것이었다.
단지선이 밝힌 사실은 총 세 가지였다.
혈마 단천화가 자신의 숙부라는 것, 그가 마교로 투신한 후 천마의 폐관에 맞춰 독립해 지은 것이 혈천교라는 것, 끝으로 이곳에 온 이유는 백련교에서 뻗어나온 천마신교가 더 이상의 패악질을 부리는 일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
그는 목리원에 관한 정보는 철저히 숨겼다.
와중 느낀 것이 있었다.
‘거짓을 말할 수는 없으나 사실을 숨길 수는 있다.’
파마성의 맹점이었다.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숨긴 것은 고마운 일이나, 다르게 말해 단지선의 의도가 조금 의심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생각해보면 온전한 대의를 위해서라고 하기에 단지선이 너무 호의적이었다.
다만 자신의 모친이 백련의 교인이었다는 이유로는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그가 애초에 선한 사람이었나?
아니다. 그는 이해득실이 꽤 확실한 사람이었다.
목리원은 알고 있는 정보와 단지선이 보이는 행동의 괴리감 탓에 조금은 답답한 기분을 느꼈다.
여하튼, 그런 감정을 제외하고 현 상황만 보자면 그랬다.
“중원 무림의 진격에 맞춰 움직였습니다. 마침 시간에 맞춰 도착한 듯하고.”
“…왜 이곳까지 온 게냐.”
“도움이 될 수 있을 듯하여. 일시적 동맹 같은 것이지요.”
단지선이 품안에서 부적을 꺼냈다.
“이 의식지대 내에서 인지가 흐려지는 것을 방지할 부적입니다. 배교와 협상하여 얻어온 것이니 효용은 확실할 터입니다. 직접 써보기도 했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간 어딜 갔나 했더니 배교에 다녀온 것인가.
목리원의 눈이 크게 뜨이는 순간이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지요. 저희도 천마신교의 심부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에 배교와 협상하며 걸었던 거래조건도 있고.”
단지선은 말했다.
“당신들을 돕겠습니다. 대신, 천마신교 내에 있는 백련교와 배교의 비급서는 저희쪽으로 양도해 주시지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다.
맹주의 허락까지 갈 것도 없이 염소소 선에서 판단이 가능한.
“…받아들이지.”
염소소는 부적을 받아들어 목리원을 포함한 일행에게 분배했다.
와중 남궁진천이 말했다.
“나는 필요없….”
“들고 있어라. 혹시 모르니.”
착!
염소소가 남궁진천의 이마에 부적을 붙였다.
남궁진천의 눈썹이 팔자로 휘었다.
단지선이 묘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봤고, 이윽고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먼저 상황을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찌 도와야 할지를 아는 게 우선이니.”
동맹은 그리 성사되었다.
*
현 상황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해들은 단지선은 말했다.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이 척후의 역할은 본대가 진입하기까지 경로의 의식지대를 없애는 것이 되겠군요.”
“방도가 있느냐? 우리 계획은 십만대산 전체를 돌아다니며 제단을 부수는 것이었다. 기동력이 나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선택이었지.”
염소소의 말에 단지선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런 무식한 방법으론 안 됩니다. 정확히는 시간 내에 맞출 수 없지요.”
“그렇다면?”
“광범위한 지역을 덮는 의식에는 필시 각 지점의 중심이 되는 제단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 부수면 됩니다. 그리한다면 기둥이 휘청이는 건물이 무너져내리듯, 남은 제단은 그 효용을 제대로 발하지 못하게 될 테지요.”
단지선이 어깨 너머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호위가 팔각형의 보패를 그에게 건넸다.
“이것을 쓸 것입니다.”
“…그게 무어냐?”
“배교에서 얻어온 물건입니다. 이 의식에 관해 언질하며 제단의 중심축을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가 보패의 중심에 박혀있는 옥을 검지로 쓸었다.
옅은 내공이 보패에 흘러들어갔다.
직후였다.
우우우웅―
보패가 울리며 빛을 발했다.
정확히 보패의 북동쪽 조각이었다.
“가장 가까운 중심제단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로 가지요.”
단지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화 보기
* * *